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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광대다|권정생
책을 펴내며 1부 펭귄이 녹고 있다 2부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 3부 새만금에서 사패산까지 4부 대추리에서 5부 전쟁과 평화 6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7부 80년대, 그날의 뜨거운 함성 최병수 연대기 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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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1960년에 태어나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식당 보조원에서 보일러공, 공사판 잡역부 등 열아홉 가지 직업을 거친 그는, 1986년 어느 날 정릉 주택가에 시도한 ‘정릉벽화사건’으로 인해 성북경찰서에 끌려간다. “난 목수요”라고 밝히는 그에게 형사는 “목수가 그림을 그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으니 직업을 화가로 하겠다”며 그를 화가로 데뷔시킨다. 이듬해인 1987년 이한열 군 사망 소식과 함께 대형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통해 알려지면서 <노동해방도>, <장산곶매> 등 80년대 미술운동의 빼어난 양식인 걸개그림을 탄생시킨다. 이후 반전반핵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1990대 들어서는 분단 문제와 생태환경 문제를 주제로 한 미술운동에 주력해왔다. 1992년 리우환경정상회담과 함께 열린 세계민간환경단체들(NGO)의 ‘글로벌 포럼’에 참가하여, 걸개그림 <쓰레기들>을 전시해 「타임스」지를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1997년 교토 지구온난화 회의에선 얼음조각 작품 <펭귄이 녹고 있다>를 발표해 세계적인 환경미술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가 처음 시도한 걸개그림이라는 장르는 현대민중미술이 개발한 유력한 매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그의 이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또한 그의 그림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의 아티스트 스페이스 미술관에도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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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 대하여-대신 울고 대신 꿈꾸는 ‘광대(廣大)’와 같은 현장예술
“현장예술이라는 것은 광대와 비슷해. 그 역할은 아주 대중적이지. 대중예술이라고 해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오라 가라 하는 것은 대중예술이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이 아니지. 대중적이라는 것은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몸이 아픈 곳을 정확하게 진단해서 그것에 맞는 예술을 하는 것이 진정한 대중예술이야. 하지만 감성적인 접근도 꼭 필요해. 그것이 더욱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거든.” 최병수는,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현장예술가는 광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광대(廣大)’는 말 그대로 넓고 큰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자기 시대의 사람들 속에서 대신 울고 대신 욕하고 대신 꿈꾸는 재주로 먹고 사는 광대와 같은 존재다. 최근 5월에 세상을 떠난 권정생 선생님은 펭귄을 깎아 지구온난화를 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한 통의 편지 글 속에 그를 광대라고 말하고 있다. “병수는 광대다. 줄다리기 하며, 재주넘기 하며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아무도 곁에 없어도 혼자 잘못 되고 있는 세상을, 기우뚱하는 집기둥을 바로 세우려 애쓰며 병수는 광대놀음을 그치지 않는다. 보는 사람 있어도 모두 구경꾼뿐이다. 그래서 병수는 외롭다. 하지만 그게 병수의 몫이고 운명이다.” 자신의 시대를 아파하고, 민중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대신해 울고 웃어준 고마운 이. 이 책은 20년 동안 그가 무엇을 위해 울고 꿈꾸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집이자 우리 시대가 고민해야 하는 화두를 모은 선집(禪集) 같은 책이다. 책은 7부로 구성되어 있고, 객관적 자료들의 증명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그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 그가 설명하는 작품 해설도 곁들였다. 1부 - 펭귄이 녹고 있다 에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97년부터 얼음 펭귄을 깎아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그의 선견지명은 국내보다는 세계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2002년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는 엔진톱을 들고 회의장 앞으로 들어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는다. “왜 흉기를 들고 왔느냐?” “펭귄을 만들려고 가져왔다.” 결국 대회장 앞에서 펭귄을 깎는 그의 모습은 ‘한국의 미술가가 세계를 구하려고 노력한다’는 기사를 얻게 된다. 2부 -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에서는 문명과 인간성의 타락을 동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준다. 그의 고래,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1997, 걸개그림)는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는 동물들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고래는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을 벗어나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다.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구원의 방주를 띄어야 했던 노아처럼 어미고래는 인간의 무자비한 파괴와 공해로부터 동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 있다. 이 그림은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서정적이면서 서사적 메타포가 강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2006, 현장 설치)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인권과 차권은 있는데 왜 동물권은 없느냐? 나무와 풀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은 고(故) 권정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고속도로를 갈아엎어 밭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아기돼지야>는 최근 이천 시민들에 의해 능지처참된 아기돼지 사건을 위로한 작품이다. 이런 일련의 작품을 통해 작가는 참다운 인간성이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부 - 새만금에서 사패산까지에서는 그의 환경운동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솟대 제작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물론 심미적 아름다움은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반면 북한산 터널 반대를 위해 싸운 사패산 망루의 건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권이다. 망루를 세우면서 계속해서 높이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아침마다 내가 여기다 물을 주거든. 그럼 자라”라고 말하는 대목은 싸움의 긴박함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넉살을 보여준다. 4부 - 대추리에서는 사진작가 노순택과 찬타의 사진들을 통해 그가 발견한 이 땅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그 메시지 강렬하고, 그 울림 오래 기억될 작품들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를 위해 평택 대추리에 세운 그의 작품들을 보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노순택은 ‘대추리에 똬리를 튼 채 마을을 지키는 황구렁이들’이라고 극찬했지만, 이제 그의 작품들은 더 이상 대추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 국방부의 포클레인 삽날에 황구렁이들이 모두 찢겨 나갔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사진가들의 필름 속에만 남아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장예술의 실상일까. 그의 작품들을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5부 - 전쟁과 평화에서는 위암 말기 상황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이라크 땅으로 들어가 공습 사흘 전(2003년 3월 16일)에 펼친 그의 반전평화운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가 깨지고 피를 토하는 죽음과의 사투 속에서도 주사바늘을 뽑고 병원을 나와 이라크로 직행하는 그의 모습은 일상의 안락함 속에 젖어 있는 우리의 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그의 평화를 향한 염원은 핵문제를 다룬 <반전반핵도>(1988, 걸개그림)에서부터 시작하여, 뉴질랜드와 베트남에 세운 솟대 작업들을 통해 전통의 답습을 뛰어넘는 탁월한 미의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6부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에서는 자본의 5?18로 규정한 한미 FTA 반대 싸움, 일본군위안부 문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팔려오는 베트남 처녀들의 국제결혼 문제, 분단 문제, 도시 행정 등 아직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의식의 작품들을 모았다. 7부 - 80년대, 그날의 뜨거운 함성에서는 그가 목수에서 화가로 들어선 80년대의 상황과 이한열 군 사망, 강경대 군 사망 등 젊은 넋들을 위로한 작품들 및 80년대 문제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을 모았다. 1987년 6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2007년 6월. 바로 올해는 6월 항쟁 20주기를 맞이하는 해이다. 80년대를 보냈던 젊은이들은 이제 3, 40대가 되었다. 이들에게 아직도 뚜렷이 떠오르는 한 장의 그림이 바로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걸개그림이다. 최병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하는 그림이다. 6.29 선언이 나오고 신촌에서 시청 앞까지 이어진 수백만의 인파 속에서 이한열 군의 장례식이 열렸다. 직격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 거의 한 달간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이한열 군의 사망은 6월 항쟁이라는 범국민적 저항운동을 촉발시킨 도화선이었다. 그 장례식을 치르면서 최병수는 주목받았다. 당시의 급박한 정세와 맞물려 민중미술이 보여준 즉각적인 개입은 예술이 정치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사례이다. 대형 걸개그림을 주도함으로써 역사적 긴박한 상황을 주목시킨 최병수는 대중 시위 속에서 탄생된 바리케이드 위의 화가라는 새로운 전형을 민중미술에 추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의 행보는 노동현장과 반전반핵 평화운동 등으로 넓혀 나감으로써 80년대 말의 민주화 투쟁의 한복판에 우뚝 섰다. 그는 미술이 줄 수 있는 힘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 길에서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작업을 성취하게 된다. 1989년 가로 21미터에 세로 17미터의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는 10만 정도의 대규모 집회를 예상하여 110평 크기의 규모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이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기 위해 36명의 학생, 시민, 화가들이 동원되어 5일간 밤을 새며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치약 크기의 그림물감이 200개나 소요되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은 많은 굴곡을 겪게 되고, 이 와중에서 운동권 세력들도 사분오열 흩어져 뜨거운 함성의 거리엔 황량한 공허만이 휩쓸었다. 모두 일찌감치 짐을 챙겨 떠났지만, 여전히 그는 그 자리에서 외로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 문제’(1990), ‘지구온난화 문제’(1997),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2000), ‘북한산 터널 건립 반대’(2002),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2003), ‘이라크 전쟁 반대’(2003), ‘미군 평택 기지 이전 반대’(2003, 2006), 한미 FTA반대‘(2006) 등 평화와 환경생태 운동으로 내용이 조금 바뀌었을 뿐 그의 도구는 여전히 미술을 통한 현장예술이다. 그에게 그림과 조각은 더럽고 냄새나는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싸움을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그는 시대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그가 원하는 가치의 길은 가야만 하는 먼 길이다. 또한 이번 작품집에서는 스케치와 함께 시도 선보임으로써 그가 민중미술 화가라는 한정된 평가를 간단히 뛰어넘게 해준다. 그의 스케치들은 발상의 창조성과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에 대한 새로운 평가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모든 활동을 다 담아 내지는 못했다. 시대별로 날짜별로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너무 방대한 양이기에 작가와의 협의를 통해 주요 작품들 위주로 선별하였다. 작가는 6월 항쟁 20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작업 활동 중이었음에도 여수에서 올라와 사흘 동안 밤샘 편집 작업에 함께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 권정생 선생님의 별세로 장례식도 치러내야 했고, 이천의 아기돼지 사건에 분개하여 항의 시위에 참여하는 등 현장예술가로서의 활동을 멈춤 없이 진행했다. 그 활동들 역시 이번 작품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번 작품집을 통하여 20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일구어 낸 한 현장예술가의 진정성과 인간적 승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