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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밭에 씨뿌릴 날이 기다려지네
깨달음이 있는 밭 소에게 품삯을 주다 뒷산에 더덕을 심은 뜻은? 방에 걸어 둔 호미 삼수생 손님 농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봄은 가지마다 무르익었네 이불재 이야기 사람을 진정 그리워하리 이팝나무 꽃을 기다리며 종이컵 연등 따뜻한 밥을 올리듯 대원사 가는 길 여름-밭은 결코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밭은 치열하다 연못가에 지은 차실 새들아, 함께 살자꾸나 연꽃과 같이 깊은 산이 흰 구름 보고 미소하네 외로움이 힘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 비 오는 날의 연꽃 이불재 새 식구 그리운 태백산 연못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꽃 도반들 산중 가족들의 여름나기 가랑비 오는 날에 책을 읽다 여름날의 수행 가을-잉걸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고구마를 보고 깨닫는다 까다로운 고추와 뚝심 좋은 호박 잘 커준 감나무야, 나도 고맙다 분수를 지키는 산중 가족 땅콩 캐는 날 그대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보현이에게 산중 풍경 나를 시들게 하는 것들을 경계하다 불일암 풍경도 안녕하시다 차나무는 강하다 겨울-산중에는 겨울에도 미소가 있네 콩 한 알에 스민 햇볕과 비바람 된서리는 뭇 생명을 성숙케 한다 수험생이여, 동백나무를 보라 미소 짓게 하는 무당벌레 발자국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목탑에 어린 산사의 추억 따분하긴요, 나무랑 새가 친군데… 난로처럼 훈훈한 산중 겨울 문수 집을 짓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부처이다 삶이 힘겨운 분들께 |
무염(無染), 벽록檗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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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내가 날마다 밟고 지나가는 밭에도 있다. 절집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이다. 흙이 있으니 배추와 상추가 자라고, 배추와 상추가 있으니 흙이 살아나는 것이다. 햇볕이나 비나 바람 중에 어느 하나만 없다 해도 채소는 살아날 수 없을 터. 만물의 영장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p. 20)
아침에는 서원터에 사는 구씨 어른에게 부탁했던 고추 모종을 150모 가져왔다. 한 모에 백 원이라니, 세상의 생명 있는 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래 절 입구에 설치된 자판기의 커피 한 잔 값도 3백 원이나 되니 말이다. 흙 묻은 옷에 늘 빛바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구씨 노인을 나는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입가에 미소를 달고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구씨 어른의 태도야말로 내가 소망하는 삶의 구경이다. 한 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지만 수행자나 철학자가 무색할 정도로 순리대로 욕심 없이 곱게 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p. 38) 나는 다시 혼자다. 또 며칠 있으면 손님들이 올 것이고 혼자 사니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다. 외로움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혼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혼자이지 않다. 방을 나서면 야생화인 둥글레가 하얀 초롱 같은 꽃을 달고 나를 반긴다. 알록제비꽃의 새잎과 꽃대도 몰라보게 부풀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생의 시간에 온몸을 바치려면 누구라도 외로워져야 한다. (p. 94) 겨울의 창고는 봄의 빈 창고와 다르다 창고에는 고구마와 땅콩, 콩, 호박 등 먹을 것이 가득하다. 나와 보현이는 물론 산중 처소를 찾는 산새들까지 겨우내 먹을 양식이다. 창고 문을 열어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벽에 걸린 낫과 삽과 괭이들을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 마음처럼 농기구들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다. (p. 172) --- 본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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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서 글쓰고 농사 지으며 산 지 여섯 해
사람들은 묻는다. 왜 산중에 사느냐고, 외롭지 않냐고? 대학을 졸업한 뒤 20년 넘게 교사와 출판편집자로 혹은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오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초로의 나이를 맞이한 자신을 보게 된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꿈 하나를 더 이상 뒤로 미룰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바람이 스치는 대숲과 솔숲이 있고, 가까운 곳에 물소리가 들리는 작은 개울이 있으며, 차나무를 심는 이웃이 살고 있는 곳에 조그만 집을 지어 무욕(無慾)의 글을 쓰며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렇게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늘 마음속에 그리던 남도 산중에 집을 지어 초보 농사꾼으로 들어앉은 지 올해로 6년이 되었다. 저자는 한 해 두 해 농사일을 익히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초보 농사꾼 티를 조금씩 벗어간다. “옥수수 씨를 한 곳에 두세 개씩 뿌리소. 눈 밝은 꿩이나 산비둘기가 주워 먹으니 그 정도는 뿌려야 나중에 자네도 옥수수 맛을 볼 것이네.” “뿌리가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 잔가지를 많이 쳐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무가 삽니다.” 이웃 농부들의 조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흙과 어우러져 사니 절로 농사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 농사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해도 매년 봄이면 파종한 씨앗이 싹트는 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린다.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치는 고추 모종 한 모가 가을날 풍성한 붉은 고추를 안겨주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는 땅과 노동이 이루어낸 신비한 결실임을 또한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한 걸음씩 농부의 삶을 익히는 그가 닮고자 하는 삶의 구경(究竟)은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달고 논밭에서 묵묵히 일하는 구씨 어른이다. 구씨 어른은 한 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지만 수행자나 철학자가 무색할 정도로 순리대로 욕심없이 곱게 사시는 분이다. 산중의 넉넉한 인심은 저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마을 농부들은 누가 쟁기질 하는 것을 보면 한두 고랑 갈아주거나 우스갯소리라도 한두 마디 건네주고 간다. 또한 고춧가루, 깨, 토란 줄기, 버섯 등 자신들이 가꾸고 거둔 것을 기꺼이 나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산중 사람들의 순박한 나눔이다. 그의 처소를 찾는 손님들은 무슨 낙으로 산중에서 혼자 사느냐고 종종 묻는다. 그는 이들에게 산중 삶이 주는 충만함을 온전히 전할 길이 없다. 사람이 입을 다물면 자연이 입을 연다는 금언처럼 그는 사람이 드문 산중에 살기 때문에 수많은 유무정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처소 주위의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새, 나무, 흙, 햇볕, 새벽별, 바람, 물소리, 모두가 가족이고 반가운 이웃이다.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눈맞추고 입맞추는 것, 그리하여 다시 ‘나’를 바로 보는 것, 이것이 산중 생활이 안겨주는 지극한 기쁨이다. 그는 이들과 하나되어 사립문 활짝 열고 넉넉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산다. 작물들이 자라는 밭에서 치열한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자연과 조우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온전한 삶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는 산중의 삶. 이것이 어찌 남는 살림살이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