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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ㅣ미셸 페로
1부 막이 오르면 앞선 시기 그리고 다른 지역ㅣ미셸 페로 프랑스 혁명기의 불안정한 경계ㅣ린 헌트 홈 스위트 홈ㅣ캐서린 홀 2부 배우들 가족의 승리ㅣ미셸 페로 가족의 기능ㅣ미셸 페로 인물과 역할ㅣ미셸 페로 가족의 생활 방식ㅣ미셸 페로 부르주아 사생활의 의례ㅣ안느 마르탱-퓌지에 가족의 비극과 갈등ㅣ미셸 페로 주변적 인물: 독신자와 외로운 사람들ㅣ미셸 페로 3부 무대 그리고 장소 거주 방식ㅣ미셸 페로 사적인 공간들ㅣ로제-알리 게랑 4부 무대 뒤켠 개인의 비밀ㅣ알랭 코르뱅 내밀한 관계 또는 주고받는 즐거움ㅣ알랭 코르뱅 외침과 속삭임ㅣ알랭 코르뱅 결론ㅣ미셸 페로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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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기의 사생활에 대해 논하려면 우리는 이혼율이나 자살률 등 사회사 분야의 계량적 연구 성과 그리고 엘리트 계층 중 자신의 '사적' 인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 소수 인물들의 직접적인 증언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내적 경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군인이 막사 아래에서, 죄수가 감옥 안에서 뭘 생각했을까? 혁명가의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매춘부가 거리를 오가면서 또는 저녁 잠자리에 누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러한 사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들이 혁명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사생활의 역사를 쓰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한 예가 있으니 바로 사드 후작의 사례이다. 사드의 저술은 섹슈얼리티에 대해 극단적인 한계에 이르기까지 탐색하고 있다. 섹슈얼리티는 사생활의 가장 중요한 차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사드의 탐색은 오늘날에도 근대적 의식에 저술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의 어린 시절을 들어다보아도 후일『쥐스틴』『규방철학』『소돔 120일』의 저자를 짐작케 할 만한 요소들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어린 사드는 수많은 다른 귀족 자제들처럼 루이-르-그랑에서 수학한 후 왕실 군대에 입대했다. 23세에 결혼했고, 몇 달 후 '지나친 방탕' 으로 인해 뱅센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것은 감옥을 드나드는 긴 방탕 생활의 시작이었다. 1778~1790년 사이 그는 뱅셍과 바스티유에서 11년을 보냈고, 1801년 이후에는 영속적인 감금 상태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드는 혁명기 파리에서 살아남았다. 작품을 쓰고 피그 섹시옹(section des Picques)의 서기로서 공무원 노릇을 하다가 1794년에는 라클로와 같은 감옥에서 몇 달을 보냈다. 1789년 이전 이미 사드는 방종한 인물로 악명 높았으나 혁명기에 발표된 그의 여러 작품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1791년에 출판된 그의『쥐스틴』은 그후 10년간 6판을 거듭했다. 원래 300쪽 분량이던 이 소설은 1797년『누벨 쥐스틴』이라는 제목으로 810쪽으로 늘어났다. 같은 해 출판된『쥘리에트』는 천 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알린과 발쿠르』그리고『규방철학』은 둘 다 1795년에 출판되었다.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은『쥐스틴』이었다. 사드는『쥐스틴』의 연작인『누벨 쥐스틴』과『쥘리에트』로 인해 마지막으로 투옥되었다. 『쥐스틴』이 판을 거듭하고 이 책이 지속적으로 유명세를 누린 사실로 미루어보아 혁명기에 사드는 무명 인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 pp.8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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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혼하고 나면 결혼 구조를 뒤흔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혼은 극히 들물었다. 1901년의 조사에 의하면 18~50세 사이의프랑스 기혼 남성 만명 중 이혼한 사람은 53명이었고, 15~45세 기혼 여성 만 명 중 이혼녀는 70명이었다.
부부간의 내밀성은 높이 평가되었다. 점점 부부는 같은 방에서 같은 침대를 쓰는 추세였다. 각방을 쓰는 습관의 장점에 대한 담론은 사라지고 있었다. 1821년 파리제 부인의 책은 이것을 적극 권유했던 반면, 1913년 그녀의 책을 재정비하여 출판한 것을 보면 이에 관한 언급은 삭제되어 아무런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였다. 루이-필립은 자신의 거처를 손님들에게 보여주면서 아내인 마리-아멜리 왕비와 함께 자는 침대를 자랑슯게 가리키곤 했던 것이다. 부르주아 부부는 둘만 았을 때 반말쓰기를 했고, 서로에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정 어린 별명을 붙여주곤 했다. 세자르 비로토는 아내를 '미미', '나의 아름다운 하얀 암사슴', '사랑하는 내 고양이' 라고 불렀다. 결혼 후 사적인 시간은 완전히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결혼 직후부터 임신을 고대하고 아기의 출산을 기다렸다.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키우면서 교육에 대해 신경을 쓰고 아이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게 할까 마음을 기울였다. 가족이라는 세포가 살아나가는 리듬은 아이의 변화에 따라 맞춰졌다. 아이를 많이 낳지는 않았다. 폴 뱅상은 1881년 생 여성들 중 절반 이상이 아이를 둘 이상 낳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많이 낳지는 않아도 아이는 애정 면에서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부부간의 내밀성이 더해가는 것과 함께 가족간의 내밀성도 깊어져갔다. 부성과 모성은 점점 상승하고 있는 가치였다. 공쿠르 형제는 1860년 3월 26일자 일기에서 “아이는 이제 더이상 아이 어머니와 함게 옛날처럼 규방 속에 가두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조그만 아기를 모두에게 자랑하나다. 유모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을내어 보이고 생산을 과시하는 것과도 같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마치 거의 한 세기 전 시민이라는 것을 과시할 때와 비슷하다. 즉 무척이나 떠들어대는 것이다.” 도미에의 스케치에서처럼 아버지가 자기 자손을 자랑 삼아 남들에게 보이는 것도 좋아했지만, 내밀한 순간에 아이들과 장난하고 애무하면서 행복해하기도 했다. 외젠 부알로와 아내 마리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아이들이 잠옷바람으로 와서 아침 인사하는 것을 즐겼다. 외젠이 여행중일 때 마리가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아침 광경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이 이걸 보아야 하는 데! 아침마다 내 침대가 강아지 집이 된다니까요. 아이들 때문에 내가 게을러져요, 귀여운 것들. 누가 제일 행복해 보인는지 몰라요. 잔느는 그 작고 예쁜 팔로 내 목으 ㄹ끌어안고(잔느는 두 살 반이다), 아무도 날 안지 못하게 막아요. 누가 날 안으려 하면 막 때리고 할퀴면서 어리광 가득한 목소리로 '엄마는 내 꺼야'라고 해요. 그리고는 나를 꼭 끌어안고 뽀뽀를 한답니다. 나의 커다란 아기, 당신이 여기 있다면, 난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니 우리 둘 다 얼마나 행복할까요”(1883). 모성은 끊임없이 찬양되었고, 여성에게는 진정 보람 있는 유일한 역할이라고 간주되었다. 이이들은 태어나고 성장했다. 기독교 공동체에의 입문을 의미하는 세례와 영성체는 19세기가 흐르는 과정에서 가족 모임으로 변화하여 가족의 활기를 재확인하고 가족간의 연결을 공고히 하는 순간으로 바뀌었다. 대혁명이 호적 업무를 국가에 맡긴 이래,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사흘이내에 해당 지역에 사는 두 증인을 대동하고 아이가 타어난 지역의 코뮌청에 신고해야 했다. 신고 후 24시간 이내에 의사가 와서 아이의 존재와 성을 확인했다. --- pp.362~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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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조금씩 쾌락주의에 물들고 있던 부르주아 가정도 하녀의 존재가 제기하는문제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하녀는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프티 부르주아들은 모두 하녀를 고용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대개의 경우, 협소한 아파트 내부에 새로운 난잡한 혼숙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깨까지 평온하던 사적인 공간 속으로 젊은 농촌 처녀가 들어오자 젊은 서민층 처녀의 육체에 대한 유혹이 일상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제 3공화국은 오스만의 도시 계획을 이어받아 계속 추진시켜나갔으며, 그에 따라 하녀들은 7층 다락방에 처박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집 남자들은 하인용 계단을 오르내리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그만이었다. 주인 나리에게 위안을 주고, 나리가 자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서 하녀는 지나치게 권위적인 주인 마님에게 기분좋게 복수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집안' 유모의 젖을 먹고, 보모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새로운 세대의 부르주아들은 욱체 문화와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해 서민층 여성에게 의지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만큼 입문의 시기가 되고, 그리고 성적으로 성숙한 나이에 이르면, 젊은 하녀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하녀는 부르주아의 리비도 해결을 위해 동원된 육체들의 연결고리에 속하는 존재였다. 정신분석가들은 앞치마 페티시즘에 대해 아마 상당히 많은 논점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극히 익숙한 물건인 앞치마는 사적 영역의 내밀성과 근접 가능한 여성 육체를 동시에 상징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여주인도 '한 지붕 세 식구' 상황의 공모자가 될 수 있었다. 병든 여성, 불감증 또는 남편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성들은 이런 식으로 남편이 바람 피는 대상을 한정시킬 수 있었다. 또는 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녀와의 사랑은 남편이 재산을 탕진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골칫거리'를 모면한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소설은 하녀와의 이런 관계를 즐겨 다루었다. 졸라, 모파상, 미르보는 이 주제를 끝없이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관행이 어느 정도 일반적이었는지 가늠할 수는 없다. 작가들이 달변하는 손에 닿는 집 안 내부의 서민층 여성의 육체에 매혹된 남자들의 환상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으므로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같이 의존적 섹슈얼리티와 유사한 형태는 수많은 사장 그리고 특히 감독반장들이 젋은 노동자 처녀들을 유호가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는 사례들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무정부적 성향의 노동운동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초야권' 에 대해 분개해 마지않았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서민층 여성들의 육체를 착취하는 이러한 행위야말로 노동자들의 도덕성 침해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분명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1905년에 리모주에서는 그런 행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호색한을 쫓아 시가지를 질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이 도자기 산업 도시를 피로 물들인 심각한 노동 문제는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던 것이다. --- pp.756~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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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구의 신기원을 이룬 기념비적인 명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그리고 푸코의 『말과 사물』이 철학책인데도 마치 빵처럼 팔려나갔다면 이 방대한 시리즈는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나오자마자 '상업적 베스트셀러만큼이나 많이 팔려나갔다.'(프랑스에서만 20만질이 팔렸다고 함) 일종의 '학술서'에 가깝고 전권 합해 거의 4,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14개 언어로 완역되어 있는 것은 그러한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해준다. 물론 이 시리즈는 '베스트셀러만큼이나 많이 팔려나간' 상업적 성공만을 거둔 것은 아니다. 이와 동시에 '역사 연구의 신기원을 이룬 기념비적인 명저'라는 학문적 평가와 함께 새로운 출판 편집의 이정표라는 호평을 얻기도 했다. 우선 이 책의 다채로운 연구 주제와 다양한 연구 방법론들은 '새로운 역사'를 주창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가들이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얼마나 혁신적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전공 영역과 국적을 허물고 국제적인 대가들로 팀을 이루어 작업한 방식도 지식의 교류와 소통의 새로운 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눈(眼)을 위한 축제'라는 평이 따랐을 정도로 텍스트와 도판이 정교한 하모니를 이루도록 한 것은 이 시리즈를 단순히 하나의 책을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예컨대 4권을 1부 '막이 오르면', 2부 '배우들', 3부 '무대 그리고 장소', 4부 '무대 뒤켠' 하는 식으로 정교하게 배치해놓은 데서 보이듯 각 권이 건축술적으로 정교한 완성미를 뽐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과 시각이 책을 구성하는 다양한 편집술 및 배치술과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종의 오케스트라화를 통해 인간과 역사의 본질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삶을 새롭고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화려한 글읽기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 '정치'로부터 '인간'과 나의 성찰로> 원래 이 책은 프랑스의 명문 출판사인 쇠유 출판사의 역사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미셸 비녹의 제안으로 1976년부터 10여 년 간의 작업을 거쳐 1985년에 출판되었다. 이 작업을 주도한 것은 '일요 역사가'로 자임하고 있던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였는데, 이 두 사람의 학문적 경로를 보면 이 시리즈의 독특한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원래 소르본 대학을 졸업한 아리에스는 대학교수 시험에 몇 번 실패한 후 국립 도서관 사서, 열대 농업 조사관, 플롱 출판사 편집자 등 대학의 아카데미즘과는 무관한 경로를 걸었다. 하지만 '일요 역사가'라는 말대로 역사 연구는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예리한 눈을 가졌는가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미셸 푸코의 처녀작을 플롱 출판사에서 과감히 출판해낸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이 자연적 산물이 아니라 근대에 들어오면서 제도적·정치적으로 '탄생'했다는 혁신적인 명제를 제출한 『앙시앙 레짐기의 아동과 가족의 삶』이라는 명저를 통해 소위 심성사의 혁명을 선구적으로 알린다. 이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파리의 출판계와 지성계에서는 (그가 열대 농업 조사관으로 일한 경력을 들어) "바나나 수입업자가 가히 혁명적인 역사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그는 대학이라는 제도나 아카데미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더욱 신기한 것은 그가 "악숑 프랑세즈"라는 극우파 노선을 따른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이 운동에 심취했으면서도 막상 역사학에서는 '혁명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이라는 명저를 통해 역사와 인간과학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은 역사의 그늘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면서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장 혁명적으로 바꾼 역사가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조르주 뒤비의 경우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자 콜레주 드 프랑스의 중세사 담당 교수라는 이력이 잘 보여주듯이 역사학계의 대가 중의 대가이다. 그리고 동시에 화집의 빼어난 소개자이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이름이 높았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아카데미즘에 갇힌 연구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 빼어난 책임 편집자들의 안내로 이 시리즈는 이제까지 인간의 삶을,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우선 '사생활의 역사'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이 책은 결코 내밀한 부분 또는 어떤 비밀스러운 영역을 새로 '들추거나' 드러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켜 인간 이해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 인간과 역사를 전혀 새롭게 조망하고자 한다. 집을 들어 비유하건대 이전까지의 역사가 인간의 삶을 오직 거실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면 이 시리즈는 이러한 공간에 다락방과 침실, 그리고 지하실을 모두 합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고 한다. 즉 이제까지의 역사학이 인간을 궁정과 정치, 왕조를 중심으로 보았다면 이제 이를 인간과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다시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세간에서 아날 학파하면 얼핏 떠올리는 '미시사'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오히려 풍속사와 예술사, 정치사, 표상들의 체계의 역사, 일상사 등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종합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세기는 우리에게는 정치와 민족, 국가의 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말이 되어서도 지연, 학연 등 비정상적인 사적인 네트워크가 우리 사회의 음지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우리에게 '개인'은 거의 한번도 성찰과 고찰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제대로 없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주요하는 이야기는 정치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사생활은 '수다'로 격하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 모든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아마 90년대 이전까지 개인을 가장 잘 표상하는 것이 '주민'등록번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인을 가장 잘 표상하는 것은 핸드폰 번호와 인터넷 ID가 되었다. 국가를 구성하는 '주민'에서 우리는 이제 결정적으로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인터넷) ID가 곧장 (프로이트 식의) id로 변해 개인이 익명의 공간에서 개인의 욕망만 무차별적으로 배설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신세대의 등장과 인터넷의 확산은 우리가 정치 과잉에서 벗어나 개인에 대한 성찰로 제대로 넘어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관련해 이 시리즈는 다시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아주 다채롭고 경이로운 인간의 삶의 장면과 역사의 풍경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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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역사가들과 재능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그려 보이는 대하 드라마>
그리고 이처럼 엄청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학의 혁명을 연 아날의 노장 세대와 소장 세대, 그리고 각 국의 대가들이 다 함께 참여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에스와 뒤비와 함께 40여명에 달하는 국제적 대가들이 다 함께 참여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자칫 지엽말단으로 흐르기 쉬운 이 주제가 장강처럼 유유히 흘러가면서 역사의 미지의 영역들을 촉촉이 적시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대→중세로 이어지는 역사 분류법을 고대→후기 고대→중세라는 분류법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할 정도로 뛰어난 역사학 성과를 내고 있는 피터 브라운부터 시작해 『고양이 대학살』이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등을 낸 린 헌트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40여명의 전문가들의 이력만으로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기획이 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국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행하고 있는데 로사마 연구의 일인자인 폴 벤느의 글을 보면 이를 좀더 심층적이고 너른 맥락에서 즐겁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기를 것인가 버릴 것인가'(이 시리즈의 1권에 나오는 첫 제목임)부터 시작해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종교와 신이 어떤 의미였는가를 탐구하는 그의 빼어난 글은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바람을 단순한 이국취미에 그치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자극제로 만들어주고도 남는다. 예컨데 이미 『그리스 사람들은 신을 믿었는가』라는 명저를 통해 이 세계를 파헤친 바 있는 그는 신과 저승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세계의 상상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날카로운 통찰로 매우 거시적으로 보여준다.(1권의 내용) <눈(眼)을 위한 화려한 축제> 학문적으로나 생활 면에서 국가와 정치로부터 개인과 인간으로 주된 관심사가 이동한 것이 지난 80-90년대의 유럽의 기본적인 양상이고 지금의 우리의 삶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여기에 이미지의 시대의 도래를 또 다른 주요한 역사적 변화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스펙타클의 시대니 이미지 시대니 하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들려오고 '문자 문화의 종말'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80년대에 선구적으로 이미지와 문자가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이며, 아니 절대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눈을 위한 화려한 축제"라는 명성이 따라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종 도판과 이미지들이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무슨 부속물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사생활을 무의식적으로 가장 은밀하고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낙서와 일기, 그림 등이었다는 정황을 고려해볼 때 역사학을 비롯한 인간과학에서 종종 사료로서의 가치를 망각해온 인간의 삶의 이면의 자료들은 충분히 역사적 조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눈을 위한 화려한 축제"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역사학적 방법론의 요청이 이 시리즈에서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는 평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라운 분야를 빼어나게 조명해 들어가는 텍스트 외에도 역사의 이면과 진실을 동시에,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각 장의 도판들을 통해 역사와 인간의 진실을 통찰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대 편을 다루고 있는 1권에서는 로마 사회부터 비잔틴 사회를 마치 5폭의 병풍처럼 펼쳐 보여주었다가 근대의 탄생과 함께 근대적 인간의 등장을 보여주는 근대 편에서는 삶을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다채롭게 연주하고, 거리와 도시가 삶의 주요한 무대가 된 4권에서는 이것을 마치 하나의 무대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편집 솜씨는 이 책이 얼마나 빼어나게 구상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이탈리아,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각 국의 수많은 편집자들이 이 시리즈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 것 또한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시리즈는 어찌 보면 우리의 삶과 역사를 어떤 권에서는 예술품처럼(1권), 다른 권에서는 음악회처럼(3권), 그리고 또 연극처럼(4권) 보여준다.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학문이 다채롭게 퓨전된 풍성한 이야기상> 이 시리즈는 역사책이지만 동시에 통상적인 역사책의 범주를 넘어선다. 오히려 시대에 관한 거대한 박물지(博物誌)에 가깝다. 즉 이 책은 각 시대의 남과 여, 그들의 사고와 감정, 몸, 삶의 태도와 관습, 코드 체계, 흔적, 기호들을 관찰하고 양피지 문헌들, 비단옷과 승려복, 그리고 저택의 돌에 새겨져 있는 사적인 것의 이미지들을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떤 하나의 단일 주제와 방법론에 의한 하나의 체계적인 종합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과 다양한 주제, 다양한 접근 방법과 다양한 방법론이 하나의 거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떤 면에서 보면 '풍속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 보면 '예술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심성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 또 이념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심층에 있는 대중들의 심성의 변화를 통해 '혁명'의 동력과 함께 혁명이 실제로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도 역추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요리에서도 '퓨전' 요리가 새로 주목받듯이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종합해 놓은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 일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을 고수하는데, 이것은 이제까지 획일적인 삶과 일치된 시선을 강요받아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