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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유악부 선집
2. 부령을 그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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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적 신분관념을 타파한 평등의식
부패한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담정은 진실되게 살아가는 민중적 인물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과 이해를, 부패한 권력자나 그 주구들에 대해서는 격렬한 증오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점은 우리 한시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정도이며, 온유돈후와 절제 및 조화를 추구하는 중세적 미의식에서 사뭇 벗어난 것이다. 담정은 「사유악부」의 도처에서 부패한 지배권력에 대해 비판과 항의를 표시하고 있다. 관리의 가렴주구를 고발하고 백성들을 옹호한 애민시(愛民詩)류의 한시는 다산 정약용을 위시하여 조선시대의 여러 진보적 문인들에 의해 창작된 바 있다. 하지만 담정처럼 폭발적인 분노와 증오를 표현하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그의 작품에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무렵의 한 북방 고을의 권력관계가 극히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 있어 흥미롭기 그지없다. 담정은 「사유악부」에서 특정 사건 및 그와 연루된 관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그들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공격하고, 특정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을 통해 탐관오리의 전형을 창조하고 있다. 담정은 유배지에서 권력자의 탐학과 백성에 대한 수탈을 직접 보고 겪는 한편, 민중들과의 사귐을 통해 그들과의 일체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민중적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전이시킬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일반 한시의 전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담정은 다정다감한 성격에 정의를 옹호하고 불의에 항거하려는 용기와 기백을 지닌 시인이었다. 담정의 시인적 열정과 용기, 민중의 현실을 시혜자적인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흡사 시인 스스로가 그 일원(一員)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음은, 눈여겨 보아야 할 「사유악부」의 미덕이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담정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시와 전(傳)을 조선시대 작가 중에서도 특히 많이 창작하였다. 담정의 작품에는 숱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고 빼어나게 형상화된 인물은 ‘연희’라는 여성이다. 담정은 많은 시편에서 연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숨김없이 그려내면서 봉건시대 여성의 비참한 운명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고 있다. 담정은 아름답고 재주 또한 출중한 젊은 여성이 봉건적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신이 주체적으로 택한 삶을 좌절당한 채 원망과 탄식 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는 데 대해 무한한 연민을 표시하고 있다. 담정은 자기 주변 여성들의 뛰어난 능력·고상한 인격·빼어난 의기 등을 알아보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많은 글을 지었다. 이씨라는 술집 주모(酒母)를 애도하는 시를 짓기도 했고, 조선시대의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백정의 딸 ‘심방주’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를 그 어떤 사람보다도 훌륭한 인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렇듯 담정이 수많은 여성들을 위한 시와 전(傳) 등을 창작한 것은 봉건시대 하층여성의 처지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성적·신분적 차이를 넘어서서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담정이 자각적·선언적 형태로 여성에 대한 평등의식을 표한 적은 없지만, 그가 중세 사대부 지식인의 여성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훌쩍 뛰어넘고 있음은 의심할 바 없다. 담정문학이 보여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우리나라 한시사에서 대서특필되어야 할 드물고도 소중한 것이다. 민중적 인물에 대한 애정 담정문학의 또다른 주요한 면모는 숱한 민중적 인물의 형상화와 그러한 인물에 대한 담정의 애정이다. 담정은 유배를 가서 점차 그곳의 주민들과 사귀게 되고, 그들의 따뜻한 인정에 힘입어 유배생활의 고통을 극복해 나갔는데, 한미한 양반이나 아전·하급무관으로부터 농사꾼·상인·공장(工匠)·술집주인·청년과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담정의 친구가 되었다. 담정은 그들에게서 따뜻하고 소박한 인간미, 훌륭한 덕성을 발견하였고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하였다. 담정은 자신과 우정을 나눈 인물들만이 아니라 변방에서 함께 생활하거나 견문한 각양각색의 민중적 인물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호랑이를 쏘아 죽인 최포수, 여자의 몸으로 호랑이와 맞선 윤씨 열녀, 정절을 지켜 자결한 최씨 열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홍생 등 용맹과 기개, 의기가 드높은 북방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병법에 뛰어난 지덕해, 백발백중의 활솜씨에다 말타기에도 뛰어난 황대석, 칠순의 나이에도 4척이나 되는 활과 돌화살촉이 박힌 화살을 들고 날 듯이 말달리는 이제할 등 씩씩하고 무예에 뛰어난 변방의 남아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계급 타파와 평등의식 담정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민중적 인물에 대한 애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세적 신분관념을 타파하고 ‘평등의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적 감수성은 군자/소인, 남성/여성, 인간/미물 등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담정의 감수성은 부령의 무관·아전·상인·농민·기생·아이·이웃집 할미 등과 신분이나 성(性)을 넘어선 우정을 나누고, 진해의 어부들과 너나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생활을 시에 그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담정의 평등의식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작품은 「장원경 처 심씨를 위해 지은 시」로서, 「사유악부」가 도달한 인간이해와 평등의 감수성을 더욱 심화하거나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미완의 서사시는 장파총이라는 인물이 백정의 딸인 심방주의 인간됨됨이에 탄복하여 그녀를 며느리로 삼는 내용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백정의 딸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라든지, 양반집안과 백정집안의 혼인을 제재로 한 데서 이미 이 작품이 계급적 틀을 벗어나 평등의 인간관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60년 수운 최제우에 의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식이 이루어졌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만민평등의식이 일반화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그보다 앞서 한 시인이 도달한 이 진보적 인간이해가 자못 놀랍기만 하다. 우리 사상사와 문학사에서 중세적 신분관념의 타파는 담정의 문학을 통해서 비로소 뚜렷이 가시화되었던 것이다.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식을 ‘선취’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담정의 문학에서 우리는 미래를 예감하는 문학의 예언적 역할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