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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와 예수
조철수
200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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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1. 초기 유대교
2.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3. 옛날에 말씀이 있었다
4. 지식을 얻기에 탐스러웠다
5. 에덴 동산에
6. 영광의 옥좌
7. 아담의 성전
8. 지옥의 사자
9. 회개의 힘
10. 메시아의 이름
11. 열두 살과 서른 살에 생긴 일
12. 말씀을 채우려고 왔습니다
13. 지혜의 일곱 기둥
14. 안식일
15. 일흔일곱과 일흔
16. 어린 양의 열두 사도
17. 오찬을 먹이시다
18. 열셋과 서른 닢
19. 여섯시가 되었을 때
20. 아홉시에 큰소리로 외치셨다
21. 여덟 번째 왕은 지혜로운 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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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1950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과로 전과했다. 대학 졸업 후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성서학,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앗시리아학 등을 공부했고, 수메르어 문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1995년까지 히브리대학교 앗시리아학과에서 수메르어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을 가르쳤으며, 1982년 히브리대학교와 이스라엘 학술원의 지원으로 수메르어 용례사전 편찬 작업을 해왔다. 1995년 귀국해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장신대학교 등에서 고대 근동문헌, 이스라엘 종교사, 유대교 문헌, 악카드어 등을 강의했다.
1950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과로 전과했다. 대학 졸업 후 이스라엘로 유학을 떠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성서학, 고대 셈어, 이집트학, 앗시리아학 등을 공부했고, 수메르어 문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1995년까지 히브리대학교 앗시리아학과에서 수메르어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을 가르쳤으며, 1982년 히브리대학교와 이스라엘 학술원의 지원으로 수메르어 용례사전 편찬 작업을 해왔다. 1995년 귀국해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장신대학교 등에서 고대 근동문헌, 이스라엘 종교사, 유대교 문헌, 악카드어 등을 강의했다.

국내 유일, 세계에서 열한 번째 앗시리아학 박사 학위 취득자인 저자는 앗시리아, 바빌론, 수메르, 이집트로 대표되는 고대 근동문명 연구자로서 예수 당시의 문헌 자료를 통해 신격화된 예수가 아닌, 인간 예수의 일대를 조명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새겨진 한국신화의 비밀』, 『유대교와 예수』,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2003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사람이 없었다 신神도 없었다』, 『랍비들이 풀어쓴 창세신화』(2009년 대학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가 있고, 근동 지역의 고대 문헌을 한국어로 옮기고 해제를 붙인 『잠언 미드라쉬』, 『수메르 신화』(2005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조들의 어록』, 『사해 문헌1』 등의 편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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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83쪽 | 55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671208

책 속으로

아담과 그 아내가 따서 먹은 열매는 무화과 열매라고 유대교 전승에 말한다. 서양의 에덴 동산 그림에 사과로 나오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라틴어에 유래한 발상이다. 라틴어로 말룸(malum, 사과)은 '악하다'는 뜻도 있기 때문에 중의법(double entendre, 重意法)으로 그림에 표현된 것이다.

복음서에 전하는 일화 가운데 무화과나무 열매 이야기가 나온다(마태 21:18~21). 허기진 예수는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서 열매가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을 보고 이 나무에 다시는 열매가 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저주한다. 자기가 배고프다고 열매가 아직 달리지 않은 나무를 저주하는 것은 자기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지식을 얻기에 탐스러운 무화과 열매를 먹고 지혜가 쓸데없이 많아져 근심만이 늘어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다. 허기가 져서 (즉 지식을 얻기 위해)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즉 이른 아침부터 길가에 서서 토론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가까이 갔는데 그 나무에 열매(지식)는 없고 어설픈 잎사귀만이 있다. 즉, 바리새파들의 가르침은 열매를 맺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을 갖고 의심하지 ㅇ낳는다면 이 무화과나무에서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면 예수처럼 바리새파와 논쟁하여 예수가 메시아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탐스러운 도구를 탐내어 얻은 지식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이다.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무화과 열매는 토라의 지식을 탐내는 비유로 사용된다. 이 무화과 열매는 에덴 동산의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로 표상된다.

--- pp 81~82

6의 악마적 상징성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예는 황제 숭배를 가리키는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이다(요한계시록 13:18). 육백육십육(600-60-6)의 상징숫자를 지닌 사람은 수많은 여섯(불행/불길한)의 성격을 지닌 맹수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여섯(불행)을 세번씩이나 증폭시킬 수 있는 권능의 군주일 것이다. 당시의 로마제국의 상황에서 본다면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 것일까?

흔히 '666'이란 수는 네로 황제(서기 54~68)나 네르바 황제(서기 96~98)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적으로 등장하는 로마 황제 가운데 네로 혹은 네르바를 지명한 것이다. 서기 54년부터 68년까지 통치했던 네로 황제는 유대인들을 로마의 이교도로 간주하고 그들을 무례하게 억압했으며, 결국 서기 66년에 일어난 과격파 유대인들의 제1차 항쟁으로 이어졌다. 또한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네로 황제는 사악한 폭군으로 여겨졌다.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을 그리스도교 집단의 의도적 방화로 몰아세우고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첫번째 억압자라고 초대교부들은 언급한다. 그러나 96~98년 통치했던 네르바 황제는 네로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오히려 네르바는 전 황제였던 도미티아노스의 유대인들에 대한 폭정을 시정하고 민중의 환영을 얻은 정책을 폈다. 81년부터 96년까지 재위했던 도미티아누스는 특히 유대인들에게 무자비하고 매우 무례한 전제 군주였다.

--- pp 317~318

출판사 리뷰

유대교의 성립 과정
지은이에 따르면, 오늘날 '유대교'라 불리느 종교가 체계를 세운 건 서기 5세기의 일이다. 성서 해석서인『미드라쉬』와『탈무드』가 성립함으로써 이 때부터 '랍비 유대교'라 부를 수 있는 종교가 틀을 갖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으 따르는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은이에 다르면 그건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대 교회와 초기 유대교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길을 걸으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서기 1세기말 경)에 따르면 당시 유다 지역의 초기 유대교에는 엣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열심당 등의 종파가 있었다. 종파의 규모는 바리새파 ─엣세네파 ─사두개파 ─열심당의 순서였다. 사두개파는 독자적인 문헌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특징을 다른 문헌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고 오직 모세 오경에 기록된 내용을 지키며 기록된 것 이상은 첨부하지도 해석하지도 않았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주로 사제층과 그들의 친인척 관계로 형성되었으며, 기득권층으로서 항상 외부의 지배층(그리스 왕조나 로마 정권)을 상대했다.

서기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한 이후로 유대인 사제들은 다른 도시로 이주했다. 서기 132년에 다시 한번 급진파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 군대에 항쟁했고, 서기 135년에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완전히 봉쇄했다. 성전이 없는 상황에서 사제층은 점차 없어졌고, 유대교는 사제 계층이 없는 종교로 변해갔다.

초기 유대교 문헌은 대부분 엣세네파와 바리새파에서 나왔다. 엣세네파와 비슷하게 발전된 초대 교회 문헌이 당시 유대교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로마 군대가 서기 70년에 유대인의 항쟁을 진압하고 그 항쟁에 동조했던 엣세네파의 근거지를 소탕하여 엣세네파 사람들은 흩어졌고, 공동체의 핵심부가 무너져재려 이 분파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한편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항쟁군에 동조하지 않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거주지를 예루살렘에서 야브네로 옮겨 항쟁군과 결별함으로써 로마의 진압 정책을 피할 수 있었다. 초대 교회는 이방 선교에 전력을다하여 유대교에서 점차 멀어졌으며, 결국 그리스도교라는 독립된 종교로 발전했다. 한편, 야브네로 거주지를 옮긴 바리새파들은 정통퐈 유대교로 발전했다.

예수의 혁신
이 책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흔히 예수는 유대교의 전통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가 유대교로부터 어떤 점을 개혁하려 했고 어떤 새로운 베시지를 던졌는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고 있는 연구서는 거의 없었다. 지은이는 유대교의 현자인 '랍비' 들이 발전시킨 '랍비 유대교' 의 논리와, 예수의 메시지를 비교함으로써 예수가 유대교와 어느 지점에서 결별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령 예수는 서른 살에 갈릴리 지방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고통받는 장애인들을 많이 구제했다. 그를 따르던 무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들은 주로 병들었거나 가난하며 또는 남들에게서 천시 받는 죄지은 부류였다. 그 당시엔 선천적인 병도 죄지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죄지었거나 천대받는 무리는 속죄일이나 큰 명절에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제에게서 속죄의식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예수에게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는 장애인이든 죄인이든 다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기 때문이다.

초기 유대교의 분파 가운데 예수파와 가장 많은 공통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엣세네파조차도 율법주의적 정통성을 고수했다. 1947년 발굴된 사해문헌에는 엣세네파의 많은 문헌이 포함돼 있는데, 그 가운데「새 계약의 규례」란 문헌은 “멍청이, 미친 사람, 바보, 소경, 신체 장애인, 절름발이, 귀머거리, 어린아이는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귀머거리나 소경, 어린이는 토라를 배울 수 없어서 토라의 법규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이 '거룩한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장애인들을 치유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위의 규례에 비추어 이해하면 예수가 그들을 단순히 불쌍히 여겨서 치유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새 계약의 규례」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구원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예수는 그들을 '새 복음의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여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절름발이들, 소경들, 장애인들, 벙어리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예수께 다가와서 그들을 그의 발치에 두었다. 그러자 예수는 그들을 고쳐 주었다. (…)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15:29~31)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공동체를 가리키며 '하느님을 찬양하다'는 예배에 참석했다는 뜻이다.

또,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고 껴안으며 그들에게 “내 이름으로 이런어린이들 가운데 하날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파'에서는 (부모 없는) 어린이도 공동체 식구가 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가 장애인과 어린이를 받아들인 건 오늘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사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엄격한 보수적 율법주의에 반기를 든 혁신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유대교 신비주의와 예수
유대교에는 신비주의의 전통도 있었다. '수치학'이라고 변역할 수 있는 '레마트리아'가 대표적인 것이다. 게마트리아란 그리스어 게오메트리아에서 파생한 전문용어이다.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는 숫자를 따로 만들어 사용하지 않고 철자를 숫자로 사용하였다. 가령 1은 알프레/알파, 2는 베트/베타, 3은 김멜/감마, 4는 달레트/델타 등으로, 알파벳 순서를 1에서 10까지 환산해 썼다. 그 다음 순서의 철자들은 20, 30에서 100까지를 나타내고, 그 다음은 200, 3000 등을 나타내도록 했다. 게마트리아란 이러한 덧셈으로 여러 단어의 이치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게마트리아는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유행하였다. 이는 후대 유대교 신비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주장의 기본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숫자의 오묘한 질서와 상관관계에도 큰 관심이 생겼다. 이러한 숫자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수비학도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조는 서기 전 6~서기 전 5세기에 발달한 묵시문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이 유행한 수치학/수비학은 더욱더 널리 전파되었다.

지은이는 이런 수비학의 영향이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마리 짐승'등 구약시대의 문헌에만 남아있는 게 아니라, 예수의 일생을 기록한 복음서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예수의 주기도문이 일곱 문단으로 구성된 것은 일곱이란 숫자의 상징성과 연관이 있다. 예수의 제자가 열두 사람이라는 것,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오천 명의 사람들이 다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 등도 열둘이란 숫자의 상징성과 연관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던 날, '여섯시'가 되엇을 때 온 나라에 어둠이 가득했던 일, '아홉시'에 예수가 “엘리 엘리 레마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은 일 등은 각각 여섯과 아홉이란 숫자와 연관이 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이 지적할 수 있다.

예수의 일생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을 게마트리아와 연관지어 해석한 국내 연구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이상의 주장들은 서해문서 등 고문헌에 대한 광범한 섭렵을 바탕으로 제시된 것이어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에수 시대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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