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 子
1. 맹자의 생애
그는 공자가 죽은 뒤 백년 좀 넘어서 탄생했다. 공자와 같이 맹자도 그의 탄생에 대한 여
러가지 전설이 있다. 한 천사가 그의 어머니에게 나타났으며 그를 낳을 때에는 오색의 눈
부신 광채가 온 땅을 비쳤다고 한다. 맹자는 현 산동성의 추현지방인 주나라 사람이며 노
나라의 귀족인 맹손씨 집안의 자손이라 전해지고 있다.
맹자는 일찌기 공자를 그의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
다.
'인류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자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
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처럼 되기를 배우는 것이다. 내가 비록 공자 생전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제자였던 사람들을 통해서 덕을 닦으려고 힘써 왔다.'
2. 맹자와 그의 시대
역사가들에게는 전국시대로 알려지고 있는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 대해 좀 부가적인 설명
이 필요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이 시대는 중앙 정부인 주왕실이 지배권을 잃고 여러 봉
건 국가들 사이에 권력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혼란의시대로 다음과 같이 특징 지워질 수
있다. 첫째로 전쟁이 모든 면에서 이 시대의 주요한 특징이었다. 한편에서는 큰 나라들이
황제자리를 노리고 서로 싸웠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태 속에서 점차로 약소한 나라
들은 자위와 생존 투쟁을 벌려야 될 형세에 몰려 갔다. 둘째로 전쟁은 그들에게 병역의
의무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게 고율의 징세를 가져왔다. 백성들에게 주어진 결과는 풍년
에는 비참한 가난이었고 기근의 해에는 아사였다. 셋째로 이 때는 방랑하는 외교가와 정
치가들의 시대였으며 이들은 실상 기회주의 적인 고급 용병의 일종에 지나지 않았다. 끌어
들일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인물들을 모아 들인 것은 양나라의 왕만이 아니었다. 성공
하기에 부족한 거의 모든 불안정된 봉건적 지배자들은 닥치는 대로 인재를 모았으며 한편
제사장들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넷째로 세계사상 여러 물질
적 투쟁의 시기의 경우와 같이 전국시대로 여러 학파들이 멋대로 이설을 발전시켜 정통적
유교를 위협할 만큼 열광적인 지적 활동을 보인 시대였다. 이 점이야말로 그것이 맹자의
평생에 걸친 빛나는 유교 수호의 자극을 마련하였던 만큼 우리의 고찰을 위해 가장 중요
한 것이다.
3. 맹자의 사상
* 성선설(性善說)
: 사람의 본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다.그 본성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 4덕이 존
재 하는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맹자는 이를 기초로 사람
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 인(仁)과 의(義)의 강조
: 공자가 인을 강조한 반면,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과 의를 내세웠다. 그는 인은 사람
의 이치요, 마음의 덕이라 하였고, 의는 일의 합당함이으로 사람의 바른 길이라 하였다.
* 유가 사상의 통일 추구
: 양주(楊朱)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인 자애설(自愛說)과 묵자의 박애주의인 겸애설(兼愛
說)을 배척하고, 유가 사상의 정통성 확립을 추구하였다.
* 정치 사상
: 그는 인의에 바탕을 둔 왕도 정치를 주장하였다. 왕도 정치의 기본이 되는 것을 보면 전
제(田制), 세제(稅制), 교육제도, 인재 등용, 개인의 실천 궁행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정전
제도(井田制度)를 적용하고 경계를 분명히 하여 토지 분배의 공정을 기하며 백성들에게
항산(恒産)을 부여할 것을 강조했다.
< 유학 사상의 정립 (양주와 묵자 비판) >
맹자의 시대에 세력을 떨쳤던 학설 중 대표적인 것이 양주와 묵자의 학설이었다. 맹자
는 '양주는 자기를 위하므로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해도 결코 행하지 않는
다.' 고 비판하였다. 양주의 사상은 유가의 '몸을 주여 인을 이룬다(殺身成仁).' 또는 ' 생
명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捨生取義).'는 사상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이렇게 맹자의 비판
을 받은 양주 일파는 조기 도가이다. 이들은 홀로 그 몸을 바르게 지키고 사회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녔다. 양주의 학설은 「노자」와 「장자」에 잘 나타나 있다. 노자
에 '이름과 몸 어느 것이 더 친한가? 몸과 재화 어느 것이 더 귀중한가?' 라고 묻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곧 경물중생(輕物重生)의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맹자는 묵자의 겸애는 어버이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시작이 부로로부터 비롯된다.' 고 하여 무차별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묵자의 사상을 비
판하고 있다. 묵자는 '어진 사람이 할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로움을 증진시키는 데 힘쓰고
천하의 해로움을 제거하는 데 힘쓰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방법으로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하였다. 그는 겸애가 국가와 백성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국가와 백
성의 이익을 위해 모두를 사랑하면 결국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하여 자신의 겸애설을
정당화 하였다.
4. 맹자와 공자
맹자와 공자는 거의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두
사람 모두 주로 훌륭한 정부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맹자는 그러한 정부는 인민을 위해
서 그리고 인민의 승인을 얻어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백성은 나
락에게 가장 높으며 군주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군주를 전능한 상
전이라 했으며 치자에 대한 백성의 신임이 중요하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결국 둘은 완전
히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둘째로 맹자는 논리적인 다음 귀결로서 인민과 신하에게
사악한 왕을 폐할 권리를 주었다. 이 혁명적인 개념을 옹호함으로써 맹자는 거의 현대적
인 의미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공자는 정적이고 변함없는 관계
를 밝혔을 뿐이었다. 셋째로 두 사람 다 훌륭한 정부는 물심양면의 복지에 의존한다는 견
해를 용인했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맹자는 그의 선생보다 훨씬 자세했다. 그에게는 백성
이 부유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 공자에게 인도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궁극 목표였다면 맹자는 성선설을 그의 이
론의 초점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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