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제1장 블록The Block 타협의 수단 유전학계의 중대 사건 확장되는 계보 제2장 오딘의 이야기: 예외Odine;s Story: The Exception 거미줄 풀기 아주 작은 부분 정보 읽어내기 심층적인 이야기 유럽의 지도 제3장 마거릿의 이야기: 가족Margaret's Story: The Hearth 우리 몸속의 박테리아 덴마크의 베두인족? 추적 나머지 가족들 말더듬기 악천후 유전자로 보는 계보 제4장 필의 이야기: 빙하Phil's Story: The Ice 더 큰 계보 한파의 엄습 주사위놀이 인류의 이동 계보의 시작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가족 다른 얼굴 제5장 비루만디의 이야기: 해변Virumandi's Story: The Beach 말벌 시계 인류의 흔적 이동의 패턴 내륙의 물결 유라시아의 아담과 이브 제6장 줄리어스의 이야기: 요람Julius's Story: The Cradle 언어 줄리어스의 DNA 검사 언어 화석 외모의 다양성 인류의 머나먼 여행 제7장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의 미래The Future of the Genographic Project 팀의 구성 도전 과제들 mtDNA 및 Y염색체 하플로그룹 해설 감사의 글 용어정리 삽화 출처 및 관련자료 |
채은진의 다른 상품
|
세계 각지에 있는 토착민들의 유전적 자료들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전 세계의 유전자 패턴을 이동성 혁명 이전의 상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1만 명에 달하는 토착민들의 질 높은 유전적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샘플이 65억 세계 인구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분명 우리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며, 샘플의 규모를 10배까지 확대하는 것이 제노그래픽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더 많은 자료들이 있어야만 우리는 인류의 유전적 역사에 관해 신뢰할 만한 추론을 내릴 수 있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그들의 머나먼 선조에 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p.68
수렵채집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혁명으로 인해 농업이 발달하면서 출산율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초기 농업가들은 불어나는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해야 했기에 이내 농지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농업 혁명이 가져온 것은 엄청난 인구 팽창이었다. 농경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전 세계의 총 인구는 수백만 명에 불과했고 이들은 세계 곳곳의 거주 가능한 대륙에 흩어져 하는 수렵채집민이었다. 오늘날 인구는 65억을 넘어섰고 금세기 중반에 이르면 약 백억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 엄청난 증가는 급속도로 시작되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농업은 점점 확산되어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하천 유역을 따라 인도 아대륙으로(인도의 농업은 별도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고고학적 증거들을 살펴보면 농업의 보급이 유럽의 물질문화를 변화시켰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p.87~88 네안데르탈인은 약 50만 년 전에 살던 인류의 선조로부터 진화했다. 호모안테세소르Homo antecessor,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 혹은 초기 호모사피엔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이 원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들의 후손은 그 후 이곳을 떠나 중동과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수만 년에 걸쳐 더 추운 기후를 만날 때마다 꾸준히 적응해나갔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몸을 지닌 현대 유럽인들이 중부 프랑스의 눈밭에서 먼 친척들을 만났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을 더 오래 전 잃어버린 큰 몸집의 친척으로 보고 동지라고 느꼈을까, 아니면 네안데르탈인들의 야만적인 모습에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의문을 통해 우리는 현대 인류학계의 커다란 논쟁거리 중 하나에 접근하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이 오늘날 유럽인들의 선조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p.131~132 유전적 자료에 따르면 침팬지로 이어지는 혈통과 인간으로 이어지는 혈통은 약 6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 이 연대는 제2장에서 살펴본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을 통해 산출한 것인데,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뉴클레오티드의 수를 세고 그 돌연변이율을 이용해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는지를 추산한 것이다. 인간으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최초의 선조가 오늘날 인간 이외의 모든 영장류와 다름없는 언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가정하면(근거가 거의 확실한 가정), 우리의 언어 능력은 지난 6백만 년 사이에 발달된 셈이다. 그렇다면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p.167 |
|
오딘의 이야기 - 미국 3대 대통령과 평범한 노동자와의 특별한 고리
과학자들은 어떻게 제퍼슨 가의 사람을 아버지로 지적했을까? 다른 버지니아 농장주와 헤밍스 사이에 서자가 태어났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유럽인의 DNA 패턴에 있다. 제퍼슨이 주불 대사로 있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의 생활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보다는 2천 년 전 로마인들의 생활과 더 가까웠다. 그들의 생활은 훨씬 국부적이었고 훨씬 좁은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이동성의 결여는 곧 언어의 단절을 의미했고, 나아가 유전자가 상대적으로 한정된 위치에 머물러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좁은 범위의 결혼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부 선조의 공유는 곧 동일한 유전자 패턴의 공유를 의미한다.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얻은 다량의 샘플로 얻은 유전표지는 선조를 알 수 없는 유전표지들과 비교함으로써 출신 지역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들의 선조가 그 지역에 살았던 시기도 추론할 수가 있다. 오딘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는 유럽에서는 매우 희귀한 Y염색체를 지니고 있었다. 제퍼슨-헤밍스 연구가 처음 행해졌던 당시, 이런 염색체는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된 바가 없었다. 이런 독특함 때문에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제퍼슨과 헤밍스의 자손들을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거릿의 이야기 - 농업혁명(신석기혁명)과 빙하기가 유럽 대륙에 끼친 영향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 근방의 평범한 스칸디나비아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거릿의 이야기는 DNA가 한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와 연결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실을 부여한다. 미토콘드리아 DNA(mtDNA)는 Y염색체와는 반대로 여성을 통해서만 유전된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받는다. 남성은 자식에게 이것을 물려줄 수 없다. 이 수단을 마거릿에게 적용해 보자. 그녀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그녀의 유럽인 선조들에 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마거릿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그녀가 속한 하플로그룹 J는 서부 유라시아 지역에서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혈통 내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의 패턴을 조사하여 추론한 결과, 하플로그룹 J 일족은 수천 년 동안 유럽에 존재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특정 혈통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또 그들이 언제 본고장을 떠나 현재 거주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한 지역의 고고학적 유적을 조사하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규모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 20세기 초 중동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이러한 광범위한 패턴이다. “신석기 혁명”이라 불리는 이 엄청난 전환점은 생활양식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거주지 정착은 곧 농업 확산으로 이어졌고, 이는 유럽 전역에 걸쳐 각기 다른 시작 시기를 보인다. 농경 사회 당시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수렵채집민 집단을 제치고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렸다는 견해는 유전자 패턴의 변화와 농업 확산의 양상이 일치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후 변화 또한 인간의 유전자 패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빙하기는 유럽의 유전자 패턴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는 제공하는데, 유럽 대륙의 불어나는 빙하를 피해 물러나 있던 수렵채집민들로부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풍부한 종자들을 재배한 초기 농업가들에 이르기까지 기후는 인간의 행동과 이주 패턴의 결정에 큰 몫을 했다. 지구온난화현상에 직면한 우리들은 선조들이 단 몇 도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필의 이야기 - 아시아인과 북아메리카인의 유사한 혈통 현대 인류가 아시아 대초원의 얼어붙은 황무지를 건너 유럽으로 이동하던 당시 그들은 초원에서 짐승을 사냥하며 간신히 생명을 유지했으며, 매머드와 순록을 사냥하면서 유목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빙하기 동안 동부 프랑스까지 뻗어 있던 초원의 끝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그들도 그런 생활방식에 충분히 적응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 노련한 사냥꾼들은 수천 년 동안 추운 북쪽 지방에서 생활하며 생존 기술을 연마한 덕분에 엄청난 역경을 딛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친척들을 시베리아와 아메리카로 뻗어나갈 수 있게 해준 기술이 그들 또한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그들은 먼 친척이라는 네안데르탈인을 만나게 되었다. 현대 유럽인들의 선조는 수십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과거 4만 년 사이 이 지역으로 들어온 인류이다. 아마도 현대 인류가 유럽의 친척(네안데르탈인)을 경쟁에서 물리쳐 결국 사라지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보다 뛰어난 지적능력에 오랜 세월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익힌 기술들이 더해져 인류는 짐승을 사냥하고 다른 식량원들을 찾기에 유리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그 생물학적 특수성에 묶여- 새 이주자들과의 경쟁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 없었다. 문화적 적응에 있어 이러한 이점 덕분에 대초원에서 온 이주자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을 그들의 영역에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류학자들은 매년 네안데르탈인의 사망률이 단 1퍼센트 증가했거나 출생률이 단 1퍼센트 감소했다고 해도 불과 천 년 안에 멸종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가 네안데르탈인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들보다 영리했으며, 우리의 진보된 뇌는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이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언어의 발달과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언어 발달은 우리를 현대 인류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자리하게 해주는 힘이다. 이전의 원시인류들도 신체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말을 사용했던 것 같지만, 가치가 있다고 할 만한 두뇌 활동을 못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들의 말은 “저리로 가라” 혹은 “지금 먹어라” 등과 같은 침팬지 수준의 단순한 의사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발견되는 설골(결후Adam's apple에 있는 뼈-옮긴이)은 그들의 인후가 말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음을 증명하지만, 다른 문화적 특성들(예컨대 네안데르탈인의 기본적인 도구들이 백만 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