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일
머리말 한국사 태조 왕건, 서경에 학교를 설치하다 | 창칼 파동이 일어나다 | 「연호에 관한 법률」 제775호 제정 | 한국방송공사, 첫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 세계사 영국,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하다 | 남극 조약 체결 | 로자 파크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에 불을 당기다 | 로카르노 조약, 영국 런던에서 정식 체결 |
|
오늘 날짜의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류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역사 속 12월의 오늘, 우리나라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12?12 사태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이다.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10?26 사건 수사와 군 인사 문제를 놓고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이에 전두환은 하나회 세력을 동원해 정승화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치밀하게 거사 계획을 짰다. 드디어 운명의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 ‘생일집 잔치’라는 암호명이 붙은 거사가 실행되었다. 총격전 끝에 정승화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감으로써 게임은 끝났다. 하지만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지기 전에 정승화를 체포했으므로 이는 명백한 불법, 즉 쿠데타였다. 결국 이 땅에는 또다시 혹독한 겨울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1997년 4월 전두환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각하, 아무래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국가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1997년 11월 10일 김영삼 대통령은 홍재형 전前 경제부총리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제야 김영삼 대통령은 외환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12월 3일, IMF 총재 미쉘 캉드쉬와 경제부총리 임창렬은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이후 우리나라는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부도 및 경영 위기를 맞았고 대량 해고와 경기 악화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대적인 금융, 기업, 공공 부문의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8월 23일 기획재정부가 한국은행에서 195억 달러의 외환 보유액을 전액 상환함으로써 IMF 구제 금융의 관리 체제가 종료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주요 인물들의 삶을 비롯하여 정치ㆍ경제ㆍ문화ㆍ예술 등 전 영역에서 일어난 개별적인 사건들을 한데서 볼 수 있는 책이다. 매일매일 한국사의 흐름을 뒤바꾼 역사적 사실들을 기술하여 특정 시대와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