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Lee Seung Woo,李承雨
이승우의 다른 상품
|
강산종합리조트에 근무하는 주인공 유는 서쪽의 조그만 읍소재지 마을 서리로 발령을 받는다. 죽음처럼 고요하고 황량한 풍경이 전부인 곳 서리. 지사를 찾기 위해 저녁까지 마을을 방황하던 유는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 꺼진 방에서 얼굴도 모르는 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여자가 떠난 다음 날, 유는 자신의 지갑이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전임자인 박과장을 만나는 일. 하지만 그와는 여전히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고, 어렵사리 찾아간 지사의 사무실 문은 며칠째 굳게 닫혀져 있다.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는 멈춰 섰고, 유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서리를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는 상황. 그렇게 서리를 떠돌던 중 유는 폭력배들의 꾐에 넘어가 결국 그들에게 은행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만다. 폭력배들에게 맞아 만신창이가 된 유는 정신이 깨어날 때까지 며칠 동안 술집 ‘왕국’에서 지내고, 그가 깨어나자 술집 여주인은 어차피 이곳에 남아 있을 거라면 ‘노아’라는 노인을 찾아갈 것을 권한다. 노아를 만나기 위해 서산봉의 동굴을 찾아간 유는 그곳에서 진기한 장관을 목격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듯 수많은 돌집을 짓고 있는 노인. 돌집의 풍경은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시킨다. 유는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 채 돌집 안에서 오랜만에 아늑하고 편안한 잠을 이룬다. 노아로부터 ‘영원히 살 집’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마을로 내려온 유는 폐교에서 살고 있는 노아의 딸을 알게 되고, 그녀로부터 ‘서리’ 마을의 역사와 노아가 돌집을 짓고 있는 연유를 듣게 된다……. |
|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느 곳에든 존재하는 곳
『그곳이 어디든』의 공간적 배경은 한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서리’라는 곳이다. 흩날리는 먼지와 개 짖는 소리뿐인 황량한 곳. 이 낯선 마을, 신기루 같은 공간에 주인공 유가 근무지 발령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리’는 이방인에게 늪과 같은 곳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어렵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빠져드는 곳이다. 인수인계를 해줄 전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버린 유는 서리에서 서서히 감각을 잃어간다. 사건이 전개되는 내내 독자들은 마치 신기루 같은 ‘서리’의 이미지에 갇혀 주인공과 함께 혼돈에 휩싸인다. 살아 있는 모든 감각이 서서히 죽어가는, 그렇게 죽어감으로써 오히려 삶의 진실한 이면과 마주서는 곳. 『그곳이 어디든』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서리라는 공간은 소설 속에 축조된 가상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공간을 오버랩한다. 삶의 본질을 향해 던지는 언어의 투망 주인공이 서리에서 부딪히는 일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기이한 사건들뿐이다. 여관방 창밖으로 보이는 산봉우리에 갑자기 붉은 빛이 감도는 기이한 자연현상을 목격하기도 하고, 외지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폭력배들의 얄팍한 꼬임에 두 눈을 멀쩡히 뜨고서 어이없이 당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들은 마치 미스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유는 한동안 서리에서 좌충우돌을 거듭한다. 작가는 정교한 논리와 역설로 사건을 합리화함으로써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삶의 본질을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제서야 수수께끼처럼 의문투성이였던 마을의 베일이 벗겨지고, 이제 유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서리에 머물게 된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행복한가 서리에서의 사건들로 만신창이가 된 유는 붉은 빛을 내뿜는 서산봉의 동굴 안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현실의 끈을 모두 놓아버린 그에게 서산봉 동굴 속의 돌집은 죽음처럼 편안하다.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서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자, 폭력배들의 감시와 강요 속에서 기록을 통해 서리에서의 삶을 버텨가는 노아의 딸, 영원한 피안의 세계를 준비하는 노아의 돌집, 그리고 죽음을 앞둔 전 남편과 함께 서리를 찾아온 유의 아내……. 서리의 모든 것들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그렇게 삶의 본질과 맞닿으려는 순간, 결국 삶은 허무한 신기루처럼 또다시 사려져버린다. 『그곳이 어디든』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순과 역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잠언의 문장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현실인 듯 아닌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 서리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행복한가,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