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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 - 한창기의 생각, 그 작고 가느다란 것들의 아름다움
1. 변화를 만나는 슬기 '인간적'이 주는 기쁨과 슬픔 바빠서 못 읽는 사람 따지면서 읽는 버릇 나는 항아리를 하나 샀다 온 나라에 일고 있는 새 이름 바람 탈 붙은 전화 번호 가로질러 가기도 하는 사람 마당쇠와 예쁜이 경상도 사투리 그들은 이렇게 먹고 입고 산다 그 사람들의 한평생 2. 말과 사물의 조화 강강술래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글로는 저렇게 쓰고 어느 날 오후에 생각한 '주눅과 도사림' 고마움과 미안함의 갈등 조그마한 제안 '있어서'와 '있어서의' '때문'과 '까닭'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다니 빼앗긴 이름 빼앗긴 말 '아뇨'의 뜻이 바꾸이기 시작한다 '해라'와 '하게'와 '하오'와 '합쇼' 대한민국 '나'와 대통령 스님과 따님과 각하 사장님과 선생님 3. 열매보다는 뿌리를 생각하는 마음 토박이말과 기업 껌의 민주화와 사보의 민주화 '청주'의 복권과 청주병의 한국화를 먼저 간판 타령 화장품 광고의 일본-서양 흉내 흉내와 창조와 속임수 서기 노릇 사일구와 사점일구 두 겹, 세 겹의 표준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호텔과 여관 서재필의 '목소리' 말 못하는 가수 개성과 규율 반말과 다툼 더러운 정치 4. 넓은 세상을 응시하는 혜안 배움 학교를 '사는' 재벌 교육적 효과와 여론 조사 교과서와 노름판 컴퓨터와 도깨비불 세계 책 장수와 한국 책 장수 북한 책들이 나왔으나 빼앗긴 잡지 이백 몇 십 가지 슬기로운 역사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 어려움과 수준의 혼동 사람의 잡지 한창기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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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왜 그렇게 ‘인간적’이라는 말의 잘못 쓰임으로 더러워져 있는지의 이유를 따지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적’이라는 말의 잘못 쓰임이 얼마나 우리들의 도덕과 사회를 썩이고 있는가를 속속들이 파헤쳐 놓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와 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예전의 참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려는 사람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적’의 뜻을 바꾸어 버린 사람들은 대개 책임감의 무거움과 깨끗한 마음의 중요함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적어도 알긴 알되 수행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이 땀 흘리고 있을 때에 편안히 있으면서 ‘인간적’으로 해결하려는 그들 나름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다. 엄격한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그들은 해이한 감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본디 갖고 있는 뜻이 아닌, 느닷없는 감정의 행사는 차례차례 쌓아 올린 질서를 무너뜨려 버린다. …… 아래에서부터 위까지의 모든 계층의 자리는 모두 그 사나운 칼의 부림을 받아서,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인간적으로 합시다”도 이제는 그 말을 쓰지 않음이 더 어색한 것같이 되어 버렸다. ‘인간적’은 부정과 부패의 원흉이며, 모든 사이비의 모태이다. 그리고 참된 인간성을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성과 혼동시키는 특공대 역할을 한다. --- pp.1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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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인터뷰 ― 윤구병이 들려주는 한창기, 그리고 그의 생각들
―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을 엮은 세 분 선생님 중 윤구병 선생님을 2007년 10월 5일 ‘문턱 없는 밥집’에서 뵈었다. 공기가 된 듯, 바람에 몸을 맡기신 윤구병 선생님은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최세정 (인문)편집장과 함께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기억, 한창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책을 엮은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보았다. (편집자주) ▶ 안녕하세요. 윤구병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주기를 맞는 해에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세 권의 책을 펴내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와 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애정을 느끼고 실제로 그것을 보존하고 확산하고자 애쓴 분을 한창기 선생님 외에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마음속에 간직한 것뿐 아니라 실천하신 분을 따로 보지 못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원어민처럼 사용할 만큼 영어에 능통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외국 문화에 경도되지 않고 우리 문화, 우리말에 대해 깊이 천착을 하셨는데, 이는 아마 책을 읽으면 다 드러납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갇힌 곳이 아닌 열린 곳에서 열린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말의 질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분이므로 그 애정은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한 선생님의 글이 읽혔으면 했는데, 이제야 책으로 엮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글은 인문학적 향기가 흠뻑 배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언어철학의 사유들을 가장 먼저 시작하신 분이라고 봅니다. 역사, 철학,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 글인 듯한데요. 한창기 선생님의 글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한창기 선생님의 고향은 벌교인데, 그곳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두 분에게서 삶의 지혜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깊은 깨우침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이야기, 농경 사회를 감싸고 있는 문화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 한창기 선생님은 미국문화원에 근무했던 곽소진 선생님과 예용해 선생님 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문화의 바른 길을 안내받았다고 봅니다. 우리 문화의 시각을 잡아 주신 분은 예용해 선생님이고, 실제로 판소리 감상회를 매주 금요일 100회 이어오게 한 것은 정병욱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의 개인적인 소양뿐 아니라 이런 분들과의 교류가 선생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 것이라 봅니다. ▶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글이 깊고 꽤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3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인문학의 향기가 듬뿍 배어 있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민중의 언어, 특히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오던 토박이말을 사랑하고, 그 말과 글 속에 담긴 문화를 진정으로 향유하던 사람입니다. 언어의 다양한 쓰임새를 자유자재로 적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문화의 향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부지불식간에 침투해 오는 서양 문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말과 글의 순수성과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고 오염되어 가는지를 누구보다도 세밀하게 집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책상 위, 책 속에서, 그리고 박물관에 진열된 작품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알아 나간 사람들과는 달라요. 삶 속에서 삶이 곧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였던 환경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들의 앎과 지혜를 소유한 분이 한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설이 된 편집자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세 분이 이 글을 엮으셨는데요. 세 분을 각각 소개해 주세요. 저 윤구병은 《배움나무》 편집장이었다가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으로 일했죠. 충북 대학교에서 철학과 선생을 할 때도, 나중에 변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농사를 지을 때도, 또 지금도 한창기는 저에게 ‘선생’입니다. 저를 이어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장으로 일한 분이 김형윤 선생입니다. 《한국의 발견》을 만들 때도 책임 편집자였는데, 한창기의 ‘꼼꼼한 눈’을 높이 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아 좀 멀리 보고 크게 볼 줄도 아시라고 망원경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설호정 선생인데요, 《뿌리깊은나무》 창간 준비를 하면서 저와 김형윤이 설호정 씨 일터로 같이 찾아가서 ‘모셔’ 왔어요. 《뿌리깊은나무》 편집차장을 거쳐 《샘이깊은물》에서 주간으로 일했습니다. 병상의 한창기가 마지막까지 의지한 몇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살아생전에도 책으로 엮자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본인이 극구 말리시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엔 아마 다들 사는 데 바빠서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었다고 봅니다. 그러다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신 것이지요? 철학과 대학원을 나와 강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하숙비와 교통비도 댈 수 없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친구의 친구가 브리태니커사를 소개해주더군요. 자기소개서를 꽤 길게 써오라는 요구를 해왔었죠. 면접을 보는데 별로 후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보아하니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이런 깡패 집단엔 왜 오셨수?” 하기에 “밥 빌어먹으려고 왔습니다.” 했지요. 서로의 문답이 거슬리지 않아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신같이 공부 많이 한 거룩한 사람이 외국 책이나 팔아먹는 사기꾼 집단에 왜 들어왔는가 하는 물음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때는 군사독재 시기로,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졸부들에게 팔아먹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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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 ‘뿌리깊은나무’, 그리고 ‘한창기’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지킴과 변화 사이의 간극을 맞추는 일이다. 특유의 스타일과 색깔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식상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가? 이 지킴과 변화에 대한 혼란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났고, 그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산업사회에도, 디지털사회에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사회의 안타까움 가운데 하나가 ‘바쁨’이다. 깊고 넓은 ‘성찰’보다는 순간의 사유가 더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속도는 자유로움에서 얽매임으로 언어의 의미가 변한 지 오래다. 지킴과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우리에게는 여전히 조화를 이루어내야 할 화두다. 지킴과 변화에 대해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성찰을 한 사상가가 한 사람 있다. 우리 사회가 꼭 기억해야 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여 재발견해야 할 문화인이다. 그이의 이름은 ‘한창기’. 사실 ‘한창기’라는 이름보다는 《뿌리깊은나무》라는 잡지가 더 다가서기 쉽다. 1976~1980년까지 발행된 《뿌리깊은나무》 또 1984~1997년까지 펴낸 《샘이깊은물》 그리고 한창기! 두 미디어와 한창기는 한국 현대성의 표지이다.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 세 권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창기가 창간하고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하였던 《배움나무》,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에 썼던 것들과, 여러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것들을 두루 모아 재구성한 작품이다. 《뿌리깊은나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배움나무》가 1970년 1월에 창간되었으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70년을 전후해서부터 199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여 동안에 쓰인 것들이다. 우리는 그가 많은 글을 쓴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토록’ 많이 썼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이 썼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천구백칠십년에 창간한 잡지 《배움나무》에서 시작해서, 천구백칠십육년에 창간한 《뿌리깊은나무》, 그리고 천구백팔십사년에 등장한 《샘이깊은물》을 거치며 이 세 잡지를 중심으로 썼던 그의 많은 글들이 이제 책 세 권에 묶인다. 이 책 세 권은 각각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 잡지에 실렸던 글들을 잡지 이름에 따라 발표된 순서대로 나누어 묶은 것은 아니다. 어디에 발표되었든 ‘언어’에 대한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중심이 된 것이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이다. 《샘이깊은물의 생각》은 전통과 민속과 문화를 다룬 글들로 엮었다. 《배움나무의 생각》은 문화 시평이라 할 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사람들은 이 책 속에서 그토록 부지런한 그를 만날 수 있다. 밥 먹는 자리가 아니라면 이 책 때문에 방해받는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으리라. 오히려 고개를 자주 끄덕거리게 되리라. ―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이 쓴 엮은이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