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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 - 한창기의 생각, 그 작고 가느다란 것들의 아름다움
1. 배움의 씨 뿌리기 편견 공적인 의견과 사적인 의견 술을 마심 선배와 후배 남과 다를 권리 장사꾼과 거짓말 너무나 예외를 바라는 사람들 심각한 소리 소금을 뿌리는 마님 아직 임금이 못 된 고객과 이미 임금이 아닌 고객 광고와 공치사 사람과 제도 호화로운 집과 호화스러운 집 바른 소리 일러바침을 되씹는다 희디흰 사람과 검디검은 사람 성탄절과 노는 날 먹칠과 우롱 보리차 '간판 홍수', 이대로 좋은가 변화와 날림 땅 짚고 헤엄치는 사람들 확신과 그 과녁 나팔바지와 홀태바지와 아름다움 욕심, 없애거나 채워야 하는 것 호기심 소, 사람과의 인연 토산품 가게 주인과 손님 미스 코리아 노인과 머리카락 검은 사람과 흰 사람 뒷간에 대해서 단상과 단하 받을 전화와 받지 말 전화 주최와 후원 초파일과 '성탄절' 돈과 차별 대우 세대 교체 이 죄와 저 벌 2. 돌고 도는 세상 형편 텔레비전의 광고 정책 예수와 장삿속 푸대접 새 다방과 헌 다방 악수와 절의 범벅 호텔 바람이 분다 똥오줌의 도시 술 못 마시는 사람 도덕적인 판단 법의 존엄성 여호와의 증인 여자 이름과 병원 고향을 배반한 사람 동상과 기념탑 손에 '흙 묻는' 일 외국 사람의 한국 칭찬 의심받는 수표 '미국놈' 시늉 늦게 태어나서 서러운 사람 택시와 장관실 사업이라는 것과 술과 '계집' 여관잠 '북한 구경'을 구경하고 수재 의연금품과 언론 매체 땅 팔지 마세요 미국 독립 이백 주년에 본 한국 속의 미국인 건설 회사들의 못 믿을 소리 대통령의 머리털 전화 타령 윤리와 도덕의 구호 밥투정 어떤 '욕' 아무개의 죽음 자연 농원 떠돌이들의 땅 '문화 부업'과 '허수어미' 새마을과 헌마을 이 운동과 저 운동 차라리 양담배를 수입해라 공무원의 여름옷 구호로 하는 '선진' 작은 기념관 '과감한' 관리와 짐승 몇 마리 3.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식 박동선 사건과 국민의 기대 국회의원의 오입질 국회의원의 '금빳지' 이 자유 국가의 낡은 풍물 대통령의 책임 대통령 사진 대통령의 아내 대통령의 동생 일해 재단을 해체해라 '마유미'와 재벌들 까마귀 노는 곳 사실을, 모든 사실을, 사실만을? 미군은 어서 용산에서 물러가거라 시간의 주인 올림픽과 '국위 선양' 말로 합시다 전화 도청과 우편 검열 금강산 개발을 걱정한다 세계화, 무엇인지나 알고 하자 한창기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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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기껏 겉치장인 옷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사회 풍조를 깊숙이 다스리고 있는 우리 국민의 사고방식이 가지는 한갓 속성으로 나타난 것으로서의 옷을 얘기한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옛 것을 좇는 것만도 아닌, 옳거나 그르거나 간에 현상 유지만을 고집하는 사고방식을 꾸짖는다. 어쩌다가 현상 그 자체가 바뀌면 새 현상을 따라, 전에 고집하던 옛 현상을 나무랄 사람들이, 새것이 생소하다고 해서 저항만을 해야 할까? 이들이 그러다가도 세태가 바뀌면 새것 편을 들게 되는 현상을 나는 비겁한 일로 본다.
이 ‘남과 다를 권리’의 사회적인 박탈 때문에 관리는 ‘모나면 정 맞을까 무서워서’ 새로운 발전적인 결정을 내리기를 꺼려 하고, 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은 ‘건방지기’가 싫어서 위선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이 ‘남과 다를 권리’를 우리는 자신과 이웃에게 주어, 날로 그늘에서만 형성되어 가는 새로운 가치관이 빛을 보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p.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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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인터뷰 ― 윤구병이 들려주는 한창기, 그리고 그의 생각들
―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을 엮은 세 분 선생님 중 윤구병 선생님을 2007년 10월 5일 ‘문턱 없는 밥집’에서 뵈었다. 공기가 된 듯, 바람에 몸을 맡기신 윤구병 선생님은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최세정 (인문)편집장과 함께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의 기억, 한창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이 책을 엮은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여쭈어 보았다. (편집자주) ▶ 안녕하세요. 윤구병 선생님! 한창기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주기를 맞는 해에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세 권의 책을 펴내셨는데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문화와 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애정을 느끼고 실제로 그것을 보존하고 확산하고자 애쓴 분을 한창기 선생님 외에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마음속에 간직한 것뿐 아니라 실천하신 분을 따로 보지 못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원어민처럼 사용할 만큼 영어에 능통한 분입니다. 그렇지만 외국 문화에 경도되지 않고 우리 문화, 우리말에 대해 깊이 천착을 하셨는데, 이는 아마 책을 읽으면 다 드러납니다. 한창기 선생님은 갇힌 곳이 아닌 열린 곳에서 열린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말의 질서,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분이므로 그 애정은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한 선생님의 글이 읽혔으면 했는데, 이제야 책으로 엮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글은 인문학적 향기가 흠뻑 배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언어철학의 사유들을 가장 먼저 시작하신 분이라고 봅니다. 역사, 철학,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 글인 듯한데요. 한창기 선생님의 글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한창기 선생님의 고향은 벌교인데, 그곳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두 분에게서 삶의 지혜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깊은 깨우침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시골 어르신들의 이야기, 농경 사회를 감싸고 있는 문화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 한창기 선생님은 미국문화원에 근무했던 곽소진 선생님과 예용해 선생님 들과 교류하면서 우리 문화의 바른 길을 안내받았다고 봅니다. 우리 문화의 시각을 잡아 주신 분은 예용해 선생님이고, 실제로 판소리 감상회를 매주 금요일 100회 이어오게 한 것은 정병욱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한창기 선생님의 개인적인 소양뿐 아니라 이런 분들과의 교류가 선생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 것이라 봅니다. ▶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글이 깊고 꽤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3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인문학의 향기가 듬뿍 배어 있는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민중의 언어, 특히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오던 토박이말을 사랑하고, 그 말과 글 속에 담긴 문화를 진정으로 향유하던 사람입니다. 언어의 다양한 쓰임새를 자유자재로 적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문화의 향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부지불식간에 침투해 오는 서양 문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말과 글의 순수성과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고 오염되어 가는지를 누구보다도 세밀하게 집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은 책상 위, 책 속에서, 그리고 박물관에 진열된 작품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알아 나간 사람들과는 달라요. 삶 속에서 삶이 곧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였던 환경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들의 앎과 지혜를 소유한 분이 한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설이 된 편집자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 세 분이 이 글을 엮으셨는데요. 세 분을 각각 소개해 주세요. 저 윤구병은 《배움나무》 편집장이었다가 《뿌리깊은나무》 초대 편집장으로 일했죠. 충북 대학교에서 철학과 선생을 할 때도, 나중에 변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농사를 지을 때도, 또 지금도 한창기는 저에게 ‘선생’입니다. 저를 이어 《뿌리깊은나무》의 편집장으로 일한 분이 김형윤 선생입니다. 《한국의 발견》을 만들 때도 책임 편집자였는데, 한창기의 ‘꼼꼼한 눈’을 높이 치지만 지긋지긋할 때도 많아 좀 멀리 보고 크게 볼 줄도 아시라고 망원경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설호정 선생인데요, 《뿌리깊은나무》 창간 준비를 하면서 저와 김형윤이 설호정 씨 일터로 같이 찾아가서 ‘모셔’ 왔어요. 《뿌리깊은나무》 편집차장을 거쳐 《샘이깊은물》에서 주간으로 일했습니다. 병상의 한창기가 마지막까지 의지한 몇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 한창기 선생님의 책을 기획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살아생전에도 책으로 엮자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본인이 극구 말리시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엔 아마 다들 사는 데 바빠서 마음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었다고 봅니다. 그러다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 한창기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신 것이지요? 철학과 대학원을 나와 강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하숙비와 교통비도 댈 수 없었어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친구의 친구가 브리태니커사를 소개해주더군요. 자기소개서를 꽤 길게 써오라는 요구를 해왔었죠. 면접을 보는데 별로 후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보아하니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이런 깡패 집단엔 왜 오셨수?” 하기에 “밥 빌어먹으려고 왔습니다.” 했지요. 서로의 문답이 거슬리지 않아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신같이 공부 많이 한 거룩한 사람이 외국 책이나 팔아먹는 사기꾼 집단에 왜 들어왔는가 하는 물음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때는 군사독재 시기로,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졸부들에게 팔아먹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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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지킴과 변화 사이의 간극을 맞추는 일이다. 특유의 스타일과 색깔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식상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가? 이 지킴과 변화에 대한 혼란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났고, 그로 인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산업사회에도, 디지털사회에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사회의 안타까움 가운데 하나가 ‘바쁨’이다. 깊고 넓은 ‘성찰’보다는 순간의 사유가 더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속도는 자유로움에서 얽매임으로 언어의 의미가 변한 지 오래다. 지킴과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우리에게는 여전히 조화를 이루어내야 할 화두다.
지킴과 변화에 대해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성찰을 한 사상가가 한 사람 있다. 우리 사회가 꼭 기억해야 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질하여 재발견해야 할 문화인이다. 그이의 이름은 ‘한창기’. 우리는 그가 많은 글을 쓴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이토록’ 많이 썼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많이 썼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천구백칠십년에 창간한 잡지 《배움나무》에서 시작해서, 천구백칠십육년에 창간한 《뿌리깊은나무》, 그리고 천구백팔십사년에 등장한 《샘이깊은물》을 거치며 이 세 잡지를 중심으로 썼던 그의 많은 글들이 이제 책 세 권에 묶인다. 이 책 세 권은 각각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 잡지에 실렸던 글들을 잡지 이름에 따라 발표된 순서대로 나누어 묶은 것은 아니다. 어디에 발표되었든 ‘언어’에 대한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중심이 된 것이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이다. 《샘이깊은물의 생각》은 전통과 민속과 문화를 다룬 글들로 엮었다. 《배움나무의 생각》은 문화 시평이라 할 글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사람들은 이 책 속에서 그토록 부지런한 그를 만날 수 있다. 밥 먹는 자리가 아니라면 이 책 때문에 방해받는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으리라. 오히려 고개를 자주 끄덕거리게 되리라. ―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이 쓴 엮은이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