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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산에 오르셨을까?
행복을 대하는 여덟 가지 삶의 자세 -부, 권력 그리고 집착―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상처와 상실―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 받을 것이다 -경쟁, 폭력 그리고 공존―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정의―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화―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믿음과 정직―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용서와 화해―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두려움과 용기―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산상설교, 모든 불행을 뛰어넘는 행복을 이끄는 힘 역자후기 |
Anselm G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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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전도사 안셀름 그륀 신부의 《예수의 행복코드》(Der achtfache Weg zum gelingenden Leben, 2007)가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전 세계 1%만이 알고 있는 부와 권력의 비밀을 알려준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지금 과연 우리는 부와 권력을 손 안에 쥐게 되면 행복에 도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부와 권력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일까 아니면 수단일까? 아니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시대에 따라 행복을 정의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최고의 행복은 따로 있다! 값싼 행복에 만족하는 비참한 부자들을 위한 지혜의 책! 우리에게 행복전도사로 잘 알려진 베네딕트 수도원의 안셀름 그륀 신부는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 싶고, 더 가질수록 궁핍해지는 현대인들을 위한 지혜의 서(書)를 들고 왔다. 이미 2천 년 전에 우리에게 행복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예수의 산상설교를 행복에 대한 여덟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행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그리스 철학과 연결된 새로운 해석을 들려준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이 명제 자체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자, 신학자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모두 동의한다. 이렇듯 시선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철학과 신학은 행복을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이해했다. 고대 철학은 행복 또는 ‘복됨’이란 착한 삶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토마스 폰 아퀴너스(1225-1274)도 이 세상의 행복뿐 아니라, 저 세상의 행복까지 정의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행복도 본다. 인간은 여기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중단하지 않는 영원한 행복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에게 선물될 수 있을 뿐이다. 근대에 오면 철학은 행복을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이라고 한다. 임마누엘 칸트에 의하면 행복이란 “이성적인 존재가 온몸으로 삶이 편안하다고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이다.”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이 위대한 철학자의 행복론에는 도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행복은 욕망의 만족을 통해서 생긴다. 칸트의 뒤를 잇는 현대 철학에서 행복은 무엇보다도 체험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관점의 정점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견해가 있다. 프로이트는 행복을 “강한 쾌감의 체험”이라 한다. 우리시대에 행복은 하나의 “소비재”가 되었다. 우리 시대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그저 조깅만 하면 된다, 그러면 행복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 행복할 것이다.’ 또는 ‘웰빙 주말을 위해서는 그저 호텔에 가서 편안히 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문구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행복이 아니다. 현대의 작가 크리스토프 크바르히는 이러한 현대적인 행복을 “해피니스 happiness”라 부른다. 그는 행복이 하나의 ‘소비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행복이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우리시대 행복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그에 따르면 행복이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그 무엇, 즉 성공하는 삶에 대한 표현이다. 삶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혼적인 일이 필요하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물론 행복한 인생이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행복한 인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입장이 필요하다. 행복은, 내적인 자세의 문제이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들은 틀림없이 있다. 현대인에게 부의 축적은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탐욕스럽게 돈과 재산을 갈망한다. 그들은 또한 무슨 자동차를 타고 어떤 명품 옷을 걸치느냐로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규정짓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불안한 자신의 내면을 숨길 수 있는 외적인 신분의 상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은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삶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필요한지를 모르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예수가 말하는 산상설교의 핵심이 드러난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예수의 행복코드》를 통해 산상설교를 아래의 “행복을 대하는 여덟 가지 삶의 자세”로 보고 있다. 1. 부, 권력 그리고 집착 2. 상처와 상실 3. 경쟁, 폭력 그리고 공존 4. 정의 5. 화 6. 믿음과 정직 7. 용서와 화해 8. 두려움과 용기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재산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미치게 만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들은 종종 단순한 삶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은 내적인 자유를 동경하는데, 마치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재물을 소유하기를 바라고, 충만함과 부족함, 양쪽 모두와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는 단순히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칭송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 가난하다는 것이 성경에서 추구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내적인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재물에, 인간에 잡혀 있지 않다. 나는 그런 풍요가 필요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다면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 나는 재물을 즐길 수 있지만, 그것이 없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재물이나 욕망에서 벗어나는 내적인 자유는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우리시대 영적 스승이 들려주는 건강한 삶과 행복한 삶의 기술 행복을 대하는 여덟 가지 삶의 자세를 통해 의미 있고 완전한 삶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우리시대 가장 많이 읽히는 영성작가이자 가톨릭 신부인 안셀름 그륀은 지금까지 200여 권이 넘는 책을 펴냈고 28개국에서 출간되어 총 1,400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가톨릭 신부이지만 신학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불교, 명상법 등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예수의 행복코드》는 안셀름 그륀 신부의 철학, 신학, 문학에 대한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이 온연히 녹아있다. 현실과 유리된 고답적인 설명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밝히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안셀름 그륀은 물질적 풍요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순간적 행복을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궁극적인 행복은 순간의 행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책 곳곳에서 강조한다. 그러기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영원히 지속 가능한 행복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영원히 행복한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완전하고 성공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예수가 보여주는 여덟 가지 행복의 길을 통해 돈과 권력에 주린 우리의 배를 행복으로 채우도록 한다. 또한 안셀름 그륀 신부는 많은 그리스도교 비판론자들이 “그리스도교가 행복에 적대적인 종교라는 의심을 품고 있”고 “성경에서는 행복이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을 부인한다. 유대인의 지혜와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구약과 신약 그리고 다양한 철학가, 신학자의 글을 통해 인간의 행복이야말로 성경의 중요한 주제임을 밝힌다. 산상설교를 성공하는 삶으로 가는 수련과정으로, 건강한 삶의 기술로, 행복해지는 기술로 표현하는 안셀름 그륀은 불행함에 도가 튼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정치적인 유토피아나 혹은 사회적인 유토피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 속에 이미 있는 가능성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인 것들에 몰두하느라 덮어버리는 바람에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