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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리 남자
윤효
생각의나무 200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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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베이커리 남자
2. 더블 베드
3. 성가족
4. 미세스 랑콤
5. 오래된 연서
6. 폴리시아스
7. 회전문을 돌아나오다

저자 소개 1

작은詩앗·채송화

1956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나 1984년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본명은 창식昶植.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의 시집과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을 내는 동안 제16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제7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제1회 풀꽃문학상, 제31회 동국문학상 등을 받았다. 짧은 시를 통해 시의 진면목과 마주서고자 하는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시유별詩詩有別'을 화두 삼아 보다 개성적인 목소리와 발성법을 획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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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568g | 173*226*20mm
ISBN13
9788984981331

책 속으로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놀랍도록 화사했습니다. 생이 내게 관대했다고나 할까요. 나는 불행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성장했기에 연한 가슴을 지녔고, 셍의 이면을 빨리 눈치챌만큼 영악하고 조숙한 아이도 아니어서 한 사람과 한 곳을 끝까지 바라보며 갈 수 있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타인들이 팔을 벌려 나를 받아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보호색도 바리케이트도 만들 줄 몰랐구요.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게 연애를 걸어오는 미지의 세상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 pp.142-143

그동안 그녀는 점점 그에게 길들여졌다. 처음엔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가 그녀를 유리 그릇처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어느 날 그가 서른아홉 살이 된 사내의 불안과 회한, 일과 아내와 두 아이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동을 고백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채워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지산의 젊음과 생기를 마약처럼 흡입하도록 내버려두면서 자신도 모르던 감정들이 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을 놀라워하며 바라봤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여자가 이 순간만큼은 남자의 그물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심지어 행복해 보이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여자의 발목을 걸고픈 욕망을 감추느라 그의 이마엔 퍼런 힘줄이 돋았다 사라졌다, 파운드케이크와 슈크림과 머핀을 고른 여자가 남자의 팔짱을 낀 채 역시 눈인사조차 하지 않고 사라진 후에 그는 가슴이 파이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여자의 체취와 화장수와 끈끈한 타액이 뒤섞인 몽롱한 냄새가 감도는 듯했다.

--- 분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윤효, 5년 만의 창작집 - 서늘한 음색으로 빚어낸 성숙한 소설의 세계
윤효라는 이름은, 눈 밝은 문학 마니아 계층의 독자를 제외한다면 일반 독자들에게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그녀가 이미 한 권의 창작집(『허공의 신부』 문학동네, 1997)과 한 권의 시집(『게임 테이블』 문학동네, 1997)을 상자한, 이색의 개성과 재능을 갖춘, 등단한 지 7년이 넘은 작가라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정보로서 부가된다면 이 같은 사실이 갖는 의외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녀의 소설이 여실히 보여준 바 있는, 스타일리시한 문체와, 특유의 압밀한 묘사력, 그리고 빼어난 서사 직조 능력은 이 작가의 작가적 재능과 그 문학적 희소의 가치를 충분히 증빙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실제로 신수정, 박혜경을 비롯한 몇몇 여성 평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논의는 확실히,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또래의 작가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과 맞물려, 그녀의 작품들 역시 문예지 등을 통해 그다지 빈번하게 노출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작가의 말」과 「나의 문학적 연대기」를 통해 유추해 보건대 작가 자신이 처한 자전적 환경의 변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 몫이 아닐 거라고 늘 망설이게 하던 결혼을 한 후 나는 뜻밖에도 한동안 완벽한 주부의 흉내는 내며 살았다. 가끔은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냈다고 흐뭇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중략) 첫아이를 만났을 때의 신비감을 기억한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희 기저귀들이 커튼처럼 펄럭이던 낮에 내 눈엔 가장 예뻐 보이는 아기를 들여다보며 나는 감탄했다. 그토록 온전한 일을 해낸 나 자신이 기특했던 것이다. 아기에 비하면 소설은 창백하게 느껴졌다. 나는 최소한 5년은 소설을 쓰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지난 5년 동안을, 소설에 대한 욕망과 작가적 자의식으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나, 스스로도 기특하게 여겨질 만큼 완벽한 일상인으로 살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긍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주 소설을 잊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삶에 부단히 반응하는 동시에, 소설쓰기를 통한 꼼꼼한 자기 갱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윤효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닫힌 문 앞에 나란히 낮아 박자에 맞춰 문에 머리를 찧는" 두 아이를 외면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소설을 써나갔다. 물론 그 소설들은 지난 시절 그녀가 '누설'하듯 쏟아놓았던 소설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작품들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이다.(작가의 말을 통해 윤효는 두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곡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5년 만에 다시 보여주는 『베이커리 남자』의 세계는 우선 관능과 착란의 열기와 그것의 부추김을 받은 과장적 요설이 상당 부분 걷혀져 있다. 어떤 면에서 이번 소설집에서 췌록되는 윤효의 목소리는 열기라고는 느낄 수 없을 만큼 서늘하고 차갑고 냉정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이를테면 삶을 알아버린 자에게서 보여지는 침묵이며, 단정함이다. 또한 거칠고, 질감이 묻어나던 격정어린 현란한 화소들도 이번 소설집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정제되고 세련된 상태로 나타난다.

전작과 변별되는 부분은 이런 형식상의 세목들뿐만 아니다. 눈여겨 들여다보면 소설적 관심의 폭이 전작들이 보여준 선뜩한 이미지의 촉수들이 감히 미치지 못한 삶의 세밀한 구석까지 미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관심의 폭의 확대는, 물론 성숙해진 작가적 관점이 만들어준 전환의 실례로 보여진다.

표제작인 「베이커리 남자」가 결락과 상실이 만연하는 일상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조장한 아버지에 대한 상처한 남자의 애증과 욕망의 세계를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면 「성가족」은 어긋나고 변형된 가족의 질서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미성년의 정신적 분투가 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이밖에도 세속적 욕망이 가득 찬 도시에서 점차 부속화, 단자화되어 가는 여성의 실존적 현실을 냉정하게 되묻는 작품(「미세스 랑콤」), 아버지가 부재하는 자리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면서, 삶에 내장된 장치들을 숙지해 나가는, 운의 형식에 수긍해 나가는 미성년을 그린 작품 (「더블베드」), 그리고 세속적 가치 속에 방치된 두 여중학생을 내세워, 존재와 그 존재감을 강박하는 현실 사이의 폭력적인 거리를 탐문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문제 삼는 것은 우리 다양한 삶이 보여주는 여실한 풍속들이다.

이 책에 수록된 윤효 소설의 목소리는, 날선 직관으로 삶을 통찰하고 회의하고 예지하는 부분에 강세점이 붙어진다. 이를테면 윤효의 목소리는 예지하는 동시에 회의하는 목소리다. 그것은 삶을 깊이 응시하고, 내분을 가라앉히고, 노련하게 탐문하는 성숙한 화자의 목소리인 것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그러므로 알면서 행하는, 책임 질 수 있는 말들을 통해, 우리 삶의 자잘한 외연적 사건들 속에서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운명적 기미를 발굴해 내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소설의 재래적인 역할을 새삼 상기하게 해주는 동시에 소설이 사회에 대해 갖는 환기적 기능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이번 소설이 작가 자신의 변신과 아울러 또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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