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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행진곡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추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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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아키였던가. 둘은 무엇인가에서 졸업한 것이다.
“그렇게 근사한 게 아니라니까.” 하며 하루야마는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졸업하는 것’과 ‘버리고 떠나는 것’과 ‘도망쳐 버리는’ 것은 다르다. 일깨워 준 것은 바로 이토였다. 언젠가 두 사람은 그때를 돌이켜 보고, 어른들이 풍경으로만 보았던 자신들에게 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달콤한 그리움일지 쌉쌀한 그리움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리워할 수 있기에 행복할 것이다. ‘졸업’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이토는 괴로웠던 나날을 그리워할 수조차 없다. 그 녀석의 오랜 친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그 점이 몹시도 슬프다.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우리도 ‘졸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 --- <졸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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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어느 날 ‘과장 대리’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중학교 2학년 소녀 아야가 찾아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살해 버린 아버지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다. 아야는 자기도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아 자살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나는 직장 생활에 부대끼며 어느새 멀어져 버렸던 친구 이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아야에게 전해주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로부터 지방 발령을 통보받아 좌절한다. 한편 아야는 왕따에 시달리다 학교 건물 2층에서 뛰어내리고, 어느새 나는 회사 건물에서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자살해 버린 이토의 심정을 공감하게 되는데…… - 자살, 구조 조정, 우정, 새로 구성된 가족, 왕따 등 현대 사회의 여러 모습이 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딸이 자살한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자살한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이해를 거쳐 굴레를 벗어나는 모습이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려 있다. 현실은 각박하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따뜻하고도 강한 목소리로 전한다. <행진곡>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나는 2년 만에 여동생을 만난다. 여동생은, 우등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밞으며 살아온 나와 대조적으로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나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졌지만 ‘옛날 사람’인 어머니와 그 여동생을 잊고 살아온 지 오래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 동안, 나는 여동생에게 학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탈진해 버리고 집안에 틀어박혀 버린 중학교 1학년 아들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그러자 여동생은 과거 초등학교 시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버릇을 억누르다 등교를 거부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 경쟁적인 입시 제도와 학교 제도에 대한 부적응 문제, 부모 자식 간의 삶과 애정 방식의 변화 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현대의 도시 부모를 대변하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에 닥쳐 멀리했던 여동생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문제아였던 여동생을 치유했는지 알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가슴 저리게 그려져 있다. 어머니의 애정을 자신의 아들에게로 전하는 결말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과연 자식은 그 부모를 얼마나 아는 걸까?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 교사인 나는, 평생 교직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임한 뒤 암 말기에 있는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 시체에 호기심 많은 학생 야스히로에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열린 교육관을 가진 나와 달리, 아버지는 아이들을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어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진 차갑고 엄한, 그래서 찾아오는 학생 하나 없는 외로운 교사였다. 그런 아버지를 아프게 조롱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교사직을 사랑했던 천생 교사였음을 알게 되고……. - 직업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세대 간의 차이와 이해, 그리고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살짝 묻는 작품으로, 인생을 걸쳐 자신의 일에 성심을 바쳐온 사람이 가진 고귀함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 찾아오는 제자 하나 없는 아버지에 대해 슬프고 화나지만 결국 그런 아버지를 인정하는 과정이 눈물겹다. 삶의 모습은 변화하는 가운데 진화해 가는 것이며 후대의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 없음도 은연중에 암시하는 듯하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한가운데에 있는 3, 40대들에게 인생과 직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일본에서 2006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추신> 나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현대작가로 떠오른 마흔의 가장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어머니가 죽기 전에 나에게 쓴 일기를 마음에 품고, 표현이 투박하고 서투른 새어머니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유년기를 보낸다. 나는 새어머니를, 죽은 어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나의 존재를 밀어낸 장본인으로 만들며 스스로를 가족에서 소외시켰고, 그런 피해의식 속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은 친어머니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가정하여 거짓으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하는데……. - 어떻게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자리를 차지한 새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까? 새어머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그런 소년의 마음이 중년에 들어선 나이에도 바뀌지 않고, 새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잘 그려져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새어머니가 쓴 추신을 읽는 주인공의 심정은 읽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솟아나게 한다. 그의 소설이 늘 잃지 않는 따뜻함이 더욱 깊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