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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영화야, 미안해
|영화 읽는 소파| REVIEW 우디 앨런의 ‘아가씨와 건달들’--브로드웨이를 쏴라 비엔나 거리로 나선 소요학파 커플--비포 선라이즈 조지 루카스가 만들어낸 창세기--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 소녀가 소녀를 만난 첫사랑의 비극적 기록--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노동계급 젊은이들의 청춘영화--소년은 울지 않는다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페티시즘--화양연화 초라한 골목길 위의 판타지--빌리 엘리어트 누구도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는다--성냥공장 소녀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연약한 로봇의 오딧세이--A.I. 현대 전투의 해부--블랙 호크 다운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아이리스 알트먼이 차려놓은 경멸과 협박, 연애와 착취의 식탁--고스포드 파크 죽음을 지키는 삶--줄리엣을 위하여 죄없는 소녀들의 탈출기--막달레나 시스터즈 디스토피아에서 꿈꾸는 휴머니티--마이너리티 리포트 미지로의 귀의, 혹은 신과의 조우--싸인 거짓말과 다큐 사이의 타협--8마일 브라이드와 타란티노의 칼, 깊은 곳을 찌르다--킬 빌 VOL. 2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한 영화--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예술과 사랑의 비밀을 누설하다--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X세대의 완벽한 원나이트 스탠드, 9년 뒤 파리에서 2막을 열다--비포 선셋 권력과 관용의 함수관계에 대한 고찰--룩 앳 미 “당신이 사랑하긴 뭘 사랑합니까?”--극장전 아름답다! 스필버그의 불안과 공포--우주전쟁 허진호의 멈추어진 느린 발걸음--외출 편재하며 영속하는 외로움의 연대기--토니 타키타니 치밀하고 명료한 인생예찬--사랑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속편 ‘악마는 들뢰즈를 읽는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작정한 가벼움, 별난 스크루볼코미디--스쿠프 |방 없는 전망| OVERVIEW 잃어버린 순수로의 여행, 성장영화 오디세이 생이여,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버지니아, 로라, 클래리사, 그리고 나 영국산 로맨틱코미디의 산실, 워킹타이틀 이야기 알모도바르의 그녀들 영화에 날개를 달다, 영화 의상 영화 「몬스터」를 둘러싼 세 여자 이야기 영국 배우의 힘 아도니스의 후예, 그들에게 꽃을 던져라 |유혹자들| PLAYERS 세기의 라이벌, 찰리 채플린 vs. 버스터 키튼 작가의 월계관을 비뚜름히 쓴 엔터테이너, 히치콕 사라지지 않는 후광, 테렌스 맬릭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극장에서 배웠다, 배리 소넨필드 이반의 도발, 데릭 자만 할리우드보다 더 할리우드적인, 피터 위어 영화적 순수를 향해 전진하는 카메라, 거스 반 산트 영화는 세계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 올리비에 아사야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돌연변이 후계자, 브라이언 싱어 신의 아이, 길 위에 잠들다, 리버 피닉스 카메라를 숨죽인 눈동자, 에드 해리스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영혼을 당기는 자석, 이안 맥켈런 우울한 천재 소년의 성인식, 맷 데이먼 이 소녀는 누가 꾸는 꿈입니까?, 다코타 패닝 아무것도 없는 남자, 모든 것을 가진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하비 웨인스타인 탐미주의적 일 중독자, 스콧 루딘 |닫는 글| 追伸 |발문| 내가 아는 김혜리(허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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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의 오른쪽 서랍은 이번 주에 읽어치워야 할 영화들의 자료가 차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왼쪽 서랍은 이미 스쳐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으나, 차마 버리지 못하는 영화들의 몫입니다. 이 책은 제 왼쪽 서랍입니다. 편애의 기록입니다. 제 초라한 왼쪽 서랍을 왼손잡이 당신에게, 잡동사니에 눈길이 머무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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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영화의 정체에 한없이 가까이 다가가는” 글쓰기
그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종류의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질문을 제기하고 답할 만큼 자신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 편의 영화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고 판정하는 데에도 무관심하다. 다만 그는 저 영화는 내게 무엇인가, 그리고 저 영화는 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무엇일까, 라고 조심스레 질문한다. 그 태도가 어설픈 백 마디 분석의 언어를 초라하게 만드는 빛나는 공감의 언어를 낳는다. (영화평론가 허문영, ‘발문’, 389쪽) 어찌할 수 없이 영화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운명이면서도, 영화에 대해 치사량의 독설을 늘어놓는 평론가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비평도 때로는 영화 보기의 매력을 더해준다. 하지만 어떤 영화를 판정하고, 순위를 매기고, 관객들에게 영화 읽기의 일정한 길을 제시하는 것은 김혜리가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녀는 “영화라는 복잡한 종합예술을 규정하는 어느 한 가지 예술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멋대로 리뷰를 써대는 반지성주의가 횡행하고 있다”는 미셸 시망 같은 이들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며 조심조심 영화에 다가가지만 그렇다고 마냥 넉넉한 평가와 점수만을 내주지도 않는다. 거장이 만든 영화의 완벽함을 극찬하거나, 수많은 틈새를 가진 영화를 앞에 놓고 그 부족함을 끄집어내는 것도 그녀의 몫은 아닌 듯하다. 김혜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차라리 불완전한 영화들이 발산하는 그 불안한 오라(aura)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발자크 평전을 쓴 천재적 평전 작가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를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일생을 살아간 거대한 인간보다는 모순과 자기 연민 속에서 고통받고 갈등하며 때로는 비열함을 드러내고 때로는 그에 대한 가책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삶에 관심을 두었던 츠바이크처럼, 김혜리는 수많은 흠집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드라마, 즉 실패하고 변명하고 좌절하는, 주체하기 힘든 열정에 시달리거나 혹은 열정 부족으로 무심하게 관조만 하는, 그러면서도 묘한 자조적 유머 감각을 소유한 인물들의 비틀거리는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에 시선을 보낸다. 제레미 아이언스에 관한 글에서는 “야망의 결핍”을, 휴 그랜트에 관해서는 그가 “게으르고” “세속적인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매력’으로 엮어 내고, 배리 소넨필드는 “불안과 번민, 노이로제 등의 연약함을 통해 벼려지는 강인함을 신봉”하는 사람으로, 다코타 패닝에 대한 글에서는 성인 배우를 압도하는 어린 배우들의 괴력을 “자의식의 결핍”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한다. 제작자 스콧 루딘을 훌륭한 취향을 소유한 “탐미주의적 일 중독자”라고 부르면서도, “성공한 사람이 종종 그렇듯 스콧 루딘의 파워는 그가 지적이면서도 적당히 야만적이라는 점에서 솟는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 ?룩 앳 미? 리뷰에서는 권력의 희생자로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말하며, “권력은 나쁜 취향의 농담에 무골충처럼 웃게 하는 힘”이며 “굴종이 아니라 친절과 예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기에” 교묘한 것이라고 평한다. 영화라는 주석을 필요로 하는 ‘작가’ ?외출?에서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인수다. 둘의 연애에서 서영이 적극적 주체로 보이는 것은 그녀가 행위의 제값을 치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영은 불륜의 사랑으로 인해 숨거나 방치되는 모멸감을 경험하며 인수와 같이 있던 시각에 남편의 죽음을 맞는 ‘징벌’까지 당한다. 멜로드라마에서는 치욕과 가책에 발목을 담그는 쪽이 관객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하는데 ?외출?에서 그것은 인수가 아니라 서영이다. (148쪽) 김혜리는, 대부분은 지나치고 보지 못할 것 같은 사소한 행동과 농담, 상처에 희미한 불빛을 비춘다. 숨겨진 부분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그 어두움을 과장하여 외부로 드러난 부분들을 간과해버리지도 않는다. 김혜리의 글은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유머로 풀어갈 때에도 어딘지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그는 쉽게 결론을 내리는 법이 없으며, 늘 우회하며 여러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염두에 두고 고민한다. 이는 김혜리가 영화를, 그리고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자신의 삶처럼 대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펼쳐 그의 글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이런 말들이 군소리에 가깝겠지만, 나는 한 사람의 실제 삶에서 풍겨오는 육체적 느낌이, 그의 글과 이만큼 가까이 있는 다른 사례를 잘 기억하지 못하겠다. (허문영, ‘발문’, 387쪽) 김혜리의 글은 대개 치욕과 가책, 그리고 상실의 궤적 안에 있어 볼 때마다 그것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어떤 통증의 상기를 피할 수 없다. 그의 글은 그것을 상기시키고 어루만진다. (‘발문’ 390쪽) 김혜리는 겸손하게 “모든 영화는 아무리 허약해도 어떤 악평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며, “제아무리 시대를 풍미한 비평가가 쓴 글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먼지 앉은 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이나 누렇게 변색된 스크랩 더미에서 찾아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야 미안해??를 읽다보면 그의 글은 영화라는 텍스트의 그늘을 벗어나서도 그 자체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선지 어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화를 김혜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호기심에 그의 글을 찾아 읽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혜리는 영화에 주석을 다는 사람에서 출발하여, 이제 영화라는 주석을 필요로 하는 ‘작가’에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