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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담벼락에 묻힌 5월 광주
문선희
난다 2016.05.18.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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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8
일러두기 10

[쉿!] 13
01 최지연(1980년, 8세) 14
02 김은영(1980년, 8세) 15
[간첩] 17
03 조승기(1980년, 10세) 18
04 이정록(1980년, 10세) 20
05 김용태(1980년, 9세) 21
[퍽!] 23
06 정제호(1980년, 8세) 24
07 김용선(1980년, 12세) 25
[피가 모자랍니다] 27
08 정상욱(1980년, 13세) 28
09 정광훈(1980년, 13세) 29
10 장OO (1980년, 13세) 30
[아무것도 못 봤어요] 33
11 소영환(1980년, 10세) 34
12 나용호(1980년, 10세) 35
[그 눈빛을 나는] 37
13 강신철(1980년, 11세) 38
14 문종선(1980년, 10세) 39
[다 끝난 일] 41
15 노상수(1980년, 13세) 42
16 박종식(1980년, 11세) 43
17 최창호(1980년, 9세) 44
18 박수미(1980년, 11세) 45
[학교는 쉽니다] 47
19 조호성(1980년, 11세) 48
20 윤일선(1980년, 11세) 49
[오메오메] 51
21 정지선(1980년, 11세) 52
22 김건(1980년, 11세) 53
23 박지민(1980년, 8세) 54
24 김원(1980년, 11세) 55
[내가 봤어] 57
25 홍성호(1980년, 12세) 58
26 정재운(1980년, 12세) 59
[두근두근] 61
27 이장곤(1980년, 10세) 62
28 이승희(190년, 10세) 63
29 박현민(1980년, 10세) 64
30 나상선(1980년, 10세) 65
[군인은 원래 우리 편인데] 67
31 정재명(1980년, 10세) 68
32 정명운(1980년, 9세) 70
33 박진홍(1980년, 10세) 71
[나중에 괜찮을까?] 73
34 강성경(1980년, 10세) 74
35 김이강(1980년, 12세) 75
[우…와!] 77
36 강선아(1980년, 12세) 78
37 문영학(1980년, 12세) 79
38 강채민(1980년, 12세) 80
39 나진근(1980년, 12세) 81
[잊혀지지가 않아] 83
40 곽은영(1980년, 9세) 84
41 송명재(1980년, 11세) 85
[두두두두두두두] 87
42 김강미(1980년, 11세) 88
43 서상석(1980년, 12세) 89
44 한서희(1980년, 12세) 90
45 김선미(1980년, 8세) 91
[유언비어] 93
46 차수진(1980년, 13세) 94
47 최혜경(1980년, 13세) 95
48 최혜원(1980년, 8세) 96
49 소유정(1980년, 7세) 97
[우리나라, 만세] 99
50 염수인(1980년, 8세) 100
51 이형석(1980년, 9세) 101
[어째서?] 103
52 정선화(1980년, 8세) 104
53 최귀성(1980년, 9세) 105
54 고성주(1980년, 9세) 106
55 김O O (1980년, 13세) 107
[6?25보다 더] 109
56 김현희(1980년, 13세) 110
57 정용재(1980년, 11세) 112
58 고정화(1980년, 11세) 113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115
59 김종원(1980년, 12세) 116
[휴!] 119
60 김옥희(1980년, 11세) 120
61 강석(1980년, 13세) 122
62 김정중(1980년, 13세) 123
[도망쳐!] 127
63 송민주(1980년, 13세) 128
64 주라영(1980년, 8세) 131
[빨갱이, 새끼들] 133
65 강혜련(1980년, 13세) 134
66 김현대(1980년, 12세) 136
67 정영남(1980년, 13세) 137
[어떡하지?] 139
68 정종민(1980년, 13세) 140
69 하형우(1980년, 13세) 141
70 문영란(1980년, 13세) 142
71 윤세영(1980년, 8세) 143
[용기] 145
72 박국희(1980년, 10세) 146
73 박상순(1980년, 8세) 147
[탕!] 149
74 김보수(1980년, 11세) 150
[축제 아닌 축제] 153
75 오진하(1980년, 11세) 154
76 김동훈(1980년, 11세) 155
[도와주세요] 159
77 차정섭(1980년, 9세) 160
78 배충환(1980년, 12세) 161
[방탄솜이불] 163
79 임재환(1980년, 12세) 164
80 최환석(1980년, 12세) 166

5·18 상황 일지 167
해설-골목, 기억의 틈을 메우는 목소리 송수정(독립큐레이터) 173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75쪽 | 660g | 203*280*20mm
ISBN13
9788954640657

책 속으로

시체들을 많이 봤어요. 소방차 뒤에 시체를 실어가지고 왔다갔다하는 걸요.
그리고 옆집 살던 아저씨가 군대에서 기관총 사수였던가봐요. 트럭 위에 담요를 깔고 시
민군들에게 총을 쏘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증심사 올라가는 다리에서요. 평화맨션 앞 소태동 다리였어요.
밤에는 총소리가 엄청 났어요. 그래서 잘 때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면 총알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요. 탄피 가지고 친구들이랑 따먹기 놀이도 많이 했어요. 그때는 길에 분해된 총기들도 많이 버려져 있었어요.
설월여고 자리가 원래 밤나무숲이었는데 거기서 시내가 잘 보이니까 교전하려고 수류탄 찬 사람들이 많이 오르내렸어요.
또 한번은 삼립 빵 차가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시민군들이 협조 좀 하라고 빵 차를 세워가지고 사람들에게 빵은 나눠주고, 그 차를 가져갔어요.
사람들이 버스에서 “전두환 물러가라, 물러가라” 노랫소리를 했고, 어디선가 “간첩이 나타났다!”고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이들이랑 막 쫓아다니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옥상에서 놀고 있었는데 헬기가 갑자기 문을 열고 우리 쪽으로 기관총을 쐈어요. 무서워서 얼른 엎드렸는데 형이 공포탄이라고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침에 형이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빡’ 소리가 났어요. 보니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벽에 박혀 있었어요. 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형 머리에 맞을 뻔했어요.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죠.
---「김용선 (1980년, 12세)」중에서

어머니가 솜이불을 꺼내서 벽을 다 덮으셨어요. 그리고 창문 바로 아래쪽에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잤어요. 총알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창문 바짝 아래서 잔 거죠. 밤에 총소리가 많이 났거든요. 그때 양옥집 2층에 살았는데 화장실이 1층에 있었어요. 화장실에 가려면 밖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밤에 화장실 갈 때 보면 빨간 불빛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 빨간 불빛이 인상적이었죠. 당시엔 어렸으니까 불꽃놀이 같기도 하고.
---「조호성 (1980년, 11세)」중에서

남자들은 다 잡아가서 죽인다는 소문이 나돌았어요. 그래서 밤마다 동네 남자들이 모두 우리집 지하실로 들어가 숨었어요. 우리집 지하실이 엄청 컸거든요. 남자들이 들어가면 여자들은 지하실 문을 닫고 문을 은폐하려고 그 위에 물건들을 쌓고 들어내지 못하게 하려고 엄청 큰 물통에 물을 받아서 올려놓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오빠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독자여서 우리 엄마는 오빠까지 지하실에 숨겼어요. 행여나 죽게 될까봐요.
---「강성경 (1980년, 10세)」중에서

제일 무서웠던 기억은 우리집 바로 옆에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었어요. 밖에서 보면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길이 딱 끝나는 그런 골목이요. 밤에 도망치던 사람들이 거기가 뚫린 골목인 줄 알고 그 길로 들어가곤 했어요. 그 소리가 다 들렸어요. 막 도망치면서 “조심해!”라고 말하는 소리까지. 그런데 막다른 길이니까 거기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났어요. 잡혀버린 거죠. 그 사람들의 고함, 비명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그 소리를 가족들이 전부 다 같이 들었는데 방에서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나요. 전부 다 잡혀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 일이 한두 번은 더 있었어요.

---「곽은영 (1980년, 9세)」중에서

출판사 리뷰

1980년 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을 묻다.
2016년 5월 광주,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도 묻을 수가 없다……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이 한 권의 책으로 우리는 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를 갖게 되었다!”

또다시 5월입니다. 5월이라 하면 이런저런 기념의 날 참 많기도 하다지요.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지내고 스승의 날을 거쳐 성년의 날을 보낸 뒤 그 언저리에서 며칠을 더 머물면 애도의 심정으로 달력 속 숫자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도 된다지요. 18이라는 숫자.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라는 붉은 글씨. 잊지 말라는 나름의 당부가 그 붉음이라 하겠지요.

그날로부터 36년이 흘렀습니다. 직접 겪은 이가 아니고서는 그때 그날들의 특별한 그 ‘겪음’에 대해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저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터, 여기 한 사람의 젊은 사진작가가 그날의 기억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감을 신고해드리려 합니다.

1978년생으로 사진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문선희. 광주 출신으로 무등산 자락에서 자란 그녀는 1980년에 18개월 된 아기였고, 홍역에 걸려 있었음에도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스스로 떠올린 기억이 아니라 당시 초등학생이던 언니와 오빠들의 기억이 불러일으킨 사실이었다지요. 바로 이 부분을 힌트로 문선희 작가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되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의거한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한 거지요.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증언 사이사이에 묻어난 그들의 철없는 아이다움에 한량없이 고마웠고, 그들의 이상하고 섬뜩한 어린 날의 파편에 속절없이 아파했다.” -서문에서

문선희 작가는 2년에 걸쳐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80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직접 겪은 그 일에 대한 증언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다행히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꽤 되었습니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오래 쳐다봐주고 오래 만져주는 만큼 벽들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틀림없겠지요. 그래서 광주의 시인 임동확은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의 시를 일찌감치 피를 토하듯 써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문선희 작가는 80명의 증언에 30컷의 벽 사진을 한 묶음의 책 안에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 벽 사진의 제목을 그들 증언에서 빌려오기도 하였고요.

이제는 사십대가 된 당시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듯해도 사사로이 다른데, 어린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이들의 불완전성은 “사건을 미화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게 그 부조리함을 대변하기 때문”에 보다 귀한 사료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컨대 다음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말이지요.

“그때 YMCA 근처에 수협이 있었고, 그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거기로 가서 보여주셨어요. ‘이게 총알자국이야’라고.-김보수(1980년, 11세)

“그리고 아침에 형이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빡’ 소리가 났어요. 보니까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벽에 박혀 있었어요. 형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고개를 들고 있었으면 형 머리에 맞을 뻔했어요.”-김용선(1980년, 12세)

“그 길 사거리를 건너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따다다다, 하고 총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러더니 내 옆에 가던 형이 쓰러졌어요. 나는 어떤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시 후퇴를 했고요. 총을 맞은 형은 그 자리에서 툭, 쓰러져 죽었어요. 죽은 형은 총을 머리에 맞았는데, 얼굴 절반은 형태가 없었어요. 그 바로 옆에 제가 있었고요.”-최창호(1980년, 9세)

“날이 더운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솜이불을 해오셨어요. 총알이 솜이불을 못 뚫는다고요. 옛날 집들은 담이 낮아서 총알이 집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김이강(1980년, 12세)

“공수부대는 개구리복을 입고 다니면서 학생들을 무조건 잡아갔어요. 대학생들이 주택가로 숨으면 무조건 찾아내서 질질 끌고 갔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부대원들은 돌도 안 피하고, 화염병도 안 피하더라고요.”-서상석(1980년, 12세)

“그때는 어렸으니까, 탱크나 장갑차가 지나가도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지 않는 걸 보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문영학(1980년, 12세)

“우리한테 빨갱이라고 하니까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공산당은 머리에 뿔이 났다고 했는데, 우리한테 빨갱이라니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됐어요.”-강혜련(1980년, 13세)

“우리 동네에 최미현이라고 나를 엄청 귀여워해주시던 분이 계셨어요. 남편은 인성고 교사였고, 그때 미현이 누나가 스물일곱인가 여덟인가 됐었는데 임신중이었어요. 남편을 기다린다고 밖에 나갔다가 총에 맞아서 죽어버렸어요. 그때 손수레에 누나를 실어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식구들이 울고불고 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나중에 5?18 묘역에 가니까 미현이 누나 묘가 있더라고요.”-김동훈(1980년, 11세)

『묻고, 묻지 못하는 이야기』, 이 책의 탄생에는 “역사 저편으로 잊혀가는 기억의 조각을 발굴하기 위해 좁은 골목들을 찾아다닌” 문선희 작가의 노고와 사랑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말함의 불가능성’을 품은 채 최대한 정확히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려한 ‘80명 아해들’의 용기도 큰 몫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동일한 사건의 목격자’임은 분명한 까닭에 그들의 목소리 가운데 교집합으로 묶이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사실 너머 진실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바로 새겨줘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80년 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말
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5·18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광주 사람이니 잘 아시겠죠”라는 말이 붙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때 저 죽을 뻔했어요”라고 농담처럼 답하곤 했다.
당시에도 나는 무등산 자락에서 살았다. 광주 시내가 봉쇄되는 바람에 우리는 우리대로 고립된 처지였다. 18개월 된 아기였던 나는 홍역에 걸렸고,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을 고비를 겪었다고 한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잖아.” 언니는 여덟 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어쩌면 특별할 것도 없는 기억이 긴 바늘이 되어 푹, 하고 나를 찔렀다.
그때 국민학생이었던 언니와 오빠들은 지금 초등학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이것은 5월 광주에 관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거대 담론에 대한 작업은 아니다.
이 작업을 위해 나는 중심이 아닌, 주변의 기억을 수집하기로 했다. 대상은 마흔을 갓 넘은 이들로, 당시 초등학생의 나이로 한정했다. 2년에 걸쳐 해당 연령의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어렵사리 그중 80명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30년이 더 지난 일이다. 어떤 기억은 흐릿해졌고 어떤 기억은 덧대고 기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는 어떤 인상들은 어제의 것처럼 생생했다.
그들의 기억은 어린아이들의 불완전한 기억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어렸지만, 5·18에 대해 듣거나 읽은 게 아니라 직접 보고 겪었다. 그러니 아이들의 기억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한 부분을 보여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증언 사이사이에 묻어난 그들의 철없는 아이다움에 한량없이 고마웠고, 그들의 이상하고 섬뜩한 어린 날의 파편에 속절없이 아파했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이 비극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이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게다가 경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 아닌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타인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니 완전히 전달할 수도 없을 터다. 그래서 노력했다.

나는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사라진 집들만큼이나 남아 있는 집들도 많았다. 그 엄혹한 열흘 밤낮 동안 누군가의 가족을 오롯이 품었을 집들, 오랜 시간을 견뎌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를 지닌 벽들. 시나브로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내 안에서 용해되고 발효되었다. 그러자 골목 안의 벽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모자란 작업을 위해 기꺼이 기억을 꺼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16년 5월
문선희

추천평

문선희 작가는 낡은 벽들이 말하는 걸 듣고, 구덩이에 살처분된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타자의 고통에 유난히 민감한 그녀는 잘 들어주는 것이 가장 잘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글과 사진을 통해 ‘고통의 오감도烏瞰圖’를 그려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1980년 광주를 겪어낸 ‘80명의 아해’들의 증언이 담겨 있다. 그들의 유년을 향해 물었으나, 다 묻지 못했다. 그들은 말했으나, 다 말하지 못했다. “증언은 말을 못 하는 자가 말을 하는 자에게 말하게 만드는 곳에서, 말을 하는 자가 자신의 말로 말함의 불가능성을 품는(견디는) 곳에서 발생”한다는 아감벤의 말처럼, 증언의 진실은 ‘말함’에 대한 윤리적 요구와 불가능성 사이에서 간신히 어떤 섬광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말함의 불가능성’을 품고 견디며 80명의 말을 받아 적는 동안,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역사 저편으로 잊혀가는 기억의 조각을 발굴하기 위해 좁은 골목들을 찾아다닌 노고와 사랑 덕분에, 우리는 5월 광주의 새로운 오감도를 갖게 되었다. 거대 서사만으로는 온전히 말해질 수 없었던 역사의 편린들이 “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온다.
- 나희덕 (시인.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선희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사십대를 인터뷰하고 그들이 일상처럼 배회하던 골목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의 작업에서 사람과 장소는 둘 다 동일한 사건의 목격자다. 인터뷰 내용이 혼돈 속에서 예리하게 그날을 되새기는 기억의 목소리라면, 중립의 시선으로 잡아낸 골목의 사진들은 침묵 속에서도 불현듯 그날의 소리를 되새기게 하는 기억의 터전이다
송수정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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