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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영남대로 천리 길, 열나흘 도정에 오르며
첫날. 부산 동래에서 양산 물금나루까지 - 눈썹까지 빼놓고 가야 하는데 이틀째. 물금나루에서 밀양까지 - 나그네는 되도록 지름길을 택한다 사흘째. 밀양에서 청도읍성까지 -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 나흘째. 청도읍성에서 대구 약령시까지 -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발의 서러움 닷새째. 대구에서 칠곡군 가산면까지 - 고향 떠나면 고생이다 엿새째. 칠곡에서 구미시 도개면까지 - 걷기에 알맞은 몸 이레째. 구미에서 상주 금곡리까지 - 죽음이란 이렇게 사라져 없어지는 것 여드레째. 상주 금곡리에서 문경읍내까지 - 언제 끝날지 모를 길 위에 서서 아흐레째. 문경읍에서 충주까지 - 십리 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 간에 풍속이 다르다 열흘째. 충주 단월역에서 모로원까지 - 걷는 것도 쉬는 것처럼, 쉬는 것도 걷는 것처럼 열하루째. 충주 모로원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고 열이틀째. 안성시 오방동에서 용인 김량장까지 - 강은 건너봐야 알고 길은 걸어봐야 안다 열사흘째. 용인에서 서울의 양재까지 -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 열나흘째. 양재에서 남대문까지 - 길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 |
辛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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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 막걸리와 소주, 맥주만 팔고 있는 중앙식당에는 젊은 시절에 곱상하다고 소문이 자자했을 법한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이곳 물금 출신이신 79세의 차소순 할머니다.
“그때는 주막이라는 이름도 붙이지 않고 주막을 혔지, 물금장이 괜찮았어. 5일과 10일 장인데, 지금은 골목장이 되어버렸어. 시장이 제법 컸는데 몇 년 새 다들 문 닫고 텅 비어 버렸어. 한창 잘 나갈 때는 주막이 열 집도 넘었어.” “시집은 몇 살 때 가셨지요?”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가가지고 스물한 살에 첫아이를 낳았어. 아이가 여섯이었는데, 큰 애가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 남편이 죽었어.” “그럼, 그동안 혼자 많이 힘들지 않으셨어요?” “사는 데 신경쓰다 보니 과거는 다 잊어 버렸어. 어떻게 하면 애들 배곯지 않을까만 생각했지. 나는 살아온 얘기 입 밖에 잘 안 내. 해 봐야 다 소용없는 것이라서.” 어찌 그 쓰라렸던 과거들이 잊혀지겠는가. 기억조차 하기 싫어 그저 잊었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 pp.41∼42, <첫날. 부산 동래에서 양산 물금나루까지│눈썹까지 빼놓고 가야 하는데> 중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다가 집 안에서 풀을 뽑고 있는 할머니를 한 분 만나서 지난 세월을 듣는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여태껏 살았어, 저 길이 경주에서 서울로 가는 서울나들이 길이여. 옛날에는 저 큰 길이 없었지. 다 수양버들이 덮여서 도랑으로 지나댕겼어. 초닷샛날 아침 9시에 구미에서 시집을 오는데, 배 타고 산동으로 와서 여기 오니 오후 4시쯤이나 되었던가? 딸 하나, 아들 서이를 낳아서 잘 키웠지. 그런디 언제나 서울 간다냐? 세월 가는 대로 가며는 차 타고 가는 것보다 경치도 많이 보고 구경도 잘하고 남 사는 것도 보고 좋기는 좋겠다.” 하시더니 당신만이 아는 노래를 부른 다. “영감아, 돈 벌러 간다. 어절씨구 잘 놀고 잘 사는 거지.” 좋은 일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좋지만 잘 놀고 잘 사는 것, 그게 누구나 바라는 바 아니겠는가? “안 죽고 살며는 또 만나.” 다시 풀을 뽑으시는 할머니를 뒤에 두고 갈 길이 먼 우리들은 길은 나선다. “서울나들마을은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라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나선 길은 한적하지만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옛길이다. --- pp.145∼146, <엿새째. 칠곡에서 구미시 도개면까지│걷기에 알맞은 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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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지방도나 국도를 막론하고 먼 거리를 간다는 것은 진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국도를 걸어갈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나라의 지방도나 국도 전체가 넓은 도살장으로 변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개나 고양이, 너구리, 토끼, 새 등 온갖 짐승들이 길 위에서 비명횡사를 하고 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들, 특히 화물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은 사람의 몸마저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전통과 현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길들을 지금이라도 되찾고 보존하지 않으면 완전히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러한 길들, 즉 ??세종실록?? 지리지나 신경준의 ??산경표??,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 나타나 있는 몇 개의 중요한 길 옆에다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 특히 흙으로 된 길을 설치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외국에서도 옛길을 보존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고대 로마의 길들과 일본 에도시대의 길들, 기독교 순례자들이 걷던 에스파냐의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우리의 옛길 또한 마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역사와 함께하는 길, 문화와 함께하는 길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p.340∼341, <열나흘째. 양재에서 남대문까지│길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의 스승>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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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우리 옛길 영남대로를 걷다
지난 10월 문화재청은 문경새재, 죽령 옛길, 구룡포 옛길, 문경 토끼비리 네 군데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문화재청은 이들 옛길이 명승으로 지정되면 원형 복원 및 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장원급제 행렬, 산신제 및 과거길 체험 등 옛길 관련 행사 등을 지원하여 지역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발간한 ??영남대로??는 옛길에 대한 최근의 문화적 관심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문화사학자이자 답사가로 활동해 온 저자 신정일은 조선시대 대표 간선도로인 영남대로(嶺南大路)와 삼남대로(三南大路)를 직접 걷고, ‘길문화축제’와 ‘우리땅걷기’ 모임을 통해 옛길의 문화재 지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영남대로??는 신정일이 두 발로 직접 써내려 간 답사기이자 옛길에 대한 보고서다. 이 책은 우리 옛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함께 나누도록 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9대 간선로라 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길이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이어진 영남대로이다. 거리가 960여 리에 달하고 실제 걷는 기간은 열나흘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이 길은 경상도 58개 군현, 충청도와 경기도에 각 5개씩의 군현에 걸쳐 있었고, 29개의 주요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서울을 향해 진격했던 길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향하던 길로 우리나라의 영광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 이후 교통망의 근간이 되었다.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 외에도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열닷새 길의 영남좌로(嶺南左路),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서 가는 열엿새 길의 영남우로(嶺南右路)가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 굳이 열나흘의 영남대로를 고집한 것은 밀양과 대구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간 영남지역 선비들의 여정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2. 길에서 만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 사람들 ― 이 책의 특징 1 영남대로는 답사기다. 사라진 옛길을 따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으며 아직 남아있는 옛 모습들을 더듬고,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영남대로를 다시 걷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그 길 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대로는 죽어 있는 길이 아니라 아직 살아 숨 쉬는 길이며,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답사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준다. 먼 길 걱정하며 밥을 내어주는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 배낭에 붙인 깃발을 보고 “아저씨들 파이팅!” 하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 아직도 밥값을 2천 원만 받으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 대구 팔달시장의 할머니집 식당, 길이 넓어져 가게가 망해 간다는 음식점 주인의 하소연, 도시 난개발을 걱정하는 판교 토박이의 한숨. 이것이 길에서 만난 우리네 모습이자 삶이다. 우리는 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남기고 또 흘려보낼 것이다. 이것이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 아니겠는가. 3.과거와 현재를 잇는 옛길의 복원과 국토의 재발견 길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옛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스팔트로 덮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옛길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영남대로를 걸으며 이 길을 꼭 살려내 모두가 함께 즐기고 후세에 물려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직선으로 뻗은 지금의 길 위에서 사라진 옛길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로 체계 때문에 걷는 내내 불편함과 위험함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보행권 되찾기 운동’과 ‘옛길 문화재 지정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옛길을 복원해 보행권이 확보되면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국토의 재발견과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06년 시작한 ‘길문화축제’가 전주 지역의 신선한 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았고, 몇몇 주요 옛길이 조만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이 될 것이라 하니 조만간 ‘옛길을 여행한다’는 말도 생길 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