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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인 마크 애론슨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한다. “아방가르드는 미래를 내다보고 자신들의 통찰력을 우리 눈앞에 들이대는 일에 자신의 재능, 심지어는 삶까지도 바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방가르드들의 통찰력을 믿든 말든 그 선택은 우리 몫이지만, 좌우간 그들은 남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위해 크나 큰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가장 도전적인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다본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고, 거기에서 얻은 통찰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다름 아니라 공업, 도시, 과학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세계의 출현 가능성, 그리고 거기에 잠재된 가능성과 위험이다. 한마디로 ‘현대성’이라고 부름직한 이 현상의 가능성과 위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아방가르드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 현대성의 이미지, 감각, 충동을 좇아서 내면으로 여행하거나, 현대성의 가능성과 위험에 맞서 반항을 밖으로 표출해 경직된 규범, 시대에 뒤진 도덕,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맞서는 예술을 창조하거나. 전자의 길을 택한 아방가르드들은 더욱 더 강력한 상상력을 끌어내고자 명상, 신비주의, 약물, 섹스, 심지어는 자해를 이용하기도 한다. 후자의 길을 택한 아방가르드들은 난공불락의 성채로 둘러싸인 정치 제도와 슬며시 웃음 짓고 있는 위선을 폭로하는 데 예술을 이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언문을 작성하고, 관객들을 공격했으며, 당국자들의 비난을 즐기기까지 했다. 내면으로 들어간 예술가들이 보기에, 새로움은 꿈속에 숨어 있었다. 실천가들이 보기에, 새로움은 새로운 사회와 함께 도래하는 것이었다. 과연 누가 옳았던 것일까? 애론슨은 둘 다 옳았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을 내놓는다. 그의 말마따나, 엄청난 실패든 눈부신 성공이든 아방가르드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면서도 기분을 북돋워주는 이 현대라는 시대를 완벽하게 반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자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어쨌든 우리는 당분간 여전히 이 현대성이라는 화두를 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 눈높이를 낮춘 아방가르드 예술의 문화사 그 동안 국내 독자들은 아방가르드 예술과 예술가들을 예술사의 입장에서 보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가령, 흔히 볼 수 있는 변기에 ‘R. MUTT’라는 서명을 적어놓는 뒤샹의 작품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자문자답해 보는 식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재현 대상의 파괴’니 ‘오브제’니 같은 어려운 개념이 등장하고, ‘개념예술’이니 ‘네오?다다’니 하는 유파 구분이 동원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아방가르드 예술은 뭔가 낯선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렇지만, 애론슨이 쓴 이 책 『도발』은 문화사의 시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에 접근한다. 그래서 애론슨은 뒤샹의 변기가 예술이냐 아니냐를 결코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뒤샹으로 하여금 변기를 예술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만들었던 그 시대의 정서와 맥락, 즉 각각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등장하게 된 문화적 배경(또는 역사적 상황)을 보여준다. 요컨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를 제1차 세계대전의 맥락에서 읽는다거나, 추상 표현주의를 미국이 전후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된 맥락에서 읽는 이유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애론슨은 이런 문화사적 접근을 통해 어려운 개념이 없어도 아방가르드 예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을 훌륭히 보여준다. 게다가, 이 책은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됐던 여타 아방가르드 예술관련 서적들과는 달리 특정 영역, 특히 아방가르드 미술만 다루지도 않는다. 꼭 화가나 조각가들만이 미래를 내다보려 하고 자신들의 통찰력을 우리 눈앞에 들이대는 일에 자신의 재능과 삶을 바치려 하는 건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반드시 미술가들만이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밥 딜런에서 섹스 피스톨즈에 이르는 대중가수들은 물론, 에릭 사티에서 존 케이지에 이르는 음악가들, 빅토르 위고에서 잭 케루악에 이르는 작가와 소설가들, 바슬라프 니진스키에서 머스 커닝엄에 이르는 무용가들, 그리고 혁명가 레닌에서 LSD의 전도사 티모시 리어리에 이르는 각종 인물들이 모두 이 책의 주인공이다. 애론슨은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씨줄로, 당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날줄로 삼아,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아방가르드들의 삶과 활동을, 총 80개에 달하는 풍부한 도판과 함께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아방가르드 예술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에 맞춰, 본 편집부 또한 꼼꼼히 번역본을 준비했다. 무엇보다도, 색인 기능은 물론, 아방가르드 예술가/비평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살려볼 수 있는 부록을 실었다(부록 1: 나의 세대?, 부록 2: 인명 찾아보기). 총 55쪽에 달하는 이 부록은 총 270명에 달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 및 비평가들을 소개한 것으로서, 일종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소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록을 참조한다면, 본문의 내용은 물론 아방가르드 예술 전체의 지형을 간단히 살펴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본문에 대한 독자들의 상세한 이해를 돕고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사건들과 용어들을 총 47개에 달하는 꼼꼼한 편집자 주를 통해 성실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 각주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자리의 희곡 <위뷔 왕>이 왜 세계 최초의 부조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은 영화, 뮤지컬, 소설, 만화, 선언문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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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이 단락에는 스코트 조플린의 래그타임 곡들이 잘 어울린다.
삶 자체가 이미 변했다면? 자동차, 전화, 엑스선, 마천루가 세계를 이미 바꿔 놓았다면? 아마도 시대를 정확히 반영하는 미술은 도심의 거리들처럼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뒤샹이 스톱 모션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그대로 나체를 그렸다면, 그는 사람들을 놀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교육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결코 급진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주관적이지도, 원시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새로운 종류의 리얼리즘을 창조했을 뿐이다. 작가 줄리언 스트리트는 이 점을 이해했다. 뒤샹은 "천연색 영화가 스크린을 가로지르듯이 내 마음속을 가로지르는 삶의 인상들을 화폭에 담으려 시도"했다고 쓴적이 있다. 『나체』는 단지 하나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 그림은 대중들 사이의 균열을 드러내주는 촉매였다. 그 그리을 앞에 두고, 도덕주의자들은 급진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비평가들은 나름대로 설명을 시도했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비웃었다. 『인디펜던트』의 필자는 만약 그림 안에 사진기가 있어 군중의 모습을 찍는다면, 그 사진들에서 우리는 "경외감, 비난, 혐오감, 놀라움, 기쁨, 감흥, 곤혹스러움, 찬사"를 볼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군중들의 혼란은 그 그림속의 혼란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나의 아방가르드 그림이 사람들이 느끼고 있긴 했지만 아직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줬다. 그러나, 그 그림에 대한 관심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국한되어있었고, 이는 급진주의 자들을 아주 다른상황으로 몰고 갔다. pp.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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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기술을 사용하며 성장한 예술가 세대는 이미 그 기술들 안에서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전과 기회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기계와 산업이 농촌 생활을 변모시킬 때 아방가르드가 처음 등장했듯이, 선견지명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자동차와 공장을 기초로 성립된 사회를 무색케 하는 정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략... 그 누구보다 한 걸음 더 내딛는 예술가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은 확실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더 잘 이해하는 선구자도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모든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진실을 다은 불온한 꿈을 꾸는 몽상가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창조, 예지, 전망은 도대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까? 아방가르드가 그토록 격렬하게 대항해 왔듯이, 이것들도 우리에게 맞서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것들은 우리를 매혹시키고 어르고 위안해줄까? 우리는 항상 새로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아방가르드에게 형태를 부여해줄 수 있을까? 지미 헨드릭스가 곧잘 말했듯이, 이는 경험해 봐야 할 일로 남아 있다. pp.244~2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