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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말 5
독자에게 8
들어가는 글 10

1장 도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23
2장 도덕을 보는 아주 기본적인 입장들 73
3장 도덕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허무주의 107
4장 ‘옳다’는 말은 그냥 기분일 뿐일까? 128
5장 누구 말이든 다 옳다는 말 166
6장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203
7장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245
8장 도덕은 진화가 만든 환상일까? 295
9장 도덕이 설명하는 게 있기는 한가? 346
10장 옳다고 믿는데 행동하지 않는다면 382
11장 도덕이 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428
12장 옳고 그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475
13장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도덕이 있다 525
14장 그래도, 도덕은 있다 558

주 572
참고 문헌 592
찾아보기 595

저자 소개 2

셸리 케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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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y Kagan

현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도덕철학자. 예일대학교 철학과의 클라크 석좌교수다. 웨슬리언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리노이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교를 거쳐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가 예일대에서 진행한 ‘죽음’ 강의는 예일대 공개 강의(Open Yale Courses)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명강의로 꼽힌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역시 ‘도덕 회의주의’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진행해 온 강의에 바탕을 둔다. 도덕철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를 물어 온 케이건은 이 책에서 도덕
현대 윤리학을 대표하는 도덕철학자. 예일대학교 철학과의 클라크 석좌교수다. 웨슬리언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리노이대학교와 피츠버그대학교를 거쳐 현재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가 예일대에서 진행한 ‘죽음’ 강의는 예일대 공개 강의(Open Yale Courses)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명강의로 꼽힌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역시 ‘도덕 회의주의’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진행해 온 강의에 바탕을 둔다.
도덕철학자로서 평생에 걸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를 물어 온 케이건은 이 책에서 도덕의 실재 자체를 의심하는 회의주의에 정면으로 답한다. 객관적인 도덕적 진리는 존재하는가?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알 수 있는가? 도덕은 그저 사회마다 다른 관습이거나 진화가 빚어낸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케이건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 보는 이런 회의적 질문에 맞서 철학을 전혀 모르는 독자도 따라올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로 하나씩 하나씩 되받아친다. 그리고 마침내 “도덕은 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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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큐레이터. 복잡한 세상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 중에서 필요하고 유익한 것들을 골라 소개한다. 대표작으로 32,000여 개의 단어와 6,000컷의 이미지로 세상의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인 『세계만물그림사전』이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수학, 과학, 역사책을 기획? 번역하고 있으며, 『어메이징 필로소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 『빠르게 보는 수학의 역사』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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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152*225*35mm
ISBN13
9791166894350

책 속으로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객관적인 도덕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행위는 도덕적으로 지켜야 하고 어떤 행위는 도덕적으로 금지되며 또 어떤 행위는 도덕적으로 선택 가능(허용되지만 의무는 아님)하다고 믿는다.”
--- p.23

“당신이 완전히 확신하는 어떤 도덕적 주장을 하나 살펴보자. 예를 들어 단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는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해 영아를 고문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것이 참이라고 믿으며 나는 당신이 이것보다 더 확신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허무주의가 옳다면 이러한 이유로 영아를 고문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은 전혀 참이 아니다. 허무주의가 참이라면 영아 고문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 p.121

“매우 거친 1차적 근사치로서 우리는 ‘거짓말은 잘못이다’를 ‘거짓말, 우우!’ 또는 ‘거짓말, 웩!’과 같은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대략적으로) 우리는 ‘당신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를 ‘약속 이행, 만세!’ 또는 ‘야호, 약속 이행!’과 같은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 p.136

“곤란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허용될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잘못일까? 낙태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거짓이나 기만에 의해 이루어진 약속도 구속력이 있을까? 무고한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경우도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수많은 질문은 끝없는 논쟁의 원천이 된다.”
--- p.166

“인류의 역사나 진화가 다르게 진행되었다면 나는 아마도 도덕적 직관을 완전히 결여했거나 근본적으로 다른 직관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직관이 부정확할 수도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것이 실제로 부정확하다고 생각할 이유를 주는가?”
--- p.276

“우리가 화성에 착륙하여 (놀랍게도) 그곳에 실제로 합리적이고, 사려 깊으며, 지능적인 행위자가 있음을, 즉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완전히 성찰할 수 있는 고등한 존재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이 서로 소통할 필요가 없겠는가? 그런데 소통의 필요성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요구를 뒷받침할 것이다. 그들이 협력할 필요가 전혀 없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약속을 지키고 타인의 합리적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요구를 뒷받침할 것이다.”
--- p.343

“엑스선이나 전하, 자기장과 달리 ‘가치선’이나 ‘정의의 전하’, ‘불평등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 사실은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도덕 사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p.351

“아침 일찍 길을 떠나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것이라는 당신의 믿음은, 당신에게 늦지 않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점을 추가하지 않는 한 왜 당신이 아침 일찍 일어나려는 동기를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 하지만 많은 믿음이 욕구 없이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반적으로 다 적용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일부 믿음은 다른 아무런 추가적인 요소가 없더라도 동기를 유발할 능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p.410

“그 살인 청부업자가 자신의 표적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존중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잡힐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외재주의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희생자를 살해하는 것을 삼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실재론자는 살인 청부업자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삼가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 p.443

“우리 대부분은 우리 도덕적 직관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지지해 주는 도덕 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상식적 이론을 가지고 있다. 즉, 이 세계는 권리와 의무, 덕과 악덕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도덕 세계에 대한 우리의 그림 역시 도덕철학을 구성하는 체계적인 성찰을 통해 정교화되고 수정되며 개선될 수 있다.”

--- p.570

출판사 리뷰

‘내 편의 정의’만 남은 시대, 힘이 곧 정의인 시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해 주는 정답이 있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누가 옳다고 할 수 있나.” 오늘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자 가장 자주 대화를 끝내 버리는 말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온라인 논쟁이 일상이 된 시대에 도덕은 두 방향에서 무너진다. 한쪽에는 “모두 각자의 정의가 있으니 판단하지 말자”는 상대주의가, 다른 한쪽에는 “내 편만 옳다”는 독단이 있다. 전자는 관용의 얼굴로 침묵이 되고 후자는 신념의 얼굴로 완장이 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 교착 앞에서 묻는다. 옳고 그름에 대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사실’이란 정말 없는 것일까?

저자 셸리 케이건은 예일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이자 국내 독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스타 철학자다. 늘 책상 위에 올라 앉아 청중들과 논쟁을 주고받는 스타일 덕에 ‘책상 위 철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 책 『도덕이란 무엇인가』 역시 예일대에서 오랫동안 진행해 온 ‘도덕 회의주의’라는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은 정말 나쁜가”를 물었던 케이건은 이 책에서 우리가 죽음, 고통, 책임, 처벌을 판단할 때 이미 기대고 있는 도덕의 토대 자체를 해부한다. 이런 작업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이란 결국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찰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객관적인 도덕적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0쪽)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옳다’와 ‘그르다’는 어떤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객관적인 도덕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끈질기게 묻는 책이다. 사실 도덕에서 회의주의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데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시대와 문화가 다르면 도덕도 달라지는 것 아닐까? 협력, 처벌, 공정성의 감각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생존 전략 아닐까? 케이건은 이 질문들을 가장 강력한 형태로 세운 뒤, 도덕이 단순한 취향이나 기분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를 차근차근 따져 본다.

그는 도덕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토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의심을 통과한 뒤에도, 도덕이 단순한 취향이나 환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좋은 삶이란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많이 이루는 삶이 아니다. 타인에게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나의 행복과 타인의 고통이 충돌할 때 어떤 이유를 따라야 하는지를 묻지 않고서는 좋은 삶을 말할 수 없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바로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일이 좋은 삶을 향한 가장 인간다운 사유임을 보여 준다.

누구 말이든 다 옳다?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도덕 문제에서 정답 찾기

도덕적 불일치는 도덕 회의주의의 가장 친숙한 근거다.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 심지어 같은 가족 안에서도 사람들은 무엇이 허용되는지에 관해 갈라선다. 어떤 이는 사형이 정의를 세운다고 믿고, 어떤 이는 국가가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거짓말 자체가 도덕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케이건은 이 상황을 얼버무리지 않는다. “사형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곤란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허용될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잘못일까?” 그는 이런 질문들이 “끝없는 논쟁의 원천”이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바로 그 불일치가 도덕에는 사실이 없다는 결론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과학에도 불일치는 있다. 천문학자와 생물학자 역시 모든 문제에 동의하지 않으며 때로는 오랫동안 경쟁하는 가설을 놓고 다툰다. 그렇다고 해서 별이나 유전자에 관한 사실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불일치가 어떤 종류의 것이며 더 나은 검토와 정보, 더 공정한 토론을 거쳐도 남는가 하는 문제다.

케이건의 반론은 여기서 더 구체적이다. 불일치가 도덕 실재론을 무너뜨리려면 입증 책임은 회의주의자에게 있다. 그런데 불일치가 반드시 도덕에 정답이 없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같은 도덕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사실관계, 상황의 묘사, 어떤 원칙이 더 중요한지에 관해 다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일치가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를 향한 탐구의 실패인지, 아직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의 증거인지는 따로 따져야 한다. 불일치 그 자체는 회의주의의 결론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가 도덕 실재론에 대한 믿음을 거부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우리에게 제공하려면 그는 자신의 설명-회의주의적인 설명-이 실재론자가 제공할 수 있는 그 어떤 설명보다도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입증 책임은 회의주의자에게 있다.” (197쪽)
케이건은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옳다”는 말이 갈등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는 중요한 도덕적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여 준다. 누군가의 믿음을 존중하는 것과 그 믿음이 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도 그중 어떤 입장이 더 나은 이유와 근거를 갖는지 물을 수 있다. 도덕적 논쟁은 바로 그 가능성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의 매력은 독자가 회의주의자가 될 법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데 있다. 불일치가 많은 현실을 외면하지도 ‘모두의 의견은 소중하다’는 말로 덮어 버리지도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왜 논쟁하고, 무엇을 근거로 서로를 설득하며, 어느 때에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정치적 양극화와 온라인 논쟁이 일상이 된 지금, 이 질문은 철학 강의실 밖에서 훨씬 더 절실하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문화적 관용이라는 말로 침묵을 강제할 때

서로 다른 사회의 관습을 마주할 때 우리는 쉽게 상대주의로 기운다. 어떤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 다른 사회에서는 금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은 사회마다 다른 규칙의 묶음일 뿐일까. 내가 속한 사회의 규범을 따르는 것이 그 사회에서의 ‘옳음’이라면 다른 문화의 부당함을 비판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케이건은 문화의 다양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문화적 차이와 도덕적 상대주의를 섞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회가 서로 다른 관습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각 사회의 도덕 규칙이 자동으로 옳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가 특정 관행을 오래 유지해 왔다는 설명과, 그 관행이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다는 판단은 별개의 문제다.

한 사회의 규범이 그 사회 구성원에게 ‘타당하다’고 말하려면 무엇이 그 규범을 참으로 만드는지 설명해야 한다. 다수가 실제로 믿는다는 사실인가, 사회가 승인한다는 사실인가, 이상적으로 숙고한 구성원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실인가. 어떤 답을 택하든 단순한 문화적 차이만으로는 상대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관습의 존재는 사회학적 사실이고, 각 사회의 규범이 모두 옳다는 결론은 추가 논증을 필요로 하는 철학적 주장이다.

이 논의는 타문화를 함부로 재단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익숙한 규범을 보편적 진리로 착각하기 전에, 상대주의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정확히 구별하자는 제안이다. 케이건은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 사실 보고인지 도덕적 정당화인지 차분히 분해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관용이 모든 비판을 멈추는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른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면서도 필요한 비판의 근거를 찾는 태도일 수 있음을 발견한다.

도덕 상대주의는 오늘날 가장 친절하고 민주적인 입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권 침해, 성차별, 폭력, 착취처럼 누군가의 삶을 실제로 훼손하는 문제 앞에서 상대주의는 너무 쉽게 침묵의 논리가 될 수 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아무것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왜 다른지를 보여 준다.

이타성, 처벌, 공정함이 진화한 인간 본성이라면
도덕은 진화가 만든 환상이라는 강력한 반론에 맞서

현대의 도덕 회의주의는 종종 진화론의 언어를 쓴다. 우리는 협력하는 집단이 살아남았기에 이타성을 좋아하고, 배신자를 처벌하는 편이 유리했기에 정의감에 끌리며, 자녀를 돌보도록 진화했기에 돌봄을 선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형성된 도덕 감정과 직관이 객관적 진실을 가리킨다고 믿을 이유가 있을까.

케이건은 이 질문을 책의 가장 강력한 도전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우리의 도덕적 믿음을 형성하는 데 진화가 수행한 역할”을 인정하면 우리는 그 믿음을 신뢰할 근거를 잃게 되는 듯 보인다. 생존에 유리했다는 설명은 그것이 옳았다는 설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적 기원을 안다고 해서 도덕이 곧 환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케이건은 진화가 처음부터 ‘도덕 명제’를 인간의 마음에 새겼다고 보기보다 특정 행동과 정서적 태도, 그리고 훨씬 나중의 도덕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길고 간접적인 과정을 살핀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갖게 된 인과적 역사와, 그 믿음이 참인지 여부를 곧바로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케이건은 진화론적 회의주의의 핵심 전제를 더 세밀하게 나눈다. 진화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믿음을 선호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믿음이 거짓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어떤 영역에서는 참인 믿음을 갖는 일과 살아남는 일이 실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참과 유리함의 연결’이라고 부른다. 진화가 진리를 직접 목표로 삼지 않았더라도, 참인 믿음이 행동을 더 잘 이끌고 그 행동이 생존에 유리하다면 진화는 우리를 대체로 신뢰할 만한 믿음 쪽으로 형성했을 수 있다. “진화에 대한 두 번째 논증은 참과 유리함이 연결될 가능성을 간과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 특정 영역에서 유리하다는 것과 참이라는 것 사이에 연결이 있다면 진화는 여전히 우리를 그 영역에 관해 참일 가능성이 높은 믿음을 생성하는 능력을 가지도록 형성했을 수 있다.”(312쪽)

그렇다면 도덕에서 그 연결은 무엇일까. 케이건은 도덕적 이유와 진화적 유리함이 같은 ‘기저 사실’에 뿌리를 둘 수 있다고 제안한다. 예컨대 불에서 손을 떼면 통증과 손상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손을 떼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것이 왜 유리한지도 설명한다. 즉 어떤 행위가 옳거나 이유가 되는 사실과 그 믿음을 갖는 일이 유리한 사실이 전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공통 기초’가 성립하는 한, 진화적 기원은 도덕적 직관을 일괄적으로 폐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대목은 특히 오늘의 독자에게 흥미롭다. 알고리듬이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고,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이 감정의 기원을 설명하는 시대에 우리는 자주 ‘설명되었으니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호르몬으로 설명된다고 사랑이 없어지지 않듯 도덕 감정의 기원을 안다고 도덕적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케이건은 그 단순한 도약을 멈추게 한다.

그렇다고 그는 진화를 무력화된 배경지식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진화적 설명이 우리 직관의 신뢰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도전임을 인정하고 어떤 직관은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음을 열어 둔다. 중요한 것은 진화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도덕 판단을 환상이라 선언하는 대신에 어떤 믿음이 왜 생겨났고 그 믿음을 평가할 독립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따져 보는 일이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도덕적 진리를 믿어야 하는 이유

도덕 사실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돌이나 세포, 행성은 보고 만지고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도덕적 직관은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도덕적 직관과 이를 아는 것에는 어딘가 신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심이 생긴다.

케이건은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무비판적으로 떠받들지 않는다. 직관은 편견과 교육, 문화와 감정에 흔들릴 수 있다. 그는 관찰이 항상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외부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듯, 직관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도덕 사실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직관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직관을 비교하고 반례를 검토하며 더 일관된 설명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케이건에게 이는 특별한 도덕 감각을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지각의 착시를 알고도 반복 관찰과 다른 증거, 더 나은 설명을 통해 믿음을 교정한다. 도덕적 직관도 마찬가지다. 직관들 사이의 충돌을 드러내고, 구체적 사례와 일반 원칙을 왕복하며, 가장 많은 직관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이론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회의주의자는 이 모든 절차가 왜 필연적으로 환상으로 귀결되는지 보여야 한다.

도덕 사실은 전자나 바이러스처럼 관찰 가능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세계에 새로운 인과적 힘을 보태지 못하고, 물리학과 생물학이 이미 설명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면 굳이 도덕 사실을 인정할 이유가 있을까. 도덕은 세계에 붙이는 장식적인 이름일 뿐이라는 의심이다.

케이건은 이 요구 자체를 검토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새로운 인과적 설명을 제공해야 하는가. 수학적 사실, 논리적 관계, 가능성과 필연성에 관한 사실도 물리적 사건을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 도덕 사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어떤 설명적 역할을 하는지 묻는 일은 중요하지만 과학의 한 가지 모델을 모든 실재에 그대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도덕의 규범적 측면을 놓치지 않는다. 어떤 사실이 단지 일어났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은 다르다. 도덕은 세계를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이유를 제시한다. 그래서 도덕의 독특함은 약점이 아니라 바로 철학이 설명해야 할 특징이 된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도덕이 과학과 같은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예 혹은 아니오라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을 열등한 지식으로 취급하는 습관을 흔든다. 우리가 사실과 이유, 설명과 정당화, 욕망과 의무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옳다고 믿는데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누군가가 ‘이건 잘못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일까. 도덕 판단은 반드시 동기를 만들어 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언뜻 심리학의 질문처럼 보이지만 케이건에게는 도덕이 객관적 사실일 수 있는지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다.

어떤 철학자는 도덕 판단이 참이나 거짓을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찬성이나 반대의 감정, 행동하라는 명령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 설명은 도덕 판단이 왜 사람을 움직이는지 잘 설명해 주는 듯하다. 그러나 케이건은 믿음과 동기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알면서도 두려움, 무기력, 이기심 때문에 하지 못할 수 있다. 반대로 행동을 촉발한다는 이유만으로 도덕 판단이 단지 감정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이 논의는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을 철학의 한가운데로 데려온다. 기후 위기, 동물권, 차별, 돌봄 노동, 기부와 연대처럼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충분히 실천하지 못하는 문제들에서, 도덕은 명령인가 감정인가 사실인가.

또한 도덕적 요구가 진짜 요구라면, 그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에게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이유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오직 자신의 욕망과 목표에 연결되는 이유만이 실질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운동할 이유가 있고, 돈을 원한다면 일할 이유가 있지만, 아무 욕망과도 연결되지 않은 ‘해야 한다’는 말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케이건은 이른바 칸트식의 정언적 이유의 가능성을 놓고 회의주의와 맞선다. 누군가가 잔혹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덕의 무게는 바로 여기서 생긴다. 욕망에 맞춰서만 이유가 생긴다면 도덕은 가장 필요할 때 가장 무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케이건은 이런 논증이 도덕 실재론을 곧장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본다. 도덕 판단이 반드시 동기를 낳아야 한다는 ‘동기 내재주의’ 자체가 논쟁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요구된다고 정말 믿으면서도, 두려움이나 이기심, 무기력 때문에 그 믿음에서 비롯되는 동기를 전혀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믿음이 그 자체로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참이나 거짓을 따질 수 없는 단순한 감정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케이건은 또 다른 길도 제시한다. 흄의 전통에 따르면 믿음만으로는 행동할 동기가 생기지 않고 욕구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믿음에 해당할 뿐, 모든 믿음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믿음, 특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규범적 믿음은 그 자체로 행동을 촉발할 수 있다. 또는 도덕적 믿음은 세계가 어떠한지 말하는 믿음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에 맞게 행동하려는 욕구일 수도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도덕 판단은 동기를 낳는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감정이나 명령일 뿐이라고 결론 낼 수는 없다.

‘이유’에 관한 회의주의에도 케이건은 욕망과 이유를 구별해 답한다. 내가 어떤 욕망을 가졌기 때문에 행동할 이유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 것은 맞다. 목이 마르기 때문에 물을 마실 이유가 생기고, 돈을 벌고 싶기 때문에 일할 이유가 생기는 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유가 생기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야 할 근거는 없다. 누군가가 잔혹한 일을 원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없애지는 않는다. 욕망 충족과 무관하게 어떤 행위를 지지하는 사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케이건이 말하는 정언적 이유의 가능성이다. 케이건의 결론은 욕망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덕이 진정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그 요구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행동할 이유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주의자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이유가 낯설거나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그것이 불가능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언제나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없는지, 타인의 고통이 왜 나와 무관한 정보로 끝나지 않는지를 이처럼 집요하게 묻는다.

그래도, 도덕은 있다
회의주의를 통과한 뒤 남는 것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성급한 승리 선언이 아니다. 케이건은 회의주의자에게 더는 할 말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철학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반론이 가능하며 도덕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목표는 도덕 실재론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믿는 사람이 지적으로 순진하거나 조잡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이는 데 있다.

케이건이 끝까지 붙드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도덕적 직관이다.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일, 약속을 지키는 일, 불공정한 대우, 돌봄과 배신에 관해 우리는 단지 기분을 표현하는 것 이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회의주의자는 그런 직관이 전부 착각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도덕 사실이 존재한다고 믿을 정당성은 남는다.

케이건의 결론은 도덕 실재론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는 선언이 아니다. 도덕을 믿는 데에는 이미 도덕적 직관이라는 증거가 있고, 회의주의자는 그 증거를 무너뜨릴 충분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더 신중한 주장이다. 불일치, 상대주의, 진화, 도덕 지식, 동기, 이유를 둘러싼 도전이 검토를 견뎌 낸다면, 객관적 도덕을 믿는 입장은 적어도 회의주의보다 열세가 아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는 도덕에 관한 모든 답을 끝내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왜 논쟁해야 하는지에 관한 더 정직하고 더 정교한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책이다. ‘다들 다르다’는 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접어 두고 싶지 않은 독자,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독자에게 케이건은 단단하고도 공정한 대화 상대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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