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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_ 나는 꽃그늘 아래 혼자 누워 있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꽃그늘/ 외롭지 않아요?/ 소풍/ 청안한 삶/ 이 봄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 시계가 있습니다/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 산도 보고 물도 보는 삶/ 저녁기도/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마음으로 하는 일곱 가지 보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2부_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틀 수 있을까요 쪽잠/ 우거짓국/ 누가 불렀을까/ 갇힌 새/ 꽃 보러 오세요/ 잘 익은 빛깔/ 집 비운 날/ 겨울 잠/ 배춧국/ 첫 매화/ 햇살 좋은 날/ 꽃 지는 날/ 나를 만나는 날/ 아름다운 사람/ 소멸의 불꽃/ 동안거/ 산짐승 발자국/ 제일 작은 집 3부_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세요 나는 지금 고요히 멈추어 있습니다/ 찢어진 장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봄의 줄탁/ 주는 농사/ 여름 숲의 보시/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세요/ 쓰레기통 비우기/ 대인과 소인/ 끝날 때도 반가운 만남/ 귤 두 개/ 치통/ 죽 한 그릇 4부_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 있는가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깊이 들여다보기/ 가장 아름다운 색깔/ 조화로운 소리/ 단풍 드는 날/ 고통을 담는 그릇/ 낙엽 이후/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 있는가/ 생의 한파/ 참나무 장작/ 짐승들에게 말 걸기/ 겨울 산방/ 가까이 있는 꽃/ 남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
도종환,都鍾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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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선연하게 빛나는 초사흘 달에게 항복하고 싶습니다. 침엽수 사이로 뜨는 초사흘 달, 그 옆을 따르는 별의 무리에 섞여 나도 달의 부하, 별의 졸병이 되어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낫날같이 푸른 달이 시키는 대로 낙엽송 뒤에 가 줄 서고 싶습니다. 거기서 별들을 따라 밤하늘에 달배, 별배를 띄우고 별에 매달려 아주 천천히 떠나는 여행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사랑에 압도당하고 싶습니다. 눈이 부시는 사랑, 가슴이 벅차서 거기서 정지해버리는 사랑, 그런 사랑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진눈깨비 같은 눈물을 뿌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눈발에 포위당하고 싶습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하는 눈 속에 갇히고 싶습니다. 허벅지까지 쌓인 눈 속에 고립되어 있고 싶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중에서 산 몇 개 넘어 넓은 구릉 가득한 억새밭 사이에 누워 잠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 햇살을 덮고 자는 잠이라 비록 여윈잠일지라도 잠깐씩 깰 때마다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와 눈과 머리를 씻어내는 그런 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바람에 머리칼도 억새처럼 날리고,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면서 무겁던 몸에서 천천히 내가 지니고 있던 무게가 빠져나가는 그런 잠을 자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릎을 베고 누워 풋잠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럽고 따스한 무릎을 베고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디서부턴가 이야기의 꼬리를 잃어버리고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에 볼을 대고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함께 잠든 사람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이고 고추잠자리가 가만히 머리에 날아와 앉는 가을 한낮의 다디단 쪽잠을 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쪽잠’ 중에서 사람들이 사막과 같은 도시의 황량함을 피하여 자꾸만 숲과 산과 흙과 나무와 물과 새와 바람소리가 있는 곳으로 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연에서 물질적인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막과 같은 도시에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일사불란한 지휘통제를 따라 한 손에는 경전,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든 채 잠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수많은 계율과 법칙이 있고 도처에 원수가 숨어 있으며 대립과 경쟁과 싸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숲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뺏고 빼앗기고 지배하고 짓밟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공존하는 일체감과 원융합일의 세계가 있습니다. 원수 대신 내 안의 어둠을 걷어내고 찾아내야 할 신성이 내 속에 있습니다. 내 안에도 있고 나무에게도 있고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에게도 있는 아트만, 저마다의 하느님이 있습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에서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분히 우리 위주입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되 꽃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책상 위가 아니라 꽃이 하루라도 살기에 더 좋은 창가로 옮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공기 속에 가져다 놓고 꽃을 사랑하지 말고 신선한 바람이 더 잘 드나드는 곳에 꽃을 옮겨놓고 사랑하면 안 될까요.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일을 할 수 있는 침침한 실내 공간에 화분을 들여놓지 말고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있을 곳을 마련해놓고 꽃을 사랑하면 안 될까요. 내가 일하는 방 안이 아니라 창밖에 꽃을 내다놓고 거기서 꽃이 새소리도 듣고 후두둑거리며 지나가는 빗줄기에도 젖으며 살게 하면 그건 꽃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일까요. 꽃이 더 싱싱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곳이 어느 자리일까를 생각하며 꽃을 사랑한다면 꽃이 다만 주어진 날을 견디며 시들어가지만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 있는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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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을 한 그릇의 밥을 내 손으로 지어먹으며 나는 새로운 삶에 눈 뜨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검소하고 간결한 삶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으면서 낭비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던 자신이 서서히 해체되고 새롭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욕망에 멱살을 잡혀 끌려 다니던 자아가 조금씩 지워지고 작업복 바지 하나로도 편안한 새로운 자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삶의 주체가 바뀌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생의 한파> 중에서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한 그 많은 꽃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 꽃을 꺾어다 옮겨 놓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꽃이 있고 싶어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꽃만 그렇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 있는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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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워낸 우리 문학의 꽃 도종환
도종환 하면 ‘접시꽃 당신’ ‘흔들리며 피는 꽃’ 등의 여러 시를 통해 담백한 어조로 삶을 이야기하는 서정시인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보여준 서정성은 실제 작가의 현실과 마주하면 마음 한켠을 숙연해지게 한다. 위암으로 아내를 잃고,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해직 10년 만에 복직되어 교사의 길을 걷던 중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쓰러져 다시 교단을 떠나게 되는 등 작가 개인의 삶은 시련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극한 슬픔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담담한 어조로 다시금 삶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는 그의 작품들은 여타의 감상적인 글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여성 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적은 남성 독자들까지도 그의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감상이 쏟아지는 것도 작가의 글 속에 담긴 삶에 대한 강한 긍정,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뭇잎의 숨결과 바람의 손길이 가르쳐준 청안한 삶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는 작가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간 이후 5년 동안 부지런히 일궈놓은 글들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산방생활은 작가에게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삶의 태도를 늦추고” 홀로 고요하고 차분한 가운데 삶을 바로 보게 해주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연의 넉넉함과 너그러운 모습을 보며 작가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넘어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은 산 속에서 홀로 지내는 적막함과 고독을 묵묵히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살아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맛봄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제 자아에 대한 성찰을 넘어서 동식물 그리고 사물까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으며 모든 것이 범우주적인 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숲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뺏고 빼앗기고 지배하고 짓밟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어 함께 공존하는 일체감과 원융합일의 세계가 있습니다. 원수 대신 내 안의 어둠을 걷어내고 찾아내야 할 신성이 내 속에 있습니다. 내 안에도 있고 나무에게도 있고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에게도 있는 아트만(atman), 저마다의 하느님이 있습니다. -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중에서 숲에서 더욱 깊어진 문학적 성찰 도종환의 이러한 범우주적 세계관이 산방생활을 통해 갑자기 형성된 것은 아니다.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그의 글에 나타난 중심 화두는 세상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과 작고 힘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었다. 사람은 저마다 별입니다. 별에 붙인 학벌, 출신, 지역, 성별, 재산, 지위로 별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체로 소중한 줄 알아야 합니다. 능력과 사람됨은 볼 줄 모르고 겉에 드러나는 헛된 이름표와 계급장과 외피로 사람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왕별 하나만 반짝이는 밤하늘보다 살아 있는 모든 별이 다 반짝이며 빛나는 하늘이 더 아름답습니다. 큰 별도 있고 작은 별도 있으며 눈에 금방 뜨이는 별도 있고 희미한 별도 있지만 그런 별들이 모여 은하를 이룹니다. 오늘밤도 하늘은 아름다운 별밭입니다. -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 중에서 작가의 이러한 근본적인 생각이 산속에서 홀로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통해 사람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사물로 사물에서 우주 전체로 넓어진 것이다. 나무와 꽃, 사람과 동물이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대상이 아닌 모두 아름다운 한 가지의 모습을 가진 것으로 보게 된다. 그렇게 작가는 꽃을 보면서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보면서 동물을 배려하는 유기적인 통찰의 결과를 글 속에 담아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사람과 자연 모두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아는 시인 도종환은 ‘작가의 글’을 통해 “이 책에 있는 글이란 것도 사실은 그대가 청안하시기를 바라는 제 소망의 편린일 뿐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막 같은 도시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산방생활에서 얻게 된 기쁨과 희망을 이 책에 적었다. 삶이 힘들고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면 지금 짊어지고 있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작가가 일궈놓은 청안한 문학의 숲을 찾아가보라.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나뭇잎을 흔들어 박수를 치며 그대를 받아주는 숲에서 고요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꽃 한 송이 사람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잠시 삶의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끝없이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게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 <가까이 있는 꽃>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