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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숫소 그늘 휘둥그래진 눈 지하철 정거장의 노란 의자들 생일 물 위에 물 아래 나는 숨을 쉰다 발걸음 쥐치 통조림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열차번호 244 별것도 아닌 것이 시궁쥐 주전자 북어 여우비 대설주의보 II 공터 썩은 여자 자동판매기 그리운 시냇가 인식의 힘 휠체어 조명된 남자 설경 나무말 오징어 해바라기 늙은 마네킹 방황하는 익사체 영곡에서 마을 돌들의 서랍 저울 새장 같은 얼굴을 향하여 텅빔과 붐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사람이 하늘보다 III 두 번째 자루 무인칭의 죽음 어느 정신병자의 고독 갈대꽃 개들의 결합 호떡 대낮 용두사미 이오네스꼬의 개구리 ? 꽁한 인간, 혹은 변기의 생 꿈속의 변기선 낙지 조롱 속에서 눈이 내려 흰 밤 되니 산문 - 앙상함 너머의 세계 춘천, 물의 자서전을 읽다 / 정끝별 자코메티 연보 |
崔勝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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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시적 정신을 대표하는 초기 시를 모은 시선집
존재와 무(無)의 경계에서 그려낸 현대 문명의 초상 중견 시인 최승호의 시선집 『자코메티와 늙은 마네킹』(오늘의 대표시인선 2)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최승호는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래 지난 이십 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시집을 꾸준히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자코메티와 늙은 마네킹』은 최승호의 시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평가받은 초기의 대표시들을 모은 것으로, 주로 『대설주의보』(1982년), 『고슴도치의 마을』(1985년)에서 추려낸 것들이다. 여기에 현대 이탈리아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 사진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시선집이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에 한 차례 출간된 바 있던 것을, 시인이 직접 자코메티의 작품 사진들을 새롭게 선택하고 배치하며, 최근에 발표한 시 「늙은 마네킹」과 「방황하는 익사체」를 추가하여 새롭게 엮어낸 것이다. 총 50여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을 3부로 나누어 묶었다. 시집에 함께 수록된 시인 정끝별의 에세이 「춘천, 물의 자서전을 읽다」는 최승호의 유년의 공간인 춘천을 직접 찾아가 그의 시적 공간을 탐색하는 글로, 그의 시 세계의 이면에 흐르는 독특한 정서의 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존재와 무(無)의 경계를 탐색하는 절제된 언어 시인 최승호는 절제된 언어와 극사실적인 관찰, 현대 문명의 복잡한 양상들을 간결한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견고한 시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의 지적대로 최승호의 시의 독특한 견고성은 “그의 관찰의 언어가 완전히 상징성을 벗어나지는 아니하면서도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시에서 어떤 종류의 서정성을 감하게 하는 것이면서 또 상투화된 서정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상황의 복합적인 양상에 그 나름으로의 표현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그의 이러한 문체는 남루하고 어두운 현실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날카롭게 직시하고, 어떠한 은유나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 즉물적인 언어로 실재(實在)에 근접해 가기 위한 치열한 시적 태도에서 발원한다. 이는 존재와 무(無)의 경계에서 인간의 실존적 현상을 탐구하고자 했던 자코메티의 조각 미학과 공명하며, 인간 존재의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극도로 절제되고 간결한 언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선집은 그러한 교감의 장이자, 최승호 자신의 시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 서로를 응시하는 공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거울 속의 해골바가지”가 “방황하는 익사체”를, “글썽글썽한/ 큰 눈알을 부릅뜬 채 죽어”가는 수소(「숫소」)가 “거적송장이 되어/ 동굴 안에 죽은 예수처럼’ 누워 있는 바보영감을”(「그늘」),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북어」) ‘죽음’이 대도시의 ‘지하생활자’(「썪는 여자」)의 머리에서 자라는 음지식물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1부에서는 죽어가는, 북어와도 같은 삶의 이미지들이 펼쳐지며, 2부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보다 도시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묘사된다.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와도 같은 자본의 욕망을 좇는 도시의 삶을 비판한다. 3부는 이러한 비판 의식이 ‘무인칭의 삶/죽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나간다. 무인칭의(혹은 무인칭으로서의) 삶이라는 화두는 인격을 상실했다거나 박탈당한 삶에 대한 비탄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격이라는 허구적인 관념을 부수어낸 뒤, 물질 그 자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실체를 탐색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시가 죽음에 대한 냉소적인 찬양이 아니라면, 사물과 인간의 경계에서 일그러진 고깃덩어리로 현시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은 어디로 향해 가는가. “그의 시의 충격적인 전언 중의 하나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똥자루에 불과하지만 그 인간을 노래하는 시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지적은 너무나 서정적이었던 것이 아닐까. 오히려 시도 활자 사이의 구멍일 뿐이라면? 자코메티의 「마네킹」이 앙상한 뼈대가 아닌 뜯겨져 나간 살점을 현시하고 있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