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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us Kui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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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독일 최고 청소년 문학상 ‘구스타프-하이네만-평화상’
2006년 <디 차이트>지가 수여하는‘독일 청소년 문학상 룩스’ 거칠고 무례한 너에게 선물하고 싶은 동화 《토마스의 노트》는 발간 후 꾸준히 상승 그래프를 그리며 번역 출간되는 곳마다 열띤 반응을 불러왔다. 이 짤막한 동화는 한국에서 출간되는 휘스 카이어(Guus kuijer 1942~ )의 첫 작품이며, 60세를 훌쩍 넘어서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노장의 필력이 응축된 유머러스한 성장 동화다. 한때 교사였던 휘스 카이어는 70년대 중반, 유럽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무기로써 ‘동화’를 재발견하던 때 작가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현실 비판에서 미래에의 긍정을 이끌어 내는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그의 따뜻한 작가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작품의 일부이자 허구로서, 작가는 은연중 ‘동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그 질문은 곧 ‘동화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클로퍼 씨는 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냈습니다. “나는 선생님께서 이것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 어쩌면 내용이 너무 거칠고 무례할지도 모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동화책인데. (……)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거칠고 무례하게 될 만한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쓴 동화들은 많은 부분 내 행복한 유년 시절을 자유롭게 반영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불행한 아이들도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_서문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에서 작가는 스스로 이 작품을 동화라 부르고 있고, 독자를 ‘불행한 아이들’로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책이 기다리는 것은 과거에 거칠고 무례한 아이였던, 이제는 어느덧 성인이 된 세상의 모든 어른(토마스 클로퍼 씨)들이다. 한 독자는 아마존에 남긴 서평에서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것이며 오히려 (청소년을 포함해) 성인 독자에게 호소력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동화로 명명하고 있지만 구술성, 반복성 등으로 대표되는 동화의 문법을 바탕으로 한 《토마스의 노트》는 진정 매력적인 ‘성장 소설’이다. 어떻게 동화이면서도 소설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연금술의 비법은 ‘노트’의 작가이자, 천진한 악동인 ‘토마스’가 빚는 독특한 어법에 있다. 아홉 살 토마스는 눈앞의 현실을 자신이 아는 단어를 통해 있는 힘껏 전하지만 독자는 실제 상황뿐 아니라 뒤틀 때 비로소 보게 되는 현실의 이면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천사의 마음을 가진 꼬마 몽상가 토마스 악마의 눈을 빌려‘모든 것을 간직한 책’을 쓰다” 엄격한 기독교 신자인 토마스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이유가 충분할 때’ 엄마를, 토마스를 때린다. 토마스는 오직 “엄마만 알아들은 은밀한 소식”과 같은 자유로운 말들을, ‘계명’과 상관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상상들을, 매일 매일의 놀라운 일들을 자신의 노트인 ‘모든 것을 간직한 책’에 적어 내려간다. 그 책에는 “예수님이 매년 십자가에 못 박힐 때마다” 느끼는 것 같은 깊은 ‘슬픔’과 한 다리에 가죽의족을 신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리자 누나에 대한 사랑, 옆집에 홀로 사는 공산주의자 할머니 반 아멀스포르트 부인과의 우정 등이 스며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느낀 분노와 두려움, 혼자 목격한 ‘여름날의 우박’과 ‘운하의 열대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토마스는 어른이 되어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모든 것을 간직한 책’에 쓰고 있다. 천사, 사상가, 악동, 몽상가 ― 이 모든 게 ‘토마스’의 다른 이름!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엄격한 아버지와의 갈등을 추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풀어 나가는 밝고 흐뭇한 이야기”라고 전한다. 얼핏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갈등 구조는 사실 아버지와 그 외 식구들 간의 관계를 토마스를 통해 그리고 있는 것이다. 휘스 카이어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열 살 때 신앙심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 인터뷰는 이 작품이 자전적인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토마스는 편협한 종교관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상상과 몽상으로 저항한다. 토마스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 너무 놀랍게도 어둠 속에 예수님이 나타났다. 토마스는 놀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다시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을 거다. 왜 그래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제는 정말 진저리가 난단다.” 예수님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것은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또한 토마스의 선생님인 온슈타인 선생님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이제 선생님은 그 끔찍한 이야기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토마스는 아주 행복했다. * 예수님이 말했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셨단다.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지.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랬군요. 예수님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네요.” “그렇단다. 한 번으로 충분한 일이다.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못 찾았단다.” 토마스의 상상력은 매우 발칙한 한편, 이데올로기가 될 때의 종교와 개인, 사회와 개인, 가족과 ‘나’의 마찰을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을 연상케도 하는 과장된 어투와 만나 읽는 이의 감정을 리듬감 있게 이끈다. 전자가 조로해 버린 소년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사회의 이면을 드러냈다면 《토마스의 노트》는 독기를 품기 이전인 어린 아이의 발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토마스의 ‘모든 것을 간직한 책’은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어두운 동화라 해도 독자에게 따뜻한 환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