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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양장
윤동주
예가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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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위한 논술대비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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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별 헤는 밤


아우의 인상화
눈 오는 지도(地圖)
황혼이 바다가 되어
또 다른 고향

십자가

서시
슬픈 족속
쉽게 씌어진 시
반딧불
무얼 먹고 사나
자화상
무서운 시간
트루게네프의 언덕
고추밭
그 여자
명상
굴뚝
내일은 없다
바다
눈 감고 간다
달밤
돌아와 보는 밤
빨래

비둘기
비애
양지
코스모스
식권
소년
흐르는 거리
산협의 오후
조개껍질
이별
고향집
종달새
아침
꿈은 깨어지고
오후의 구장
오줌싸개 지도
초한대
새로운 길
거리에서
유언
버선본
산상(山上)
햇비
빗자루
병원
비행기
기왓장 내외
참회록

창공
소낙비
산림
거짓부리
산울림
이적(異蹟)
사랑의 전당
햇빛,바람
간판 없는 거리
곡간
비오는 밤
산골물
참새
애기의 새벽
호주머니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해바라기 얼굴
달 같이
귀뚜라미와 나와
팔 복(八福)
편지
황혼
풍경
장미 병들어
모란봉에서
윤동주 평
윤동주 연보

저자 소개 1

尹東柱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노래한 민족시인. 우리 것이 탄압받던 시기에 우리말과 우리글로 시를 썼다. 윤동주는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 실을 가슴 아파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짧은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윤동주는 청춘 시인이다. 절친한 친구였던 문익환 목사의 시 ‘동주야’에 의하면 아직 새파란 젊은이로 기억되고 있었다.

한글을 구사하면서 작품을 발표한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만주 용정과 경성 신촌 일대에서 문학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시를 썼기에 청춘의 고뇌가 담겨 있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1년(15세)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16세)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썼고 이는 오늘 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했다.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동시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를 발표했다.

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고 1939년 조선일보에 「유언」, 「아우의 인상화」, [소년(少年)]지에 「산울림」을 발표하였다. 처음 윤동주 시들은 노트에 봉인된 채, 인쇄되지도 않았고 신문 지면에 발표되지 않았다. 그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지고 난 후 동문들이 그의 노트에 있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출판한다. 유해가 안치된 지 3년 후, 그러니까 1948년,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어 혼란한 시기에 청춘 시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북간도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 「자화상」,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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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88g | 128*188*20mm
ISBN13
9788975675034

출판사 리뷰

인간애가 넘치는 서정적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제에 대하여 고고하고 준열한 저항과 청순하고 자기희생적인 인간애가 넘치는 민족적 서정시를 남긴 윤동주 시인은 이육사와 더불어 일제 말 식민지 하의 2대 민족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19편의 그의 자필 시집의 시들은 1938년에서 1941년 사이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 중 「서시」는 그의 고고한 정신세계를 보여 주는 대표시이다. 그가 가야 할 길이란 식민지 하에서 일제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의지와 신념으로 민족에 광명을 선사하는 일이며, 고결한 지성으로 불굴의 절조를 노래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일생 동안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을 지향하려는 도덕적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보이는 탁월한 형상적 특질은 시인의 창조적 기량의 우수성을 이해하게 하는 데 주요한 관건이 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독자에게 공감을 유발하는 점도 바로 그의 높은 형상성에 있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공감 유발의 요체는 시인의 경건하고 순결한 신앙인의 자세에 있다 하겠다. 인용된 시에 보이듯이, 범상한 한 자연 현상인 바람과 나뭇잎과의 관계를 통하여 화자의 도덕적 결심에 추호의 흔들림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는 다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자연 현상 속에 숨은 시적 진실을 찾아내는 통찰력이 보인다.
임과 집과 길에 대한 간구를 되풀이 노래한 김소월은 완고한 낭만주의자라 할 수 있다. 철들기를 마다하는 성숙의 거부는 낭만적 경향의 한 징후이기도 한데 소월에게도 그것이 엿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진달래꽃」이 스물여섯이 되기 이전의 소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젊음이 과도하게 또 불필요하게 억압되던 시절에 젊은 영혼의 실상을 터놓고 노래하며 그것을 문학적ㆍ도덕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성숙의 거부는 우리 문학과 사회의 수요나 요구와 연관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유교의 청교주의가 강요했던 젊음의 억압에서 벗어난 젊은이의 내면 풍경을 직설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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