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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진달래꽃 양장
김소월
예가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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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산유화
그리워
꿈길
금잔디
옛낯
부귀공명
희망
어인
못 잊어
무심
새벽
나의 집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맘에 속의 사람
무덤
부모
가는 길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풀따기
옛 이야기
담배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초혼
비단 안개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눈 오는 저녁

마음의 눈물
여름의 달밤
물마름
낙천
천리만리
가을 아침에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가을 저녁에
개여울
생(生)과 돈과 사(死)
고독
생(生)과 사(死)
하늘 끝
제비
바리운 몸

꿈꾼 그 옛날
여수

님에게
옷과 밥과 자유
찬 저녁
저녁때
그를 꿈꾼 밤
먼 후일
서울밤
밭고랑 우에서
나무리벌 노래
춘향과 이도령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둥근해
접동새
죽으면?
눈물이 쉬루루 흘러납니다

상쾌한 아침
공원의 밤
님의 노래
길손

봄 밤
가는 봄 삼월
무제
팔베개 노래
강촌
장별리(將別里)
외로운 무덤
삭주 구성
맛나려는 심사
낭인(浪人)의 봄
삼수갑산
가시나무
돈과 밥과 맘과 들
기회
바닷가의 밤
고향
황촉불
야(夜)의 우적(雨滴)
김소월 평
김소월 연보

저자 소개 1

金素月, 김정식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1902년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는 외가에서 부친 김성도와 모친 장경숙의 장자로 출생한다. 본명은 김정식이다. 태어난 지 백일 후부터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의 본가에서 자란다. 1904년 부친 김성도가 당시 경의선 철도 부설공사를 하던 일본 목도꾼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정신 이상 증세에 시달린다. 김소월은 광산을 경영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컸는데, 이 무렵 시인의 길로 가도록 영향을 준 숙모 계희영을 만났다. 1915년 평안북도 곽산의 4년제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김억과 사제관계를 맺게 되고 한시, 민요시, 서구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다. 후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1923년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 후 귀국했을 시점에 시인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김소월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인 김억의 격려를 받아 그의 지도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등 5편을 소월(素月)이라는 필명으로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 「그리워」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1년 [동아일보]에 「봄밤」, 「풀 따기」 등을 발표했다. 1922년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를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1925년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하고, 같은 해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이는 시인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으로 기록된다. 그 밖에 1923년 『깊고 깊은 언약』 『접동새』 1924년 『밭고랑 위에서』 『생과 사』 1926년 『봄』 『저녁』 『첫눈』 1934년 『제이, 엠, 에스』 『고향』 등을 발표했다.

1923년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돕다가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어 1926년평안북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개설하고서 이도 실패하자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기도 했다. 예민한 성격이었던 김소월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이후 류머티즘을 앓으며 친척들에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등 고생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만 32세의 나이로 평안북도 곽산에서 아편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39년 스승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素月詩抄)』가 발간된다. 1977년 [문학사상] 11월호에 미발표 소월 자필 유고시 40여 편이 발굴,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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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309g | 128*188*20mm
ISBN13
9788975675010

출판사 리뷰

민족적 정서를 대변한 민족 시인 김소월의「진달래꽃」

소월의 시에서는 순도 높은 토박이 냄새가 배어 있다. 민요시적인 운율도 그렇고, 어휘도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박은 우리말을 즐겨 썼다. 이는 「진달래꽃」에 잘 나타나 있다. 소월은 ‘조선’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채 조국의 산하에 지천으로 피고 지는 진달래라는 표상을 선택함으로써 겨레 감정에 호소한다. 추상적인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소월 시에서 가장 많이 쓰인 낱말은 ‘임’과 ‘집’과 ‘길’이다. 임 없음과 집 없음과 길 막혔음을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노래했다. 임과 집과 길에 대한 낭만적 동경, 그리고 그 그리움의 좌절이 소월시의 중심이 되는 가락이다. 많은 애송시편 속에서 드러나 있듯이 소월의 임은 어디까지나 손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가 노래한 사랑은 따라서 호응과 완성의 환희를 알지 못하며 충족 속에서 여물어 보지 못한 사랑이다. 그것은 이성 사이의 사랑을 땅 위의 삶의 최상 가치라고 생각하는 낭만적 사랑이다. 헤어진 임, 잃어버린 임, 부재(不在)함 저편에 간절히 드러나는 임이 소월시의 중심 주제인 것이다.
임과 집과 길에 대한 간구를 되풀이 노래한 김소월은 완고한 낭만주의자라 할 수 있다. 철들기를 마다하는 성숙의 거부는 낭만적 경향의 한 징후이기도 한데 소월에게도 그것이 엿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진달래꽃」이 스물여섯이 되기 이전의 소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젊음이 과도하게 또 불필요하게 억압되던 시절에 젊은 영혼의 실상을 터놓고 노래하며 그것을 문학적ㆍ도덕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렇다면 그의 성숙의 거부는 우리 문학과 사회의 수요나 요구와 연관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유교의 청교주의가 강요했던 젊음의 억압에서 벗어난 젊은이의 내면 풍경을 직설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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