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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shi Ogiwara,おぎわら ひろし,荻原 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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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푸딩처럼 흐물거린다. 무릎이 꺾이면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그때 겐타는 자신이 서프팬츠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편히 쉬시우.” 할머니는 자신이 집 주인이면서도 걱정스러운 듯 방구석에 앉아 머뭇머뭇 손등을 문지르고 있다. “입고 있던 잠방이는 너무 많이 찢어져서 벗겨서 밖에 널었지.” 할머니의 햇볕에 그을린 뺨이 거무칙칙해졌다.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바다에 들어가면 느슨해지기 때문에 서프 팬츠 끈은 조금 세게 매어야 한다. 오마이갓! 그렇다면 내 걸 봤단 말이야? “나중에 훈도시를 내어줄테니 그걸 차시우.” “네?”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봤다. 할머니는 변명하듯 얼른 덧붙였다. “죽은 영감은 훈도시만 쓰던 사람이라, 우리 집에는 댁이 입었던 것처럼 화려한 속옷은 없다우.” “영감 게 좀 작을지 모르지만” 겐타의 아랫도리를 흘끗 훔쳐본 할머니가 슬며시 웃었다. “꽤 훌륭하던 걸……” --- p.45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밀 트렁크 속의 또 다른 비밀. 지퍼를 열고 손을 넣어 조심스레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 앞으로 온 낡은 편지 한 통, 그리고 반듯하게 접은 작은 옷가지들. 봉투는 너무 낡아서 너덜너덜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지워져서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할아버지 이름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숨겨둔 애인? 옛날 사람인 할머니한테도 그런 일이? …… 또 하나는 뜻밖의 물건이었다. 남자의 트렁크스.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래있었다. 두껍고 겉이 매끈매끈한 감인데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옛날 사람들도 이런 걸 입었나? 딱 서프 팬츠였다. 꽃무늬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설마, 이건……. 팬츠 안쪽에 방수 주머니가 달려 있다. 주머니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미나미는 꺼내 든 것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10엔짜리 동전 같은 색으로 녹슬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자동차 열쇠였다. 열쇠 머리 부분이 검은색인 토요타 차 키. 그리고 키홀더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 pp.385-386 어디선가 자기 목소리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정당한 전쟁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전사(戰死)에는 존귀함도 천함도 없다. 책임자 새끼들 다 나와! 거리 500. 구축함 포대에 서 있는 미군 병사의 모습까지 뚜렷이 보였다. 얼굴이 새빨갰다. 화를 내는 걸까? 아니면 겁먹은 걸까. 가이텐이 명중하자마자 곧바로 탈출하는 거야. 전쟁에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은 죽을 위험이 전혀 없는,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계획하고 명령하는 거다. 또다시 가까운 거리에 포탄이 떨어졌다. 사고가 뿔뿔이 흩어진 머리는 벌써 날아가 버렸는지 새하얗다. 긴장을 늦추자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발동간을 쥐고 있었다. 미나미, 미나미. 텅 빈 머릿속으로 겐타는 자꾸만 미나미의 이름을 불렀다. --- pp.534-535 갑자기 무서워졌다. 겐타가 또 물에 빠진 건 아닐까. 겐타는 절대로 죽지 않아. 설령 100미터짜리 거대한 파도가 삼키더라도. 미나미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다만 물에 빠진 충격으로 또다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었다. 작년 여름 사고 이후, 겐타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미나미는 쭉 불안했다. 바다에서 돌아온 겐타가 또 다시.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빨리 돌아와. 다시 이상해져도 까딱없어. 내가 고쳐줄게. 그래, 겐타는 겐타야. 돌아온 겐타가 겐타야-. 그런데 정말 어디까지 나간 걸까. 울고 싶어지는 마음을 달래며 미나미는 수평선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파도 저 멀리서 참깨 알 같은 머리가 보였다. 겐타다. 바람이 밀짚모자를 날려버렸지만 미나미는 뒤돌아보지 않고 파도가 밀려오는 곳까지 달려갔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겐타를 두 팔로 꼭 안아주기 위해서. --- pp.542-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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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과 1945년, 시공을 넘나든 청춘들의 몸빛 성장기
≪내일의 기억≫≪하드보일드 에그≫≪오로로 밭에서 붙잡다≫ 등으로 스바루 신인상, 야마모토슈고로상, 서점대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대표 청춘소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소년이 2001년과 1945년이라는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뒤바뀌면서 겪게 되는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나’라는 존재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작품이다. 특히 열아홉 청춘들의 ‘시간 여행’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9.11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비극에 접목시켜 새로운 유형의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은근하지만 강력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 철없는 백수청년과 시한부 소년병의 좌충우돌 코믹 시간여행기 2001년 늦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백수청년 오지마 겐타는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같은 시각 쇼와 19년, 소년병 이시바 고이치는 93식 비행기를 그 바다에 띄우며 출격 연습을 한다. 50여 년 차를 두고 같은 바다, 같은 하늘 위를 나르던 겐타와 고이치, 하지만 파도에 휩쓸리고 번개를 맞아 추락한 이들은 의식을 잃게 되고, 2001년과 194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공간이 뒤바뀌는 짓궂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시간 이동’은 수세기 동안 소설과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온 모티브이지만, 항상 새로운 시대상과 변주된 설정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로 재탄생해왔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타임 슬립≫ 또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고전적인 스토리라인에 적절하게 버무려 유쾌하고 코믹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오늘을 사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시간여행 스토리의 새로운 고전이 될 작품이다. 열아홉 살 눈으로 바라본 가슴 뭉클한 반전(反戰)의 드라마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2001년 9.11 다음 날의 이야기이자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으로 꼽히는 2차 대전 종전 다음 날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가 진심을 담아 내놓은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반전 소설이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눈앞에서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전쟁은 어디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다. 특히 20세기 전쟁의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21세기 소년 겐타의 눈을 통해, 전쟁의 무모함과 시대의 모순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삶을 코믹하면서도 애잔하게 담아냈다. 원작 <우리들의 전쟁>은 텔레비전 영상물로도 기획되어, 2005년 일본에서 우에노 주리, 모리야마 미라이 주연의 드라마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