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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 H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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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놀이입니다. 아니, 오로지 놀이만이 우리의 생명을 지탱시켜줍니다. 살기 위해서 놀이를 즐겨야 했던 내 권리를 변호해주십시오. 성공을 기원합니다.
놀이는 내 인생의 중심이자 내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놀이를 포기해야 한다면 차라리 총으로 자살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자살을 한다면 아마 러시아 룰렛 게임을 선택할 겁니다.) 내 행위를 살인이나 학살로 몰려면 거기에 맞는 적절한 동기나 원인, 과정 같은 것을 찾아내서 법정에 내보여야 할 텐데 검사로서는 그것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검사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놀이꾼은 양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겠지만, 그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놀이꾼은 영원히 망설이기만 하는, 그래서 애꿎은 희생자만 양산하는 그런 양심을 싫어한다고요. 하지만 이것 역시 진실에 근접한 것은 아닙니다. 놀이꾼은 그냥 놀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이들이 진부하고 한심한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것 외에는 왜 사는지 모릅니다. 물론 기계처럼 돌아가는 그들의 조직에서는 분명 중요하고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삶을 견뎌내게 하는지 모릅니다. 간난과 궁핍이 상존하고, 어떤 식으로든 삶을 감당하게 해주는 매력이 전혀 없는 삶을 말입니다. 우리로서는 그들이 이런 삶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의미한 운명을 이겨내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가소롭고도 가망 없는 일에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함을 쏟아 부었습니다. 한마디로 감탄스러운 인간들이었죠. 피아르테스 선생, 이제 새로운 놀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피를 흘리지도 않을 것이고, 죽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명시적으로는 말입니다. 그냥 한 인간을 파멸시킬 것이 이 놀이의 전부입니다. 대상은 각계에서 존경과 인정을 동시에 받는 상당한 유력 인사입니다. 수십 년 동안 대외 활동을 하면서도 도덕적인 면에서 전혀 흠결이 없고, 출중한 전문 지식을 자랑하며, 온갖 성향의 사업가와 정치인들로부터도 명망이 높고, 심지어 언론까지도 존경심에 가까운 태도로 대하는 인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미 알고 있었듯,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놀이가 없다면 우리의 짧은 생은 너무나 무료할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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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라,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다”
넘치는 트릭과 긴장감으로 가득한,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서사적 한판 승부 같은 소설 독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의 장편 『나폴레옹 놀이』는 시시각각 삶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생의 매순간을 ‘놀이’를 하듯 살아가려 했던 어느 인텔리 변호사의 낯설고도 불가해한 행적을 냉소적인 유머로 묘파한 이색적인 범죄심리소설이다.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변호사 뵈를레는 어느 날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극히 평범한 한 중년 남자를 당구 큐대로 쳐서 살해한다. 그는 방금 죽인 남자를 끌어안고, 동요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외치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까지 한다. 범행의 동기나 원인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뵈를레 사건’은 법정과 여론을 혼란에 빠트린다. 수감된 뵈를레는 자신의 행위를 외부의 위협과 내면의 위기로 유발된 대안이 없는 상황, 즉 “정당방위”라 주장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가치적으로 완벽하게 중립인 “불가피한 살해”라 외친다. 그리고 이를 납득시키려고 변호사에게 길고 긴 편지를 써서 보낸다. 편지에는 열두 살의 그가 어떻게 아버지의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품안에서 아기 흉내를 내며 은밀한 성적 쾌락을 즐겼는지, 어떻게 후레자식 같은 이복동생을 완전히 부모로부터 떨어뜨려놓았는지, 또 어떻게 자신을 애정놀음에 끌어들이려던 여인을 단번에 내동댕이쳐버렸는지, 왜 잘나가던 변호사 일을 제쳐두고 책략과 술수가 난무한 정치판을 이십 년 동안 놀이터로 택해 놀았는지, 판독 불가능한 살인 사건의 피의자 뵈를레가 걸어온 삶의 족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이 편지에서 “위대한 놀이꾼” 나폴레옹이 유럽을 놀이판으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삶의 에너지를 얻었듯, 자신도 익숙하다 못해 마치 죽음 같기만 한 지루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놀이’에 매달렸다고 말한다. 타고난 두뇌로 점찍은 상대를 하나하나 교묘하게 제압하며 패배의 나락으로 몰았던 뵈를레는 조금씩 노름판 판돈을 올리듯 더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놀이에 도전한다. 그렇게 해서 뛰어든 정치에도 시들해질 무렵, 그는 “완벽하게 무가치해 보이는 살해”라는 놀이를 구상하고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채 자신을 변론해줄 변호사를 설득 조종하여 법정과 여론을 상대로 잘 짜인 각본 같은 한판 승부를 벌인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판에 박힌 일상과 타자의 의지에 자유를 내맡긴 채 노예적인 행복에 만족해하는 현대인들. 이런 세상에서 자유와 의지가 오롯이 살아 있는 곳이 ‘놀이터’밖에 없다고 생각한 작가는 제약도 구속도 없는 완벽한 놀이터를 지어놓고, 영리하고 복잡한 한 인간을 그 한복판에 내려놓았다. 양심도 죄의식도 수치심도 없이 오로지 놀이에만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신의 놀이터에 던져진 복잡하고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을 가진 인간의 초상이다. “나는 나폴레옹의 소박한 후계자입니다. 나는 삶을 위협하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승산이 없고 전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 놀이를 즐기려 합니다.” 권태로운 삶 속에서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회의와 절망을 문학이라는 자유로운 ‘놀이터’에서 세려된 유머로 빚어낸 특별한 소설 인생을 오로지 ‘놀이’에 대한 열정만으로 지탱하며 살아온 노련하고 우아한 사이코패스 변호사 뵈를레의 완벽함 삶 뒤에는 광적인 내면이 숨어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나를 자극했다거나 내가 살기 위해 그랬다고 말하는 현대판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여기에 중첩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뵈를레에게는 자신의 무죄를 아카데믹하게 입증할 타고난 두뇌가 있었다. 그의 이중적인 모습과 치밀한 계산은 그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보낸 두 편지에서 일목요연하게 확실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드러난다. 일인칭의 섬세한 내레이션으로 빛을 발하며 명확해지는 그의 행적과 심리는 독자들로 하여금 법의 심판에 대한, 인간의 심판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갖도록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은 “세상 사람들이 진부하고 한심한 일에 파묻혀 지내”며,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비웃는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삶을 견뎌내는지 신기할 뿐이고, “삶을 감당하게 해주는 매력이 전혀 없는 삶”을 살 바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조롱한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 뵈를레의 독백 뒤에서 “자신들의 무의미한 운명을 이겨내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 “가소롭고도 가망 없는 일에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함을 쏟아” 붓는 기타 대다수의 “감탄스러운 인간들”을 향해 경외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