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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국민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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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글
역자 해설
1장 새로운 정치
2장 정치의 미학
3장 민족 기념비
4장 공공 축제: 토대와 발전
5장 공공 축제: 연극과 대중운동
6장 조직들 손을 잡다
7장 노동자의 공헌
8장 히틀러의 취향
9장 정치적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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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조지 L.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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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Mossee

독일 출신의 미국 역사가로, 내셔널리즘과 파시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1918년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다. 외조부 루돌프 모세는 『베를리너 타게블라트』 등 유력 언론매체들을 소유한 언론계의 거물이었다. 모스는 어린 시절 유명 사립학교인 몸젠 김나지움과 살렘에서 교육받는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영국으로 망명해 퀘이커교 계열의 부댐 학교에 다니며, 이곳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했으나, 193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해버퍼드 칼리지에서 학부과정을 마친다. 1946년 ‘16~17세기 영국 헌법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독일 출신의 미국 역사가로, 내셔널리즘과 파시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1918년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다. 외조부 루돌프 모세는 『베를리너 타게블라트』 등 유력 언론매체들을 소유한 언론계의 거물이었다. 모스는 어린 시절 유명 사립학교인 몸젠 김나지움과 살렘에서 교육받는다.
1933년 나치 집권 후 영국으로 망명해 퀘이커교 계열의 부댐 학교에 다니며, 이곳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했으나, 193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고 해버퍼드 칼리지에서 학부과정을 마친다. 1946년 ‘16~17세기 영국 헌법사’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아이오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근대 초 유럽의 종교와 종교개혁에 대해 연구하던 모스는 1955년 위스콘신 대학(매디슨)으로 옮겨 근대사를 강의한다. 이후 30년 넘게 이곳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계속한다.
1964년 근대 내셔널리즘의 뿌리를 분석한 『독일 이데올로기의 위기: 제3제국의 지적 기원』을 출간하면서, 내셔널리즘, 파시즘, 반유대주의 연구를 본격화한다. 1969년 이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도 강의한다. 1975년 근대 국민국가의 지배 장치인 ‘정치종교’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대중의 국민화: 나폴레옹 전쟁에서 제3제국까지 독일의 정치적 상징주의와 대중운동』을 펴낸다. 1985년에 출간한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근대 유럽에서의 고결함과 비정상적 섹슈얼리티』는 근대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내셔널리즘’과 성性에 대한 특정한 태도인 ‘고결함’의 상관관계를 다룬다.
1990년에 나온 『전사자 숭배: 국가라는 종교의 희생제물』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시민종교의 작동 방식을 전쟁문화사로 풀어낸 역작이다. 1996년에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에서 다루었던 ‘남자다움’에 대한 연구를 더 심화한 『남자의 이미지: 현대 남성성의 창조』를 펴낸다.
그 밖에 『영국의 주권 투쟁』(1950), 『종교개혁』(1953), 『서유럽 문화 입문: 19세기와 20세기』(1961), 『최종 해결을 향해: 유럽 인종주의의 역사』(1978), 『파시스트 혁명: 파시즘의 일반 이론을 향해』(1999) 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모스는 1999년 1월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생을 마친다. 그 이듬해 자서전 『역사와 마주하기』(2000)가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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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세종대학교에서 영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영화, 역사』, 『역사 속의 매춘부들』, 『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 『잭 구디의 역사 인류학 강의』, 『시인을 체포하라』,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공역), 『대중의 국민화』(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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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志弦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창립 소장이다. 바르샤바 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베를린 고등학술원, 파리 2대학, 빌레펠트 대학, 히토츠바시 대학 등에서 초청·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글로벌 히스토리 국제네트워크(NOGWHISTO)’ 회장, ‘토인비재단’과 ‘세계역사학대회’ 등 국제학회의 이사로 있다. 폴란드 근현대사와 유럽 지성사에서 출발해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혀온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창립 소장이다. 바르샤바 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베를린 고등학술원, 파리 2대학, 빌레펠트 대학, 히토츠바시 대학 등에서 초청·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글로벌 히스토리 국제네트워크(NOGWHISTO)’ 회장, ‘토인비재단’과 ‘세계역사학대회’ 등 국제학회의 이사로 있다.

폴란드 근현대사와 유럽 지성사에서 출발해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혀온 그는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의 독창적 연구를 통한 신선한 문제의식으로 한국 지식사회의 담론장을 흔들었다. 현재 그는 민족주의적 기억을 탈영토화해 초국적 연대를 지향하는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를 탐색하는 데 학문적 실천의 주안점을 두고, ‘역사가’에서 ‘기억 활동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수십 편의 학술논문 외에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오만과 편견』, 『세계사 편지』,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펴냈고, 『근대의 국경과 역사의 변경』, 『대중독재』 1~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등 다수의 책을 엮고 우리말로 옮겼다. 국외에서는 『Palgrave series of mass dictatorship』 총서(총 5권)를 책임 편집했으며, 미국·일본·독일·폴란드·프랑스 등 해외 유명 저널에 50여 편의 논문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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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642g | 153*224*30mm
ISBN13
9788971395493

출판사 리뷰

무수한 대중을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소위 객관적 관점을 나약하게 강조하는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목표를 향해 무자비하고 광적이며 일방적으로 나아가야 이룰 수 있는 일이다. ―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이 책의 소재는 히틀러의 이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왕과 신의 가호에서 벗어난 익명의 대중을 불러내 국민으로 만드는 일은 근대 세계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많은 정치가와 역사가들이 이러한 프로젝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모스의 독창성은 파시즘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것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역사가들은 파시즘의 요체를 전체주의적 강제동원 체제로 역사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의한 파시즘의 패배는 일탈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낙관적이면서도 순진하게 해석되었다.

모스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었다. 예로 남성합창단의 진로를 보자. 남성합창단은 중세 이래의 교회합창단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신을 찬양하던 합창단에 독일 민족혼이라는 불의 세례를 내린 것은 나폴레옹 침략전쟁이었다. 불의한 외세에 맞서 노래를 좋아하는 독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래패를 결성한다. 그들은 새롭고 애국적인 노래들을 개발한다. 이 노래들은 선풍적으로 독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그 노래들이 갈구한 것은 하나되고 행복한 통일 조국이었다. 그러나 메테르니히 반동체제는 독일의 통일을 저해하고, 이때부터 노래패는 반체제가 되었다. 반체제가 될수록 합창단에는 가속도가 붙고 응집력이 강화된다. 이제 그들의 노래는 온국민의 애창곡이 되었고 합창단원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인 명예가 되었다. 비스마르크에 의한 독일 통일은 노래패에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온다. 정부 지원을 받으며 공식 제전에서 찬양가를 부를 수 있게 된 반면, 반체제적 저항성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일차대전의 패배와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 속에서도 이 노래패들은 민족정신의 강력한 담지자가 되었다. 그후 히틀러의 집권을 여는 동맹 세력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나, 종국에는 히틀러의 합창단에 용해되어버리고 만다.

조지 L. 모스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현대사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동원가요는 물론이고, ‘님을 위한 행진곡’ 같은 운동가요들의 운명이 떠오른다. 체제든 반체제든 공통점은 민족주의이다. 흩어진 대중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드는 강력한 마법의 노래라는 점이다. 민족주의를 대중들의 마음속에 내면화시켜 자발적으로 참여케 한 것은 히틀러의 공포정치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노래들이었다는 모스의 분석은 과연 우리 현대사와 무관할 것인가. 더구나 21세기에도 이러한 정치문화 양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이다. 이 책에서 독일이라는 말을 북한이라는 말로 치환시켜면 그대로 문맥이 통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모스의 명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을 쓴 모스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그의 이름을 유대식으로 읽으면 모세가 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독일의 유력 일간지 "베를리너 타게스블라트"의 발행인이었다. 나치는 이 신문을 아주 미워해 나치가 집권하자 모스 일가는 영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스는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본원적인 체험들이 삐딱한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스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역사 연구를 이끈 점을 인정받아, 미국역사학회의 연구상을 받았다.
나치즘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더불어 모스의 역사학에 대한 또 하나의 공헌은 문화사와 미시사를 여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모스가 이 책을 발간한 1970년대 중반은 사회경제사가 학계를 휩쓸 때였다. 이때 사격동호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기념비 양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시간을 쓴다는 것은 동키호테 같은 짓이었으리라. 그러나 그후 역사학의 극적인 방향 전환은 모스가 모세만큼이나 선견지명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지금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문화사와 미시사를 언급하고 있지만, 모스는 훨씬 이전에 그것도 혼자 그러한 연구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 책을 옮긴 임지현은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논객으로,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 논쟁을 주도해온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이 책의 번역을 여러 해 전에 기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이제야 독자들에게 내놓게 되었다고 미안해하고 있다. 공동번역자인 김지혜는 영화와 역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소장 연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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