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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 / 011
일그러진 함머클라비어 / 013 데스마스크 / 023 현재를 초월해 / 028 마르타 / 031 가엾은 크로이체르 / 038 슬픈 언덕 / 041 투덜이 소녀 / 045 존재한다는 것 / 052 뤼세트 모제스 / 057 비이성적인 낙관의 순간들 / 064 유대인들은 성호를 긋지 않는다 / 069 마문 / 073 목걸이 / 078 끔찍한 증식 / 082 지나간 시간 / 084 어떤 공상 / 086 카탈로그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 089 어떤 만남 / 094 눈부신 미소 / 098 한탄스러운 교육 / 100 “지나치게 조바심을 치는 나” / 104 포르트 샹페레의 실존적 의미에 관하여 / 108 뇌의 어두운 반구 / 114 30초간의 침묵 / 118 형제들 / 124 오늘날의 사람들 / 128 외제니 그랑데 / 130 그러겠다고… 말하기 / 132 어느 아침 / 138 당신이 없는 거기에 / 142 스물네 살 / 146 ‘파국’ / 150 메아 셰아림 / 156 내적인 연대 / 158 ‘허공’ 경험 / 162 로제 블랭 / 166 공간과 공간 / 168 선언 / 170 계속해서 네 길을 가… / 174 목록 / 178 귀향 / 182 참을성에 대한 공포 / 186 금지된 것… / 188 옮긴이의 말 / 190 |
Yasmina Re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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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겠는가, 내가 그 애에게 누구였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에 넘쳐 그 애를 어루만지고 돌보았는지. (…)얼마나 완벽하게 그 애를 소유했는지, 한때 그 애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의 것이었는지, 한때 내가 얼마나 충만하게 그 애의 모든 것이었는지. 이게 바로 심술궂은 시간이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 p.34~35
“나는 그 애에게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책이 아니라 바로 그 애라고, 우리라고,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순간이라고, 우리가 이제 더이상 하지 않을 모든 것들이라고, 자라면서 그 애가 내지 않게 된 짜증이고, 우리가 더이상 하지 않게 된 다툼이라고. 나는 또 그 애 귀에는 들리지 않는 말들을 혼자 중얼거린다. 어쨌든 난 그 애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행복을 잃어버린 줄 알았다고.” --- p.50~51 “솔직하게 말해서 이제까지 내가 해온 것은 내 삶을 사건 속으로 몰아넣기가 아니었던가? 사건들이 닥치고, 시간이 동요된 채 지나가고, 소리 나야 할 것이 소리 나고, 시간, 내 은밀한 적, 그 시간을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리게 한 것뿐이 아니었던가?” --- p.52~53 “나는 생각한다. 여든세 살이 된 노인이 어째서 미술 카탈로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죽음에 가까운 그 시기는 예술이니 문화니 하는 인간의 가식과 끝장을 낼 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여든세 살이라면 그런 것들로부터 배워야 할 바를 이미 배운 나이 아닌가. 진실이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은 사는 것보다 꿈꾸는 데 더 유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조제프 H.의 어머니에게 완전히 공감하면서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우리가 시간의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닌가.” --- p.92 “그 애는 웃고 있다. 그 애는 여덟 살이다. 이보다 더 눈부신 행복을 드러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알타는 기쁨에 가득차서 온 이를 다 드러내며, 아니 ‘앞니가 모두 빠진 빈 공간’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 앞니 빠진 소녀의 기막히게 매력적인 미소다. 그 애의 벌린 입속에 젖니들과 구멍,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치아, 막 비집고 올라오는 톱니모양의 어금니가 보인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보다 흉한 미소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 애는 앞으로 이보다 더 멋진 미소를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 p.98~99 “제가 보는 건 사람들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풍경이에요. 저는 인간들의 비극에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 뒤의 산들, 그 뒤의 광채예요. 사람 너머의 배경에 주목하면, 시간이 팽창되죠. 옛날에도 바로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어째서 오늘날 사람들이 죽는 게 더 중요한 거죠?” --- p.129 “지독한 선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들의 의식화된 삶 속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욕망에 넘치는 바깥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단호히 끊고―자신들이 무릎 꿇는 제단을 바로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시간의 주인이자 노예로서 자신들만이 진 멍에를 세상에 공표한 사람들, 시간을 자신들 방식대로 재단하는, 내가 알지 못할 곳으로 가는 그 믿음의 사람들은 현재를 유예하지 않는다. 기다림이라는, 우리의 딱한 고통에서 벗어나 있다.” --- p.157~158 “공간과 공간이 있다. 아름다운 장소, 유명한 장소, 몹시 추한 장소 들에 결국 우리는 무심해진다. 그런 장소들은 기껏해야 딱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문화적인 성향에 호소할 뿐이다. 진짜 공간, 우리를 만들어낸 공간, 기억을 품은 공간은 우리가 자신 너머에 있는 것을 본 그런 장소들이다. 우리의 과도함, 우리 욕망의 두려움과 맹세를 중재하는 곳들이다. 다시 말해서 삶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 말이다.” --- p.170 “나는 이내 이런 생각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 대신 여행 중에 줄곧 머릿속에 맴돌던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밖에 있는 것은 세상의 환영일 뿐 세상이 아니다. 나는 내가 글로 쓸 수 없는 것을, 내가 알려줄 수 없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낯설게 만들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어두운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영역이 있다. 모호한 것도, 미지의 것도 아닌, 그저 언어의 눈부신 빛만은 닿지 말아야 할 그런 곳이.”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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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프랑스적인 유머와 통찰력으로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느리게 이야기하는 44개의 변주곡 야스미나 레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비어’를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이 단편집의 서두를 연다. 평소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하던 부녀의 습관대로, 아버지는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데도 딸에게 들려주겠다는 일념 하에 함머클라비어를 연습한다. 임종이 가까운 어느 날, 아버지는 허약해진 몸으로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한다. 슬퍼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딸은 웃는다. “함머클라비어는 일그러지고 아버지는 죽어가는데, 내게서는 웃음이 치밀어 오른다. 아버지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우스워서가 아니라 웃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마음에 두고 있는 주제는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의 강을 붙잡을 수 있는가. 어느 때를 기준으로 사태나 사물의 가치, 언어의 가치를 평가할 것인가. 시간 속에서만 빛나는 가치들이 있지 않은가. 그 시간을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리게 한 것이 아니었던가? 시간 한가운데서 사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사뮈엘 베케트를 연상시키는 깊이를 숨긴 단순한 문장들로 저자는 문장 속에서만 음미할 수 있는 삶의 박편들을 천착한다. 지나가는 순간들, 심술궂은 시간들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심술궂은 시간,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연대순이나 주제로 분류되지 않고 무심하게 흐트러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 책에 담긴 44개의 짧은 자전적인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무상성과 절대성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내적 구조를 갖고 있다. 늙고 병든 아버지가 종양으로 죽어가고, 젊고 예뻤던 에이전트 친구가 병상에서 시들어가고, 에이즈 진단을 받은 친구가 끝내 꺾이고, 분홍색 니트를 차려입은 어머니가 빌리에 대로를 혼자 걷다가 쓰러진다. 그 사이 사이에 앞니가 몽땅 빠진 채 천상의 웃음을 짓는 딸아이가 있고, 두 살짜리 아들의 먼 미래를 보는 시선이 있다. “앞니 빠진 내 딸 알타의 미소, 심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보다 더 흉한 미소도 없겠지만, 거기에는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충실한 자기 봉헌, 지극한 기품이 있다. 그 혼란스러운 영광의 불합리한 광채만큼 덧없는 것, 잉여의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있을까. 그런 유익한 심연을 이 세상에 선사하는 이들은 그 나이의 아이들, 개들, 그리고 치장하지 않은 노인들뿐이다”(〈눈부신 미소〉). 시간과 죽음에 대한 반추를 실존적인 관심으로 연결시키면서, 극도의 무거운 순간들조차 유머로 승화시키는 이 작품의 백미는 놀라운 자기 거리의 확보다. 퐁트나유 묘지에 친구 마르타가 묻히는 날 저자는 이렇게 변명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꽃 한 송이 없이 빈손으로 온 걸 용서해. 근데 우리 관계는 현재를 초월하는 거잖아. 천만에. 우리는 현재를 초월해 있는 게 아냐. 네가 작은 꽃다발을 가져왔다면 난 기뻤을 거야.”(〈현재를 초월해〉) 병상의 마르타를 보러간 저자에게 친구는 말한다. “나를 만나러 오면서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젊음이 넘치는 다리를 드러낼 수가 있지? 내 다리 역시 젊음이 넘치던 때가 있었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 그런 게 시간이지. 심술궂은 시간.”(〈마르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죽어야 할 우리의 운명이 있다. 그러나 또한 이 시간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온 힘을 다해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시간을 보는 저자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 어느 날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 어느 날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무관심한 이 두 순간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존재하려 애쓴다. 일정한 방향 없이 계속 존재하는 파동의 형태로.”(〈공간과 공간〉) “나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나는 결국 죽을 것이다. 나는 온힘을 다하고 싶다. 단 한 번뿐일지라도 내 빛이 전장에서 하늘을 갈라놓을 수만 있다면. 나는 더 나아가고 싶다. 나는 더 길을 잃고 싶다.”(〈참을성에 대한 공포〉) 베토벤 함머클라비어의 매혹적인 3악장은 일그러졌지만 우리에게 다음번이란 없음을 잘 알기에 그 순간을 소중히 추억하는 이 소설 《함머클라비어》는, 이 유한한 지상에서의 모든 의미 있는 순간에 대한 전혀 센티멘털하지 않은 송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