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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
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대필 작가의 독백
배홍진
멘토프레스 200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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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위안부 소녀의 생
사라져 버린 한 위안부 소녀의 얼굴을 찾아서
옛날이야기로 이루어진 세장의 어린시절
사라져버린 졸업식 풍경
동아시아의 지도 속으로
빼앗긴 순결
그날 밤 그 언덕 위에서
44년 여름 마츠시로 위안소 지붕에 걸린 달
고바야시 다테오의 초상
송진이 흐르는 정오
악몽으로 들어가는 주름의 입구
다시 현해탄을 건너서
화염 속에 유실된 부산지도

2부 위안부 할머니의 생
어느 가을밤의 편지
그녀는 무엇을 그리워하는가?
삶의 새로운 결미를 향하여
여기 세 장의 그림, 세장의 서글픈 분노와 용서
그리고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한 헌화
어느 겨울 저녁의 대화
우리가 어디로 가든
그리 인제 새처럼 날아가는

저자 소개

저자 : 배홍진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대필 작가를 하며 소설을 써왔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에 관한 글을 써왔고 일본어와 태국어를 독학했다. 현재 무경계 문화 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의 기획팀장을 맡고 있으며, 소설 《내 슬픈 상대성 이론저편의 방콕》을 집필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3쪽 | 298g | 153*224*20mm
ISBN13
9788995855287

관련 자료

故 강덕경
1929년 생, 남강이 흐르는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수정동 요시노 소학교를 졸업했다. 열다섯 살 나이에 일본에서 위안부가 되어 악몽 속을 걸었다. 45년 해방 후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부산에서 식당 일과 가정부,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소주를 파는 일을 했다. 부산진 천주교 고아원에서 네 살에 아이가 죽은 후로 결혼하지 않았고 내내 혼자 살았다. 1992년 한국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를 증언하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며 폐암으로 쓰러질 때까지 투쟁했다. 그리고 1997년 2월 2일 68세의 일기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임종했다.

출판사 리뷰

■ 기획의도

이 책은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위안부에 관한 다큐멘터리 에세이다. 1997년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강덕경(1929년생) 할머니의 한 영정 사진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그동안 타인의 이야기를 대필하는 일로 살아온 한 유령작가(배홍진, 35세)가, 일생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전국을 떠돌며 살아온 강덕경 할머니의 유령 같은 삶을 추적해가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녀를 ‘강덕경 할머니’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할머니였던 적이 없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가족 없이 세상을 부표처럼 떠돌며 소녀인 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까닭에 이 책은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 한 위안부 소녀의 삶을 섬세한 언어로 따라가는 한 대필 작가의 고백이자 위안부 소녀의 초상화이다.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은 말 이상의 강렬한 힘을 지닌 언어이자 메시지이다. 작가는 강덕경 할머니가 남겨 놓은 〈빼앗긴 순정〉〈마츠시로 위안소〉〈악몽〉〈그리움〉〈책임자를 처벌하라〉〈새가 되어〉 등의 그림들을 한 장씩 묘사해가면서 ‘성노예’로서 당시 15세 소녀가 느꼈을 생생한 공포와 수치, 상실된 소녀의 꿈, 인간의 삶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저자 특유의 감각적 시어詩語로 전달하고 있다.
강덕경 소녀의 꿈이 마츠시로 위안소 지붕 위, 붉은 달 속에 살고 있다. 목재 위안소에서 그녀는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아 산 넘고 바다 건너/ 멀리 천리 길을 정신대로/ 아득히 떠 있는 반도/ 어머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구슬픈 소녀의 노래는 60대 노파가 되어서도 계속된다. “요건 죽은 여자, 요게 죽은 여자. 말하자면. 안 추워요. 더워요. 더워요. … 누가 우리 좀 도와주기를. 제일로 간절히 바래요.”하며 죽는 그날까지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아주길 소망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생 위안부 소녀로 홀로 살다간 한 할머니의 슬픈 이야기를 무명작가의 독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다큐멘터리란 작가와 대상 사이에 놓인 ‘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그 거리를 끝끝내 벗어날 수 없고, 다큐멘터리의 대상 역시 그 ‘거리’를 극복할 수 없음을 보려주며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의뢰받지 않은 대필이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명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여자의 삶을 연민하며 적어나간 상상 속의 다큐멘터리이다. 지난 반년간 내 귀속을 헤매고 다닌 그녀의 목소리가 내 손가락의 힘을 빌려 적어나간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아직도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2007년 2월 15일 “일본은 역사의 과오를 진정으로 사죄하라”며 김군자 할머니가 미 하원 아태소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 외교를 위해 더 이상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 라고 주장했다. 실용 외교라기보다는 굴욕 외교에 더 가까운 주장이었고, 지난 811번째 수요 집회(2008년 4월 23일)에서 할머니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언에 각성을 촉구하며 일본의 공식적 사과를 염원했다. 올해 들어 문필기(향년 82), 지돌이(향년 86세) 할머니가 한을 풀지 못한 채 숨을 거둔 ‘나눔의 집’에는 박옥련(88), 김순옥(86), 백춘희(85), 박옥선(84), 김군자(82), 이옥선(80), 강의출(80) 이렇게 일곱 분의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다. “우린 아직도 해방도, 전쟁도 끝나지 않았어.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한국 정부는 왜 한마디 말이 없는가?” 이옥선 할머니가 울부짖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일본의 공식적 사과가 이루어질 날은 언제인가.
“연민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작가의 시선과 세계가 시대에 무람없이 알려지길 바란다”라고 김경주(시인, 극작가)는 말했고, “이런 다큐멘터리를 꼭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반드시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작이다.”라고 박창현(영화 ‘화려한 휴가’ 프로듀서)은 말했다. 아직도 마츠시로 위안소 달빛 속에서 강덕경 할머니는 상실된 소녀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을 이 세상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해결해주길 간절히 기원하며…. 이제 더 이상 위안부 문제는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을 매개로 한, 위안부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다큐멘터리로 우리 모두에게 위안부 문제에 귀기울이게 하는 문제작이다.

■주요내용

● 위안부 소녀, 강덕경 할머니의 삶을 추적하는 유령작가의 슬픈 독백!

이 책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97년 돌아가신 강덕경 할머니의 영정 사진, 사진 속에 죽은 혼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할머니의 얼굴 속으로 작가의 몸이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배홍진 대필 작가는 먼저 강덕경 할머니가 죽기 1년여 전 찍은 수요집회 사진 속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할머니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반년간의 여정을 떠난다. 그가 강덕경 할머니를 찾아 떠난 여행지는 바로 그녀의 사진과 그림들이며, 그 여정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이루는 형식을 띠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 여름부터 한파가 몰아치던 2008년 2월 겨울까지 작가는 강덕경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 나눔의 집 역사관을 비롯 국회 도서관과 할머니의 고향이 있는 경상남도 진주 수정동, 한국 영상협회 자료실, 그리고 그녀의 사진과 그림들의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작가는 조금씩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잃어버린 한 생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녀의 그림이 보여주는 한 소녀의 삶의 풍경을 보게 된다. 작품 전반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할머니의 육성과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신의 삶의 정경들은 고스란히 불우한 역사에 의해 희생당한 한 여성의 삶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다만 그녀의 삶에 자신의 문장들을 빌려주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가 ‘상상’ 속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하지만, 작가는 가급적 할머니가 세상에 남겨놓은 사실의 단편들에 기반하여 강덕경 할머니의 삶과 그녀의 슬픔을 충실히 옮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까닭에 작품 전반을 통해 작가는 강덕경 할머니의 삶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풀어내는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삶의 소소한 단편들에도 주목하는데, 거기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치밀한 논리로 재구성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교인 진주 수정동의 요시노 소학교(지금은 진주 인사동에 위치한 중안초등학교)를 찾아가 어린 시절 그녀의 학창시절을 상상해 본다. 초등학교 역사관에 전시 되어 있는 당시의 자료들과 졸업 앨범을 살펴보면서 그녀의 졸업식 풍경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학교 교직원의 도움을 받아 당시 졸업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보지만 끝내 찾지 못하게 된 사건을 알레고리로 하여 한 어린 소녀가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어느 날 유령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었는가를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도입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세심한 관찰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가 일본으로 건너간 시점과 위안부로 살아가던 당시의 시간적 흐름에 대한 의문으로 옮겨가고 거기서 기존 책들과 다른 시각으로 당시의 순간들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작가는 사실에 충실한 다큐멘터리의 서사와 추리소설의 유추기법을 교차 편집하면서 강덕경 할머니의 위안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해간다.
[동아시아 지도 속으로]에 나오는 이야기들 또한 위안부에 관련된 고증 자료와 김순덕(1921-2004), 박두리(1924-2006), 강덕경 할머니의 증언, 그리고 작가의 소설적 상상을 교차편집하면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위안부 정책의 관련성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언덕 위에서]는 강덕경 할머니가 일본 헌병 고바야시 다테오에게 잡혀 강간당하는 순간을 묘사한 것인데, 이 장면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논픽션’이 아닌가 의문을 지닐 정도로 긴박한 순간의 위기와 한 소녀의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고바야시 다테오의 초상]은 “다테오가 강덕경 할머니를 사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윤정옥 교수(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영감을 얻어 한 일본 군인의 인간적인 초상에 대해 강렬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글이다. 고바야시 다테오는 일본 제국주의 부대의 군인이기 전에 한 명의 평범한 남자였고, 그 남자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 그리고 그 절망이 전도되어 나타난 무책임하고도 잔인한 폭력성에 대해 작가는 놓치지 않고 묘사하고 있다. 고바야시 다테오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간들의 나약함에 대한 작가의 연민으로부터 나온 한 편의 초상화이다.
나눔의 집 ‘증언의 장’에서 벽면에 붙은 동아시아 지도를 보며 강덕경 할머니가 있었던 도야마富山 현과 나가노長野 현의 마츠시로 위안소 터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1944년 사건의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또한 일본 군인들이 성욕해결을 위해 들어가던 비좁은 방, 그곳에서 사용되던 콘돔이 진열된 목조로 만들어진 위안소 방을 둘러보며 강덕경 할머니가 머물던 마츠시로 위안소를 떠올린다. 작가는 본문에서 “거기서 콘돔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소함으로써 전쟁을 수행하는 또 하나의 무기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나눔의 집 ‘기록의 장’에는 3분마다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일본대사관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절규하는 할머니, 주위 사람들이 부축해도 그녀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작가는 다시 화면 옆에 붙어 있는 할머니들의 사진에 시선이 머문다. 다시 그의 두 눈은 사진 중심에 붙어 있는 쓸쓸해 보이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에 머물고, 그녀는 인자 그리 새가 되어 날아가는, 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이경신 화가로부터 그림 수업을 받을 때(1992년부터 그림수업을 받았음) 자신이 그린 화폭 속에 있는 새를 설명하며 한 말이었다. 본문에서 작가는 “새는 날아가고 있지만 새는 검고 둔탁해 보였고 한 덩이의 무게로 툭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인자 그리 새가 되어 날아가기엔 그림 속에 그려진 새는 가볍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고 화폭 속 그림에 대한 느낌을 술회하고 있다.
작가는 다시, 경기도 남양주의 한 들판을 거닐며, 92년(그해 2월부터 한국정부에서 피해자 신고 센터를 개설하여 위안부들의 신고 접수와 피해 증언을 받기 시작할 무렵)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증언하기까지, 경기도 남양주군의 버려진 노란 물탱크 옆에서 비닐 천막을 치며 홀로 살던 강덕경 할머니의 쓸쓸한 모습을 떠올린다. 45년 해방을 맞아 그녀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이름 모를 일본인 아이를 낳았고, 집에서 쫓겨나며 그 아이는 부산진에 있는 천주교 고아원으로, 그녀는 초량에 있는 한 식당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어느 햇살 좋은 봄날, 네 살 되던 그녀의 아이는 폐렴으로 죽는다. 그리고 1992년 가을 나눔의 집(1992년 10월 3일 서교동의 한 주택가에 전세로 들어선 이래 혜화동으로 한 번 자리를 옮긴 후, 95년 12월 9일 현 소재지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안부 역사관과 함께 자리 잡게 되었음)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는 50여 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며 세상의 외곽에서 표류한다. 그녀는 나눔의 집에 기거하면서 수요집회를 주도했다. 마치 이 세상에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노라” 고발하기 위해 태어난 투사처럼 주먹을 불끈 쥔 여느 할머니들과 달리, 허공을 향해 수줍은 소녀처럼 팔을 대각선으로 내뻗으며 “사죄하라, 사죄하라”라고 외친다. 작가는 이때의 강덕경 할머니의 심리를 예리하게 다음처럼 포착한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부끄럽지만 그럴수록 더 얼굴을 붉히며 오기를 부리는 계집아이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때 그녀는 노인의 피부를 지니고 있는 소녀처럼 보인다. 갑자기 늙어버린, 세상이 꿈을 꾸다 잘못 깨어난 도시라도 된다는 듯이, 그것이 60대 노파의 꿈속이라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가는 그림을 따라 강덕경 할머니의 삶을 쫓아가는 긴 여정을 마치며 97년 그녀가 임종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가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다. 작가는 할머니의 육성이 담긴 녹음기를 반복해 들으며 그녀의 마지막 순간들을, 흰 종이의 바다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와도 같은 섬세한 언어들로 작품의 말미에 아름답게 수놓는다. 마지막 몇주 동안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듯 여권을 갖다 달라고 말했던 그녀. 그녀는 여권을 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일까? 강덕경 할머니는 다큐멘터리를 영화 낮은 목소리를 촬영하던 변영주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깊이 생각할수록 이 영화, 나중에 볼, 다 볼 수 있도록. 내가 저 세상에 가서라도 기도할 꺼고. 그래 가지고 시청자들이 많이 생기 갖고, 누가 우리 좀 도와주기를. 제일로 간절히 바래요, 내가…….”
그리고 작가는 아산병원을 떠나면서 지는 해에 붉게 물들어가는 아산병원 병실 창문을 향해 강덕경 할머니에게 작별의 인사를 보낸다. 마치 반년간 꿈속을 찾아 헤매다니던 한 소녀를 다시 꿈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처럼, “우리가 어디로 가든 마지막에는 오래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있는 곳만이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는 이 공간이 사라지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강덕경 할머니 그림을 통해서 ‘상실된 소녀의 꿈’을 이해하기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은 말 이상의 강렬한 힘을 지닌 언어이자 메시지이다. 그녀는 암울했던 과거의 기억을 그림 속에 토해내며 상실된 소녀의 꿈, 악몽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일본의 만행, 더불어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이 일련의 그림들을 통해 때론 그녀의 어린시절 꿈이 피어나던 진주 남강으로, 그리고 소녀의 꿈이 슬픈 달 속에 사는 마츠시로 위안소로, 다시 총을 겨누며 〈책임자를 처벌하라〉라고 호소하는 그림 속으로 안내된다. 한 소녀의 상실된 꿈과 울분,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먹먹히 우리 마음에 젖어들며 우리는 어느새 ‘못다핀 꽃’ 15세 소녀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달래주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하며 더 나아가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할머니들에게, 다시는 그런 과오가 없길 바라는 우리에게 절실함을 깨닫는다.

▶〈고향 진주 남강〉, 강덕경, 1995년
우선 작가는 〈고향 진주 남강〉(1994년작) 〈길 밝히는 호안〉(1995년작) 〈눈 내리는 풍경〉(1994년작) 등 3장의 그림을 통해 강덕경 할머니의 소녀시절을 재구성하고 있다. 세 장의 그림을 통해 한 소녀의 어린시절을 추리해가는 방식의 글은, 세 장의 그림 묘사와 동시에 진행되며 어느새 그림 속 풍경에 관한 묘사는 자연스레 한 편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 잃어버린 한 소녀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진주 남강 주변에는 대나무 밭이 없고, 진주 수정동은 깊고 울창한 산 속의 마을이 아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고향 집은 깊은 골짜기에 숨은 오두막집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덕경 할머니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꿈꾸며 그린 그림에서 막상 자신의 고향엔 없었던 것들을 그리고 있다. 왜일까? 작가는 이 의문을 시작으로 세 장의 그림 속 풍경을 상상하며 할머니의 가슴 아픈 소녀 시절을 들려준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빼앗긴 한 소녀의 삶을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 본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처럼 대나무 숲 사이로 길고 긴 소로가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숲 속에 길을 걸어 그녀는 몽상 속에서 가까운 미래에 자신이 되어 있을 한 여자의 꿈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깐 그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호안의 달빛이 꺼지지 않았다면, 어린 위안부 소녀로 마츠시로의 위안소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밤마다 남자들에게 짓눌리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에 할머니의 이야기가 갑자기 멈추지 않았다면, 그러니 계속 길을 걸어 산 능선 너머의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면.”

▶〈마츠시로 위안소〉, 강덕경, 1996년
한 위안부 소녀의 꿈이 마츠시로 목재 위안소에 걸린 저 붉은 달 속에 살고 있다. 그림이라곤 소학교 때 미술시간에 잠깐 배운 것이 전부인데, 할머니의 붓끝에서 놀라운 상상력의 화폭이 펼쳐진다. 어떤 때는 기이한 백일몽의 한 장면 같고, 때론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포스터를 상기시키는 그녀의 그림은 특히 〈마츠시로 위안소〉에서 소녀의 꿈이 붉은 달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다소 슬프고도 미학적인 상상에서 한 편의 서글프고 아름다운 동화로 승화되고 있다.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흰 뼈로 이루어진 새가 붉은 달 속으로 스미고 있다. 소녀는 기도를 드리는 중이다. 저고리는 붉고 치마는 희다. 소녀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녀의 꿈은 붉은 달 속에 산다. 그리고 달은 위안소 지붕에서 자라난 거대한 호박처럼 걸려 있다. 위안소 오른쪽 밭에 키 큰 소나무가 자라 있고 유령처럼 보이는 형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아니면 소변을 보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미미하고 희박하다. 위안소 앞엔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채소 밭, 키 작은 채소들이 우르르 집단을 이루어 위안소로 기어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높고 험준한 산들이 위안소 건물 뒤에 불길한 병풍처럼 서 있다. 이 모든, 빈틈없이 요밀한 구도로 그려진, 기이하고 평온한 악몽 속의 저녁 풍경.”

▶ 〈빼앗긴 순정〉, 강덕경, 1995년
소녀의 무참하게 벌거벗겨진 몸, 수치심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소녀는 지금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깊게 뿌리박은 나무로 존재하는 일본 군인이 한 소녀를 겁탈하려는 순간, 소녀의 악몽이 검은 나무에서 처연한 벚꽃들을 휘날리게 하고 있다. 분홍색으로 점점이 져 내리는 처참한 비명들. 강덕경 할머니는 이 그림의 제목을 〈빼앗긴 순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작가는 이 그림의 긴박성, 위급함, 공포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단단한 껍질의 나무 둥치 속엔 음탕한 인어가 살고 있다. 그는 은색 지느러미 대신 흑갈색 뿌리를 달고 사납고 근엄해 보이는 황색 군복을 목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있다. (중략) 기이한 직립으로 서 있는 나무, 그리고 그 밑에서 비명을 지르듯 울고 있는 여자. 여자는 얼굴이 없는 것처럼 완강하게 두 손바닥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다. (중략) 끔찍하게도 몸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포와 비명이 밖으로 경련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여자의 벌거벗은 몸도 순식간에 노화의 급속한 진행을 견디지 못하고 쭈글쭈글하게 말라버릴 것처럼 몸은 공포와 창백한 수치, 충격과 비명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터질 것처럼 누워 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강덕경, 1995년
강덕경, 그녀의 화폭 속에서 꿈틀거리는 색채들은 결코 쉽게 길들일 수 없는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다. 그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악몽 속에서 건져 올린 물감들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악몽이 진행 중이란 사실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한 여자의 삶을 악몽으로 몰아간 것들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남성적 폭력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그래서 여전히 정당하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그 어떤 사회적인 요구나 도덕적이고 형식적인 용서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공포와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그녀가 그림 수업을 받고 나서 처음 그렸던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그림을 시작으로 자신의 공포와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낸 또 다른 그림〈정신대 원귀〉를 통해 그 어떤 사회적인 시선과도 타협하지 않는 강덕경 할머니의 순수한 공포와 분노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렬한 적대의식을 담은 두 개의 그림과 대비되는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또 다른 그림 〈화해의 융단〉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어떤 사회적인 제스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쉽게 승화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상처와 분노를 충실하게 감싸안을 때, 그 아픔을 넘어서 보다 진정한 용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상처를 이해하고 연민하기 위해 함께 손을 잡는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화해의 꽃이 만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림 속에 그려진 강덕경 할머니의 분노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까닭에 나무 기둥 주위로 평화를 상징하기 위해 그려놓은 비둘기들마저, 따뜻하게 승화된 한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총살되는 자의 죽음을 반기러 저승에서 날아온 백색 까마귀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강덕경 할머니에 대한 강렬한 매혹에 사로잡혔다. 그건 우리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직 용서가 되지 않는데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사회적인 책임감 때문에 거짓으로 내미는 화해의 손길 같은 가식적인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강덕경 할머니의 〈사죄〉란 그림에서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깨끗한 채소처럼 보이는 무궁화 꽃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정성 들여 그렸을 하늘이 언덕으로 잠잠히 스미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이 맑게 웃는다. 우리의 오랜 슬픔이 무엇이든, 그리고 어디에서 흐느껴 울고 있든, 어떻게 서로를 부둥켜안든, 만약 우리가 인간이란 혈육의 종으로 묶여 있다면. 우리가 서로를 끝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라면,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용서와 화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만,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결코 쉽게 보아 넘기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손길들의 연대가 이루어질 때,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지만, 오히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에 진정 화해의 길이 열리는 날은 영영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시대적 배경
1973년 일본에서 출판된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센다 가고千田夏光 지음)라는 소설이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 위안부(慰安婦,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s)라는 단어 자체가 이전에 쓰이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군인들 사이에서 당시 군위안부는 ‘군인 오락소’ 혹은 ‘특급호텔’로도 불렸을 정도인데, 일본 정부는 30여 년 가까이 ‘위안부의 강제 연행 사실’을 암묵적으로 숨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1988년 2월. 한국교회 여성 연합회 윤정옥을 비롯한 세 명이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흔적을 찾아 일본과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2년 후 1990년 1월 4일부터 24일까지 한겨레신문에 4회에 걸쳐 ‘정신대의 원혼 서린 취재기’란 제목의 글을 연재했고,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각종 여성지원단체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듬해 1991년 8월 한국 내에서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1997년 별세)에 의해 위안부의 역사적 실제와 피해상이 구체적으로 증언되었고, 92년 2월부터는 한국정부에서 피해자 신고센터를 개설하여 위안부들의 신고 접수와 피해 증언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강덕경 할머니도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하고 그해 가을 ‘나눔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에서는 당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위안소를 확장시켜 나갔는지 강덕경 할머니의 삶을 매개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군부는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1934년 만주사변 이후로 설치하기 시작한 위안소를 대대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1937년 12월 11일 상해 파견군은 중지나 군 사령부로부터 위안소를 설치하라는 명령을 하달받고, 사병들의 민간인 강간 방지와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동아시아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되기 시작한다. 조선, 중국을 비롯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의 수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되었는데, 당시 상해로 보내지기 위해 계획된 위안부 여성만 3천 명이 넘는다.
위안부로 보내진 여성들은 대부분 열악하고 빈곤한 생활을 하던 하층 계급이었고, 조선인 모집업자들은 좋은 공장이나 군병원에 간호부로 취직시켜준다고 속여 이들을 데리고 갔다. 심지어 친아버지가 딸을 파는 인신매매 형태의 동원도 있었다. 1938년 들어 중지나파견군을 비롯한 일본 군부는 전선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진 위안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위안소 설치와 이용 규정에 관한 토의를 시작한다.
1940년 일본은 도조 히데키(육군대신을 거쳐 총리대신의 자리에 오른 인물)를 중심으로 미국과의 전쟁을 불사하고라도 중국을 점령하고 각국 열강들이 분할한 인도차이나 반도와 미국령에 속한 필리핀, 네덜란드령인 동인도제도를 잇는 거대한 아시아 제국을 일본의 손안에 넣고자 하는 야망이 불타고 있었다. 1941년 11월 26일 미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자, 일본은 12월 7일 일요일 오전 일본의 연합함대는 진주만을 공격한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됨으로써 일본은 동태평양 전역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각국의 식민지에서 더 많은 수의 징용과 징병, 그리고 위안부들이 동원된다.
일본은 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한 후 태평양 제도에서 미군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 섬을 잃어가면서 다급해진 일본은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학생들을 근로대 모집에 동원하기 시작했고, 43년 여름 덕경도 일본 담임선생으로부터 여자 근로대 모집에 참가할 것을 권유 받는다. 일본에 가서 돈을 벌 수도 있고 또한 교육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선생은 말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유학인 셈인데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교육을 받기를 동경하던 시절이었다. 까닭에 덕경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 한 명과 함께 여자근로정신대에 자원했다. 진주를 떠나 마산을 거쳐 부산에 이른 그녀는 수송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간다. 이렇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소녀의 꿈은 상실되어 갔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나눔의 집 역사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콘돔에 눈길이 머물고 있다. 오키나와의 향토 사학자 구니요시 이사무 씨는 어느 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보급창고였던 우라조에浦添 마에다前田의 진지호 터에서 이 찢어진 콘돔을 발견한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군대가 군인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을 거느리고 다녔다.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과 독일군이 그러했으며 심지어 한국 전쟁 당시의 남한군 또한 위안대를 조직해 운영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리고 굳이 전쟁 당시가 아니라 할지라도 군대가 있는 곳의 근처엔 어디에나 군인들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의 집단이 있었다. 일례로 한국정부가 미군을 위해 마련한 동두천 일대의 기지촌, 그리고 전방의 고립된 군인들을 위한 그 무수한 티켓 다방들의 존재가 그러하다. 까닭에 당시 콘돔이 일본 군대의 보급품에 속해 있었다는 건 그것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여성이 남성들의 사회인 군대를 위해 봉사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성이 도구로서 존재했다는 것은 그들 역시 콘돔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을 위해 지급된 보급품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어떤 신분이었고, 또한 어떻게 그곳에 갔든 애국이라는 장엄하고 숭고한 사기극 속에서 그들은 충실한 소품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구니요시 이사무 씨가 이 콘돔을 발견한 것은 일본군 보급창고가 있던 우라조에마에다의 진지호 터에서가 아니라 규정한다. 작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 콘돔은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는 위안부들의 확장된 검은 동공으로부터 건져 올린 것이다. 그들의 망막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영상으로부터, 끔찍하게도 바닥이 찢어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우물 속 기억으로부터. 그는 할머니들의 꿈속으로 여전히 꿈틀거리며 기어들어오는 이 환형동물을 주워 올린 것이다. 혹은 주름진 입을 징그럽게 벌리고 있는 악몽의 입구를 발견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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