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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와집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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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과장도, 꾸밈도 없는 최초의 증언

1. 방랑의 세월
만남
소녀 시절
흥남에서 오키나와로
빨간 기와집
전쟁
황군皇軍의 신발
도카시키 섬으로

2. 세 섬에 설치된 위안소
도카시키 섬
하츠코의 체험·징용병의 도망·가즈코의 그 후
자마미 섬
아카 섬

3. 신례원으로
신례원으로

해설 근대화의 미로 속으로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52g | 145*200*18mm
ISBN13
9791185928029

책 속으로

많은 피해자가 봉기 씨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고통을 전쟁 중에 겪었다. 그리고 현재 가난하게 혼자 살고 있다. 이들이 홀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위안소가 낳은 피해의 결과였다. 어떤 사람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궁이 파괴되었고, 어떤 사람은 무수한 일본군 장병에게 유린당한 몸으로 결혼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못할 짓이라며 독신을 고집했다. 결혼을 해도, 위안소에 있었던 사실을 남편이 언제 알게 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그러면서 과거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견디다 못해 진실을 밝힌 뒤 부부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해 이혼에 이른 사람도 있었다. 봉기 씨처럼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무서운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6~7쪽)

수류탄으로 자결한 사람, 수류탄이 터지지 않자 갖고 있던 톱이나 쇠스랑?칼 등을 사용한 사람, 그것조차 없어 나무토막으로 서로를 때린 사람, A고지에서 날아온 박격포를 맞고 폭사한 사람 등 그리 넓지도 않은 계곡 기슭에 약 300명의 시체가 첩첩이 쌓여 있었다. (171쪽)

아버지 최부기 씨는 지주로부터 소작지조차 얻지 못하고 농가에 고용되어 일했다. 어머니 이정순 씨는 친정에서 세 아이를 키우다 친정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가족이 모여 살 형편도 안 되는 빈곤을 견디지 못해 마을을 떠났다. 봉기 씨는 열일곱 살에 신례원에서 나온 뒤 방랑의 세월을 살았다. 남동생 용갑은 행방불명. 신례원 부근 마을에서 농사꾼으로 살면서 노쇠한 언니 봉선 씨도 지금은 안주할 곳이 없다. 50여 년 전에 뿔뿔이 흩어진 봉기 씨의 가족은 지금까지도 서로 행방을 모르는 채 긴 세월을 살아왔다. (302~303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배봉기 할머니의 삶에서는 식민지 한국 사회, 전쟁, 딸들의 굴레가 보인다. 식민지 한국의 여성들이 일본이 저지른 전쟁 속으로 어떻게 끌려 들어갔으며 그 전쟁 속에서 인권을 유린당한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7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절규가 배봉기 할머니의 삶에 절절하게 스며 꿈틀거리고 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과장도, 꾸밈도 없는 최초의 증언
배봉기 할머니(1914~1991)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주인공이다.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남의집살이를 전전하던 중에 ‘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데’, ‘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리고 있으면 저절로 바나나가 떨어지는 데’가 있다는 ‘여자 소개꾼’의 말에 속아 자신도 모르는 새 위안부의 길에 들어섰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1944년 가을 도카시키 섬으로 끌려가 ‘빨간 기와집’이던 위안소에서 성노예가 되었으며 패전 후 일본에서 잘려 나간 오키나와에서 아메리카 세상이라 불리던 시대를 살았는데, 1972년에 오키나와가 일본 땅으로 복귀되자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고 강제퇴거 대상이 되었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신청하면 특별 체류 허가를 내주는 조치가 취해져 배봉기 할머니는 그것을 신청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관의 취조를 받았다. 그 과정에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말하자면, 특별 체류 허가를 받는 대가로 ‘전 위안부’의 증언자로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배봉기 할머니는 ‘칼로 목을 콱 찌르고 싶은 심정’을 참고 살았다. 때로 언론을 기피했다. 뼈저리게 호소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면 몇 년에 걸쳐 반복된 취재 작업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는 70여 시간분의 테이프로 남았다.
《빨간 기와집》은 과장 없이, 꾸밈도 없이 배봉기 할머니의 고지식할 정도로 솔직한 증언에 힘입어 만든 작품이다.

기억해야 하는 삶, 끝나지 않은 이야기
눈 밝은 독자라면 《빨간 기와집》에서 이상한 점이 보일 것이다. 언론을 통해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로 ‘배’봉기 할머니가 알려졌는데, 저자가 할머니의 고향을 찾아가서 확인한 호적에는 할머니 부친의 이름이 ‘최’부기로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의도적인 오기에는 그간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세상에 드러낸 배봉기 할머니는 바로 일본 땅에 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당히 고개를 들고 산 지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배봉기 할머니가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어 사실대로 밝히지만, 《빨간 기와집》을 처음 출간할 무렵 저자는 배봉기 할머니와 그 가족에 대한 보호 장치로 ‘성姓’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처음 나온 1987년 이래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는 수요집회는 1992년에 시작되어 1100회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살아 있는데도 일본은 사죄와 배상은커녕 역사를 부정하는 억지를 쓰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70년 가까이 흘렀지만 할머니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배봉기 할머니의 삶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힘없는 이들에게 강요된 전쟁: 오키나와 집단 자살 사건과 군 위안부
배봉기 할머니가 끌려간 오키나와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을 겪은 곳이다. 미군이 상륙한 1945년 3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이 약 20만 명이고, 그중 오키나와 주민이 15만 명이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이 희생된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희생 중에는 ‘집단 자살’이라는 믿지 못할 사건도 있다.
명예나 충절을 위한 죽음을 뜻하는 ‘옥쇄玉碎’를 완수하라는 군 사령부의 명령, 미군에게 잡히면 능욕과 잔혹하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불안이 수많은 사람을 자살로 이끈 것이다. 섬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말에 군 위안소의 설치를 받아들이고 집과 땅과 농작물과 노동력을 내준 오키나와 사람들 중 수백 명이 목숨까지 바친 사정을 보면, 배고픔이라도 면하고 싶다는 바람밖에 없이 순종하며 살다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위안부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해 군 위안소과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곡차곡 담긴 《빨간 기와집》은 단순히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인 위안부’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상처가 국경을 넘어,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참혹하게 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군 위안부 문제에 우리가, 전 인류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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