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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양장
김현균
창비 2008.05.15.
원제
Los adioses
베스트
스페인/중남미소설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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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 작별의 전략

아디오스

에필로그 - 소설 주인공으로서의 독자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 『아디오스』, 독자에게 바치는 오마주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콤플루텐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낮은 인문학』(공저) 등을 썼고, 루벤 다리오 시선집 『봄에 부르는 가을 노래』, 파블로 네루다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세사르 바예호 시집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 로베르토 볼라뇨 시집 『낭만적인 개들』, 마리오 베네데띠 소설 『휴전』,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김수영 시선집 『Arranca esa foto y usala para limpiarte e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콤플루텐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로 있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낮은 인문학』(공저) 등을 썼고, 루벤 다리오 시선집 『봄에 부르는 가을 노래』, 파블로 네루다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세사르 바예호 시집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 로베르토 볼라뇨 시집 『낭만적인 개들』, 마리오 베네데띠 소설 『휴전』,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김수영 시선집 『Arranca esa foto y usala para limpiarte el culo』, 김영하 소설 『Tengo derecho a destruirme』, 한국 현대문학선 『Por fin ha comenzado el fin』(공역)을 각각 멕시코, 스페인, 콜롬비아에서 출간하였다.

김현균의 다른 상품

저자 :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1990년 우루과이 몬떼비데오에서 태어났다. 스물한살에 사촌 마리아 아말리아와 결혼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하여 로이터 통신사에서 일했다. 1955년 귀국한 뒤 저널리즘에 종사하다 1957년 시립도서관장에 임명됐다. 보르다베리의 독재체제하에서 반체제적인 작품을 수장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단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으며, 결국 1974년 망명길에 올라 스페인에 정착하였다. 1963년과 1980년에 각각 우루과이 국가문학상과 세르반떼스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까지 대체로 베일에 싸인 작가였지만 후에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의 선구자로 새롭게 평가되었다. 1944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 작품으로 마리오 바르가스 요싸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소설의 출발점으로 평가한 <우물>, 허구의 공간 싼따 마리아를 창조해낸 <짧은 생애>, 현실의 그로테스크한 캐리커처를 보여주는 <조선소>, <죽음과 소녀>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9쪽 | 264g | 134*195*20mm
ISBN13
9788936471415

책 속으로

『아디오스』, 독자에게 바치는 오마주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는 1993년 죽음을 앞두고 문학적 유서처럼 써내려간 마지막 소설 『이제는 상관없다』(Cuando ya no importe)를 발표할 때까지 오직 문학의 외길만을 걸었던 진정한 작가다. 그는 거의 바깥출입 없이 허구세계에 몰입한 채 마드리드의 아파트 침대 위에서 마지막 12년을 보냈다. 이 기간에 그가 한 일이라곤 읽고 쓰는 것이 전부였으며, 최후의 순간에도 손에 한권의 책을 든 채 숨을 거두었다. 읽고 쓰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네띠는 결코 글쓰기의 노예가 아니었다. 문학을 “연인 같은 존재”로 여겼던 이 “게으른” 천재에게 글쓰기는 행복이었고 존재이유였고, “그 쾌락은 쎅스와 같이 강렬한 것”이었다.

오네띠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80년에는 스페인어권 최고 권위의 세르반떼스상을 수상해 그 문학성을 널리 인정받은 바 있다. 심지어 그가 몬떼비데오가 아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슈퍼스타는 보르헤스가 아닌 오네띠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찍이 지방색이 강한 지역주의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도시문학의 문을 열었던 그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근대성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였으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소통 단절과 인간적 고뇌를 그린 첫 소설 『우물』은 진정 현대적인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소설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70년대 이전까지 오네띠는 부당하게도 오랫동안 잊힌 작가였다. 동시대의 문학흐름과 동떨어진, 작가의 극히 염세적인 세계관도 그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오네띠는 가상의 공간인 싼따 마리아(Santa Maria)를 배경으로 하거나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련의 소설을 가리키는 ‘싼따 마리아 싸가(saga)’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싼따 마리아는 『조선소』(El astillero, 1961), 『훈따까다베레스』(Juntacadaveres, 1964)를 거쳐 『바람이 말하리라』(Dejemos hablar al viento, 1979)에서 큰 화재로 파괴될 때까지 오네띠의 많은 작품에서 중심무대가 된다. 작가는 싼따 마리아가 그가 태어난 도시 몬떼비데오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마꼰도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윌리엄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짧은 생애』(La vida breve, 1950)는 싼따 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첫 작품이자 장차 다른 소설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될 여러 인물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또한 욕망과 기만, 환멸이라는 오네띠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작가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작품으로 알려진 『아디오스』는 폐결핵환자인 전직 농구선수와 그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마을에 단 하나뿐인 가게 주인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여기에서 오네띠의 서술기법은 씰비아 몰로이가 말하는 ‘가십 픽션’(fiction of gossip)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개인(가게 주인―내레이터)이 다른 사람(독자)에게 제3자(전직 농구선수)에 관한 가십을 전한다. 가십은 언제나 권력게임이거나 혹은 자신의 지각을 다른 누군가에게 부과하려는 욕망이다. 가게 주인의 서술은 매혹적인 구술 이야기의 기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흡인력 있는 가십거리가 된다. 이는 독자의 공모를 유도하며, 우리는 가십의 전달자인 내레이터의 서술시점에 갇히게 된다. 처음부터 내레이터는 단 한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예언능력의 소유자로 나타나며 ‘불가피한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는 내레이터의 예언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이 전직 농구선수에게 전해주지 않고 보관해둔 편지를 통해 여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레이터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분노”를 그의 공모자인 독자도 그대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디오스』에 접근하는 가장 초보적인 하나의 독서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기존의 독서방식과 작별해야 한다. 『아디오스』는 독자에게 많은 질문과 선택을 허락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예리하게 자극하는 열린 소설이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내레이터인 가게 주인은 처음부터 신뢰할 수 없는 존재다. 간호사나 웨이트리스 같은 정보제공자들의 말은 언제나 내레이터의 일정한 여과과정을 거쳐 전달되므로 그 이야기는 주관적이고 부분적이며,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한다. 기껏해야 이야기의 한 버전에 불과하며 불가피하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다른 이야기(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인접한 의미단위들을 연결하는 독서로부터 일어난 것 대신 일어났을 수 있는 의미단위들에 대해 추정하는 독서로 이행할 때, 『아디오스』 읽기는 일종의 ‘의심의 해석학’(Verdachtshermeneutik), 즉 애매성(ambiguity)과 의심이 요구하는 해석들의 유희로 탈바꿈한다.

이야기의 애매성 때문에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곧잘 비교되는 이 작품은 독자를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진실들에 대한 탐색으로 끌어들인다. 볼프강 루칭은 「에필로그」에서 이 소설의 수수께끼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을 제안하고 있다. 작품 속의 소녀가 전직 농구선수의 딸이자 연인일 수 있다는 그의 분석은 내레이터의 예언능력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다. 실제로 내레이터는 자신의 시야에 잡히는 것 이상의 복잡한 가능성을 예견할 수 없다. 목격자도 없고 자살 메모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직 농구선수의 죽음도 일종의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이처럼 독자의 관점에 따라 전직 농구선수의 근친상간과 피살, 더 나아가 그와 내레이터 간의 잠재적인 동성애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또 텍스트 안에는 이러한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실마리가 숨겨져 있다. 결국 그 어떤 것도 확실치 않으며 작가는 생략의 원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씨퀀스, 즉 독자의 상상력을 위한 틈새를 남겨둔다. 현대의 소설가들 중에서 오네띠만큼 독자의 해석전략에 크게 기대는 작가는 거의 없다. 오네띠는 「작가의 말」에서 루칭의 ‘해결’은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걸 제공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 나사의 나머지 반회전은 텍스트의 진정한 주인공인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독자는 매번 작가가 치밀하게 설치한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정적 해결을 허락하지 않는 텍스트에서 결정적 해석을 얻고자 하는 승산 없는 게임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은둔의 작가,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의 선구자, 게으른 천재로 불리는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Juan Carlos Onetti, 1909?94)의 소설 [아디오스](Los Adioses, 1954)는 짧고 단순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설문법을 창조해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리고 실은 소설문법뿐 아니라 소설 자체에 대해,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독법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문제작이다.

한때 농구선수로 스포츠신문의 톱을 장식했던 퇴역 스타가 결핵에 걸려 산중의 요양도시로 찾아든다. 그는 병의 위중함 때문이 아니라 회복 가능성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치료를 스스로 방기한다. 호텔에 머무는 그에게 두 종류의 편지가 번갈아 날아든다. 겉봉이 손으로 씌어진 것과 낡은 타자기로 씌어진 것. 발신인은 둘 다 여성이다(혹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이 우편물을 받아 그에게 전하는 가게 주인 ‘나’는 두 여자와 그의 관계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가게를 드나드는 주변인물들-간호사, 호텔 웨이트리스, 의사-과 함께 그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느날 한 여자가 그 도시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어 또 한 여자가 나타난다. 나이든 여자와 어리다 할 만큼 젊은 여자. 그 둘은 어색하게 마주치고 ‘그’와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나이든 여자가 돌아가고, 어린 여자의 체류를 위해 농구선수는 산장을 얻는다. 이윽고 젊은 여자가 돌아가자 다시 두 종류의 편지가 번갈아 날아든다. 산장에 계속 머물던 남자는 죽는다. 가게 주인과 주변인물들은 두 여자와 그의 관계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하고, 어린 여자와 관계를 가진 듯한 그를 비난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게 주인은 그에게 전하지 않은(혹은 자신이 빼돌린) 편지를 통해 이 관계의 진실을 알게 된다. 어린 여자는 과연 그에게 누구였던가?
결말에서 밝혀지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 독자들 모두는 이제까지 읽어온 이야기의 의미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서 시작된다. 줄거리를 파악하며 읽는 것, 결말에 이르러 화자가 느낄 법한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실은 이 소설을 읽는 하나의 방식에 그칠 수 있다. 줄거리가 중요하기보다 반전이 중요하고, 반전보다는 책읽는 내내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화자들’이 중요하며, 그들의 이야기 방식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진짜 독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통해, ‘그’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전달받아온 이야기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나. 결국 모든 이야기는 가십과 풍문이었나. 이야기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사실이라 믿어온 것들이 거짓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우리의 오해 때문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들의 자기기만 때문인가, 소문이 가지는 허위의 속성 때문인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인 이 게으른 천재는 독자가 이야기 속에 뛰어들기를, 끊임없이 의심하기를,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생전에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은 이 짧고 매력적인 작품은 소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문학독자에게 더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이다. 가볍고 쉬운 이야깃거리로서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무척 낯선 작품일 테지만, “독자에게 많은 질문과 선택을 허락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예리하게 자극하는”(?옮긴이의 말?)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장면, 가게에 들어서는 ‘그’의 손을 줌렌즈처럼 붙잡아 묘사하는 대목은 ‘라틴아메리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평가된다. 책말미에 독일인 특유의 정확성을 살린 볼프강 A. 루칭의 비평과 이를 간결하게 받아낸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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