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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퀴, 레일 그리고 동물의 구속
자유로운 케찰을 보다. 두 번이나! 사랑에 빠진 먼지 나비의 비행, 현자의 꿈 제주, 하하 새들의 노래 침묵과 탈창조 몇 사람의 얼싸안기 희생 혹은 상호 의존? 지금의 이주자… 그리고 예전의 이주자 옮긴이의 말 |
Miguel Rocha Vi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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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스트 관광객은 더는 타지마할과 만리장성 엽서에 만족하지 않아. 지금은 그에게 동양인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패키지가 제공돼.”
“그 모든 것은 자기애적 경향이라고 불리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더 근사한 의상이나 이국적인 장소가 필요하지. 자기애적인 관광객은 자신이 바라보고 있던 것으로 위장할 수 있어. 그와 타자는 사진 포즈의 플라스틱 자아 속에서 하나가 되는 거지.” “타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순례자가 있어.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배움을 얻기 위해, 또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떫은맛을 음미하며 남쪽의 한 가족과 마주 앉아 마테차를 마시는 여행자…” “맞아. 아직은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예약하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 바다에 닿기 위한 사전 예약 없이, 강물에 발을 담그듯, 삶과 더불어 걷기 시작할 수 있어.” ---「여행, 바퀴, 레일 그리고 동물의 구속」중에서 “마치 ‘흔들어 터시오!’라고 말하듯이 삶이 머리와 얼굴에 쌓이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덮고 있다고 생각해 봐.” “눈 덮인 (중부 안데스의) 거대한 산에서 배우는 것이 바로 겸양이야. 그 산신들에 둘러싸여 인간에게 걸맞은 진정한 크기로 돌아가는 거지. 거대한 건물 위와 기념비적인 초인간적 건축물 아래를 걸으며 경험하는 가공의 우월성을 뽐내지 않고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 말이야.” “기후에 침식된 빙하 위에 서서 떠돌아다니는 눈옷 입은 북극곰의 이미지… 또는 야생동물 인형처럼 안마당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매자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나무늘보… 이것들은 생태 비평이 허위로 만들어 낸 사례가 아니야… 치아파스에서 우리에 갇힌 케찰을 보았어. 긴 깃털이 떨어진 상태였는데도 아직 뻔뻔하게 사진을 찍어 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인간이라는 종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래서 그들과 맞서야 했어.” “케찰은 공허한 시선으로부터 도망쳐 고속도로와 기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 삶의 내밀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꽃을 피우는 법이지. 어떤 투어도 우리를 그 아름다움으로 데려갈 수 없고 그곳에 이르는 유일한 가이드는 마음이야.” ---「자유로운 케찰을 보다. 두 번이나!」중에서 “중력의 법칙은 인력의 법칙이기도 해. 땅은 하늘의 애무를 요구하지. 아무리 가벼워도 무게가 있는 것은 결코 지구의 흙의 부름을 피할 수 없어.” “심지어 먼지도 사랑에 빠져 끌려가지…” “케베도가 노래한 사랑에 빠진 먼지는 미래의 우리야. ‘먼지가 되리라. 그러나 사랑에 빠진 먼지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시대를 통틀어 시가 우리에게 제공한 가장 사실적인 동시에 가장 희망적인 이미지 중 하나야.” “고대 메소아메리카 신인 늙은 불의 제왕 테오티우아칸의 이미지가 생각나. 노인은 엄청난 무게의 의례용 화로를 머리에 얹은 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어. 노인의 몸짓은 우리에게 노년의 기품, 즉 머리 위에 남은 불의 잔재 같은 연륜을 드러내지. 상상의 재는 백발에서 빛을 발하는 비교적 견딜 수 있는 하중을 생성해.” “노인이 머리 위에 얹고 있는 재는 그의 일생 동안 타버린 모든 불의 잔해야.” “삶의 현실에 대한 매우 조형적인 표현. 그런 신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진실된 거울이야. 그것은 무릇 예술의 신성한 속성 중 하나지.” “시간을 측정하는 최상의 도구는 시계가 아니라 거울이야.” ---「사랑에 빠진 먼지」중에서 “나란히 동행하는 두 개의 1이어서 나는 11이 참 마음에 들어. 11은 대화의 해시태그야.” “맞아. 두 개로 늘어나는 1이기도 하지. 11은 대화를 나누며 함께 길을 가는 여윈 두 사람이야.” “11은 디네족 여성의 매우 정교한 직물과도 같아. 마지막 한 땀으로 12의 완벽함에 도달할 수 있음에도 그녀들은 결국 불완전한 미완성의 바늘땀을 뜸으로써 오만함과 완벽주의의 환상을 피하지. 11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연습을, 도착이라기보다는 길을, 대성당이라기보다는 예배당을, 정상보다는 산을, 칼럼보다는 잡문을 의미해.” “11은 통합을 꿈꾸지 않는 것 같아. 11이 1이라면 누구와 대화를 나누겠어? 너무 지루해서 자신의 그림자와 대화를 시작한 게으른 신처럼 말이야.” ---「나비의 비행, 현자의 꿈」중에서 “어느 날 태평양 연안 해변에서 두에르메아우토피스타스와 함께 달린 적이 있어. 그 긴 잿빛 모래사장이 다한 곳에서 이 친애하는 친구가 스핑크스 자세로 앉아 무無를 바라보기 시작했어. 나는 전율을 느꼈어. 나도 그 옆에 앉아 파도가 물러나고 들이닥치는 소리, 들이닥치고 물러나는 소리를 들었어. 비로소 우리는 침묵을 공유하게 되었어. 그 어떤 인간과 같이한 침묵보다 더 편안하고 깊이가 있었어.” “아르카, 나는 침묵이 물 한 컵 같다는 상상을 해.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수수하고 투명하고 일상적인 물.” “나는 대양처럼 광대한 신이면서, 동시에 어릴 때 놀던 물놀이 풀만큼 작은 신을 원하지. 마 른 잎이 초록을 되찾기 위해 마시는 작은 이슬방울 같은 작은 신을.” “모든 피todas las sangres가 오직 하나의 강으로 흘러들면, 우리는 ‘깊은 강들’이라는 비전을 상실하고 말 거야.” “극동과 관련된 우리의 평가들은 너무나 한계가 많아. 그래서 우리는 겨울이 끝날 무렵 얼어붙은 호수 위를 가는 여우들처럼 조심스럽게 걸어야 해. 아니 극심한 기후 위기 시대의 여우들처럼이라고 해야 하려나.” ---「침묵과 탈창조」중에서 “웨스트민스터사원은 도쿄와 서울의 왕릉에 해당해. 조상을 숭배하는 장소이자 왕실을 기리지. 영국 왕실의 섬나라 자아, 과거에 세계의 절반을 장악했던 제국을 떠올리며 한숨짓는 그 자아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다시 현재화되어 제국의 갈망과 깊은 향수를 표현하면서 하늘을 찌르고 있어.” “하지만 북미 대평원의 라코타 수족族의 티피, 즉 예의 하늘을 향하는 기둥을 갖춘 그들의 천막이 표명하는 하늘 열망은 그와는 달라. 콜롬비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눈흐와칼라의 코기족 주택, 즉 칸쿠루아의 원추형 지붕과도 다르고. 양 족속의 건축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세계관을 발견하게 돼.” ---「몇 사람의 얼싸안기」중에서 “우리 모두는 과거의 합sintesis과 현재의 합의 딸이요 아들이지. 우리 모두가 새로운 증거인 셈이야. 개개인마다 유일한 조합이면서, 또한 공통의 정신?생물학적 구조들의 조합이야. 그 구조들은 반복되고 재조합되는 기본 요소들로 구성되고, 불가피하게 사회문화적 조건의 영향을 받지. 물론 탐구도 하면서 동시에 상징을 통한 상상적 성찰의 길을 좇은 문명들도 있어. 탄트라교와 시바교 같은 일부 인도철학들이 그런 경우야. 또 호주의 일부 선주민 민족의 몽환시夢幻時 알처린가altjeringa, 아마존 무 루이족의 제의적 사유, 마야인 사이에서 아직 유효한 철학적 달력 체계 등의 선주민 철학들도 그런 경우이고. 무루이족 혹은 우이토토족의 노래꾼들에 따르면, 최초의 아버지 나이누에마는 꿈에서 본 실 한 가닥의 도움으로 무無의 닥을 더듬어 보았어… 수많은 아름답고 적확한 시?철학적 설명이 인간은 그림자, 꿈 혹은 공空과의 대화 속에서 형성된다고 암시하고 있어. 우리는 1에서 시작해서 또 다른 1에 이르는 대화들을 통해 단단해져.” ---「지금의 이주자… 그리고 예전의 이주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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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시원始原 사이를 오가는 순례 여행길에 펼쳐지는
몽환적이고도 우아한 시적·철학적 대/화 콜롬비아 작가 미겔 로차 바바스의 『아르카와 이라―비인간화 시대의 대/화』는 여행문학이나 철학 에세이의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독특한 장르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전 지구적 행보라 할 만한 저자의 다양한 여행이 바탕을 이루지만, 일반적인 여행 보고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미 첫 장에서 소비자이면서 소비의 대상이 되는, 쉽게 상품 취급을 당하면서 만나는 사람이나 대상을 상품 취급하는 여행객(관광객)과 거리를 두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책 속의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순례의 여정으로 배치된다.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순차적이거나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아시아나 다른 공간과 연결되고, 시간 또한 연대기적이 아니라 고대와 현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거나 교차된다. 제목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이 책은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모두 ‘아르카’와 ‘이라’라는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친구 사이의 남미인들이면서 동시에 아르카와 이라는 ‘시쿠’ 혹은 ‘삼포냐’라고 부르는 안데스 취주악기를 의인화시킨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화는 실제에 바탕하면서 하나의 작품 속에서 재배치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따로, 또 함께 여행한 것들을 토대로 대화하며, 가끔은 두에르메아우토피스타스라는 긴 이름의 야윈 개와 더불어 걷기도 한다. 아르카와 이라는 일종의 대/화의 메타포이다. 이들의 대화는 공명하는 악기의 연주를 닮았고, ‘새들의 노래’(6장)를 닮았고, 두 날개로 꿈처럼 나는 ‘나비의 비행’(4장)을 닮았다. ‘현자의 꿈’(4장)들을 오늘날 다시 해석해 내고자 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지만 제주도(5장)를 비롯한 아시아와 다양한 지역으로도 이어지면서, 장자와 타고르, 이주와 관광, 사랑과 연민, 죽음, 우정, 여행, 자연에 대해 논한다. 대화는 도처에서 몽환적이면서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는가 하면 도저한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대화가 미리 정해 놓은 논리적 결론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공명을 따라 움직이며 생생한 사유의 숲을 헤쳐나가는 순례의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는 점이다. 『아르카와 이라』는 시장市場으로 모두 수렴되는 이론과 수학 공식 같은 문학작품이 넘쳐 나는 시대에, 프로그래밍 되지 않은 비평의 세계를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사유는 머리로부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체에서 발현되고, 서사와 상상력과 대화를 통해 쇄신된다. 아르카와 이라의 대/화는 철학, 종교, 과학, 원초적 언어의 기원으로 시적인 회귀를 유도하며, 그 현재상도 포착하게 해준다. 두 사람의 질문, 경탄, 이미지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인간 조건에서 출현하고, 또한 이 조건에 수렴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 조건의 많은 부분은 자연, 문화, 그리고 인간 범주로 국한하면 안 되는 인간을 포함한 일체의 생명과 무생물 등의 합에 빚지고 있고, 이 합과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아르카와 이라』는 한마디로 이주, 배타적 인종주의, 사회생태적 불공정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을 회복하라는 시적·윤리적 촉구이고, 동시에 인간의 만물에 대한 폭력적 우위, 인간종種의 지구에 대한 폭력적 우위라는 인간 중심주의적 현실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맞서고 있는 대화적 비판인 셈이다. 이 비인간화 시대의 대/화는 필시 보다 풍요로운 장에서 지속될 것이다. 한국의 독자인 우리는 이 책의 5장인 ?제주, 하하?를 읽으며 신선한 감동을 얻게 된다. 그것은 우선 그저 가벼운 제주 스케치가 아니라 제주라는 또 다른 세계와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성찰을 담고 있는 데서 얻게 되는 것인데 우리에게 열린 다차원적인 대화의 세계로 나아갈 것을 권유하는 강렬한 초대로 읽히기 때문이다. 『아르카와 이라』가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타자, 타문화와의 접촉을 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문제의식의 하나인 신자유주의적 세계는 이주가 인간 조건이 된 세상, 따라서 타자, 타문화와의 접촉이 일상이 되어 상호 문화적 이해가 없이는 갈등과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여행은 그 인간 조건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두에르메아우토피스타스라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다차원적 대화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장치일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동물,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 의지를 피력한 것이리라. 콜롬비아로부터 전달된 이 독창적인 여행 대화집이 우리의 삶의 여행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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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와 이라』는 가능한 미래들을 논하는 대화로의 초대, 그런 미래들의 구축 가능성으로의 초대이다. 이들은 창조적 노동, 부단한 문화 정체성 발명과 재창조, 우리의 다중 우주에서 서로 대화하는 문화와 종種들의 다양한 사유 및 감성에 의거한 지식 체계 등이 융합될 미래들이다. ??아르카와 이라??는 또한 세계의 인간화에 대한 긴급 촉구, 장차 환경과 인류에 닥칠 더 크나큰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가 다시 만들어야 할 세상에 대한 긴급 촉구이기도 하다.” - 라우라 레마 (프랑스 리옹 2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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