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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판 서문 7
제1권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 51 I. 집필 목적 53 II. 부르주아지 63 환경 | 과두지배계급과 중산계급 | 사회적 게임 | 구부르주아지와 신 부르주아지 III. 중산계급 106 주의주의(主意主義) | 도덕주의 | 중산계급과 상류 부르주아지 | 사생활 보호 신화 | 변화 | 중산계급과 페론주의 | 자동차라는 토템 IV. 룸펜 152 불량배 무리 | 룸펜과 정치 | 변천 V. 노동자 184 구(舊)노동자 | 변화 | 바리오라는 마술적 세계 | 통합과 고독 | 소외와 탈소외 부록 가르델 신화 217 제2권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229 서문 231 I. 일상생활 238 새로운 중산계급 | 하위 계급 | 가족 | 성 해방 | 진찰실로 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 | 밤의 하위문화 | 청년 하위문화 | 폭력과 범죄 대중문화 II. 도시 322 도심과 바리오의?쇠락 |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서 | 사라지는 보행자 공적 공간을 둘러싼 분쟁 | 쇼핑몰 | 카페 | 소음의 포로들 | 파편화 | 도시와 문명 감사의 말 397 옮긴이의 말 399 지은이 소개 405 옮긴이 소개 406 |
Juan Jose Sebr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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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이 본질을 은폐하듯이 사물의 외면이 진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낸다고 인식하면, ‘표면적인 것’은 ‘심오한 것’만큼이나 사회학적 사유에 중요한 것이다. 정말로 전형적인 것은 대대적인 일반화나 이론적 추상화가 간과하는 내밀하고 미묘하며 포착하기 어려운 현실의 양상을 드러낼 수 있다. 분명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루는데도, 헤겔의 말마따나 바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제대로 알기 어려운 법이다. 너무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망각된 사물들에 대해 경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시선, 즉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동질적인 사회에서 전형성이란 민속에 대한 호기심 혹은 관광 안내서의 유쾌한 회화적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들썩들썩하고 분열된 사회에서는 인간과 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의 제시는 역사적·정치적 사건들의 이해를 돕는다.
--- p.57 구부르주아지는 또한 지나치게 튀는 우아함을 멀리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느끼기 때문에 일부러 주목을 끌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특징은 차분한 화려함에 있었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하고 섬세한 분위기였다. 가령, 톤 다운된 옅은 색상, 정숙한 라인, 거울 앞에서 몇 시간씩 수고해서 적당히 흐트러뜨린 매무새, 샤넬 풍의 화려한 간결미 등 모호하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끔은 간결함이 위장된 소박함에 이를 정도였다. 예를 들어 변두리 상가에서나 파는 저렴한 샌들이나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가게에서 파는 그래프 디자인 셔츠 같은 스포티한 차림을 하기도 했다. 간결함은 원하면 언제든 간결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때나 우아한 것이었다. 가령, 궁정 희극에서 목동 역할을 맡은 대공처럼 말이다. --- p.96 실존주의자들에 따르면, 일상적 존재의 비진정성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따른 존재론적 비전이었다. 모든 사람을 표상하고 특수한(particular) 그 누구도 표상하지 않는 중립적이고 익명적인 존재, 그래서 각자가 타인이고 그 누구도 자신이 될 수 없는 그 존재가 중산계급 사람의 특징이었다. 모든 사람과 철저히 똑같이 입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성, 널리 인정받고 용인된 규칙에 맞추고자 하는 의지, 기이한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드는 결정이나 책임감의 번민에서 벗어나, 안정, 평온, 확신, 편안함을 쟁취하려는 욕망에 다름 아니었다. --- p.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의 영향은 모호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묵시론자와 순응론자 사이의 중간적인 관점을 택할 필요가 있다. 즉, 미디어는 한편으로는 대량화(masificacio)를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즉 과거의 라디오 방송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특히 케이블 TV의 경우가 그러하다. 다양하고 까다로운 시청자들을 위한 정교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통해서이다. 아무튼 대중계급의 케이블 접근성이 낮다는 불평등은 잔존한다. 특히 자신들을 겨냥한 수준 낮은 프로그램들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도 불평등을 조장한다. 공중파 채널 프로듀서들이 이러한 소양 결핍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광범위한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킨다는 구실로 쓰레기 프로그램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 p.321 카페의 매력은 미리 약속을 하지 않고 가도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도시 사교의 고유한 특징도 매력이었다. 그리하여 서로의 집을 방문할 일이 절대로 없었을 상이한 연령과 계급의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었다. 카페는 도시 생활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뒤섞임과 이질성을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거의 항상 창가나 벽 쪽 테이블에 앉는 산보객에게 카페는 휴식의 장소를 표상했다. 혼자 있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동일한 상황에 놓인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건넬 필요 없이 시선으로 다른 테이블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를 “다정한 무심함”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딱히 인사는 하지 않지만 격의 없는 시선으로 동작, 자세, 제스처, 옷 입는 방식 등을 파악하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산보객의 의도된 고독은 그를 둘러싼 사회가 고요하게 함께 있음으로 인해 의미가 있었다. --- p.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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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환멸의 현기증 나는 교차,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통해 파헤치는 ‘도시’의 진정한 의미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는 아르헨티나의 문화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후안 호세 세브렐리의 저작이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와 도시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맺는 관계, 도시 공간의 기능 변화 등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을 전한다. 더불어 이 책은 정치학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일상생활과 소외’라는 제목에서 ‘일상생활’은 일상사 연구에 있어 유용한 용어이며 ‘소외’는 자본주의하에서 물화되고 파편화되는 인간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간학제적 분야와 거대 담론이 교차되는 제목은 그 자체로 세브렐리 특유의 ‘가로지르기식 사유’를 표방한다. 또한 1964년 출간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와 2003년 출간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각각 ‘제1권’과 ‘제2권’으로 한 권의 책에 묶여 있는 구성이 책의 독특함을 더한다. “대국이 되지 못한 나라의 대도시” 세계화의 운명을 타고난 도시의 정체성 ‘남미의 파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이루는 라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890년대부터 독립선언 100주년이 되는 1910년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아르헨티나에는 수많은 이민자와 유럽의 전쟁 및 박해를 피해 건너온 망명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1914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였다. 보르헤스가 “진정한 아르헨티나 전통은 모든 서구문화”라고 할 만큼, 지속적으로 유럽문화의 영향권에 있으면서 다양한 언어, 국적, 종교 등이 혼합된 개방성은 곧 항상 “대국이 되지 못한 나라의 대도시”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러나 물론 급작스러운 성장의 이면에는 이민자와 지방에서 이주해 온 도시 빈민의 애환이 있었다. 즉,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역동적인 도시이자 아르헨티나인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갈등의 공간, 온갖 사회적 불평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교차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애증’의 감정이 있었기에 아르헨티나에서도 도시사회학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제1권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일상생활과 소외』(1964)는 혼합과 혼종의 중심지였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20세기 전반기에 경험한 일상문화를 분석함으로써 부에노스아이레스인의 소외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저작을 대대적으로 수정해 새 판본을 내려던 세브렐리는, 책이 출간된 시공간적 배경과 그에 따른 영향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기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2003)라는 별도의 책을 썼다. 여기에서는 90년대 후반기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상으로 에로티시즘, 성별, 청년, 의복 등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주제들을 기준 삼아 장을 나누고, 제1권에 결여되어 있던 도시 이론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두 저작의 결합을 통해, 과거와 현재라는 양 시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모두 살아 본 사람으로서 그는 현재를 통해 과거를 복원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는 시도를 한다. 그가 분석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단순히 성찰의 외적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함께 변화하는 생명력을 지닌 공간이다. 도시를 걷는 사람들과 그 사이를 떠다니는 진실들을 포착하기 누구나 한 번은 도시를 걷는다. 우리가 걷는 도시는 매일같이 다니는 익숙한 길이거나 생전 처음 와 보는 낯설고 무서운 곳일 수도, 또는 우연들이 뒤섞여 발견된 새로운 모험의 공간일 수도 있다. 세브렐리는 정식으로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는 아니지만, 열렬한 ‘도시 산보객’으로서의 경험과 영감에 기초해 이 책을 썼다. 즉 젊은 시절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카페, 영화관 등을 구석구석 쏘다닌 여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는 도시를 분석하기 위해 엄밀한 사회학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도시는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인식하에 에세이적인 글쓰기 방법을 동원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상 사회학’을 전개한다. 더불어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세계의 문학, 영화, TV 프로그램, 예술가 등을 풍부하게 인용하는 해박함은, 독자로 하여금 생동하는 도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세브렐리는 ‘도시의 종말’이라는 현대 도시에 대한 묵시론적 관점을 반대한다. 그는 도시가 역사적으로 국민국가보다 먼저 존재했고 또 그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제2권 『위기의?도시,?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는 시기적인 차이나 도시적 공간 자체의 변모 등으로 인한 대중문화의 융성,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갈등, 쇼핑센터로 대표되는 소비문화, 도시민과 도시적 공간의 파편화 등에 주목하여 전 지구화 시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여 준다. 전 지구화로 말미암아 우리의 일상생활은 ‘세계적인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지역적인 것’을 수용하게 되었고, 나아가 지역적인 것을 세계로 확장시킨다는 ‘글로컬’(glocal)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 도시가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익명성을 바탕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통념을 그는 거부하는 그는 “오직?군중의?소용돌이?속에서,?그리고?낯선?이들과의?불가피한?접촉을?통해서만?인간의?유형과?풍습의?다양성을?용인하는?인성의?배양이?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현대 도시의 문화는 개인이 자신의 연결망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한편 인간관계에서의 사회적 대립의 불가피함 역시 받아들이는 것, 사(私)와 공(公), 개인과 사회, 주관과 객관, 로컬과 보편이 엮이고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도시와 도시 거주자들의 미래는 공동체들의 경계를 초월하는 문제이며, 인류의 운명 그 자체와 관련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 일상의 소외에서 벗어나 삶을 향유하기 일상성의 소외는 진부함, 어리석음, 추악함, 지루함, 패배감 등에 잠겨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사회계급이 겪는 일이지만 소외의 방식은 물론 다르다. 대중계급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들에 대한 불만족 및 욕구, 중산계급에게는 과시하려는 긴장감과 쟁취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상류계급에게는 의례적인 행사들의 반복에서 오는 따분함과 남아도는 부를 창조적 활동 없이 향유하는 데 따른 권태이다. _본문 중에서 그러나 극단적인 탈소외의 추구는 자칫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 결국 세브렐리는 일상성을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혁신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소비가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수용하되 도시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독특한 문화적 공간을 통해 도시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치 현대의 도시가 그러해야 하듯이, 우리의 삶을 내밀하게 가꾸면서도 개방성을 지니고,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변화를 수용하는 ‘균형’의 길을 추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