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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속도로 살아가는 법
어린이 MD 김수연 (uriel2@yes24.com)
2019.11.07.
『잃어버린 영혼』은 작년 이 맘쯤, 날이 스산해지기 시작할 때, 출간되었던 도서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만으로 한정짓기에는 깊이와 울림이 남달라 책장 속에 오래 보관하고 있던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작년에 수상자가 발표되지 않았던 2018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올가 토르가축이 선정되면서 책장 속에 있던 이 책은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첫번째 그림책이라는 타이틀도 최초이지만, 그림이나 담겨져있는 주제가 오늘을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책에는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느날 출장길에 호텔방에서 일어난 남자는 모든 기억을 잃는다. 심지어 자기 이름마저도! 의사를 찾아가 그가 알아낸 병명은 바로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영혼이 주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병명을 듣는 이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크게 공감한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는 의사의 판단에 바삐 걸어가는 출근길 속, 정신 없는 인파 속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했던 숨막힐 듯 한 긴장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영혼은 과연 나와 함께 있는가? 어찌 할바 모르는 남자에게 의사는 처방을 내린다.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영혼이 자신의 속도를 쫓아서 주인을 찾아올 때까지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라고...그리고는 글자 없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펼쳐진다. 바쁜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자연과 이웃, 행복, 사랑, 여유, 일상의 순간들 말이다. 결국 남자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하겠다. 그림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어른을 위한 힐링 그림책이라는 소개에 딱 맞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가 책을 넘기면서 나 자신의 영혼을 찾아가는 힐링 과정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주인공과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그 결말은 직접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
영혼을 기다리는 고요한 시간
얇은 연필 선 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순간들 틀에 박힌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던, 사실은 평범한 한 남자가 어느 날 출장길 호텔방에서 숨이 막힐 듯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순간, 그 어떤 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에 무슨 일로 와 있는지,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다음 날, 그는 의사에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실은 지금 그의 안에는 영혼이 없다는 것.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것. 미처 주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그의 영혼. 그날부터 남자는 도시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천천히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글이 서술하지 않고 열어놓은 이야기의 여백을 차근차근 채워 간다. 어린 영혼이 들러 오는 과거의 공간들. 어떤 날의 파티장과 낡은 레스토랑, 겨울의 빈 공원과 스치듯 흘러가는 기차의 풍경들. 책의 왼쪽은 오고 있는 영혼의 공간이고, 오른쪽은 머물러 기다리는 남자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두 공간은 낡고 빛바랜 바탕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바탕의 재료는 실제로 요안나 콘세이요가 벼룩시장에서 구한 회계장부의 속지여서 사용 당시의 숫자 스탬프가 찍혀 있고, 마치 반복적인 일의 속성을 보여주듯 가지런하고 일정한 모눈이 그어져 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품고 있는 편안한 느낌은 이 책의 외연에까지 확장되어 이어져 있는데, 이를 테면 근사한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촉들이다. 책을 감싸는 표지는 까슬한 종이의 맛을 직접 쓰다듬어 느낄 수 있게끔 언코티드(un-coated)로 처리되어 있으며, 내지의 종이 또한 매끈한 코팅지보다 덜 매끈해도 특별히 손으로 만졌을 때의 질감이 잘 전해지는 종이로 선택되어 있다. 두어 군데 반투명한 트레이싱 지가 곁들어 은근히 비치는 그림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낡아서 해지고 뜯긴 듯한 느낌의 빈티지한 모티프들로 그림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연출했다. 그 위로 영혼과 남자의 시간이 세밀하고도 조심스럽게 그려진다. 연필 선이 만들어내는 모노톤의 장면들은 먹먹하고 때로는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그 간절한 순간들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안녕한가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의 영혼에게 전하는 안부 출장, 일, 시계, 트렁크와 도시 그리고 지친 하루. 애석하게도 남자를 설명하는 표현들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마치 반투명한 종이를 덧댄 듯 남자의 모습 위로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책의 첫 장면,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인 셈이다. 반복적인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공허한 순간들. 어쩌면 틀에 박힌 하루 속에서 영혼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쳐버린 나에게 그리고 답답하고 힘겨웠을 영혼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처럼 건네고픈 그림책이 나왔다. 오늘은 영혼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책장을 넘겨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