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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_ 고구마와 함께한 생애
쑥_ 조선 쑥, 조선 가시내 감자_ 감자, 그 포근포근한 추억 보리밥_ 풍만했던 그 여름의 맛 감_ 내 마음의 감나무 한 그루 쌀밥_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쌀밥 한 그릇 무_ 이렇게 추운 밤에 이렇게 배고픈 밤에 콩_ 간장 먹으며 콩을 심는다 부각_ 부각 먹는 사람들 다슬기탕_ 대사리탕 없는 세상을 겨우겨우 토란_ 토란잎을 삼키듯 회한도 삼키다 시래기_ 시래깃국이 왜 짠고 하니 머위_ 쓰기로 치면 인생 같은 머구 죽순_ 죽순은 아프다 방아잎_ 환장하게 그리운 그놈의 방애잎 부추_ 솔 반찬 해서 누구랑 먹을꼬 동부_ 돈부죽 끓이다 집시랑 태워먹은 가시내야 호박_ 호박도 맛있지만 잎도 맛있는 호박 봄나물_ 달래, 냉이, 씀바귀 그리고 미나리 고들빼기_ 거꾸로 먹는 고들빼기 초피_ 거짓말 못하게 하는 젬피 추어탕_ 세상의 큰집에서는 추어탕을 끓인다 메밀_ 꼭 뭣이 그런 것처럼 메밀이란 것이 그렇더라 계란_ 그것 참 꽃 같다 산딸기_ 주홍빛 유혹의 때왈, 꿈속의 산딸기 더덕_ 우린 냄새만 맡아본 딱주를 누가 먹었으까 |
孔善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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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조선 쑥을 캤을 뿐
설날 쑥떡을 먹으면서 마음은 벌써 들판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알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나와 내 동무들뿐. 그래서 겨우 정월 보름 지난 들판으로 봄이 지금 어디만큼 왔을까를 가늠하러 나갔던 것이다. 그러면서 불탄 자리를 괜히 후벼보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 거짓말처럼 쑥이 쏘옥 고개를 내밀고 있었으니……. 그때 비어져 나온 눈물은 도대체 기쁨의 눈물이었는지 슬픔의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나와 내 동무들은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다만 우리는 그해 봄에도 쑥을 캤을 뿐, 조선 쑥을 캤을 뿐. 조선 중에서도 전라도 촌가시내들이었던 우리는. --- p.28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 손을 비비며 토란탕을 맛있게 끓이는 첫 번째 비결은 먼저 토란을 뜨물에 담가두는 것이다. 그리고 맑은 뜨물에 끓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생깨를 갈아 넣는 것이다. 톱톱하게 거른 깻국물에 토란이 완전히 익게 끓이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은 자기 입맛에 맞게, 자기 식대로 요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요리법일 터. 나는 토란탕을 좀 많이 끓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속이 출출할 때 한 그릇씩 퍼서 데워 먹는 정도까지 이용할 줄 알게 되었다. 한밤중에 간식으로 먹는 토란탕은 내 출출한 속을 채우며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향기로 내 근원적 외로움까지 위로해주는 것 같다. --- p.117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 그때는 품앗이든 품팔이든 주인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주었다. 그러면 놉(일꾼)의 아이들까지 가서 밥을 먹었다. 그것은 얻어먹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가서 먹는 것이다. 울 엄마 따라가서 먹었던 그 숱한 추어탕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추어탕을 먹을 때면 엄마 따라 가서 먹었던 집들의 추어탕들이 떠오른다. 아들 많고 논도 많고 식구들 많고 북적북적했던 집들, 마당에는 볏가리가 그득한 집들(그 집들은 대부분 큰집들이었다). 오래된 나무대문은 우람하고 시억시억한 상머슴에 말 잘 듣는 꼴머슴이 서늘한 저녁인데도 우물물을 퍼서 푸푸거리며 등목을 하는 집. 추어탕은 내게 가을의 풍성함과 함께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감을 동시에 일깨우는 음식이 되었다. 추어탕을 먹을 때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토지를 물려받지 못한 가난한 할아버지의 작은아들의 딸이다, 작은집 애다. 작은집들은 추어탕을 별로 안 끓여 먹는다. 더구나 딸만 있는 작은집이니. 추어탕은 아들 많은 큰집들에서 끓인다. 가을 저녁이면 세상의 큰집들은 아들들이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느라고 부산하다. 큰어머이 기다려요, 선옥이가 가서 불 때드릴게요오! --- p.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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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을 차리면서
이 글은 곡물, 채소, 어패류, 향신료, 열매, 뿌리들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내력이다. 그 곡물과 채소와 어패류와 향신료와 열매와 뿌리와 그것들이 그 속에 내장한 그 내력들이 나를 키웠다. 나는 그것들을 먹고, 그것들이 모양으로 맛으로 향기로 빛깔로 말해주는 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보여주는 몸짓을 보며 컸다. 내가 먹고 큰 그것들을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 감정들이 실은 그것들을 이루고 있음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몸에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요리하는 법, 맛 집을 소개하는 미디어들을 보면서 나는 음식에 관한 단편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그 태도가 결국은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더 맛있는 것을 찾게 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이 먹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먹을거리들의 내력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를 따지거나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따지는 행위가 실은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모독임을,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제 사람들은 제 입에 들어오는 음식의 내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몰라도 좋은 상태로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다. 나는 그런 세상의 인심이 얄미웠다. 나는 어쩌면 음식 혹은 식재료 근본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본문에도 썼지만, 찔레꽃 향기도 나지 않고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는 쌀밥이나 솔(부추)김치를 먹는 일은, 지렁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죽순을 먹는 일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종의 단순 ‘작업’일 뿐이다. 먹는 행위에서 육체적 만족감과 더불어 영혼의 교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없다면, 배부르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행복한 생장’을 한 먹을거리들은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먹을거리들의 생장 조건은 갈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먹고 살아도 우린 정말로 괜찮을까? 먹을거리들의 불행한 생장 조건이 불안하다면,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 습관을 버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어 여기에 이 ‘맛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글을 쓴 것이다. 2008년 5월 공선옥 --- 저자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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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 인심이 얄미워 쓴
조선 가시내의 참 먹을거리 내력! 고구마, 쑥, 감자, 보리밥, 감, 쌀밥, 무, 콩, 부각, 대사리탕(다슬기탕), 토란, 시래기 머구, 죽순, 방아잎, 솔(부추), 돈부, 호박, 달래,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젬피, 미꾸라지, 메밀, 계란, 산딸기, 더덕 등 공선옥이 먹고 자란 것들을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감정들이 실린 스물여섯 가지 먹을거리 이야기 ● 공선옥, 전원의 행복과 지난 시절의 아련함을 품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검은 ‘맘보 쓰봉’에 ‘나이롱 샤쓰’를 입고 자란 공선옥은 어린 시절 봄이면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온 봄내 나물을 캐러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여섯 조각의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난 시절, 허기진 밤들과 허기진 세상을 행복으로 수놓았을 소소한 기억들로 차려낸 ‘소박한 만찬’이다. 그리고 먹을 것을 지키기 어려운 안쓰러운 세상에 공선옥이 차려주는 ‘행복한 잔칫상’이다. ● 에디터S 노트 - 조선 가시내의 푸근푸근한 추억이야기 너무 노래서 민망한 고구마밥 한 주걱을 덜어먹던 겨울을 보내고 우리를 홀리던 그 냄새들을 좇아 들판을 헤매던 봄날들.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울음소리와 산밭의 어둠과 별의 소곤거림까지 깃든 솔을 입안에 넣으면 우리 땅의 모든 먹을거리들이 그렇듯 번져나가는 알싸한 향긋함을 떠올린다. 강낭콩죽과 보리밥을 먹으며 지나는 무덥던 여름날, 국물 빛깔 파아란 대사리탕 한 그릇 뚝딱 비우면 인생의 틈마저 메워지는 듯하다. 마음이 푸근하다, 푸근하다 해도 메주 쑤는 날만한 날이 또 있을까. 또 그런 날 먹던, 잘 마른 누군가의 눈물 같은 시래깃국은 또 어떤가. 자신의 생애를 고구마와 함께 한다고 믿고, 보리밥에서 풍만한 여름의 맛을 느끼며, 춥고 배고픈 밤에 ‘아삭’ 배어먹는 무를 잊지 못한다. 쓰디쓴 회한을 삼키듯 토란잎을 꿀떡 삼키고 방애잎을 환장하게 그리워하는 전라도 가시내. 계란을 꽃 같다 여기고 산딸기의 치명적인 주홍빛 유혹에 빠져 살아온 소설가 공선옥.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투영해 소외된 이웃을 다독여온 공선옥이 마음 따뜻해지는 스물여섯 가지 만찬을 차려내왔다. 봄이면 쑥 냄새를 좇아 들판을 헤매고, 땡감이 터질듯 무르익는 가을이면 시원한 추어탕 한 솥을 고대하던 지난시절의 기억들을 소복한 흰 쌀밥 담듯 꾹꾹 눌러 담아 독자들을 만찬상 앞으로 초대한다. 만찬상을 수놓는 이야기들은 신선한 봄나물을 무쳐먹듯 소박하지만 풍요롭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음식이란 눈으로 먹는 맛도 빼놓을 수 없는 법.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와 자연을 품은 식재료들을 사진과 일러스트로 푸짐하게 담아내서 책장 어느 곳을 펼쳐도 싱그럽고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오늘날 먹을거리 담론의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오가닉이나 웰빙 등은 공선옥의 관심사가 아니다.“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를 따지거나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따지는 행위는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모독”이라는 공선옥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자신이 먹고 자란 음식의 ‘내력’을 조목조목 들춰서 보여준다. 즉,『행복한 만찬』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감정들이 실린 먹을거리와 우리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좋은 음식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몸에 좋은 것’과 ‘맛있는 것’으로 삼는 인심이 야박해서 써내려간 이 글에는 어떤 먹을거리가 무슨 성분 때문에 몸의 어느 곳에 좋다는 이야기가 일체 없다. 심지어 건강한 밥상이라 하면 조미료뿐만 아니라 설탕도 금기시되는 세상에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사카린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때때로 보잘 것 없다고 치부당하는 소소한 먹을거리들도 공선옥의『행복한 만찬』에서는 무척 달달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지난 시절의 허기진 밤을 행복하게 해준 그때 그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우리 주변에 함께 했던 것들, 슬픔도 아픔도 가난도 너른 품으로 끌어안고 있는 먹을거리의 내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바람직한 생장’을 한 우리 땅의 먹을거리와 아련했던 옛 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