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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바람
2. 위험한 가계 3. 탄생 4. 질병, 질주, 돌아오지 않는 열망들 5. 깊고 먼 눈동자 6. 지음 7. 너는 나다 8. 맨발의 자유로운 지혜 9. 유랑 10. 빗방울, 나의 길 11. 학인의 춤 12. 시간 뒤에 남는 것 해설 - 장일구/주석 달린 소설, 소설 아닌 소설? 창작보고서 - 실존인물의 삶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감사의 글 - 참고문헌을 대신하여 작가의 말 |
金琸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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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역사, 시와 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
--- 허순용(sellavy@yes24.com)
이 소설은 두 가지 종류의 판본으로 출간되었다.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보아 온, 텍스트 위주의 소설이다. 백범영 화백이 그린 그림이 수록되었다는 점만 다르다. 문제는 다른 하나의 책인데, 이것은 소설에 주석이 달려 있다. 논문도 아니고 학술서도 아닌,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소설에 주석이 달려있다는 것은 특이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본은 그 파격적인 형식때문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본문에 수많은 한시와 고전으로부터 인용한 구절들을 매복시켰고, 그 구절 하나 하나에 일일이 주석을 붙였다. 그리하여 본문보다 주석의 분량이 더 많은 소설이 탄생하였다. 이로써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자료들을 동시에 읽고 감상하는 이중적 독서를 체험하게 된다. 즉 시간 예술인 문학에 공간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으며, 상상(문학)이 온전히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구성물이기도 하다는 역설을 낳고 있다. 서사학과 문예 미학을 의도적으로 위배하고 있는 이 소설은 문학평론가들의 논쟁을 유발시킴직하다. 또 내용상으로 볼 때 황진이를 단순히 기생으로 보지 않고, 서화담 계보의 지식인으로 설정한 점, 남성적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싸워나가는 진보적 여성으로 설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조선 후기에 대한 연구서나 창작물은 매우 많은 데 비해,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조선 중기 지식인 사회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서술이 황진이의 독백체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독자가 화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약점이 있어, 대단한 입심이 아니고서는 집중력에 방해를 주기 마련이다. 어미에 여러가지 변화를 주고자 하였으나 어색함이 발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시 등으로부터 가져왔거나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적 문장들의 문제점이다. 시적인 단어나 문장은 의미가 명료하지 않다. 본래 그것이 미덕이다. 그러다보니 서사 구조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또다른 소설 읽기와 창작 방법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소설이 인용하고 있거나 관련짓고 있는 서물(書物)이나 자료는 매우 방대한데, 독자들은 모처럼 이들 고문헌이 뿜어내는 향기에 젖어, 문사철(文史哲)이 하나로 어우러졌던 옛 선인들의 세계를 잠시 맛보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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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미루면 봄에 미처 흘리지 못한 눈물 떨굴까 두려워 여름 뙤약볕을 감내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회경전 돌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발이 자꾸 아래로 꺼지고 능음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가 싶더니, 눈을 감아도 황봉이 오락가락하여 결국 남의 등에 업혀 꽃못으로 돌아왔답니다.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바른 도리를 잃을 수밖애 없다고 했던가요., 눈 내리는 날 찬 종소리 들으며 가느니만 못했다는 허태휘의 농담에 겨우 웃음을 참았답니다. 은하수 같고 옥구슬 같은 박연의 장쾌함이 눈부실수록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자랍니다, 석창포 한 움큼 놓고 자리를 피하려는 허태휘를 앉힌 후 하심주와 벽에 걸린 박연이 그림을 떼어 보답으로 주었지요, 한밤이면 천마산의 정령들이 서안 위에서 슬피 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했더니 제 아무리 정교해도 실물만 하겠느냐며 웃어 보였답니다, 스승의 지인지감에 댛여 몇 마디 나누었지요.
---pp. 10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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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주석판을 동시에 출간하며
역사의 문학화, 문학의 역사화를 위하여
소설 『나, 황진이』와 함께 '역사와 소설의 포옹'이라는 부제를 단 주석판이 동시에 나왔다. 소설에는 황진이의 내밀한 심경을 형상화한 백범영 화백의 수묵화 60여 점이 수록되어 있고, 주석판에는 『나, 황진이』의 창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6백여 개 주석과 작가의 창작보고서,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된 관련문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그림과 소설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주석판에서는 야사 위주의 짜깁기로부터 탈피하여 철저한 고증과 문체미학을 추구하는 역사소설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였다. 역사소설의 폭과 깊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 『나, 황진이』 역사소설은 '소설'이 지닌 주관성에 '역사'가 지닌 객관성을 모두 아울러야 하므로, 집필에 앞서 많은 고증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야사나 단편적인 사건들을 짜깁기하여 흥미 위주로 서술된 작품이 역사소설의 주류를 이루어왔다. 게다가 개화기 이후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이 분리되면서 대부분의 작가가 현대문학의 영향 아래 성장하게 되었고, 그런 까닭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은 점점 더 나오기 힘들어졌다. 『나, 황진이』는 이러한 역사소설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황진이 상 정립 -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모른다 중종 시절 송도의 명기 황진이는 역사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한쪽에서는 여러 남자를 섭렵한 재주 있는 기생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조선 중기 여성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로 칭송하며 서경덕의 제자이자 화담학파의 대모로까지 평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황진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전자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이태준의 장편소설 『황진이』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출간된 황진이 류 소설의 영향이 크다. 황진이는 신분상 문집을 만들 형편이 아니었고 다른 사대부 문인처럼 행장에 근거하여 정확한 일생을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관련기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역사적 접근이 불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야담에 근거한 소설 속 모습이 황진이의 실체로 굳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나 황진이를 알지만, 아무도 황진이를 몰랐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