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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잠입 침투 첩보 노출 갈등 압력 궁지 선택 감사의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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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집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 모두가 편집증에 걸리기를 바란다.
성공은 편집증을 요구한다. (본문 중에서) 애덤 캐시디는 자기 일을 싫어하는 스물여섯의 하이테크 대기업 하급 관리자다. 그는 회사 동료를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회사 시스템을 조작하는데, 그 일이 발각되어 감옥에 갈 위기에 놓인다. 회사 보안실은 그에게 선택권을 준다. 감옥에 가든지, 주 경쟁사인 트리온 시스템스 수뇌부에 스파이가 되어 들어가든지. 회사는 그에게 스파이 훈련을 시키고 갖가지 내부 정보를 알려 준다. 결국 애덤은 트리온의 스타로서 정상까지 단숨에 수직상승한다. 스스로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엄청난 돈에 환상적인 아파트, 포르셰를 몰고 CEO 직속으로 일하며, 꿈에 그리던 여자와도 사귀게 된다. 이제 애덤의 삶은 완벽하다.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그가 믿는 모든 것, 그를 아끼는 사람들을 배반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애덤이 그를 조종하는 자들로부터 벗어나려 했을 때, 상황은 그의 손아귀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진짜로 믿을 놈은 아무도 없는 세계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악몽이 시작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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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noia
1. 편집증(偏執症), 망상증 2. (근거 없는) 심한 불신[의심] 3.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망상을 나타내는 병적 상태 컨템퍼러리 스릴러의 규칙을 새로 썼다! 스파이를 심어라, 마음을 사로잡아라, 정보를 움켜쥐어라, 그리고 기업을 통째로 집어삼켜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반전과 심박동을 펌프질하는 긴장감, 빛나는 유머와 위트 위에 얹어놓은 기업 스릴러의 걸작! 기업 스릴러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파라노이아》를 읽어라! 컨템퍼러리 스릴러의 새로운 규칙을 썼다는 평가를 받는 조셉 핀더의 《파라노이아》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컨템퍼러리란, '동시대의, 현대의'라는 뜻인데, 지나치게 전위적인 아방가르드와 지나치게 보수적인 컨서버티브의 중간 정도를 나타낸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위한, 그리고 현 시대의 트렌드를 적극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현대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첩보요원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CIA와 국제정치 전문가로서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언론 매체에 글을 기고한 작가의 이력이 재미있다. 《파라노이아》를 비롯한 조셉 핀더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기업 스릴러 소설들의 탄생 배경엔 이러한 작가 자신의 취재 경험이 녹아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기업 스릴러 《파라노이아》는 기업과 기업, 기업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이해관계를 통해 현대사회의 병폐를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파헤친다. 문장은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의 끈을 놓치지 않고,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최첨단 IT기기와 용어들을 지루하지 않게 적절히 활용하며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완고한 망상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상태를 말하는 파라노이아(Paranoia). 회사를 경영하는 CEO나 사원 모두 파라노이아 상태에서 일해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소설 속의 IT기업 회장 와이엇은 강변한다. 편집증적인 집착이야말로 회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와이엇이 여기서 말하는 편집증은 회사에 완벽하게 투신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마치 성장드라이브에 함몰된 현재 한국사회의 국정 이념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1세기, 오늘의 극도로 지구화된 환경을 일컬을 때 ‘신자유주의’라고 흔히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극단화된 자유기업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서 자유의 개념 역시 정치적 민주주의와 평등에 관련한 사항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자유방임주의에 한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일이라면 인간성은 무시되어도 무방한 성질에 불과하다. 조셉 핀더는 소설 속에서 경쟁 회사에 스파이를 심고, 심어진 그 베테랑 스파이가 또 다른 스파이를 길러내어 본래 자신이 속한 기업에 심는, 이중 스파이. 과히 스파이들의 전쟁이라고 할만하다. 얼간이 촌뜨기 아마추어 스파이를 가운데 두고 두 회사는 서로를 속이고 이간질하며 협박한다. 심지어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연기를 하며, 거짓 눈물을 자아내며 직원들을 속인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희생될 수 없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리버럴한 인간이 단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어떻게 자신의 인권이 훼손되고 조롱받고 이용당하는지 이 소설은 섬뜩할 정도로 잘 보여준다. 그 섬뜩함이 유머러스한 문장 위에 녹아 있다는 것이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충격적인 반전과 주인공 애덤 캐시디가 선택하는 의외의 해답을 통해,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깨닫고 수긍하며 반성해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애덤 캐시디가 《시마과장》처럼 운 좋은 회사원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조차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그리고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에겐 시마과장 같은 운도 느끼함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