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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_왜 나는 169번째 『백설 공주』를 옮겼는가? _168명의 백설 공주는 전부 가짜이기 때문이다 _새로운 백설 공주 _어찌하여 이런 흠집이 생겼을까? _이야기를 되새기고자 걸었던 세 길 진짜 독일 동화 1 | 새하얀 눈 아이 *독어 원전(1857년 최종본)과 영역(위키피디아본)을 함께 실음 청소년과 부모를 위한 해설 _백설 공주일까? 새하얀 눈 아이일까? _이 아이를 이루어낸 것은 무엇인가? _거울과 공부 _일곱 살과 삶 _일곱 난쟁이와 새하얀 눈 아이 _그녀는 왜 그토록 못돼 먹은 계집이 되었을까? _드러나지 않은 것과의 싸움 _올빼미, 까마귀, 작은 비둘기와 셋 _왕의 아들은 어디에? 진짜 독일 동화 2 | 순금 아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물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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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아니 ‘새하얀 눈 아이’는 …이렇게 시작 한다
한겨울이었지. 하늘에서 하늘하늘 깃털처럼 눈이 내리고 있던 날이었어. 검은 흑단 나무로 된 창가에 앉아, 여왕이 바느질하고 있었지. 바느질을 하다가, 그녀는 눈을 쳐다보았어. 그러다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고 말았지. 피 세 방울이 눈 위로 떨어졌어. 새하얀 눈 속에 있는 그 붉은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붉고, 창틀의 나무처럼 검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그분은 품었지. 얼마 안 있어 그분은 딸아이를 보게 되었는데,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붉고, 흑단 나무처럼 거무스름한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어. 그래서 ‘새하얀 눈 아이’라 불렀지. 그런데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오게 된 날, 여왕은 생기가 다 빠져 말라죽었단다. --- p.26 우리가 아는 백설 공주는 어떻게 잘못 되었나 아무데나 가위질을 해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번역본이 가지는 또 다른 잘못은, 낱말을 막 바꿀 뿐만 아니라 없는 말도 막 집어넣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뒤져 본 모든 책이 이 허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걸리는 게 아주 많지만,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원문에 ‘그 못돼 먹은 계집(여자)’으로 되어 있는 것을 ‘왕비’로 옮긴 것, ‘눈처럼 새하얀’, ‘피처럼 붉은’이라 되어 있는데 굳이 ‘살결’과 ‘입술’을 덧대 ‘눈처럼 하얀 살결’, ‘피처럼 붉은 입술’로 옮긴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옮기면 안 되는 까닭 역시 제가 뒤에 또렷하게 밝혀 놓았기에, ………그런데 이 허물은, 문학을 허물어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각하고 되잡아 보는 힘이 크는 것을 짓누르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어느 때는 왕비(여왕)라 했다가 어느 때는 못돼 먹은 여자라 하는데, 도대체 왜 그런가?’란 물음조차 갖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pp.8-9 우리나라 번역본을 보면, 옛이야기임에도 거기에 나오는 말들이 너무 현란하고 감정 과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림Grimm 형제가 모은 독일 옛이야기 대부분은 건조하고 담담하다는 사실입니다. --- p.10 [발도르프 사범대학, 독일 옛이야기] 과목 담당 선생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 “먼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지혜가 깃든 이야기의 느낌이 나게 담담하게 하라”였습니다. --- p.11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요? 아마도, 전래 동화M?rchen를 동화童話라 여긴 데에 그 까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못 박아 말하건대, 전래 동화M?rchen는 동화童話가 아닙니다. --- p.12 우리 말 ‘동화’로 옮긴 독일어 낱말은 메르센M?rchen인데, 그 낱말은 단지 ‘작은 이야기’라는 뜻일 뿐, 거기에 ‘어린이’를 뜻하는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 p.14 ‘공주 콤플렉스’란 말에서 보듯, 그렇게 잘려나가고 늘어난 백설 공주는 우리의 피를 맑게 하고 등뼈를 곧추세우기는 커녕, 외려 우리의 피를 끈적끈적하게 했고 우리의 등뼈를 허물어뜨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p.15 과연 공주로 옮기는 게 올바른가를 판때리기(판정하기) 위해, 번거롭지만, 주인공 이름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여기서 따져볼까 합니다. --- p.101 이름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서, 왜 그 애를 ‘새하얀 눈 아이’라고 불렀을까? --- p.103 ‘뜻이 뭉쳐 생겨난 자식’ 하니까 색다른 맛이 느껴지죠? 이런 게 다 헤아림이 주는 맛이고 깊이입니다. 그러면 여왕이 무슨 뜻을 품었죠? “눈처럼 새하얗고, 피처럼 붉고, 나무로 된 창틀처럼 검은 애를 가질 수 있다면”이란 뜻을 품었어요.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이 글귀만을 놓고 보았을 때, 따져보고 싶은 게 없나요? ‘검은 애를 바라는 엄마라니!’라고 묻고 보면, 그냥 넘어가기엔 께름칙하죠? --- pp.105-106 산이건 평지이건 상관없이, 나무들이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곳을 그들은 발트Walt라고 해요. 이 단어를 그냥 ‘숲’이라고 옮기기엔 맞지 않는 것 같아, ‘엄청난’을 덧붙여서 옮겼어요. 우리말 ‘숲’은 크다는 생각을 별로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잖아요? 그런데 독일의 발트Walt는 우리말 산맥에 해당할 만큼 큰 규모이거나, 우리나라 한 도시만한 넓이에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곳을 말하거든요. --- p.135 사실, 좀 더 밝은 눈으로 본다면, 새 삶 새 시대가 열린다는 눈짓은 이 이야기 처음부터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보세요! “한겨울이었지” 하고 있어요. --- p.145 이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는 이제, 옛 시대 옛 삶에 맞서서 기나긴 싸움을 해야 해요. 그것을 이야기꾼은, 엄청난 숲에서 뾰족뾰족한 돌을 뛰어넘고, 가시를 헤치며 나아갔고, 들짐승들이 지나가도, 걷고 또 걸은 것으로 나타낸 거지요. --- p.146 그러니 여러분도 너무 빨리 자기 길을 골라잡지 마세요. 평생을 걸어야 할 길인데,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 p.157 아침이 되어 새하얀 눈 아이가 눈을 떴을 때, 일곱 난쟁이가 그 사람 앞에 있었어요. 잠든 사이에 와 있었던 거죠. 자신을 신에게 맡긴 것에 대한 베풂인가요? 아니면 그 아이가 엄청난 숲을 헤쳐 나오면서 이루어 낸 것인가요? 다시 말해, 그 스스로 자신 속에 이루어 놓은 것을, 눈에 보이게 이야기꾼이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인가요? --- p.154 둘이면서도 하나가 된 새하얀 눈 아이와 일곱 난쟁이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함께 뚫고 나가야 해요. 이 차원에 계모라고도 하고, 여왕이라고도 하고, 못돼 먹은 계집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엉켜 있어요. --- p.158 어떤 사람이, ‘왕’의 본질을 제 본질로 삼고서 왕처럼 살고 있다면, 종교적인 눈으로 보면 그도 왕의 딸이고 왕의 아들이며 더 나아가 왕인 거지요. --- p.159 그 여자가 먹었던 것은 참으로는 뭐였죠? 그래요. 멧돼지 새끼의 간과 허파였어요. 그러면 그 여자 속에서 살아 구실을 한 것이 뭐가 되는 거죠? 멧돼지예요. 다시 말해 그녀는 멧돼지에게 자신을 내주고, 멧돼지의 모습과 성깔로 살았던 거지요. 그런데 멧돼지의 간과 허파를 먹은 사람은 그 여자뿐일까요? 우리도 그것을 먹은 건 아닌가요? 그리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그 무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능력이 아니라, 경쟁력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우리는 누구인가요? 자기보다 앞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못돼 먹은 여자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자가 아닌가요?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먹었는데, 사실 그것은 멧돼지의 간이고 허파여서, 우리를 짐승으로 만들어 버렸는데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과똑똑이가 아닌가요? 이걸 깨닫지 못하면, 우리도 태어날 땐 여왕이었지만, 멧돼지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어요. 몸을 키우는 먹을거리에서는 농약이 묻어 있니 어쩌니 따지면서, 정신과 영혼을 키우는 먹을거리에는,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 따지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 pp.164-165 그러니 여간내기가 아니면, 신발의 마술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공자가 힘주어 말한 “자기를 이기고 예로 되돌아가라.” 즉 극기복례克己復禮도, “네 신발을 벗으라.”는 말일 뿐이에요. --- p.170 쫓겨난 그 사람을 기다리는 건, 뾰족뾰족한 돌과, 앙상한 가시와, 길들지 않은 산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살이예요.(172쪽) 그런데 이 사과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었어요. 이야기꾼은 그것을 뭐라 하고 있죠? “한 입이라도 베어 먹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도대체 이 사과는 무엇이기에 이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같지 않으세요? (179쪽)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해요. 우리의 목숨을 조르고, 얼을 빼고, 영혼을 죽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묻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를 속속들이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 p.183 귀도 있고 눈도 있지만, 손도 발도 없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 들어보았나? 하느님을 본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하데! --- p.190 “어디에, 내가 있지?” 눈뜨고서 내는 첫소리가, 눈 뜬 사람이면 누구나 물어야 할 물음 아닌가? --- p.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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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백설 공주’는 잊어라, 이제는 ‘새하얀 눈 아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그림 형제의 완전한 동화 한 편을 얻은 셈이다. 만하임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독일 고전 동화를 공부한 이양호 선생의 청소년과 어른을 위해 옮기고 쓴, 동화 읽기의 참뜻! 한국의 교육을 생각하는 글숲산책이 내놓는 첫 책 “백설 공주”라는 오역에서 벗어나자 우리가 아는 ‘백설 공주’는 정말 ‘공주’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림 형제가 묶은 동화집 속의 원전엔 ‘공주(Prinzessin)’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원 제목은 ‘Sneewittchen’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하얀 눈 아이’ 혹은 ‘하얀 눈빛 아이’로 해야 한다. 영어권에서도 이를 ‘Snow white’로 쓰고 부른다. 그것 말고도, 우리가 아는 ‘백설 공주’와 그림 형제의 ‘Sneewittchen’ 사이엔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다.(이 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독어 원전과 영어 번역본을 함께 실었다.) 독일 만하임에 있는 발도르프 사범대학(만하임 프라이에 대학)에서 독일 고전 동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저자는 그림 형제의 원전 ‘Sneewittchen’을 한 자 한 자 세공하듯 우리 말로 옮겨 ‘새하얀 눈 아이’로 재탄생시켰다. 미리 말하자면, ‘백설 공주’와 ‘새하얀 눈 아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제야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독일 동화’ 한 편을 얻게 된 셈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번쯤은 다시 읽고 새겨야할 고전이 온전한 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옛이야기” 제대로 읽기를 통해 기르는 “인성 교육” 저자는 단지 독일 옛이야기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속뜻까지 풀어내, 이 책을 읽는 독자인 청소년과 부모를 위한 해설을 100여 쪽이나 곁들이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과 사상을 관통하고 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화 한 편이 어떻게 인성 교육의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벼려 보여주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가정에서,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읽고 새길 세계인의 고전 한 편이 이제야 제 모습을 갖추게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