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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요부인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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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글
프롤로그
1. 앙리에트 카요와 치정 살인
2. 조제프 카요: 개성의 정치
3. 앙리에트 카요: 여성성, 페미니즘, 진정한 여성
4. 베르트 게이당: 이혼의 정치학
5. 알바넬 판사: 남성성, 명예, 결투
6. 가스통 칼메트: 언론의 권력과 타락
에필로그

저자 소개 2

에드워드 베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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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Berenson

뉴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근대 프랑스 사회와 문화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근대 유럽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대중영합주의 종교와 좌익 정치가들,1830~1852(Populist Religion and Left-Wing Politics in France, 1830~1852)』(1984)의 저자이기도 하다.
1969년 부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 대학원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서화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문화와 예술의 세계를 동경했으며, 그림에 대한 글을 쓰고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클림트, 황금빛 유혹》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반 고흐》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역사》 《미술사 아는 척하기》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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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8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637g | 153*224*30mm
ISBN13
9788972975694

출판사 리뷰

여섯 발의 총성,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다!

※재판 결과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프랑스 급진당 당수의 부인, 보수 신문 편집장을 쏘다!

1914년 3월 16일 저녁 6시, 앙리에트 카요가 『르 피가뾔』의 편집장 가스통 칼메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마침 칼메트를 만나고 있던 소설가 폴 부르제는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수상하다며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다. 지난 석 달 동안 칼메트가 이끄는 보수 신문『르 피가뾔』는 전직 총리이자 좌익 성향의 급진당 당수인 앙리에트의 남편 조제프 카요를 공격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느슨한 기준으로 보더라도 카요를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저열한 비방의 성격을 띠고 있던 이 캠페인은, 1814년 3월 13일 칼메트가 파리 언론이 다소 진지하게 지키던 불문율을 깨뜨리면서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그 불문율은 정치인의 사적인 편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카요 부인은 오후 늦은 시간에 사무적인 방문을 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드레스에 모피 코트를 입고 소박한 모자를 쓰고 왔다. 커다란 모피 머프가 코트 양 소매를 연결하고 있었고, 앙리에트의 양손은 머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칼메트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물었다.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아시나요?”편집장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전혀 모릅니다, 부인.”그러자 앙리에트는 아무 말 없이 모피 머프에서 오른손을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브라우닝 자동권총이 쥐여 있었다. 여섯 발이 연달아 발사되었고, 칼메트가 배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pp. 10-11)

1914년 3월, 제1차 세계대전이 코앞에 닥쳐있던 파리지앵들은 전쟁보다는 ‘세기의 스캔들’이랄 법한 한 사건에 매달려있었다. 당시 급진당의 당수였던 조제프 카요를 집요하게 공격하던 보수 신문 『르 피가뾔』의 편집장이었던 가스통 칼메트가 총살당한다. 그를 피격했던 것은 조제프 카요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앙리에트 카요였다. 지금의 한국 사회나 그 때의 프랑스 사회나 신문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는 것은 부지기수였겠지만 (최초의 ‘대중문화’ 매체로 등장했던 신문을 접했을 파리지앵보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가 더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편집장을 찾아가 자동권총으로 총살, 그것도 여섯 발을 쏘아댔다니! 처음 들으면 황당해서 웃음이 터질 일이고 진정을 하고 나면 극적이기까지 한 사건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 아닌가? 지금 한국에서 보수 언론 편집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피격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온갖 가십이 떠다니는 지금에도 난리가 났을 텐데 당시 파리야 말해 무엇할까? 게다가 이 사건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었다. (앙리에트의 남편이 우선 프랑스의 가장 큰 당 중 하나의 당수였다!) 이 재판은 프랑스 역사 최초로 대통령이 증서를 제출한 재판이기도 했고, 드레퓌스 재판에서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를 변호했던 변호사인 페르낭 라비로가 앙리에트의 변호를 맡았다.

당최 20세기 초, 전형적인 부르주아 여성이었던 앙리에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앙리에트는 백주대낮 사무실에서 사람을 쏘아 죽이고도 (무려)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는 어떤 곳이었기에?

성, 치정, 전쟁, 언론이 얽히고설킨 세기의 재판을 통해 들여다보는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 사회

『카요 부인의 재판』은 이 극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살인 사건의 재판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낱낱이 파고든다.

“근래에 들어 꽤 오랫동안 유럽 중세사와 근세 초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문헌자료가 없어 가뼉졌던 문화와 사회상을 탐구하기 위해 종교 재판이든 일반 재판이든 재판 기록을 이용해 왔다. …사회사에서 인류학적 역사로 전환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다른 연구 방식을 택할 때 놓치기 쉬운 측면들, 즉 종교적 신념?가족생활?성적 관행?정치적 권력의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된다.”(pp.19-20)

저자는 20세기 초, 벨 에포크(Belle Epoque. ‘아름다운 시절’, 19세기 말~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평화로운 시기)라고 불리던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가장 미시사적인 방법론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당시의 재판 과정과 관련된 자료 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나타났던 벨 에포크의 프랑스를 구성하는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설명할 수 있는 당대의 자료까지, 오만가지의 잡다하면서 중요하고 하찮으면서도 결정적인 자료들(재판의 속기록, 당대의 시와 소설, 신문, 연극 공연, 오만 이론가들의 이론과 발언 등등)을 풍성하게 엮어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구성해 보여준다.

카요 부인의 재판은 치정, 성(性)의 문제, 전쟁, 대중 언론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기의 스캔들이었다.

“1914년 7월 말에 시작된 이 재판에는 불륜과 이혼, 부, 스캔들, 고위 정치 등 실생활에 멜로드라마 같은 요인들이 뒤섞여 있었다. 화려한 쇼를 즐기고 신문 연재소설에 탐닉하던 파리 사람들에게 그것은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당시 프랑스 법률은 언론에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은 카요 부인의 재판을 세세한 부분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었다. 배심원의 평결을 기다리지도 않고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주장하던 신문기자들인지라, 카요 부인의 재판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벌써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실제로 재판이 시작되자 신문기자들은 더욱더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주석을 달았다. 관련된 인물들이 사실상 제3공화국의 사회적?정치적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의 장본인들 쪽에서도 언론이 카요 재판에 보인 과도한 관심을 자신들의 입장을 홍보할 다시없을 기회로 최대한 활용했다.”(pp.31-32)

앙리에트 카요가 살인, 그것도 총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수 신문사 칼메트를 살해한 것은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의 문화를 기반으로 삼는다.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 사회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극단적으로 강조된 사회였다. 정숙하고 온순한 여성일 때 그 여성은 ‘여성’으로 인정받았고, 남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명예’에 집착해 주구장창 명예를 위한 ‘결투’를 벌였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카요 부인의 재판은 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저자 역시 여성학적 맥락에서 당시의 문화사를 포착해 내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피고였던 카요 부인이 무죄냐 유죄냐를 판가름 하는 데에는 당시 여성을 인식하는 방식 -어떤 여성일 때 용서받을 수 있고 용인될 수 있는가-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했고, 이는 당시 부르주아 사회의 (황당하기까지 한)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제나 “역사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범주”인 성은 카요 재판과 그 결과를 만들어 낸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벨 에포크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대두되었다. 남자들이 남녀간에 선천적이고 위계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결혼, 이혼, 가족 문제를 포함해서) 양성 구분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집착은 많은 부분 프랑스가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생겨난 두려움, 그리고 프랑스의 힘이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기인했다. 논평가들은 이런 쇠퇴를 도덕적 타락과 양성 관계의 변화와 결부시켰다. 당시 작가들은 프랑스가 힘을 잃은 것이 여성해방과 이혼의 합법화, 그리고 남성들의 무력화에서 비롯된 점진적인 인구 감소 탓이라 주장하고 있다.” (p.25)

남성들이 ‘결투’에 집착했던 것 역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이후 페미니즘과 강해지고 있던 여성들의 영향력에 대한 피해 의식이 곁들여져 남성들의‘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한 몸짓이었다고 읽어낸다. 재판장의 판사조차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많은 재판 시간을 허비했을 뿐더러 카요 부부를 공격했던 우파들조차도 앙리에트의 살인 행위나 조제프의 정치적 입장보다 조제프가 자신의 정적과 직접 결투를 하지 않고 부인을 대신 내보내 결투를 하게 했다는 데 있었다.(물론 이 역시 ‘남자’가 모든 면에서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민족주의자들과는 노선을 달리했던 실용주의자였던 조제프 카요는 이 부분에서 자신들의 정적들에게 많은 공격을 당하고 이후 프랑스 민족의‘반역자’로 낙인찍혀 정치적 생명에 크게 위협을 받게 된다.

“…카요는 칼메트와 결투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랬기 때문에 앙리에트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그의 명예를 의심하는 물음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p.311)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카요처럼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행동은 프랑스가 독일에 종속된 관계를 영원히 묵인하는 것과 같았다. 다시 평등하게 될 방법은 다시 한번 그들과 싸우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보수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눈에는 카요가 칼메트에게 결투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 적과 결투를 벌여서 나라의 명예를 보호하고 조국의 기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독일에 맞서 싸우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한 그의 태도와 너무나도 일관된 것으로 보였다.“ (p,317)

“따라서 프랑스인들의 전쟁에 대한 열의는 부분적으로 벨 에포크 문화에서 아주 핵심적이었던 명예의 윤리에서 생겨난 셈이다. 당대의 일부 논평가들이 볼 때 결투장은 곧 닥쳐올 외국과의 전쟁을 위한 훈련장이었고, 여성화된 프랑스 남성들이 진정한 남성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 장소였다.” (pp,317-318)

여기에 프랑스의 대중언론은 ‘카요 사건’과 ‘카요 부인의 재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프랑스 성인의 절반은 프랑스의 ‘4대 신문’을 구독했는데, 프랑스의 4대 신문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침투력과 그에 상응하는 영향력으로 …대중에게 정보와 오락, 취미, 가치관, 두려움, 불안감을 보급할 실질적인 독점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앙리에트는 조제프 카요의 두 번째 부인으로, 카요가 첫 번째 결혼 생활을 할 당시 앙리에트 역시 유부녀였고 그 와중에 둘은 연애를 했다. 그리고 조제프와 앙리에트 모두 ‘불륜’의 관계를 위해 이혼을 했는데, 카요가 이런 ‘총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자신들의 ‘과거’가 언론에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피살당한 칼메트는 카요 부부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비밀 편지들을 입수해 (현재의 언론 역시 그렇듯) 맥락을 잘라먹고 조제프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앙리에트는 그녀의 운명이 그 신문사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그녀의 평판을(따라서 그녀의 명예를) 완전히 깔아뭉개기 위해 자신이 이끄는 신문의 힘을 이용하기로 한 결심한 편집장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카요 부인의 드런 두려움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벨 에포크 시기에 언론은 어떤 단일 대중매체도 결코 다시는 누리지 못할 정도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보했다.“(p.321)

뿐만 아니라 ‘카요 사건’을 득달같이 보도했던 당시 프랑스의 신문들의 모습은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가 갖고 있던 근대성의 일면-대중?대중성과 대중매체의 관계와 세상의 스펙터클화-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지금 한국사회의 한 단면과도 아주 닮아있다.

“…‘정치의 사회면 기사화’는 세상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바꾸어 놓았다. 스펙터클의 무대는 신문이고 관중은 독자였기에 그 범위가 거의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었다. 정치사회적 사건을 영웅과 악한이 등장하는 공개 드라마로 제시함으로써 대중신문은 독자들을 현실이라는 거대한 극장으로 몰아넣었고, 거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감정적 반향을 일으켰다.”(pp.322-333)

“대중 언론이라는 극장이 볼 때 카요 사건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소재였다. 살인, 연애, 섹스, 정치 음모,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실제 상황이라는 설정 등 신문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기삿거리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 기록 자체가 일반적인 연극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기에 파리의 모든 주요 신문이 그 기록을 글자 한 자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었고, 어떤 신문은 지면이 부족해서 특별 증간호를 내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매일 아침 재판기록을 숙독함으로써 프랑스 전체로 확장된 법정의 청중이 되었고, 이로써 근대 프랑스는 그 어느 시대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 극장을 닮아갔다”(p.333)

이렇듯 『카요 부인의 재판』은 카요 사건과 카요 부인의 재판의 과정을 단초로 삼아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면밀하고 샅샅이 훑어낸다.

소설처럼 읽어가는 역사책 읽기의 즐거움!

당시 프랑스의 중죄재판소의 풍경은 대중연극 공연장과 비슷해 피고든 원고든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거침없이 할 수 있었고, 방청객과 신문 기자들에게 중죄재판소의 재판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그곳에서는 피고, 변호사, 목격자, 심지어 재판장까지도 일장 연설을 통해 배심원단은 물론이고 그 배후에 있는 일반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프랑스 피고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자기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을 뿐 아니라(카요 부인의 첫 번째 진술을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반박할 권리도 있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목청 높여 자기 주장만 내세울 뿐 증거 제시와 관련한 절차와 규정이 확고하지 못했던 중죄재판소는 영미식의 근엄하고 잘 통제된 법정과 크게 달랐다. 프랑스 법정은 마치 연극을 상영하는 무대처럼 보였다.…이런 구경거리가 법정에 모인 사람들에게만 제공되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던 저가 신물들이 전 국민의 관심을 재판 소식에 집중시켰기 때문이다.”(pp.16-17)

저자는 마치 당시의 중죄재판소의 풍경을 패러디한 것 같은 책의 구성을 선보이는데, 각 장에는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재판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여성학적 측면에서 양성의 문제를 볼 수 있는 장에는 앙리에트 카요와 베르트 게이당(여성성과 이혼의 문제), 알바넬 판사(남성성)를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대중 언론의 문제에 대해서는 가스통 칼메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재판 과정을 많은 부분 복원해 냈기 때문에 피고와 원고 사이에 주고받았던 극적인 대화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 마치 그 재판을 눈앞에서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카요 부인의 비밀 편지는 조제프의 전 부인인 베르트 게이당이 가지고 있었고 칼메트에게 편지를 전한 것도 그였다)
그녀와 언니 외에 누군가 그 편지를 본 적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받은 베르트는 이혼한 후로는 계속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의 샹젤리제 지점에 있는 보관함에 편지를 넣어 주었다고 대답했다.
판사가 질문했다.
“편지를 언제까지 거기에 두었습니까?
베르트가 대답했다.
“지금까지요.”
“지금도 편지가 거기 있나요?”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라고 했습니다.”
이 대답으로 베르트는 편지를 둘러싼 긴장을 훨씬 더 가중시켰으며, 설득을 한다면 편지를 공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드러냈다. 이어서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는 데 그녀가 동의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상당한 승강이가 벌어졌고, 셰뉘(칼메트의 변호사)가 그 긴장감을 더욱더 증폭시켰다.
그가 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 편지는 어디 있습니까?”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녀가 핸드백을 가리켰다. (pp.225-226)

『카요 부인의 재판』은 재판을 일으킨 사건의 충격과 재판 자체가 갖고 있는 흥미진진함과 더불어 이렇듯 역사책 읽기, 미시사 책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준다. 당대의 신문, 잡지, 성명, 발언, 소설, 책 등등 세세하고 잡다한 자료들을 모으고 재구성해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당대의 사회를 추적해가는 것이야 말로 역사책, 특히 미시사 책을 독자들이 선택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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