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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족 차별에 항거한 “강주룡” 9
비밀여성단체 송죽회로 투쟁한 “김경희” 17 무등산 소녀의 나라사랑 “김금연” 27 상해 인성학교서 독립정신 펼친 “김윤경” 35 조선 여공의 횃불 “박재복” 45 핏덩이 남겨두고 독립의 깃발 높이든 “박치은” 51 여문 손끝으로 군자금 모은 “백신영” 59 비바리의 함성을 이끈 “부덕량” 65 봉건의 너울을 벗고 독립의 길 걸은 “신정균” 75 독서회로 독립정신 일군 “심계월” 85 수예품 만들어 군자금 마련한 “유인경” 91 함경도 청진의 만세운동 앞장선 “윤선녀” 99 독립자금 모금의 여걸 “이겸양” 103 태평양 넘은 광복의 빛 “이희경” 107 서간도 모진 바람 견뎌 낸 “임수명” 115 용두레 샘골의 꼿꼿한 영혼 “장태화” 123 통영에 울려 퍼진 기생의 절규 “정막래” 131 두려움 떨친 여자광복군 “조순옥” 137 마산 의신학교 열다섯 소녀 “최봉선” 149 흰 옷을 사랑한 백의의 천사 “탁명숙 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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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1돌, 여성독립운동가 이름을 불러줄 때
[서평] 《서간도에 들꽃 피다》 6권, 이윤옥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이는 65살의 이에 폭탄 의거로 순국의 길을 걸은 강우규 의사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나라를 빼앗은 흉악한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이지만 강우규 지사는 겸손하게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청년들의 교육’을 걱정했다. 그러한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실천 행동 뒤에는 탁명숙이라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런가하면 핏덩이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치은 애국지사도 있다. 박치은 애국지사는 남편 곽치문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감옥에 들어갔는데 핏덩이 갓난아기를 둔 몸이었다. 철창 밖에서 젖이 먹고 싶어 우는 아기를 일제는 끝내 면회시켜주지 않아 눈앞에서 아기가 숨지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2년의 형기를 마치고 남편보다 먼저 출소한 박치은 애국지사는 부모가 옥중에 있는 동안 어린 두 자매가 병사하여 숨지고 겨우 큰딸과 막내만이 살아남아 부모님의 출옥을 기다리는 현실과 맞닥트려야 했다. 빼앗긴 나라 되찾고자 / 갓 태어난 핏덩이 남겨두고 / 뛰어든 험난한 가시밭길 / 어미 품 그리며 유치장 밖서 / 숨져간 어린 딸 / 하늘이여 두 모녀 가는 길 / 무궁화 꽃 뿌려주소서 - ‘핏덩이 남겨두고 독립의 깃발 높이든 [박치은]’ 시 가운데 - 또한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평양의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가 여공들의 부당한 처사에 항거한 강주룡 애국지사, 기생출신으로 통영에서 만세운동에 앞장선 정막래 애국지사, 비바리의 함성을 이끈 부덕량 애국지사, 봉건의 너울을 벗고 독립의 길 걸은 신정균 애국지사, 독서회로 독립정신 일군 심계월, 수예품 만들어 군자금 마련한 유인경 애국지사 등 《서간도에 들꽃 피다》 6권에는 저마다 신분이 다르고 배움이나 집안 배경도 달랐던 여성들이지만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 스무 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 6권으로 이윤옥 시인은 스무 분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조명했고, 이로써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던 120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밝은 해 아래로 불러내는 작업을 마쳤다. 곧 광복 71돌이다. 광복은 여성독립운동가가 없을 때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때이다. 지은이 머리말 6권을 펴내며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이는 65살의 나이에 폭탄 의거로 순국의 길을 걸은 강우규 의사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나라를 빼앗은 흉악한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이지만 강우규 지사는 겸손하게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청년들의 교육’을 걱정했다. 그러한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실천 뒤에는 탁명숙이라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으나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디 탁명숙 애국지사뿐이랴! 핏덩이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치은 애국지사가 있는가 하면 고무공장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평양의 을밀대 지붕 위에서 시위를 한 강주룡 애국지사도 있다. 또한 통영 출신의 기생 정막래 애국지사가 있는가 하면 독립운동하다 잡혀 모진 고문에도 동지들 이름을 끝내 대지 않아 왜경이 혀를 찼다는 장태화 애국지사도 있다. 이처럼 저마다 신분이 다르고 배움이나 집안 배경도 달랐던 여성들이었지만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 스무 분을 골라 《서간도에 들꽃 피다》 6권에 실었다. 이로써 120분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하는 셈이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언제나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말이 ‘자료부족’ 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하다고 할 만큼 한 분 한 분의 남아있는 기록이 엉성한 게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내온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일을 중도에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작업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어느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일도 아니며 오로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작업이기에 채찍을 가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채찍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또한 지하에 계신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김춘수 시인의 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야말로 침략과 식민의 어두운 시기를 살다간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아니 지속해야만 한다. 그나마 조금씩 책을 찍으라고 보태주던 지인들의 인쇄비 후원의 손길도 하나둘 끊어져 이제는 정말 벼랑 끝에 선 느낌이지만 [10권]까지 가리라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어디선가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길 바라며 이 책 [6권]을 이 땅의 남성들에게 바친다. 단기4349년(2016) 7월15일 북한뫼 자락에서 이윤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