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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 잘못 맞춰진 인생의 퍼즐
2. 게임이 되어버린 인생 페니스를 잃은 아이 악연의 시작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거짓은 거짓을 낳고 만들어진 성에 관한 보고서 파괴된 가족 3. 출생의 비밀을 찾아서 저항하는 실험 대상 눈 뜨는 성 마지막 저항 그리고 해방 혼돈에서 깨어나다 드러난 진실 원래의 성으로 4. 자연이 그를 만든 것처럼 잘못된 집념 성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거짓과 위선의 몰락 가족의 회복 5. 후기 : 또 다른 완벽한 한 쌍에 관한 진실 6. 발문 :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이력서 7. 감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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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담론사에 획을 그었던 ‘쌍둥이케이스’의 숨겨진 진실
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은 타고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러한 성의 천성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에 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의학과 사회학계에서 성 환경 결정론을 증명하는 사례로 오랫동안 인용되어온 ‘쌍둥이케이스’다.
이 케이스는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성 정체성 및 성전환 전문가인 존 머니 박사가 제시한 것으로, 유아기 때 생식기를 잃은 쌍둥이 사내아이의 성을 여자로 바꾸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였더니 아무 문제없이 여자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근거로 성의 환경 결정론이 득세하게 되었으며, 이후로 이 케이스는 성 정체성 결정에 관한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는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인정받아왔다. 그렇다면 정말 환경이 성을 결정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케이스에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사실들이 있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의학계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감춰지고 왜곡돼 왔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967년 캐나다 위니페그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형인 브루스는 생후 8개월이 되던 어느 날, 포경수술 중에 의료사고로 페니스를 잃는다. 브루스의 부모, 론과 재닛은 불완전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의 경우,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적합한 성을 부여하면 된다는 성전환 전문가 존 머니 박사의 권유로 아이의 성전환수술을 결정하게 되고 브루스는 여자아이 브렌다로 길러진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시금석이 된 이 ‘쌍둥이케이스’는 사고를 당하지 않은 쌍둥이 동생은 남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보다 더 큰 평가를 받았으며, 완벽한 의학적 성공 사례로 손꼽혔다. ‘쌍둥이케이스’는 현대 의학과 사회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되었으며, 남성이나 여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으로 길러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로 지난 30년 동안 반복해서 인용되었다. 또한 유사한 사고나 비정상적인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수많은 신생아들에 대한 치료 기준으로 사용되어 성전환의 관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케이스는 완벽한 실패로 드러났다. 유명한 쌍둥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강요된 성 정체성에 저항했다. 성전환수술을 받은 브루스(브렌다)는 매년 정기적으로 존 머니의 연구실이 있는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가서 상담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존 머니 박사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위해 브렌다는 물론 브렌다의 남동생 브라이언까지 자신의 명령에 철저하게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연구를 진행한다. 머니 박사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던 브렌다는 14세가 되던 해에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사고로 페니스를 잃고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브렌다는 남자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데이비드 라이머로 이름을 바꾼 뒤에 페니스 재건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두 번의 자살 시도라는 정신적 공황을 겪은 뒤에 마침내 지금의 아내 제인 폰테인과 결혼한다. 데이비드가 브렌다였을 때 그는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에서는 끊임없이 여성성을 강요한다. 이런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데이비드는 사고로 페니스를 잃은 육체적 고통보다도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대로 살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고 고백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천성 결정론이나 환경 결정론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벗어나, 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강요받지 않는 선택의 중요성’을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 정체성 논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브렌다로 살아온 데이비드 라이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성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나 논쟁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논쟁을 넘어서서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그(데이비드 라이머)는 단순히 성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의 경험담은 독특하기는 하지만, 비웃고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맸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론 라이머가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브렌다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 ‘왜 그런 수술을 받게 했느냐’가 아니고 ‘예전 이름은 무엇이었냐’였다는 말을 듣고 가장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누구냐’에 해당되는 이 질문을 통해서 데이비드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과감히 뛰어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존중받아야 할 인간성’에 대해 논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지닌 ‘양성’에 대해 이 책의 후반부에서 상당부분 언급되고 있는 점과, 저자가 그들을 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성이 어떻게 억압받아 왔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성기의 구조나 성적 특징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인간성을 데이비드 라이머의 삶을 통해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데이비드 라이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 담론을 뛰어넘는 발언을 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남자나 여자로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저는 아내를 존중하고 가족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게 남자다워지는 길이라는 걸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런 게 섹스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말입니다. 존 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친아버지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저는 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게 바로 진정한 남자입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비록 이 책은 성과 성 정체성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거나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식의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한쪽 견해에 일방적으로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성은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 등장하는 라이너라는 의사의 말을 통해 제시한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야죠. 어느 쪽 성이 맞는 것 같은지 결정해야 할 사람은 본인 아닙니까.” 페니스를 잃는 사고를 통해 데이비드는 브루스, 브렌다, 데이비드라는 세 가지 인생을 살아야 했다.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을 선택할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성 심리학 권위자인 머니 박사는 양성으로 태어났거나 사고로 성기를 잃은 경우, 의도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으로 성을 정해주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면 주어진 성에 따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근거없는 믿음으로 그는 주어진 성에 저항하는 브렌다의 태도와 반응을 자신의 연구에 유리하게 해석했고, 결국 그의 이기심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재단되었으며 가족들까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저자는 아무리 완벽하게 성을 바꾸거나 치료를 한다 해도 당사자의 의사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분히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성, 그것도 성전환을 경험한 인물의 삶을 통해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간성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제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