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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붉은 방 인간의자 고구마벌레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복면무도회 1인2역 오세이의 등장 목마는 돌아간다 Ⅱ 독풀 백일몽 화성의 운하 공기사나이 악령 손가락 Ⅲ 방공호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메라 박사 쌍생아 춤추는 엄지동자 사람이 아닌 슬픔 거울지옥 벌레 에도가와 란포를 소개하며 저자 후기 |
Rampo Edogawa,えどがわ らんぽ,江戶川 亂步,히라이 타로平井 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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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육군병원으로 남편을 만나러 가던 날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새하얀 시트 속에 무참히 부상당한 남편의 얼굴이 멍하니 그녀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의사가 어려운 의학용어를 섞어서 부상 때문에 귀가 먹고 발성기능에 이상한 장애가 생겨서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이미 눈까지 빨개져서 연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에 제법 불쌍하다는 얼굴로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조용히 시트를 제쳤다. 거기에는... --- 〈고구마벌레〉중에서
19세기의 고풍스런 프리즘 쌍안경 너머에는 우리가 생각도 못할 놀라운 별세계가 있어, 그곳에서 머리를 올려 묶은 요염한 처녀와 고풍스런 양복을 입은 백발노인이 기묘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엿봐서는 안 될 것을 지금 이렇게 마법을 사용하여 훔쳐보는 듯한 야릇하기 그지없는 기분으로, 거의 홀린 것처럼 나는 그 불가사의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말았다. --- 〈누름꽃과 함께 여행하는 남자〉중에서 흉내 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죠?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인간 또한 흉내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슬프고도 무서운 숙명을 갖고 있으니까요. 타르드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인간생활을 결국 ‘모방’이라는 두 글자로 정리하려고 했을 정도가 아닙니까?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면 무서워지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 무서운 건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 무서울까요? 거울 너머에 또 한 사람의 자신이 있어서 원숭이처럼 인간의 흉내를 내기 때문이겠죠. --- 〈메라 박사〉중에서 저는 왜 그날 밤 창고 안으로 들어갔을까요? 깊은 밤 창고 2층에서 일어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데도 미련스러울 정도로 의심덩어리가 되어 마침내 그곳까지 가봤다는 건,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어떤 정신적 감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흔히 말하는 예감 같은 게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이따금 상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 〈사람이 아닌 슬픔〉중에서 후요우에 대한 그의 연모의 정은 엿듣기나 훔쳐보기가 거듭될수록 숨도 못 쉴 정도로 불타올랐다.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처럼 그립기도 하고 나긋나긋한 꿈처럼도 느껴지고 또 도리어 유령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장면도 있었다. 광란의 요부가 된 그녀.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무수한 뱀처럼 서로 뒤엉키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눈부신 나신이 복숭아빛으로 빛나고, 윤기나는 사지는 허공에서 버둥댔다. 마사키는 그 광폭한 모습이 견디기 어려워 부들부들 온몸을 떨어야만 했다. --- 〈벌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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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에도가와 란포가 사인을 할 때 써주었다는 유명한 문구다. 이 문구가 암시하는 것처럼 그의 글에는 기괴하고 환상적이며 음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에도가와 란포가 태어난 해가 1894년이고 첫 단편이 발표된 때는 1923년이니 초기 단편들은 벌써 80년도 더 된 것들이지만 일본에서는 지금도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다양한 컨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이 재미있고 발상과 문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문화의 다양한 장르를 들여다보면 란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다. 그의 소설이 만화, 게임, 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수없이 작품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원류인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에도가와 란포의 전집은 대략 이삽십 권 정도의 분량이어서 모두 번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선택하여 펴내게 된 것이 치쿠마쇼보筑摩書房의 3권짜리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이다. 이 시리즈는 미스터리 비평가이며 프리랜서 편집자인 쿠사카 산조日下三藏의 기획으로 3권에 총 51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1권과 2권은 ‘본격추리’, 3권은 ‘기괴환상’으로 구성) 1권에는 란포의 대표작을 포함하여 22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1권 22편, 2권 7편, 3권 22편) 작품의 원본으로는 에도가와 란포 자신이 교정을 한 도원사桃源社판 《에도가와 란포 전집》 18권이 사용되었다. 도원사판 전집의 각권 후기에는 란포가 직접 작성한 후기가 첨부되어 있는데 치쿠마쇼보의 전단편집에도 그 내용이 실렸다. 그 덕분에 이 책에도 란포의 후기가 이 책에도 포함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란포의 후기를 읽어보면 그의 인간관계라든가 당시의 사회 분위기 등을 알 게 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자기비판적인 내용이나 본격추리에 대한 세간의 좋지 않은 평가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인간적인 면모도 느낄 수 있다. 에도가와 란포가 활동을 시작한 때는 일본의 추리소설이 걸음마를 시작한 초창기였다. 80년이 넘은 그 옛날에 이런 정도의 논리적인 퍼즐을 독창적인 이야기에 담아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며 란포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에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독특함이 느껴진다는 건 확실히 에도가와 란포만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