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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시아 깁슨? 할렘 역사상 가장 키가 크고,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합니다.
“앨시아에게 빵을 사오라고 돈을 준 뒤 어떻게 되나 보세요. 가다가 스틱볼 게임을 하는 애들을 보는 순간 빵은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앨시아 어머니의 말입니다. “한번 야구를 했다 하면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해요. 아예 며칠 밤을 샐 때도 있어요.” 아버지의 말입니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앨시아는 쉬는 시간이 끝나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아요. 운동장에서 수업을 했다면 앨시아를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경찰 아저씨의 말입니다."앨시아는 정말 빨라요. 하지만 과자를 훔치는 것이 스포츠는 아니죠. 그것은 나쁜 짓이에요." --- pp.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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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시아 깁슨은 1927년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1957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었다.
앨시아 깁슨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꿈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앨시아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또한 버디 워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버디 워커가 한 소녀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고 그녀에게 테니스 라켓을 사 준 순간 그는 앨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놀라운 일들에 시동을 건 것이었다. 앨시아는 자신의 삶의 방향이 바뀌도록 도와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늘 잊지 않았다. “내가 성공했다면 반은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 엄청난 비난 때문이고, 반은 나를 돌보고 도와 준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버디 워커, 주안 세렐, 프레드 존슨은 앨시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의사, 학교 선생님, 가정 주부, 심지어 복싱 챔피언 슈가 레이 로빈슨과 조 루이스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앨시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앨시아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적과 싸울 수 있는 힘이었다. 그 적은 바로 인종차별이었다. 앨시아는 ‘테니스계의 재키 로빈슨’이라고 불렸는데 이유는 그녀가 테니스 역사상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윔블던에서 우승한 최초의 흑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윔블던 같은 큰 대회에 참가하는 유일한 길은 그보다 작은 선수권 대회에 초청을 받아야 하는데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미국 론 테니스 협회(USLTA)는 앨시아가 선수권 대회에 초청을 받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앨시아의 경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할 수 없는데 어떻게 경력을 쌓을 수 있겠는가? 유명한 테니스 선수인 앨리스 마블은 앨시아가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앨시아도 선수권 대회에 참여하게 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한 테니스 잡지에 썼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내가 청춘을 바쳐 헌신한 스포츠계가 단지 피부색 때문에 대회 참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스포츠계가 미국의 모든 시민에게 길을 열어 줘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 테니스는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선구자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미국 론 테니스 협회는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했고 앨시아는 각종 대회로부터 초청장을 받기 시작했다. 그 다음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앨시아는 수많은 테니스 대회에 참가해서 각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윔블던 컵에서도 1957년과 1958년 두 번이나 우승했다. 그녀는 골프, 수영과 함께 백인들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테니스계에서 인종차별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테니스의 역사를 바꾼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 이후 “빈민 출신의 흑인이 무슨 테니스냐?”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앨시아 깁슨은 2003년 9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