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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애국의 탄생 히틀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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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독일국민은 왜 독재자 히틀러에게 열광했는가

제1부 히틀러, 나치, 독일
이제는 검이 말하게 하라 1919
몽상가, 독학자, 딜레탕트 1889~1914
군대로 도피하다 1914~1919
허풍선이인가 독일의 희망인가 1919~1923
반역 1923.11.9.
물밑작업 1924~1926
변화의 징조 1925~1929
동원 1930~1931
독일이여, 신과 함께 전진하라 1932~1933

제2부 총통과 그의 국민
법과 질서 속에서 혁명을 1933
독일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 1933~1934
장검의 밤 1934. 여름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 1933~1937
전쟁 준비 1937
유화정책과 시간 벌기 1938
유대인 몰이사냥 1938.11.
은폐된 전쟁에서 공공연한 전쟁으로 1938~1939
전쟁을 위한 백지수표 1939

제3부 추락하는 국가
안락사와 신중한 저항 1939~1945
국민과 총통이 함께 승리하다 1940
생존공간 확보를 위한 말살정책 1941~1943
총력전 1943
이탈리아인들의 이성적인 배신 1943~1944
저항은 소용없는 일? 1933~1945
영웅성과 자기 기만 1944.7.20.
민족 대학살 1941~1945
대가 1945

인명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라파엘 젤리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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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ael Seligmann

독일의 명망 있는 정치학자, 역사학자, 작가로서 베를린에서 저작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학과 현대사를 연구하였으며 《벨트》(Die Welt)지 편집인과 뮌헨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미국과 영국, 독일의 여러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슈테른》 《슈피겔》 《포커스》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 《라인이셔 메르쿠어》 《타츠》 등의 잡지와 신문에 쓴 비중 있는 에세이로 독일 사회에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번역하는 사람. 『빛을 먹는 존재들』, 『이토록 아름다운 뇌』, 『어떤 죽음의 방식』, 『호라이즌』, 『욕구들』, 『자연에 이름 붙이기』,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우울할 땐 뇌 과학』,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을 번역했다.

정지인의 다른 상품

역자 : 박정희
중앙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전대, 인하대, 중앙대 강사 및 외국학연구소의 전임연구원, 한신대 학술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주대학교 유럽어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현대문화학의 컨셉들』(공역)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독일문화의 이해―동독문학과 통독 이후 문학의 이해』(공저), 『기호학으로 세상읽기』(공저)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0월 2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92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9023

책 속으로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독일제국의 몰락은 정치적인 실책의 결과였고, 그 실책은 바로 합리성을 거부한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자 수많은 독일국민들은 지향점을 상실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망명자 아돌프 히틀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조국을 파국으로 이끈 원인을 자신들의 정신자세와 행동에서 찾지 않고 음모 때문이라는 손쉬운 핑계를 끌어대며 안팎의 적들 탓으로 돌렸다. 그 가운데 유대인이 가장 핵심적인 적으로 꼽혔다.
이리하여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에 잠재된 갈등은 전쟁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해관계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더욱 첨예하게 상충되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들은 ‘유대화한’ 근대적 사고에 전쟁을 선포했고, 히틀러는 그 선봉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세계관과 유창한 말솜씨와 특유의 행동을 통해 독일에서 역동적인 추종세력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10여 년 만에 히틀러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독일국민과 미래의 총통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들은 동일한 가치관과 적개심 그리고 소망에 따라 나아가고 있었다. --- pp.43~44, 「이제는 검(劍)이 말하게 하라 1919」 중에서

이런 연속된 패배도 히틀러에 대한 독일인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1944년 12월에 히틀러가 독일국방군과 친위대에게 가망도 없는 벨기에 해안의 재정복을 위해 아르덴을 침공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런 사실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독일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며칠 만에 완강한 벽에 부딪혔다. 적의 목을 부러뜨리겠다는 계획은, 공중을 완전히 장악당한 상태에서 몇 배나 월등한 전력의 연합군 보병부대와 맞부딪힘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무모한 공격으로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멀쩡히 남아 있던 전투부대까지 희생시켰다. 전략적으로 파멸에 가까운 패전에도 불구하고 총통에 대한 병사들의 충성심은 마지막까지 모든 의혹과 의심을 뛰어넘었다. 이른바 ‘조국전선’ 역시 총통에게 마찬가지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독일인들은 총통을 신뢰하는 마음을 일종의 고결함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범죄라고 할 수 있는 태도였다.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독재자를 몰아내는 일을 감행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끝까지 히틀러를 독재자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413~414, 「이탈리아인들의 이성적인 배신」 중에서

출판사 리뷰

누가, 왜, 독재자를 만들었는가!
반세기 전 인류는 5,000만 명 이상의 사상사와 생체실험, 유대인과 장애인 대학살 등 히틀러가 벌인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며 한 독재자의 광기가 낳은 결과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각계의 평가에서 히틀러는 언제나 정중앙에 놓여왔으며, 현대사에서 히틀러만큼 한 개인의 삶이 끊임없이 연구되어온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독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히틀러와 그가 일으킨 전쟁을 이해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정중앙의 히틀러 뒤에 희미하게 처리된 7천만 독일국민이다. 현재까지도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금서로 여겨지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나치정권 당시 독일에서 1,000만 부 가량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히틀러와 독일국민 사이를 이어준 단단한 연결고리가 무엇이었던가를 묻게 한다.

히틀러와 그의 국민을 조명한 새로운 시각의 히틀러 평전
신간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는 ‘독일국민의 집단적 애국주의와 히틀러의 공모’라는 관점에서 히틀러의 독재를 조명하고 ‘애국’이란 이름으로 집단적으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독일국민의 사회심리학적 상태를 확인한, 그동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의 히틀러 평전이다.
저자인 라파엘 젤리히만는 이 책에서 히틀러의 삶, 주로 독일정치계에 입문하여 최후를 맞기까지의 정치적 행보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쟁의 전개과정, 히틀러를 끝까지 신뢰한 독일국민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 독일과 유럽 각 국가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며 히틀러와 독일국민의 집단애국이 어떻게 공명하여 결국 비극적인 종말로 치닫는지를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관점은 요아힘 C. 페스트와 이언 커쇼가 쓴 히틀러 전기와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저술에서는 뚜렷이 보이지 않았던 독일국민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으며, 나아가 애국이 집단적 광기로 표출될 때 돌이킬 수 없는 참상을 낳을 수 있음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 경고하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일의 성숙함을 보여준 한 권의 반성문
저자 라파엘 젤리히만은 독일의 《벨트》(Die Welt)지 편집인과 뮌헨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슈피겔》 《슈테른》 《타츠》 등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각종 언론에 비중 있는 에세이를 써 독일사회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명망 있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2004년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나의 투쟁』을 성숙한 독일국민이 사서 볼 수 있게 판매금지 목록에서 지워야 한다고 촉구하여 독일사회를 한바탕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독일국민의 광신적 애국주의, 즉 이성을 잃어버린 집단애국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그 역사적 전개를 보여주는 이 책은 오늘날 독일국민의 성숙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집단애국이 극명하게 표출된 근래의 몇 가지 역사적 사건들, 즉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칸 공격과 티베트 소요에 대한 중국의 무력진압 등과 비교해볼 때 더욱 드러난다.

히틀러를 지도자로 세운 선량한 시민들
히틀러의 정치인생을 살펴보기에 앞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민주적인 선거에서 1,700만 명의 독일인들은 왜 히틀러를 선택했을까?’ ‘어떻게 한 사회 전체가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일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
저자에 의하면, 히틀러는 독일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하여 끝까지 권력을 지킬 수 있었으며, 독일국민 또한 히틀러가 뿌려놓은 애국이라는 밑밥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독일국민의 공모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히틀러 자신의 카리스마와 더불어, 근대로 나아가기를 두려워 한 독일국민의 두려움을 들 수 있다. 과거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갇혀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조각조각 분열되어 있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에 따라 정치적으로 거의 300개 지역으로까지 분할되어 단일한 정신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던 독일에게 근대적 사유는 혼란과 폭력의 동의어일 뿐이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에게 점령당한 데 대한 굴욕감은 그런 독일의 민족주의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 독일민족을 선민으로 표현한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1807/08)과 게르만 신화로의 회귀를 음악으로 완성한 바그너의 사유도 여기에 잇닿아 있다. 나아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망에 따른 민족적 자존심의 손상과 악화된 경제상황은 독일국민으로 하여금 적을 찾게 했다.

독일국민이 발견한 내부의 적, 유대인
독일국가의 적은 독일사회 내부에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근대화’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이었다. 당시 독일인구의 1퍼센트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유대인들이었지만, 독일인 노벨상 수상자 중 4분의 1, 판?검사의 6퍼센트, 변호사와 공증인의 15퍼센트, 의사의 7퍼센트, 언론인과 작가의 8퍼센트가 유대인이었으며, 섬유산업의 40퍼센트, 백화점 유통망의 5분의 4가 유대인 소유였다.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인 중심지로서 자기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의 5분의 1 이상, 150개 민영 은행 중 3분의 1이 유대인의 손에 있었다. 이렇게 볼 때 1700년 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유대인을 추방하지 않았던 독일이 19세기 후반부터 유대인과 본격적으로 갈등을 일으켰던 이유는 민족과 종교에 기인한다기보다 독일국가의 재탄생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독일국민은 히틀러의 선동에 따라 모든 악의 근원인 유대인을 뿌리부터 뽑아낼 때 독일민족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사상 유례없는 나치당의 성장
1919년, 히틀러가 입당한 해의 9월에 독일노동자당(이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일명 ‘나치당’으로 바뀜)은 당원이 백 명가량에 불과한 국가주의적 성향을 지닌 소시민들의 정치모임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선동으로 1922년 당원이 4,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일 년 후에는 6만 명에 달했다. 당원의 절반은 수공업자와 점원, 농부, 공무원, 중하층이었고, 3분의 1이 노동자였다. 1928년 공화국 의회선거에서는 81만 명이 지지했으며, 12명의 의원이 당선되었다. 당원은 약 17만 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지지기반이 약했다. 그러나 2년여가 지난 1930년 9월 투표에서는 650만 명의 지지자와 107명의 의원이 당선되었다. 이것은 독일 역사상 한 정당이 이룬 가장 엄청난 도약으로서, 나치당원의 평균연령은 30세 이하였으며 여성은 10분의 1도 안 됐다. 히틀러에게 지지를 표한 사람들의 4분의 3이 개신교 신도였으며, 부르주아와 자영업자, 고소득자도 많았지만, 당의 가장 막강한 근거지는 농촌이었다. 일 년 후 투표에서는 1,700만 명의 유권자가 나치당에 표를 던지고 의석은 230석으로 늘어났다.

히틀러의 독재에 유혹당한 독일의 애국자들
유혹자 히틀러가 외친 것은 시종일관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민족의 혁명”이었으며 독일국민은 그런 그에게서 독일의 희망을 발견했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모든 것을 동원했다.
히틀러는 에른스트 룀, 하인리히 힘러, 요제프 괴벨스, 헤르만 괴링 등 필요한 사람은 모조리 자기편으로 만들어 평생 마법처럼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 중에는 학식이 풍부한 엘리트도, 군 장성도 있었지만 그의 단순명쾌한 논리 앞에서 복종을 맹세할 뿐이었다. 또한 히틀러는 나치돌격대, 친위대, 독일청소년단, 독일소녀단, 히틀러 유겐트, 독일소녀연맹, 전국농업협회, 나치대학생연맹, 나치교수연맹, 나치 교사연맹 등 남녀노소, 직업과 계층을 불문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직으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았으며, 그 중 많은 수가 자발적인 애국심에 나온 것이었다. 《푈키셔 베오바흐터》 《도이체 폴크스빌레》 등 각종 언론들도 그의 지지기반을 다져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독일국민은 스스로를 수천만의 비극을 부른 전쟁의 공모자라고 생각했을까? 히틀러가 1933년 국제군축회의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을 때 독일국민이 환호를 보낸 사실을 보면 그들은 히틀러를 독재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공모자가 아닌 애국자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패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조차도 병사들과 시민들은 점점 황폐해져가는 조국의 모습은 외면한 채 승리를 위해 싸웠다.

독일의 경험에서 배운다.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협하는 ‘집단애국’을 경계해야…
히틀러와 국민의 공모를 다룬 이 책은 어느 민족, 어느 국가에게나 반면교사로서 집단적?광신적으로 표출되는 애국주의에 대한 성찰과 경계를 요구한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국과 티베트를 무력 진압한 중국이 내세운 ‘폭력의 명분’, 즉 그들의 애국에 대해 외부의 시각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나라의 국민들은 이러한 비판적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조기와 오성홍기를 열심히 흔들어댔다.
근현대사에서 우리나라만큼 태극기를 많이 흔들었던 국가 또 있을까? 대한독립을 외치면서 흔들었던 3월 1일의 태극기, 독립 후 이념의 대결 속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총칼을 겨누고 지켰던 태극기(북한은 인공기), 인권을 한없이 추락시켰던 반공과 경제발전 논리의 태극기, 1980년 광주의 태극기, 민주화운동의 태극기, 거리를 붉게 물들였던 2002년 월드컵의 태극기, 그리고 촛불과 함께 들었던 태극기. 그 수많은 애국의 물결에서 희생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과연 없었을까?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는 오늘날 다원성의 존중과 통합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한국사회에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진단하는 데 언우 유효한 시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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