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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1. Trans-Drama 베토벤 바이러스 신드롬 / 음악의 운명 / 창공을 날아라, 일상의 너절함이여! / 리비도 언리미티드 / 춤은,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세상 끝에서 만나는 지식 / 드라마속 '어런이'의 두려운 변신 / 그, 그녀, 그들의 20대 / 용서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게 / 엑스트라토피아를 꿈꾸며 / '두 번째 여자들'의 역사 2. Multi-Life 공짜의 미학 / 모두가 망가져도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 따스함 / '사모님'과 함께 슬픔을 웃는 법 / 88만원 세대, 그 그릴 수 없는 경계에 대하여 /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홍수 / 속독은 가능한가, 비독서의 쾌락은 가능한가 / '만 원의 행복'을 넘어서는 일상 속의 길 찾기 / 참고서 신드롬 / 불편하지만 절박한 동거 3. Anti-Story 작두 탄 구라의 향연 / 오르한 파묵의 스토리 파라다이스 / 안티-신파, 안티-이념, 그리하여 안티-서사로 / 독기와 허무로 가득 찬 아이들 / 제국의 야만이 훑고 간 폭력의 자리 / 낭비의 기술, 탕진의 지혜 / 김훈을 넘어선 김훈을 꿈꾸며 / 팩션의 매혹과 중독 / '기억'의 중력과 싸우는 '서사'의 투쟁 4. Cross-Book 사랑'이' 변하니? 사랑 '마저' 변하니? / 전쟁의 은유로 범람하는 대중문화 / 길들여지지 않은 회색의 다성성 / 타인의 고통을 앓는다는 것 / 우리 안의 예술가를 발굴하는 법 / '동굴 속 황제'로 커가는 한국 남성의 역사 / 위대한 작문 교재는 없다 / 역사를 전복하는 역사의 향연 / 쿠바, 지속 가능한 행복의 탐험기 / 이별의 고통과 애도의 기술 / 실패한 역사의 창조적 날조 / 비인간의 지대에서 인간을 꿈꾸다 / 매순간 다시 쓰이는 팩션 5. Via-People 비평=창작=사랑의 오케스트라 / 저잣거리에서 빛나는 선비의 복화술 / 글로 연주하는 음악의 기적 /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탈주하는 욕망의 다큐멘터리 6. Inner-View 진중권 인터뷰 : 그림에서 이야기 찾기, 진중권식 글쓰기의 모험 김형경 인터뷰 : 풍요로운 말들의 풍경을 찾아서 김연수 인터뷰 : 타자를 향한 집요한 편애의 기록 권여선 인터뷰 : 상처의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의 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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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의 카오스를 꿈꾸다 이 책의 개요
미디어 비평가이자 문학평론가로 폭넓은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는 정여울! 그가 맛깔스럽고 감칠맛 나는 글쓰기로 드라마를 가로지르고 미디어를 횡단하면서 지식과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한 미디어 탐사기 『미디어 아라크네』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건조하고 객관적인 정보로 존재하는 미디어를 저마다의 사연과 욕망과 내면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의 카펫으로 직조한다. 집단적 구경거리로 획일화된 미디어의 풍경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자신이 살아가는 자신만의 이야기로 짜내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직조 기술이 뛰어난 여성 아라크네처럼! 정여울은 스스로 드라마, 책, 코미디, 지식, 사람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된다. 현실의 ‘슬픔’을 분노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천진한 유머와 생뚱맞은 대화로 슬픔을 ‘웃어버리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드라마를 가로지르고, 책을 횡단하고, 코미디 속에서 삶을 발견하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서 지식을 매개하고,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그가 만나는 사건과 사물들은 그를 통해 새로운 것으로 해석되고, 자신만의 살아 숨쉬는 사연과 욕망, 그리고 내면으로 되살아난다. 『미디어 아라크네』에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사건과 사물 사람들은 자유스러움을 넘어 잡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여울은 소재의 잡스러움을 ‘나’(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냄으로써 ‘탁월한’ 이야기꾼의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개인의 감동보다는 집단의 스펙터클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예술적 가치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대중문화 콘텐츠의 미덕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개인을, 육체를, 감동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미디어의 거대한 스펙터클 앞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대형 스크린의 압도적 영상 앞에서 더 이상 작아지지만은 않기 위해 오늘도 미디어라는 구슬로 나만의 비즈 목걸이를 만든다. 노끈과 실크와 삼베와 철사 같은 이질적인 재료들을 한데 엮어 나만의 풍경을 만들고 싶다. 나의 글쓰기가 집단적 구경거리로 획일화되어가는 미디어의 스펙터클을 내 안의 내밀한 풍경으로, 내가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로 바꾸는 레시피가 될 수 있기를. 건조하고 객관적인 정보로 존재하는 미디어를 저마다의 사연과 욕망과 내면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의 카펫으로 직조하고 싶다. ― 『미디어 아라크네』 7~8쪽 2. 세속적이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우정’ 이 책의 특징 1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드라마는 왜 저렇게 불륜 일색이며, 광고는 왜 저렇게 유치하기만 하며,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왜 예쁘고 잘빠진 연예인만이 나와 설쳐대느냐!” 정여울은 대중문화를 향한 시선이 차갑고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대중문화는 공기가 된 지 오래다. 도시의 삶에서는 그것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드라마와 방송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누구나 공기처럼 마시고 있고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것 속에서 삶의 기운과 생동감을 찾아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가 택한 방식은 드라마나 방송과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감각의 수용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방식보다는 그 상황을 다르게 보고 그 안의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려 애쓴다. 세상 사람들이 세속적이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느낀 대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잘 간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그 흔한 해외 로케이션도, 엄청난 물량공세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시키는 스펙터클도 없다. 이 드라마의 유일한 액세서리는 음악이다. 보이는 TV를 들리는 TV로 역전시킨 이 드라마의 위력, 강마에의 싸가지 없는 리더쉽이 어여쁜 이유도 또한 음악의 힘이다. 그의 절대권력은 오직 한 가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의 눈치만 본다. 대통령이 참관한 연주회에서도 연주를 파투낸다. 가난에 찌들어 컨테이너에 살던 소년의 유일한 꿈, 그 음악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것만이 그의 유일한 신앙이다. 그는 스타일을 구기지 않기 위해 욕망을 포기하는 현대인들에게 코웃음을 친다. 그 무엇에도 내 불행의 탓을 돌리지 않는 싸가지 없음을 가지라고. 언제든지 내 실패의 알리바이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온라인 최저가 운세상담에 의존하지 말고, 족집게 사주팔자, 타로카드에 네 운명을 맡기지 말고,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꿈의 눈치만을 보라고 강요한다. 그 강요가 숨 막히기는커녕 달콤하기 짝이 없는 이유 또한 음악의 힘이다. 드라마에 실린 클래식은 더 이상 고상한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클래식의 역사를 줄줄 꿰어야 비로소 향유할 수 있는 전문적 취향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뜨거운 소주를 마시며 내 방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절박한 사연의 날실과 욕망의 씨줄이 얽혀 있는 음악의 힘은 공연 티켓이 없이도 최고의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TV 드라마를 창조했다. ― 『미디어 아라크네』 본문 17~18쪽 3. 매스미디어의 스펙터클 속에 감춰진 ‘나’만의 세계 이 책의 특징 2 정여울은 드라마, 코디미 등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들 매개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획일화된 상징이나 표상에 포획된 우리들의 집합적인 존재감을 꿈틀거리는 개인으로 빛나게 해준다. 현란한 인터넷과 복잡한 제테크는 우리를 정말 풍요롭게 해주는 것일까? 현대인은 철저히 ‘네티즌’이나 ‘개미투자자’로만 확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여울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우리가 포기했던 ‘꿈’을 재접속하게 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새로운 가족의 등장을, 「무릎팍 도사」에서 가슴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따스함’을, 개그 프로그램 「사모님」에서 자신의 슬픔을 자신만의 ‘유머’로 웃어넘기는 새로운 능력을 발견해낸다. 독특한 이야기 세계를 창조하는 이야기꾼들도 그가 접속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창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상력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는 「오르한 파묵의 스토리 파라다이스」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팩션의 매혹과 중독」에서 운명을 거스르는 ‘하찮은’ 개인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야기에 대한 파묵의 무구한 사랑을 엿보다 보면, 스스로는 어떤 구원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구원시키려는 자, 그가 바로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 한 편을 통해 타인의 인생 전체를 다 살아낸 듯한 장쾌하면서도 처연한 랑데부를 선물해준다. 그는 이야기가 주는 무구한 기쁨 앞에 매번 무장해제되는 인간의 본성을 남김없이 이용할 줄 안다.…… 거울을 볼 필요가 없는 세상, 내가 누구인가를 묻지 않아도 되는 삶. ‘나=그’의 방황의 종착역은 오직 이야기를 창조하고 향유하고 소통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행복한 ‘스토리토피아’다. 그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세헤라자데의 달콤한 요설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장해제 당하는 인간의 욕망, 이야기를 향한 조갈증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얀 성』의 주인공은 이야기의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삶을 누리며 행복한 말년을 보낸다. 어쩌면 파묵이 복화술로 보내고 있는 메시지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전세계의 작가들이여! 이야기의 힘 앞에서, 전세계의 민족주의를, 자본주의를, 벌벌 떨게 하라! 파묵은 오늘도 이야기‘로써’ 다른 무엇을 획득하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살아내며, 이야기에 취해 이야기 속으로 저물어가는 삶을 꿈꾸고 있다. ― 『미디어 아라크네』 본문 132~133쪽 4. 자신만의 삶을 디자인하고 있는 9명의 사람들에게서 본 ‘미래’이 책의 특징 3 이 책에는 정여울이 만난 다섯 명의 사우(師友)가 등장한다. 정여울이 접속하여 재해석해낸 스승이자 친구들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실천함으로써 인감임을 깨닫게 해준 수전 손택,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에 가장 근접한 18세기 문인 이옥, 문자로만 연주한 철학 오케스트라 니체, 지식을 맛있게 요리함으로써 지식만이 뿜어낼 수 있는 소중한 아우라를 지켜낸 정운영, 정주민의 유학(儒學)을 노마드의 불학(佛學)으로 사유란 이탁오이다.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텍스트였다. 그리고 우리 시대 이야기꾼 네 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진중권, 김형경, 김연수, 권여선이 그들이다.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담아낸 아홉 명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했거나 디자인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여울이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수전 손택이다. 수전 손택은 모든 ‘강자들’에게 두 눈 부릅뜨고 달려드는 열혈전사이다. 세계적인 비평가이며 작가이며 운동가였던 그는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유명하지만, 그 문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에 대한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예술은 분석이나 비판보다는 ‘사랑의 창문’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의 글이 칼이 되고 화살이 되어 우리의 심장에 박히고, 그 문장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향한 단순한 ‘공격’이기보다는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만 조용히 그의 옆자리로 가 앉는 것, 우리가 가진 저마다의 크고 작은 힘을 타인의 눈물을 닦는 데 쓰는 것이라고 정여울을 말한다. 몇 달에 걸쳐 그(이옥)의 산문을 더듬더듬 읽은 후 이제 더 이상 그의 가장 놀라운 장기가 ‘불행의 극복법’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옥전집』의 빼곡한 산문들을 다 읽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결코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불운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음을. 그는 글쓰기로 인해 끔찍한 형벌에 처해졌지만, 글쓰기로 인해 결코 외롭지도 두렵지도 춥지도 않았다. 그에게 글쓰기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칭얼거림이 아니었다. 그의 글쓰기는 태어나서 결코 한 번도 자신의 어엿한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천민, 기생, 노예들의 입술이자 성대이자 마이크였다. 그의 필살기는 타인의 고통에 깊숙이 들어앉음으로써 자신의 고통 따위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타자를 향한 ‘저물기’의 전법이었다. 그는 모두가 ‘도(道)’로 얼버무리는 세계의 천변만화한 차이들을 차디찬 성리학의 골방에서 끌어내 세상 속으로 방생시켰다. 그에게 글쓰기는 서책이 아닌 저잣거리에서 빛나는 ‘세속의 계시’였으며, 모두가 혀를 끌끌 차는 타인의 불행이 글쓰기로 인해 치유되는 ‘구원의 카니발’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쓰기는 어두운 곳에 강림하시어 빛을 내리시는 신성한 계몽의 몸짓이 아니라, 당신과 끝내 함께하기 위한 ‘사랑’의 관능적 몸짓이었다. 그는 글쓰기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그리고 버림받아 한기에 떨고 있는 미래의 얼굴 모르는 삶을 구원했다. 그는 벤야민의 ‘이야기꾼’의 매력에 가장 근접한 18세기의 문인이었다. ― 『미디어 아라크네』 본문 251~2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