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정치적 생태학 : 해방의 윤리
1. 자본주의의 퇴조는 이미 시작되었다 2. 전문가정치와 자기제한 사이에 있는 정치적 생태학 3.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 4. 파괴적 성장과 생산적 탈성장 5. 세계적 위기, 탈성장, 그리고 자본주의의 퇴조 6. 가치 없는 부, 부 없는 가치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출전 |
Andre Gorz
앙드레 고르스의 다른 상품
|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 비판에서 출발하여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생태학에 이르게 됩니다. 정치적 생태학이란,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필요에 대한 비판이론을 갖추고, 자본주의 비판을 더욱 심화하고 급진화하는 쪽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나는 생태학의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안 하겠고, 차라리 주체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에 자본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비판도 내포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비판에서 정치적 생태학은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차원을 이루지요. 반면 생태학적 정언명령에서 출발한다면, 녹색주의가 가미된 페탱주의, 생태학적 파시즘, 혹은 자연존중적 공동체주의나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지구를 함부로 파헤치는 행위, 생명의 자연적 기반을 파괴하는 행위가 하나의 생산양식의 결과로 이해되었을 때에만 생태주의는 비판적, 윤리적 책임을 제대로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양식은 수익의 극대화를 요구하고 생물적 균형을 교란하는 기술에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주장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배가 구현되는 기술들을 비판하는 것은 해방윤리의 본질적 차원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pp.11~12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자본회전의 가속을 쫓다 보면 당장의 이윤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은 모두 배제하기에 이릅니다. 따라서 산업생산이 지속적으로 팽창하게 되면 자연히 천연자원이 초토화되기에 이르지요. 자본의 무제한적 팽창이 필요하다 보니, 자본은 이윤을 남기고 파는 제품들로 천연자원을 대체하기 위하여 자연과 천연자원을 파괴하려 듭니다.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예로는, 거대 기업이 전 세계에 가요하려 드는 유전자변형 종자를 들 수 있겠군요. 이러한 기업들은 몇몇 품종의 자연생식만큼이나 그 품종 자체를, 농민을, 식량재배를, 간단히 말해서 인간 스스로의 식량생산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듭니다. ‘노동력 상품’, 즉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이, 무슨 대가를 치르든지 현재의 상황에서 고용을 옹호하고 고용을 옹호하기 위해 당장의 경제성장과 투자 수익률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과 투쟁하는 한, 이러한 파괴와 약탈의 공동책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 pp.148~149 |
|
부가 빈곤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를 지나 생태주의로!
사르트르가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한 앙드레 고르, 그가 모색한 30년 정치적 생태주의의 정수 “불황의 위협, 나아가 세계경제에 무겁게 드리운 붕괴의 위협은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재생불능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한다’는 추세와 확실히 결별하려면, 그리고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더 잘 하기’를 지향하는 삶의 모델을 재설정하려면, 소비하는 것은 전혀 생산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은 전혀 소비하지 않는 문명과의 결별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전의 경제와는 완전히 상이한 경제를 규정하지 않는 한, ‘성장’을 통해 신자유주의 근대화라는 덫으로부터 탈출할 수는 없다” 괴물이 되어버린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앙드레 고르 사상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입문서 『에콜로지카』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고 온 폭풍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풍부한 화제성을 가진 책 『에콜로지카』가 출간됐다. 저자 앙드레 고르는, 국내에서는 그동안 일부 진보 및 생태주의 진영의 학계에서만 알려진 채 대중에게는 널리 소개되지 않았으나 이미 1960년대부터 자본주의 비판이론과 생태주의 사상 형성에서 유럽 지성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故 문순홍 박사나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 등은 일찍부터 그를 주목한 바 있다). 이 책 『에콜로지카Ecologica』는 앙드레 고르가 아내와 동반자살하기 전 구상하여, 이미 발표된 그의 글 중 그의 사상이 요약?집중되어 있는 7편을 고르 자신이 직접 선별하여 엮은 책으로, 앙드레 고르 사상의 진면목과 그 사상의 변화?발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앙드레 고르는 노동이론가와 정치적 생태주의자의 시각에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생태 위기를 불러온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가 왜 붕괴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며,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태 위기를 불러온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에콜로지카』에서 앙드레 고르는 자본주의의 맹점과 이면을 거침없이 파헤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본 증식의 수단으로서 인간노동에서 금융산업으로 비중을 옮겨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금융자본의 거품붕괴와 그 파장을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예견하면서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퇴조의 징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무한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생산하고 소비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연과 자원을 초토화시키고 끊임없이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조장하여 소비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메커니즘을 분명히 보여준다. 1980년을 기점으로 마르크시즘과 결별한 이후의 그의 사상적 변화?발전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그는 자동화?로봇화로 인해 산업구조가 변화하고 환경, 도시, 주택, 의료, 교육, 과학기술 등의 영역에서 마르크시즘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오늘날,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으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난제들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태적 관점에서 볼 때, 자본회전의 가속을 쫓다 보면 당장의 이윤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은 모두 배제하기에 이르는데, 자본의 목표인 이윤추구와 임금노동자의 목표인 임금, 즉 자본과 노동이 ‘돈 벌기’라는 하나의 공통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생태 위기는 해결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따라서 노동운동과 노조는 임금수준과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생산의 궁극적 목적, 생산을 실현하는 노동의 상품 형태를 문제 삼을 때에만 반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복제품이 되어 지배질서 속에 편입된 노동계급이 더 이상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면서 썼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의 일부가 이 책에 실려 있다(‘생각의나무’에서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근간 예정). 또한 앙드레 고르는 정보혁명으로 인해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노동, 가치, 자본이 이제 더는 과거의 척도로 측정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자본주의는 지식과 체험을 자본화하는 인적 자본 중심의 지식경제 체제로 나아가려 하지만 지식 자체가 갖는 무상성(無償性)으로 인해 결국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를 불어올 것을 예측한다.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앙드레 고르는 자본주의 논리와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공동협력 자율생산이라는 새로운 생산양식과 문화의 탄생을 예견 및 모색하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소비해야 한다’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노동의 미덕’을 세뇌시키는 온갖 매체에궼 벗어나 임금노동 철폐와 생계수당 지급,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노동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탈출하여 최소한의 노동과 최대한의 자율 영역 확보를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성장’ 이데올로기에 조장되지 않은 진정한 ‘필요’와 ‘욕망’에 따라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주장한 일자리 나누기, 생계수당 등을 포함한 공동협력 자율생산 같은 프로젝트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져 실제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많은 국가에서 노동 및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책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가한 앙드레 고르 앙드레 고르는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군 징집을 피해 스위스 로잔의 가톨릭계 학교를 다녔으며 1945년 로잔 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그는 일평생 그에게 사고의 도구를 선사한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난다. “1943년부터 나온 사르트르의 저작들이 20년간 나를 형성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앙드레 고르의 삶과 사상의 중심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의 정치적 생태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의 교육, 사회화, 훈련 등에 의해 빼앗긴 ‘주체’를 되찾아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격렬한 실존적 투쟁으로 볼 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앙드레 고르는 1949년 도린과 결혼한 후 파리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세계시민운동 사무국과 주불 인도대사관에서 일했으며, 《파리 프레스》에서 처음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1955년에는 《렉스프레스》에서 경제담당 기자로 활동했으며 1964년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공동 창간해 1983년까지 참여했다. 1961년부터 1974년까지는 《레탕모데른》에서 경제 분야 주간을 맡았다. 앙드레 고르에게 영향을 끼친 주요 인물로는 사르트르 외에도 카를 마르크스와 이반 일리히,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노동소외에 대한 분석적 틀을 그에게 제공해주었으며, 일반 일리히의 교육과 의료, 임금노동 폐지와 같은 테제들은 앙드레 고르의 노동이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허버트 마르쿠제와는 절친한 사이로서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점차 마르크스의 예언적 가치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성장’을 거부하는 새로운 생산양식과 기술, 임금노동의 폐기가 없는 한 자본주의만큼이나 사회주의 또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노동계급의 분화로 인해 엘리트 노동계급이 비계급(실직자, 비정규 노동자, 주부 등)을 노예로 삼는 새로운 지배/피지배를 예견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이후로는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다.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한 앙드레 고르는 30여 년간 병마와 싸우는 아내를 간호하다가 2007년 동반자살한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추모사에 “평생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심층 분석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고 썼다. 유럽의 지성, 앙드레 고르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첫 책 앙드레 고르가 유럽 지성계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국내에 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단행본이 그의 유작이라는 사실은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그만큼 이 책의 번역 및 출간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더욱이 『에콜로지카』에 담긴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모색은 한국사회가 근래에 당면한 경제 및 생태 위기 속에서 돌파구 찾기에 나선 정부?기업?학계뿐 아니라 독자 개개인에게 현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