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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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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의 출생지부터 사망지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그의 작품을 훑어나가는 매혹적인 기행문 형식의 독창적인 전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
20세기 전기문학의 가장 독창적인 고전 앙드레 드 헤베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1939년)은 유럽권과 영미권을 합쳐 20세기 서구 지성사가 배출한 전기문학의 가장 독창적인 고전 중의 하나이다. 예술가의 전기 분야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미술사와 미학적 감상에 충실한, 그에 더해 전기문학 자체의 인생을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책은 정말 드물다. 더구나 역사와 예술과 인간에 대한 건전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도 흔치 않다. 미술사 분야는 전통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 전기문학의 고전들은 시대적으로는 낡은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참신하다. 왜냐하면 이후(특히 최근에) 출간된 전기들은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임했던 열정과 참신성에서 그들보다 훨씬 뒤떨어질뿐더러, 이 선배들의 노고를 인용하면서 중언부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라파엘로, 거대한 인물 미켈란젤로, 끝날 수 없는 결핍감으로 인해 정신의 끝에 도달하고자 했던 다 빈치…. 이들의 이름에 붙은 수식어의 의미마저 이제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된 전기를 접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역자는 빛나는 번역으로 원문의 미묘하고 특출한 통찰들을 유려하게 전달하고 있다. 어떻게 발굴했나? 역자 정진국은 유럽의 책마을과 헌책방들을 구석구석 수차례 답사하면서 해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면서 대중성을 확보한 고전들 가운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기억에서 잊혀진 책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이 세 권의 전기 모두 그런 작업에서 길어 올린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물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본문에 수록된 진귀한 먹 도판들-아마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될-도 마찬가지다). 역자는 과거 이미 절판된 책들부터 현대 유럽 영미권의 전기들을 비교분석 하면서 최종적으로 이 세 저자의 전기를 최고의 것으로 꼽았다. 기존의 전기 가운데 소설에 가깝거나 미술사 전문서 형태의 것을 제외하고, 역사와 미학에 충실하면서도 글 자체로서 매력적이며 잘 읽히는 “예술가 전기라는 글쓰기의 걸작”들이 이것들이다. 이 전기물들은 이미 이탈리아어, 영어, 불어, 독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 네덜란드어, 체코어, 헝가리, 루마니아어 등으로도 널리 번역되었고, 미술에 대한 대중적 교양의 관심이 급등했던 1920~1950년대에 출간되었다. 최근 것보다 이런 초기의 전기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료를 찾고 나중에 나온 것들에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차후에 밝혀져 수정된 사실들이 있으나, 이런 것은 결코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그들 당대에 다 밝혀내기 어려운 것이 전기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전기 또한 늘 다시 써야 하지만, 이 책들의 초석으로서의 가치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또 이 책들은 당대 최고의 출판사에서 펴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가 모두가 매우 흥미로운 이력을 갖추고 있을뿐더러 독창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현재 유럽과 영미권에서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글본이 출간된다는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20세기 전기문학의 거장들, 국내 첫 소개 이번 르네상스 거장들의 전기 출간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갈 점은, 저자들의 면모들이다. 세기말에 출생해 세기 초·중엽까지 활동한 헤베시, 베랑스, 파피니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파피니의 책만 두 권 번역된 바 있다) 전기 작가로 당대에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다. 각 권의 주요 특징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티(산치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 명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가 쓴 것으로서, 각자 매우 독특한 서술 방법을 취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 은 세 권의 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문학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서술방식과 문체가 돋보인다. 저자는 다 빈치의 출생지부터 사망지까기 그가 살아온 자취를 현장으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의 작품을 훑어나가는 매혹적인 기행문 형식을 취한다. 그의 예술에 대한 정교한 논문과 텍스트 분석, 또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 고귀한 인물 앞에서 바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굴러 떨어질 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레오나르도를 이해하자면 우선 겸손해야 하고 옛날 여행자들이 하던 식으로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등에 바랑을 지고 다 빈치의 조국을 순례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햇볕이 내리쬐고 올리브나무가 있는 그곳, 바로 농촌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정과 양피지 수사본에 파묻힌 사상가의 나라를…. 기존 전기들과의 차별성은? 르네상스 세 거장에 대한 전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것들은 코끼리처럼 거대하기도 하고 주머니 속에 들어갈 정도로 작기도 하다. 대단히 현학적이기도 하고, 적당히 날림으로 쓴 것도 있다. 꾸며내고 진부한 이야기로 넘치거나, 망언에 가까운 상상을 펴기도 한다(물론 예외적으로 몇몇 좋은 작품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천재의 삶을 다룬 전기들은 다른 거장들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종종 그 위대성에 압도되어 찬사와 신화로 윤색되기가 쉽다. 그러나 저자는 그가 살았던 현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과거와 현재를 대비하면서 거장의 위엄에 짓눌리지 않고서 담담한 필치로 그 실상에 접근하려고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신화를 벗기고, 그 설화에서 군더더기를 덜어내어 결국 거장이 살아 있던 현장에서 그 실화를 증언한다. 이렇게 저자는 거장이 걸었던 여정을 추적하면서 그의 삶을 장엄하려 하기보다 그의 인간으로서 솔직한 심정을 되새겨본다. 따라서 이런 문체는 거장의 위대한 예술에 대한 찬탄으로 수놓이지 않고 그의 삶의 진솔한 뒤척임, 앎과 또 사랑에 굶주린 사생아의 다소 비극적 성장소설처럼 짙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