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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1. 음악의 가치텔레비전 광고음악의 진정성말과 음악의 문제2. 베토벤으로 돌아가기고통을 통해 얻은 환희천사들 편에 서다음악은 영혼의 영역에 있는 것3. 위기 상황?범세계적인 자원죽음과 변용4. 상상의 대상흘러가는 시간 멈추기음들 사이의 음악연결고리가 최소인 거장음악의 역설5. 재현의 문제예술의 두 가지 모델음악에 포괄적으로 접근하기6. 음악과 학계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가고………… 어떻게 빠져나오는가7. 음악과 젠더보이지 않는 성음악 아웃팅하기음악은 우리가 행하는 무엇나오며참고문헌옮긴이의 말재출간에 부쳐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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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olas 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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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한스 폰 뷜로가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면서 연주자로서 자신을 지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주를 들으면서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오로지 베토벤이지 뷜로가 아니다. 주목할 점은 이 말이 상당한 칭찬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 흥미롭게도 연주자도 전통적으로 식당 종업원처럼 연미복을 입는다. 이는 그저 사소한 관찰 결과가 아니다. 요는 우리가 음악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이 연주자에게 종속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점이고(시장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자를 선호하는 경향과 완전히 어긋난다), 이것이 사회 내에서 종속적 지위를 지닌 다른 표현 요소와 결부되어 굳건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작곡가가 만들어놓은 것을 재연하는 일이 연주자의 역할이라고 보는 생각은 음악 문화에 권위주의적인 권력 구조를 제공했다. --- pp.42-43
은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워낙 굳게 뿌리박혀 있어서 평소에는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그리고 음악이 서랍이니 숲이니 하는 이런 은유들은 모두 서양 음악 문화의 밑바탕에 있는 뿌리 깊은 은유를 드러낸다. 바로 음악이 일종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혹은 로클리츠와 슐뢰서는 음악을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말하면서 이런 견해를 확실히 드러냈다. …… 음악을 쓴다는 생각도 은유에 의존한다. 서양의 보표 기보는 음악이 오선지 위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실은 아무 것도 없다. --- pp.96-97 사실 매클러리가 베토벤과 슈베르트(그리고 몬테베르디, 로리 앤더슨, 마돈나) 음악을 해석한 것은 쿠직이 논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로 그 수행적 개입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이런 식의 주장은 매클러리 논의의 가치는 외적 실체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와 닿느냐에 있다는 뜻이다. 즉 베토벤 음악은 정말로 스트레이트하고 슈베르트 음악은 정말로 게이답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젠더 정치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음악과 젠더에 관한 글은 찬성이든 반대든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이것은 21세기를 앞둔 지금 이 문제가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 pp.157-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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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읽다 음악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이 책 1장에서 텔레비전 광고 음악을 언급한다. 광고 음악을 접할 때 우리는 광고에서 흘러나오는 그것을 듣는가? 보는가? 우리는 광고업자의 메시지를 듣지만 여기서 음악의 힘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깨닫지 못한다. 음악은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그리하여 ‘원래 모습’인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은밀히 파고들어 우리의 의지를 조정하도록 만든다. 피리 연주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세계 곳곳에서 전해오는 인어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 이야기 등을 생각해보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루만의 ‘음악적’ 목소리도 있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음악을 단순히 새로운 들을 거리가 아닌 그것을 듣는 새로운 방법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음악을 다르게 경험하도록 이끈다고 말한다. 여기서 새로운 인식이란 음악은 인간이 만든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 보편적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착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판적 지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음악학자들만이 아니다. 아도르노가 분명히 이해했듯이 비판 이론은 음악을 등한시한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음악의 힘을 파헤친다. 그만큼 음악은 이데올로기의 대리인으로서 독보적 힘을 갖는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들을 줄도 알고 읽을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문자 그대로 악보를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문화와 사회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음악이 갖는 의미를 읽는다는 뜻이다.”(170쪽)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듣는 그것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은 음악에 관해, 그리고 우리가 음악에 부여하는 가치와 특질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지나치게 음악 외적인 맥락에 치중하는 것을 경계하며 음악 안과 음악 밖,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 균형을 잡으면서 새로운 흐름과 구별되는 위치를 다지려고 고심한다.”(185쪽) 결국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은 말 그대로 음악에 관한 책이면서 음악에 관한 사고(思考)에 대한 책이다. 다시, 음악을 말하다 이 책은 2004년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12년이 지나 새삼 이 책을 다시 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번역 또한 1998년 초판 이후 다시 발행된 2010년 개정증보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한때 음악은 영화가 이끄는 영상 시대가 열리면서 슬그머니 우리 삶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음악 없는 삶이 가능할까? 오히려 음악은 사라지기는커녕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음악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낸다. 어떤 변화가 대두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 관한 진지한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음악은 당연히 중요하다.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내가 이 책을 쓸 일은 없었을 테고, 여러분도 이런 믿음이 있기에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셈이다. 음악은 따로 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에 있다. 실은 대상이라기보다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 자신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10쪽) 음악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음악은 왜 미적 자본이라 명명하는가, 음악의 가치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인가, 진정한 음악이란 따로 있는가, 음악은 상상력의 소산인가, 악보나 음반은 음악과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을 통해 바로 음악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은 그들만의 순수한 어떤 것(순전히 음악적인 것)이라는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음악을 골방에서 끌어내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음악이 널려있는 오늘날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것이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가볍지 않은 주장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다시 펴내는 이유다. 처음 이 책을 번역했던 역자의 소회를 여기 소개한다. 음악 전문 번역가로서 다시 마주한 텍스트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12년 전 내가 번역한 원고를 새로 손보면서 음악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니콜라스 쿡의 원고를 계기로 번역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기억도 난다. 세상에 많은 음악이 있고 음악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음악 책들이 있지만, 음악에 대한 생각들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은 지금도 흔치않은 일이다. 오늘날 음악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상황에서 이 책은 여전히 의미 있는 울림을 준다. 음악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이지 뭐가 더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니콜라스 쿡의 책은 내가 꺼내들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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