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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조동관 약전(略傳) 경두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이인실 유랑 새가 되었네 첫사랑 작가의 말 |
成碩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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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도는 행성과 같았다. 너는 슬픔에 잠겨 네 맘대로 했고 나는 시름에 겨워 내 마음대로 했다. (…)
네가 천천히 다가왔다. 너를 보는 게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든 건 왜였을까. “한번 안아보자.” “그래.” 나는 처음으로 너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너는 나를 안았다가 안았던 팔을 풀고 외투 단추를 급하게 풀면서 말했다. “너, 다시는 안 오겠구나.” “그래.” 너는 외투를 벌렸다. 나는 네 품안에 들어갔다. “사랑한다.” 너는 나를 깊이 안았다. “나도.” _「첫사랑」 중에서 이 세계를 끌고나가는 힘의 반은 소문이다. 소문이 무슨 상관인가, 증거와 사실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그건 다른 세상, 좋은 세상 사람들 이야기다. _「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중에서 “야, 이 물에 밥 말아먹을 놈들아…… 니 에미하고 해서 새끼 낳고 다시 할 놈들아…… 야, 이 만 하는 놈들아…… 물에 튀겨서 물에 식혔다가 물을 채워서 순대 만들어 먹고 할 놈들아……”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처절한 욕이었고 욕이 끝나는 순간마다 돌을 집어던졌다. _「조동관 약전」 중에서 너는 잘못한 게 워낙 많으니까, 경두. 너는 학교를 중퇴했고 집을 나왔고 어른과 천사의 말을 안 들었고 배달을 하면서 툭하면 교통신호를 위반했으니까, 아무나 너를 때리고 죽이고 치어도 되는 거니. 너는 왜 도망가지 않는 거냐, 경두. ?도망가도 소용없어요. 아무도 도망가지 못해요. 삼촌은 손가락을 까딱하기만 해도 나를 찾아낼 수 있어요. 잡히면 난 죽어요…… 경찰도 찾지 못하는 너를, 경두, 네 부모가 너를 찾을 마음은 없겠지만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는 널, 그 친구가 어떻게 찾아낸다는 말이냐, 경두. 그놈은 네 삼촌이 아니다. 너처럼 연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일 뿐이야, 경두. 하지만 나는 네게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다. _「경두」 중에서 “봤어? 오늘도 중소기업 사장이라는 작자 하나가 목을 맸던데. 초보나 하는 짓이지. 저야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겠지만 도대체 남은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그래. 사업에 초보, 인생에도 초보인 것들.” 언젠가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가 초보였다. _「새가 되었네」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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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한 삶 속을 뚫고 올라오는 아름다움
비통한 삶 속에서도 터져나오는 웃음 성석제 소설 속의 인물은 우리를 울리다가 웃기고, 웃기다가 울린다. 모든 것이 농담인 양 힘을 쭉 빼고 너스레를 떨다가 사실은 그것이 반어였거나 진실을 품은 말이었음이 밝혀질 때, 웃음기를 거두고 한껏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지만 사실은 그것이 진한 농담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렇게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구성은 성석제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아이러니와 페이소스의 교차로이다. 성석제의 데뷔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어느 건달 사내가 자동차 사고로 추락해 사망하기까지의 4.5초, 그 찰나의 시간을 붙들고 쪼개어 써낸 소설이다. 세상 무서울 게 없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이 자동차 사고로 물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에야 비로소 외치는 “엄마, 무서워”라는 단말마의 비명은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 외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단 한마디일지 모른다. 성석제의 소설 속 인물들이 우리 주변의 인물처럼 살갑게 느껴지다가도 불현듯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한국 근현대의 인간군상을 대표할 만한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세한 바늘구멍을 뚫어 가장 멀리 또 넓게 세상을 조망하는 거장의 솜씨에 우리는 그저 넋을 놓고 동행하게 된다. 「조동관 약전」은 성석제의 장기인 한 인간의 일대기 서사를 단편으로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시골 마을의 답 없는 깡패 조동관이 “은척 역사상 불세출의 깡패로 우뚝 서는” 과정을 담았다. 인간을 법과 시스템 안에 가두고 단정하고 얌전하게 길들이려 하는 모든 것들에 처절하게 반항하는 ‘조똥깐’의 “짧고 치열한 일생”은 호쾌한 웃음으로 시작했다가 우리 역사 속 비통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며 끝난다. “이게 다 농담이면 좋겠는데.” 농담과 현실 사이에 서서, 웃다가 울다가 그럼에도 다시 웃기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는 자식들을 부려먹고 놀래주는 일을 낙으로 삼는 한 가장과 그런 아버지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아들의 팽팽한 대결을 담은 소동극이다. 이 소설이 웃음으로 그려낸 아버지의 서사라면,「새가 되었네」는 충격적일 정도의 절망과 비통함을 머금은 아버지의 서사다. 마치 곧 다가올 외환위기를 예언이라도 한 양, 믿는 사람 모두에게 배신을 당해 부도를 내고 가족에게도 버려진 한 중소기업 사장을 그려냈다. ‘새가 됐다’라는 말은 ‘부도를 내고 떴다’는 업계 용어다. 사업이 망해도 사람들을 배신하고 ‘새’가 되면 살아남는다. 그도 새가 되고 싶다. 그러나 업계에서 말하는 ‘새’가 될 수는 없다. 하여 그는 진짜 ‘새’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이내 성석제 소설의 탁월한 결말들 가운데서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독자들의 가슴을 친다. 이 밖에도 천박하고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한 주류업자와 한 병실을 쓰게 되며 그에게 대책 없이 당해야만 하는 소시민의 고통을 담은 「이인실」, 광복 후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한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서간문 형식에 녹여내 당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유랑」에 이르기까지 성석제는 마치 정교한 변검술을 구사하듯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소설가 성석제의 첫 단편소설집이 나온 지 20년 되는 해인 2016년, 성석제의 신작 소설집 『믜리도 괴리도 업시』와 함께 성석제의 초기 걸작 단편들을 다시 내놓는다. 성석제의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독자들은 난생처음 보는 인물들의 걸출한 입담과 생의 희로애락에 취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진한 페이소스를 품은 다양한 인물들이 어려운 은유나 대사 한마디 없이도 생생한 입말로 자신의 삶을 토로한다. 홀린 듯 취한 듯 그의 이야기들을 빨아들이다보면 어느새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마치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처럼 그의 다음 소설을 찾게 되는 부작용을 겪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성석제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왜 성석제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로 꼽히는지 입증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