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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영 (외국도서 담당 / berrius@yes24.com)
2016.04.15.
폴 캘러니티는 삼십대 중반의 잘 나가는 신경외과의다. 중산층 인도 이민자 가정에 태어나 고등 교육을 받았고 여러 형제들과 자랐다.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중에는 의사도 여럿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의사인 아버지는 교육열에 불타던 어머니의 의견을 뒤로 하고 학군과는 거리가 먼 동네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곳에는 뒷켠에 사막이 있었고 밤이면 별들이 쏟아지듯 반짝였다. 문을 열어두면 뱀이 집에 기어들어오기도 했다. 근처 고등학교에는 좋은 대학을 갔다는 졸업생들도 없었다.
폴의 어머니는 다른 인도의 어머니들 처럼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기를 바랬다. 학교 교육은 어머니가 원하는 수준이 못 되었던 것 같다. 동네 아이들도 그닥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한 방편으로 책들이 폴을 더 좋은 대학으로 데려다 줄 것처럼, 어린이 청소년 필독서들을 끊임없이 폴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느새 그는 자기 학년보다도 꽤 수준이 높은 책들을 읽게 되었다. 그는 책을 읽는 일이 퍽 즐거웠다. 문학을 사랑했고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기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답을 구하기에 문학은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삶을 영위하는 생명 그 자체도 이해하고 싶었다. 대학에서 문학과 생물학 수업을 같이 들으며 그의 갈증은 조금씩 채워졌다. 그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생명의 메커니즘을 깨닫는 것은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탠포드 영문학과에는 과학자의 시선을 가진 문학 청년이 설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토록 오래 문학을 공부했는데 환영 받지 못하다니. 그는 자신이 다른 문학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제야 주변의 의사 친척과 가족들이 보였고 운명처럼 의사의 길을 가게 된다. 의업은 삶과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공부로 찰랑이는 의대생 시절을 지나 수련의 과정에 들어간 그는 처음으로 해부학 실습을 하게 된다. 책에서만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실습 대상은 ‘사체’였지만, 그들은 병사 하기 전에 그들의 죽음이 의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기부’한 사람들이었다. 환자들은 해결 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의대생들은 그렇게 삶과 죽음을 직접 맞닿뜨리며 진짜 의사가 되었다. 열 시간의 수술, 네 시간의 수면, 자신의 환자가 살고 죽는 것을 보아온 고된 수련의 시절의 끝이 보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 각지의 내로라 하는 의학센터에서는 그의 우수한 수술 실력을 높이 사서 서로 데려가려고 야단이었다. 삼십대 중반에 폴은 이룰 수 있는 모든 성공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고된 수술 스케줄 탓인지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오고 체중이 심하게 줄기 전까지는. 폐암 말기였다. 수년간 다른 사람들의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수술을 해온 그였다. 사람들의 뇌를 열고 종양을 잘라내고 봉합했다. 살려낸 환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환자들도 있었다. 기술적 탁월함이 도덕적 필수사항이 되는, 실력이 윤리가 되는 의사의 세계에서 뇌를 다루는 일은 삶을 다루는 일이었다. 종양을 제거함으로서 환자는 언어를 잃거나 평범한 사고를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업계의 전문가였고 환자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 인간적인 의사였다. 그러나 스스로 환자가 되어 수액을 맞기 전까지는 자신의 모든 환자들이 병상에서 먹는 음식에서 수액 때문에 혀에 짠기가 느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몇 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러 항암 치료를 병행하면서 싸워가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는 죽어가는 대신 살기로 결심한다. 아내와 그는 전부터 계획해 왔던 아이를 갖기로 한다. 옳은 것일까?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것과 아내와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쁠까? 우리는 우리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본다. 세상이라는 큰 그림의 한 부분 밖에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퍼즐을 맞춰갈 뿐 누구도 완전할 수는 없다. 그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말한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거둔다. 네가 거두는 것은 다른 이들이 심은 것이다.’ 기적적으로 호전이 되어 다시 몇 번의 수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되고, 얼마 전 찍은 자신의 CT 스캔을 체크하던 그는 작은 무엇을 발견한다. 작지만 분명히 새로운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이십분 퇴근길 그는 전에는 몰랐던 소나무 냄새를 맡는다. 병원의 짐을 정리하며 서적들을 챙기던 그는 두고 오기로 한다. 이곳에서 더 쓸모가 있을 테니까. 오래지 않아 그는 예쁜 딸의 아빠가 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를 보며 그는 아이가 자신을 기억할 수 있을만큼만 세상에 조금 더 머무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딸이 십대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글은 그 자신 보다 오래 살아 남을 것이므로, 그는 자신의 삶을 담은 책을 마무리 하며 미래의 딸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너는 내 삶의 커다란 기쁨이었다고. |